2015년 7월 SNS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 화제가 됐다. 아르헨티나 국회에서 찍혔다는 그 사진 속에서는 여성 국회의원 하나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다. 따로 마련된 수유실이 아닌 회의장에서였다. 워킹맘을 위해 공적인 장소에서의 수유를 허용하는 아르헨티나의 관대한 문화에 감동했었다.
그러나 내가 감동하는 사이 일각에서는 이런 설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아르헨티나의 관대함에 대한 감동은 접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여기나 거기나 갈 곳은 멀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젖먹이 아기를 일하는 곳에 데려와야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르헨티나의 복지 시스템의 부실함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나라에서는 육아가 오로지 개인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어느 것이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건 원래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압박으로부터 과연 다른 나라의 워킹맘들은 자유로울까? 우리나라보다 복지 시스템이 월등히 잘 갖춰져 있는 선진국들은 다를까? 답은 대부분 YES다.
1. 프랑스? YES
프랑스는 “모든 아이는 국가가 키운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출산 및 육아를 국가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GDP의 5% 이상을 배정한다. 한국은 0.5% 미만이니 한국의 10배다. 프랑스의 보육 정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각종 수당이다.
출산 시에는 900유로(111만 원) 가량을, 입양 시에는 1,800유로(222만 원) 가량을 받는다. 기본 보육수당은 신생아가 만 3세가 되기 전까지 1회 180유로(22만 원) 가량을 지원한다. 가정보육수당은 6세 미만의 아이를 키우기 위한 보육 비용을 보조해주는 것인데 최대 450유로(180만 원) 가량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보육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개인 보육사를 쓸 경우에도 국가가 일정 금액을 보조한다. 여성이 출산 후 복귀하여 일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는 물론이다.
2. 스웨덴? YES
스웨덴은 높은 출산율과 여성고용률을 자랑하는 나라다. 그 바탕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육아휴직 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스웨덴에서 아이를 낳은 부모는 각각 240일의 육아휴직 기간을 가진다. 주목할 것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60일을 제외한 180일은 상대방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렇게 해도 미처 소진하지 못한 육아휴직 기간을 아이가 만 8세가 되기 이전까지 탈탈 털어 쓸 수 있다는 점. 마치 남은 LTE 데이터 이월하듯 육아휴직 기간도 이월 가능하다. 또한 유연한 근무 제도로 인해 근무시간의 75%만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로 인해 스웨덴의 워킹맘들은 ‘직장이냐, 아이냐’의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일과 육아를 안정적으로 병행할 수 있다.
3. 일본? NO (그래도 한국보다 낫다)
일본은 역시 돈빨이다. 아동수당은 15세까지의 아동에게 매월 1만 3,000엔(13만 원)을 보조하며 이는 일본에 합법적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에게도 해당된다. 육아휴직은 아이가 만 1살이 될 때까지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급이 원칙이기 때문에 다른 복지선진국의 육아휴직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이외에도 근로시간 단축과 탄력 근무제도를 마련해놓았지만 경직된 근로문화로 인해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의 상황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한국 기업도 육아휴직 같은 정책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월급은 비용으로 잡히는데 출산휴가를 쓰면 일할 사람은 사라지니 나머지 구성원들이 ‘뒤집어쓴다’고 생각하며, 아이가 있는 여성은 가정에 신경 쓰느라 제대로 업무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이 일반 사원들은 물론 인사 담당자 사이에서도 만연하다. 입사 면접 때 당당하게 “임신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는 수준이니… 말 다 했다.
4. 중국? YES
중국은 산아제한정책을 시행하기에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프랑스, 스웨덴,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비교 좋아하는 한국인들을 위해. 중국은 한 마디로 특별한 보육정책이 없다(…) 맞벌이 부부의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워킹맘의 ‘업무와 가사 환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 및 한국과 뚜렷이 비교우위에 있는 점들이 눈에 띈다.
일단 법으로 정해 놓은 출산휴가를 칼같이 보장한다. 기본 98일에 늦게 결혼(남 26세, 여 24세 이상)하면 추가로 30일을 더 준다. 산모 건강 상의 문제가 있을 경우 여기에 30일을 더 주어 대략 158일 정도를 받는 게 보통인데 기업은 절대 출산휴가에 대해 눈치를 주는 등의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초저출산 국가인 한국은 뭘 믿고 이러나 이해가 안 되는 대목…).
무엇보다도 한국, 일본에 비해 가사분담 문제에 있어 남녀가 월등히 평등한 편이다. 중국 남성은 거들거나 돕는 수준이 아니라 여성과 비슷한 수준으로 가사를 도맡아 한다. 청소는 물론 요리, 빨래하는 남성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노동력’으로서 남녀에 차등을 두지 않았던 중국 사회주의의 영향이 문화 전반에 스며든 까닭이다. 때문에 대도시 중국 여성의 80%가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다.
청년만 헬? 워킹맘도 헬
우리나라에서 일과 육아의 병행이란 과제는 거의 여성 개인의 역량에 맡겨져 있다. 친정엄마나 시댁이 도와주지 않으면, 시터를 여유롭게 쓸 만큼 고소득이지 않으면 한국에서 워킹맘은 극한도전이다.
시스템 외에도 산적한 문제는 많다. 워킹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기업문화는 국가가 보장하는 지원제도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만들며 ‘저녁 없는 삶’으로 대변되는 높은 노동강도와 이를 당연히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워킹맘 스스로 일을 포기하도록 몰아간다. ‘슈퍼우먼’이지 못한 약한 워킹맘들은 ‘전업맘’이 되고 ‘경단녀(경력단절 여성)’가 된다.
워킹맘을 괴롭히는 4중의 압박을 수치화한 ‘워킹맘 고통지수’도 존재할 정도다. 2013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3%가 ‘워킹맘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청년에게만이 아니라 워킹맘에게도 한국은 헬이다.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는 결국 양성이 평등한 그 사회의 문화와 여성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기업의 높은 인정으로부터 나온다. 프랑스와 스웨덴의 성공 역시 여성 노동력의 가치를 인식하고, 남성이 돈을 벌고 여성은 가사를 돌보는 전통적인 모델을 극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육아는 엄마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남성의 가사분담은 ‘돕는 것’이라는 의식, 육아휴직 줘가며 여자를 뽑느니 남자를 뽑겠다는 기업의 마인드, 여자들과는 일하기 어렵다는 말이 문제없이 통용되는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우수한 복지제도’도 작동할 수 없다.
OECD에서 나온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정책 시스템 잘 갖춘 국가일수록 30대 여성 고용률이 높고, 여성 고용률이 높을수록 출산율도 높다고 한다. 요즘 여자들이 이기적이게도 자기 일 한다고 아이를 안 낳는 게 아니란 얘기다. 여성이 일을 많이 하는 사회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다. 여성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와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자.
여자들이 일한답시고 애를 안 낳는다. (X)
여자들이 맘 놓고 일을 할 수 있어야 아이도 낳는다. (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