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노트를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업무 수첩을 쓰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노트에 기록을 남기지는 않았죠. 초등학교 이후로는 일기를 쓴 적도 없었습니다. 그랬던 제가 노트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났습니다.
2년 동안 3권의 노트를 썼습니다. 노트 즐겨 쓰시는 분들에 비하면 쓴 분량이 많지는 않습니다. 문득 2년 동안 나는 노트에 어떤 것들을 적었나? 정리를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나중에 노트에 쓴 내용 중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쓰려면 내용의 색인도 필요할 것 같았지요.
그래서 노트 색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2년 동안 쓴 노트를 처음부터 한 페이지씩 넘기며 어떤 내용을 썼는지 구글드라이브 스프레드시트에 적어 보았습니다.
2년 동안 작성한 노트, 통계를 내보다
스프레드시트에 각 메모의 작성 날짜, 주제, 카테고리, 키워드, 중요도, 발행 여부(블로그 글 또는 프리젠테이션 발표), 발행 글 링크 등을 써넣었습니다.
스프레드시트에 다 정리한 다음 통계를 내보고, 노트에 작성한 메모들의 소스를 분류해 보았습니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한 것이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제 생각을 정리한 글이 많았습니다. 세미나를 듣고 내용을 정리한 것도 25회로 꽤 되네요. 다음 노트에 작성한 글의 주제를 분류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글의 주제를 분류해보니 지난 2년 동안 제가 어떤 쪽에 관심있었는지 한눈에 보이네요.
노트 작성, 어떤 식으로 했나?
노트를 쓰는데 형식을 따지지는 않았습니다. 글씨를 예쁘게 쓰려고도 하지 않았고요.
1) 책 내용 정리
책을 읽고는 다음과 같은 식으로 노트에 적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줄 친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고, 그 부분에 대한 제 생각을 짧게 적었습니다.
책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해보기도 했고요.
책 표지를 조그맣게 따라 그리는 것도 재밌더라고요.
2) 생각 정리
주로 블로그 글이나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을 구상할 때 생각 정리를 위한 메모를 많이 했습니다. 글의 바탕이 되는 이론을 정리해 보기도 하고요.
글의 구성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글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연습도 해봤습니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기 전에 슬라이드 구성을 그려보았네요.
3) 세미나 내용 정리
세미나를 들으면서 실시간으로 마인드맵을 그린 적도 있었는데요. 요즘은 마인드맵을 그리지는 않고 그냥 빠르게 받아적습니다. 세미나 중요도에 따라서 전체를 정리할 때도 있고 때에 따라 나에게 새롭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선별해서 적고 있어요.
4) 팟캐스트 정리
팟캐스트도 그냥 수동적으로 듣지만 말고 내용을 정리해보면 실제로 내 삶에 적용할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5) 그림 그리기
가끔은 실력은 없지만 그림도 그려보고요. 제 사무실 책상에 있는 노호혼도 그려보고…
아들이 읽는 동화책 그림도 따라 그려보고요.
비주얼씽킹 좀 해보겠다고 책에 나온 그림들 따라 그려보기도 했네요^^;
2년간의 노트 작성, 무엇을 남겼나?
2년 동안 노트 3권, 약 300페이지를 쓰면서 저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살펴봤습니다.
1. 책 읽기의 변화
저는 원래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책을 보고 나서 항상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기는 하는데 나중에 생각이 안 나는 거죠. 참 좋은 책을 본 것 같은데 나중에 기억을 못 하니 활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책의 중요한 부분을 복사한 뒤 따로 철을 해서 보관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해둬도 나중에 다시 보는 일은 생기지 않더라고요. 결국 한 번 본 책이 잊혀지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노트를 쓰면서 책 읽기가 달라졌습니다. 책의 줄 친 부분을 노트에 옮겨 적고, 거기에 제 생각을 쓰기 시작하면서 책과의 만남이 바뀌었습니다. 저자와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노트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블로그에 쓸 글의 내용을 다시 한번 노트에 정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글을 완성하고 나면 이제는 그 책과 저자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하나씩 생겼습니다.
노트 작성을 통해 한 번 만나고 잊혀지던 사람 같았던 책이 편지를 주고 받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노트 작성의 효과를 체험하니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이 다시 책 읽기를 불러오는 선순환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고 노트를 작성하는 것이 즐거운 시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책을 읽고, 노트 작성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블로그 글로 마무리하는 사이클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2. 블로그 글쓰기의 변화
메모-생각 정리가 습관화되면서 쓰고 싶은 주제가 계속 생겼습니다. 블로그 할 시간이 없어서 못 쓰지 소재가 부족해서 못 쓰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블로그 소재가 떨어지면 이번에 만든 노트 색인을 보면서 아직 블로그 글로 발행하지 않은 주제를 찾아서 써도 되겠더라고요.
책을 읽고 내 생각을 더해서 글을 쓰는 일을 자주 하면서 블로그 글의 질도 조금씩 향상했습니다. 블로그 초창기에 사진과 단문 위주의 글을 주로 썼던 것과 비교하면 요즘은 하나의 주제를 구조를 갖추고 에세이의 형태로 쓰는 글쓰기로 발전했습니다.
3. 세미나 소화하기
세미나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고, 다시 읽어보고,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나의 삶과 접목되는 부분을 찾아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SNS에서 인기 끄는 3가지 비결」은 소셜미디어 콘텐츠 관련 세미나를 듣고 쓴 블로그 글입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부터 제 블로그 글의 제목을 짓는데 좀 더 신중해졌죠.
세미나를 듣고 전에 읽었던 책과 연결해서 글을 써보기도 했습니다. 「내 안의 열등감과 만나는 방법」이 바로 ‘미생’ 윤태호 작가의 강연과 책 『아들러 심리학 해설』을 연결해서 쓴 글입니다.
4. 정보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화
이상혁 님 생각정리 세미나 2차 ‘메모는 왜 해야 하는가?’ 강의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과 정보를 만드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정보를 소비하는 사람 = 생각하지 않는 사람 = 메모하지 않는 사람
- 정보를 만드는 사람 = 생각하는 사람 = 메모하는 사람
노트에 메모를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다른 이와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정보의 소비자에 머물렀던 제가 정보의 생산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다음 포털의 추천글 목록에 오르기도 했고,
다음의 ‘많이 본 글’ 섹션에 제 글이 뜨는 일도 종종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를 받아먹기만 하던 제가 메모를 하고 노트를 쓰면서 남과 공유할 수 있는 정보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죠.
노트를 쓰면서 느낀 점
2년간 노트를 쓰면서 느낀 점입니다.
- 노트에 손으로 쓰면서 생각이 발전하는구나.
- 노트에서 생각이 성숙해진다. 노트는 생각의 발효가 일어나는 옹기와 같다.
- 메모-생각정리-글쓰기를 통해 하나의 주제가 완전히 내 안에 자리잡는다.
- 노트에서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고 융합이 이뤄짐. 서로 다른 주제의 노트 메모가 합쳐져 하나의 글로 탄생. 노트는 생각의 반응로.
- 손으로 쓰는게 즐거워진다. 필사의 즐거움.
- 생각의 일기장을 갖게 됨.
- 노트에 적히는 내용을 통해 내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알게 됨. 마인드와칭!
처음 노트를 만들면서 ‘ReBirth Note’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2년 동안 노트를 쓰면서 저는 다시 태어났으니까요.
노트 쓰기를 통해 나에게 일어난 변화
- 책 읽기, 세미나 듣기, 블로그 글쓰기의 질 향상
- 생각이 충돌하고 성숙하는 반응로를 갖게 됨
- 정보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변화
- 내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됨
옛날에 올렸던 글입니다. ㅍㅍㅅㅅ에서도 이미 발행된 적이 있죠. 글을 올리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고, 여러 SNS를 통해 질문을 주시는 등 호응이 작지 않았습니다.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모와 노트 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많구나’
『메모 습관의 힘』은 그 분들을 위해 제가 정성껏 준비한 대답입니다. 메모라는 작은 습관이 어떻게 삶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묻는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며 그 그림과 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문: 마인드와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