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5년 11월 19일에 최초 발행된 게시물입니다.
이방원이 철퇴로 정몽주를 내려쳐 죽인 후 조선이 건국되자 어떤 이들은 두문동에서 불연기를 마시며 죽음을 맞았습니다. 반면 온건개혁파 이색과 성균관 문하생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낙향했습니다.
태조는 그들을 초려하려 애썼으나 모두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고향에서 흙과 돌을 얼기설기 쌓아 배움터, 초기 서당을 꾸렸습니다. 비가 새고 바람이 들었습니다. 풍찬노숙과 다름없는 처지였습니다. 코찔찔이 개똥이 말똥이 아해들을 모아 글을 가르친다고 하니 우선 농부들부터 비웃었습니다. 사실 온천하가 “별 미친 놈들 다 봤네”, “패배자”라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웃지 않는 이도 있었으니 동문수학생 정도전이었습니다. 곧 조선의 실권을 쥔 정도전은 뒤에서 그들을 도왔습니다. 한 세대 후 최고의 현자 세종대왕은 유학보급이란 명목으로 그들을 본격적으로 도와줬습니다. 불교 세력과 온갖 무속이 지배하던 고려와 초기 조선은 그들의 헌신 덕분에 빠르게 문명사회로 이완되기 시작했습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세기 후 그들의 제자들이 실권을 쥡니다. 이른바 ‘사림’입니다.
출근길 우연히 백남기 선생님의 약력을 봤습니다. 바깥에 내리는 비처럼 마음이 젖습니다. 어떤 덧설명도 없이 약력만 봐도 백 선생님의 위대한 인생 여정을 알겠습니다. 약력 막간에 낙향한 이색과 성균관 문하생들을 떠올렸습니다. 백 선생님은 평범한 농부로 살고자 했으나 참으로 역사에 사셨더군요.
자녀 분들 지인이 쓴 글을 보니 자녀 분들이 아버지를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지 오롯이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저 따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을 겪었음에도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훌륭한 아이들을 키우셨습니다. 제가 왜 벅찬지 모르겠습니다. 살짝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존경합니다.
광화문에서 물대포에 내상을 입고 안면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선생님의 사진을 본 순간 우린 알았습니다.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그 어떤 첨단의료 기술도 백 선생님의 삶을 원상회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 정말 기적이 있다면 백 선생님께 꼭 찾아들길 바랍니다. 손자 손녀도 보시고 남은 인생은 선생님을 때리고 가둔 놈년들보다 더 행복하셔야지 저희가 안도하지 않겠습니까. 위로받지 않겠습니까.
선생님 일어나십시오.
· 1947. 8. 24.(음) 전남 보성군 웅치면 출생
· 1963. 2. 광주서중학교 졸업
· 1968. 2. 광주고등학교 17회 졸업
· 1968. 3. 중앙대학교 행정학과 68학번 입학
· 중앙대학교 법대 학생회장
· (군복무)
· 1971. 10. 위수령시 시위혐의로 1차 제적
· 1973. 10. 15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 주도
· 1974~75년까지 수배중 명동성당에 피신
· 1975. 전국대학생연맹 가입 및 2차 제적
· 갈멜 수녀원 잡부 1년
· 일흥농원 포도원 1년
· 갈멜 수도원 수도사 3년
· 1980. 3. 복교
· 1980년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 역임
· 1980. 5. 8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 노태우, 신현확) 장례식 주도
· 1980. 5. 15 서울의 봄때 의혈중앙 4000인 한강도하 주도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 행진)
· 1980. 5. 17.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
· 1980. 7. 30 중앙대학교 퇴학 처분(3차 제적)
· 1980. 8. 20.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포고령 위반 징역2년 선고
· 1981. 3. 3. 3‧1절 특사로 가석방
· 1981. 고향 보성으로 귀향(수도작, 낙농업, 밭농사 등)
· 1981. 11. 박경숙님과 결혼
· 1983.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 및 복권
· 1986. 가톨릭농민회 가입
· 1987. 가농 보성,고흥협의회 회장· 1989~1991. 가톨릭농민회 전남연합회장
· 1992~1993.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
· 1992.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준) 주도
· 1994.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
· 2014 가농전남동지회장
· 2015.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
· 부인 박경숙(율리아나)님과 슬하에 1남 2녀
· 2015. 11.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사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