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시위문화 개선
‘시위문화 개선’은 80년대 당시 어용언론의 대명사 서울신문의 매일 테마였다. 어떻게 아냐고? 도서관에서 공부 안 하고 신문 보는 애들 있잖아. 내가 그 전형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이건 아니란 걸 알았다. “뭔 개소리여” 하고 침을 뱉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학생이 되면서 그 테마가 어떤 면에서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집회에 갔는데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풍경을 자주 대했다. 가령 쬐금한 동네 파출소는 왜 타격하나? 화염병 투척 말이다. 80년대처럼 학우와 동지가 부당한 폭력에 의해 잡혀갔다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그런 경우도 아냐. 말 그대로 그냥! 깨부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날 하두 궁금해서 타격에 나가는 친구에게 물었다. 야 그거 왜 하냐? “몰라서 물어” 듣고 보니 뻔한 이야기다. 미제의 주구 김영삼, 김영삼의 주구 경찰 끄나풀… 뭐 이런 시답잖은 답이다. 아 시바, 그렇게 갑갑하면 경찰서를 폭파하든가. 점령을 하든가. 왜 동네 파출소를 부수냐고.
2015년, 민중총궐기를 지켜보며
많은 시간이 흘렀다.
더욱 더 시위형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민중대회를 보고서도 그렇다. 차벽 문제부터. 가슴에 손을 얹고 답하자. 경찰이 차벽 치우고 약속대로 노란색 폴리스라인을 예쁘장하게 친다고 가정해 보자. 이거 안 넘어갈 거라고 자신하는 분은 손들어 보시라.
안 된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안다. 난 매년 열리는 농민대회에 자주 나갔다. 올라오면서 차에서 약주 한 잔 하고 집회에 앉아서도 한 잔 하시고 오후쯤이면 광장 전체가 막걸리 냄새로 덮인다. 불콰해진 어떤 이들이 경찰방패 벽 앞으로 달려간다. 무대에 누가 올라오든말든 상관 없다. 가져온 죽봉이나 깃발깃대를 들고 마구 찌른다.
그 중 누군가 경찰봉에 맞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서로 사생결단 모양새. 무수한 부상자가 발생한다. 깃대봉은 굉장히 위협적인 무기다. 의경의 안면을 강타하면 심각한 부상자가 발생한다. 이어 전경 대오가 무너지면 열받은 경찰들이 우수수 뛰쳐나와 마구 팬다. 시위대도 심각한 부상자 또는 아주 나쁜 경우 사망자가 발생한다. 거의 매년 반복해온 상황이다. 내 말이 틀렸나? 민중대회는 폴리스라인 못 지킨다. 인정하자.
매년 이런 도돌이표를 반복하다가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차벽이 등장했다. 난 훨씬 안전한 선이라고 여겼고 어떤 이인지 표창을 줘야한다고 생각했다.
부문별 집회. 왜 시민들을 갈기갈기 여기저기 흩어져서 모이게 하는지 어떤 분이 의문을 제기하셨다. 어떤 이는 포위당하는 것보다 경찰을 둘러싸는게 낫단다. 스타크래프트 하냐. 참 쓸데없는 소리다. 난 안다. 매우 단순한 욕망 때문이다. 어디 위원장 어디 부위원장 어디 소위원장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인사하는 자리. 마이크 안 줬다고 물컵 던지고 예산 뒤트는 정치인과 뭐가 다른가? 그런 인사는 평소 SNS로 하면 좋겠다. 옛날엔 소통 도구가 없었다지만 지금은 평소에도 다 할 수 있지 않나. 날도 추운데 여기저기 오라가라 마십시다.
이미 밝혔듯 제발 경찰장비 좀 건드리지 말자. 차에다 밧줄 묶어 끌고 자빠뜨리면 당연히 대응할 수밖에 없지. 가만히 지켜보면 그게 어디 경찰이냐.
더 나은 데모를 만들어갈 순 없을까
이런 걱정은 실로 그렇다. 애비가 되니 더 느낀다.
좋은 세상이 와도 데모는 반드시 존재한다. 데모가 없다면 진짜 나쁜 세상이지. 우리 아이를 잘 키운다면 그도 데모에 나갈 것이고 성정이 비겁하지 않다면 앞장설 것이다. 그걸 만류할 수가 없다. 그때마다 벌벌 떨면서 걱정과 수심에 가득찰까. 그런 꼴이 되고 싶은 분 있나? 어느 날 아이가 크게 다쳐서 온다면 경찰을 원망 안 할 것이다. 그때까지도 우리 시위 형태도 바꾸지 못한 당신들을 원망할 것 같다.
전혀 경험 못 해봤다면 이런 소리 안 한다. 아니, 못할 것이다. 효순이 미선이의 광장. 2002 월드컵. 탄핵 집회를 거치며 우린 시위하는 법과 광장을 공유하는 법을 알았고 지켜야할 선을 알았다. 그때도 폴리스라인이 있었고 이순신 동상 앞에 경찰벽을 쳤다. 우린 경찰벽을 보지 않았고 우리를 봤다.
컨셉은 매우 간단하다. “국민과 함께 민중과 함께”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하지만 당신들은 정작 함께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차벽 뽀개는 데 관심 많다. 누군가 이런 반문을 할 것이다. “이번엔 달랐다. 경찰이 먼저 공격했다.”
뻥치지 말자. 이번 민중대회 훨씬 전부터 작년에, 재작년에, 그보다 더 전에, 이미 문제가 드러났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인가.
원문: 김동성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