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만 쓴 게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많은 책을 썼다.
오래전 한 권의 영화에세이를 펴냈다.
내가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마지막 책이다.<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극장에서 본 최초의 19금 영화는 <개인교수>였다. 실비아 크리스텔이 반쯤 감긴 눈으로 주인공 소년을 올려다보는 포스터는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재개봉관의 낡은 화면 속에서 나무에 올라(그냥 나무에 올랐겠는가) 소년을 유혹하던 그녀의 모습은 잊을 수 없다. 당시 봇물처럼 나오던 B급 성인영화에서 <개인교수>는 단연 인기가 높았고, 당시 청소년기를 보냈던 상당수 남자들에게 실비아 크리스텔은 ‘첫 경험’이었다.
상영관에서 본 최초의 19금 누아르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였다. 홍콩 액션누아르가 전부였던 그 시절 로버트 드 니로, 제임스 우즈, 조 페시 등이 열연했던 그 영화는 다른 세상이었다. 뒷골목을 누비던 어린 갱스터가 총에 맞아 쓰러질 때 나도 쓰러졌고, 주인공 누들스가 벽틈으로 여주인공을 훔쳐볼 때 내 가슴도 뛰었다. 물론 이 영화가 원래 251분짜리 분량이었는데 국내에서는 100분 남짓의 영화로 개봉됐다는 사실은 커서야 알았지만.
이성과의 첫 데이트에서 본 영화는 <양철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영화는 난해했고 불편했다. 아직 손도 잡아보지 않았건만, 마치 야동이라도 같이 보고 나온 것처럼 어색했다. 가끔 말하지만 만약 그때 처음 함께 본 영화가 <양철북>이 아니었다면 나의 첫사랑에 대한 추억은 많이 바뀌었으리라(양철북이 나쁜 영화라는 게 아니다. 그 영화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음악이나 책이 있다. 모든 기억은 색이 바래도 그때 그 순간에 흘러나왔던 음악, 그리고 읽었던 책. 그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이나 그때가 떠오르곤 한다. 영화도 그렇다. 감독이나 배우는 고사하고 언제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할 수 없지만 잊히지 않는 영화들이 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줬던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로마인 이야기의 할머니가 영화 얘기를?”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가 출간됐을 당시 신간 안내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로마인 이야기의 할머니가 영화 얘기를?”이었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추억은 누구나 같구나”였다. 때는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거짓말 같은 드라마를 보고도 결승전에 진출하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던 때였다.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이 책을 샀다.
과연 영화 얘기였다. 그것도 추억의 영화와 추억의 배우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인기를 누리던 배우들이 상당수였고, 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눈을 감은 배우들도 많았지만 어찌 그들을 모를 수 있겠는가. 첫 페이지를 열었는데 에바 가드너가 그 특유의 농염하고 강렬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두 번째 페이지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다음장은 <로마의 휴일>로 이어지더니 <하이 눈>의 게리 쿠퍼, <졸업>의 더스틴 호프만이 거기에 있었다.
시오노 나나미를 좋아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며 나도 카이사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고, <르네상스의 연인들>을 읽으며 격동의 그 시대를 살았던 네 여성의 불꽃같은 삶을 흠모했다.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로도스 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으로 이어지는 전쟁 3부작을 읽으며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순간도 지켜봤다.
시오노 나나미,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는 인기도 많았지만 논란도 있었다. 무엇보다 카이사르에 대한 지나친 미화가 문제였다. 아무리 로마를 사랑한 여인일지라도 상당수는 사료에 근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고대 로마에서 꽃피우기 시작했던 민주주의를 밟았던 부분은 생략되고, 오로지 그의 영웅적인 스토리에만 눈길을 주었을 것이다. 루비콘 강에서 병사들을 향해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치고, 로마의 원로원을 향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고 보고했던 그 카이사르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의 카이사르에 대한 사랑을 에세이집 곳곳에서도 남겼는데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도 예외는 아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영화 <하이 눈>을 설명하며 “게리 쿠퍼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공통점이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의 종말을 보라. 온몸을 던져 법과 질서를 위해 싸운들 아무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평화니 질서니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게리 쿠퍼에서 카이사르를 발견하다
영화 <하이 눈>에서 혼자 악당들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는 케인(게리 쿠퍼)에게서 그녀는 카이사르의 모습을 본 것이다. 카이사르가 그런 인물이기만 했을까? 결국 시오노 나나미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카이사르로 상징되는 남성 중심의 세계관, 영웅 중심의 세계관이다.
그래서 <로마인 이야기>에는 “남자가 강렬히 원하면, 여자다운 여자는 굴복하기 마련이다”라든지 “선물을 받으면 여자들은 기뻐한다. 카이사르는 인기를 얻기 위해 선물한 것이 아니라 여자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선물한 것”이라는 등의 표현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다만 역사가 아니라 영화라는 장르로 넘어오면서 좀 더 낭만적으로 미화됐을 뿐이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낭만적 표현’들이 싫지 않았다. 어떤 대목에서는 동감도 했다(어쩔 수 없는 마초 기질 때문이지 모르겠다). 그리고 수없이 밑줄을 그었다. 맞는 얘기인지 틀린 얘기인지 지금으로서도 분간하기 어렵다. 들어보시라.
“시인 릴케가 남자의 순수한 사랑을 경험한 여자는 평생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지만, 진심으로 여자를 사랑한 경험을 가진 남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여자에 대해 늘 성공하는 남자의 무기는 외모도 아니고 풍부한 교양도 아니고, 더욱이 지위나 경제력도 아니며, 오로지 말 한 마디에 달려 있다는 것은 나만의 독단적인 생각은 아닐 것이다.”
스펜서 트레이시를 사랑했던 캐서린 햅번, 게리 쿠퍼를 사랑했던 패트리샤 닐(둘의 사랑은 지금 표현으로 하면 불륜이었다)을 소개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
“불륜을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여자는 남자를 독점할 생각을 버린 여자뿐일 것이다. 남자를 자기만의 소유로 삼으려는 순간, 파국을 맞이하는 것이 불륜의 숙명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녀의 섹스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들. “섹스 없는 남녀의 우정이 가능한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나이지만, 섹스가 있는 우정이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다”, “한 번도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은 남자란 여자에게 몹시 불안한 존재이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선까지 억지를 부려도 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마지막 책
어찌 됐든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숱한 영화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 <닥터 지바고>, <로마의 휴일>, <모로코>, <카사블랑카>, <하이 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고전영화에서 <플래툰>, <졸업>, <지옥의 묵시록>, <미저리>, <택시 드라이버>, <샤이닝>과 같은 문제작을 거쳐 <다이 하드>, <람보>,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프리티 우먼>과 같은 대중영화까지. 본 영화는 다시 보고 싶고, 안 본 영화는 꼭 보고 싶게 만든 책이었다.
세월은 지났다. 시오노 나나미는 지난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을 비중 있게 보도한 아사히신문에 대해 “대상에 다가가 따뜻한 감정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객관적 시선을 가지지 않으면 언론의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며 극우세력의 논리를 옹호했다. 또 이 신문이 네덜란드인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자 “미국과 유럽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네덜란드 여자도 위안부로 삼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다.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사랑이든 뭐든 집착하면 판단을 흐리고 눈을 멀게 한다. 지나친 카이사르의 사랑은 결국 남성, 힘, 국가에 대한 집착이 됐다. 시오노 나나미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런 것조차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리는 ‘진짜 사랑’을 평생 해보지 못하고 영화로나 맛보면서 그렇게 나이가 든 것 같아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다만 그녀의 책은 더 이상 읽지 못할 것 같다(얼마 전 <국가와 역사>라는 책이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국가관이나 위안부 발언 때문만은 아니다. 내 인생의 영화를 돌아보게 했던 <내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내가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마지막 책으로 기억될 것이다. 책장에 꽂여 있는 이 책을 볼 때마다 내 인생의 영화를 생각하게 해준다. 고마운 책이다.
원문 : 책방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