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2015가 부산에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꾸준히 늘던 방문객 수는 작년보다 7천명 더 늘어, 역대 최다 입장객을 기록했다.
지금은 부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임쇼가 된 지스타지만, 사실 그 여정은 서울과 일산을 거쳐 부산까지 이르렀다. 서울에서 95년에 최초로 열린 어뮤즈월드 95부터 부산의 지스타까지 한국 게임쇼의 여정을 살펴보자.
게임쇼의 여명: 1995년 이전
지금이야 세계 온라인 게임 최강국이 된 한국이지만, 90년대 중반 한국은 게임의 불모지였다. 그래서 주로 해외 바이어나 업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박람회의 한 켠을 빌려 비디오 게임이 전시되는 정도였다. 92년에 열린 컴퓨터 영상축전에서는 일본의 SNK, 타이토 등의 게임을 빅터에서 소개하기도 했고, E3에서 선보인 가상현실 기기 등을 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스타의 공식 계보는 아니지만, 한국정보문화센터에서 주최한 이 행사는 처음엔 용산전자단지의 한국통신 소프트웨어 플라자에서 열렸지만, 나중엔 여의도 중소기업 전시관으로 옮기며 규모를 키웠다. 행사에서는 PC게임 개발사들이 출시한 PC게임들과 함께 교육용 게임들이 함께 전시되었다. 이 전시회는 국산게임전시회, 한국게임전 등으로 한국어명을 몇 차례 바꿨는데, 영어명은 Korea Games 를 유지하며 97년까지 계속됐다.
본격 게임쇼의 시작: 1995년~1999년
1995년 ‘한국 영상 오락물 제작자 협회’에서 ’한국 국제 게임 기기 및 소프트웨어 전시회(영문 약어로 Amuse World)’라는 첫 국제 게임쇼를 개최했다. 이후 한국어 이름은 약간씩 바뀌었지만 ‘어뮤즈 월드’라는 명칭은 계속 사용되며 1999년까지 코엑스에서 진행됐다.
행사를 주관한 협회는 아케이드 산업 관계자들이 중심인 단체였기 때문에, 전시회에서는 아케이드 게임기기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허나 점차 PC게임 업체들도 참여하면서 행사의 볼거리가 늘어났다. 1996년 2회째 전시회에선 ‘뿌요뿌요 대회’, 트레이딩 카드 게임인 ‘매직 더 개더링 대회’ 등 부대 행사도 생겨나며, 게이머의 축제로 거듭났다.
1997년엔 경제악화로 인해 부스도 줄고, 회장의 1/3이 스티커 사진기로 차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98년엔 더 많은 PC 게임 업체들이 참여하기도 했으며, 99년에는 문화부에서 지정하는 이달의 우수게임과 대한민국 게임대상 작품들이 전시되는 등 광범위한 분야의 게임업체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기 시작했다.
패키지에서 온라인으로 – 카멕스의 시대 : 2000년~2004년
2000년부터 어뮤즈 월드 쇼는 본격적으로 문화광광부의 지원으로 ‘대한민국 게임대전(영어로는 KAMEX)’이란 이름으로 개편되어 코엑스에서 열렸다. 첫번째 KAMEX 행사에는 심지어 북한관도 설치 되었는데(…) 정부에서 작심하고 게임을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는지, 국제 게임 기술 세미나나, 투자 설명회, E-Sports 챔피언십 등 수많은 부대행사가 펼쳐졌다. 심지어 12월 16일을 ‘게임인의 날’로 선포하기까지 했다.
이 무렵에는 패키지 게임이 화려하게 그 마지막을 불태우던 시절이라 패키지 게임들의 화려한 마지막을 볼 수 있었다.
게임업계의 중심이 PC 게임에서 온라인 게임으로 급격하게 넘어가는 상황이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던 시기라 이 무렵의 부스도 정말 화려했는데, 엔씨소프트는 심지어 성을 만들기도 했다.
KAMEX는 이처럼 온라인 게임으로 중심이 넘어가는 시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자본이 대량으로 투입되면서 이후 지스타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임이 아니라 연예인이나 모델에 지나치게 힘을 쏟는다든가, 대형 업체들이 참가하지 않는 것도 이 무렵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관람객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규모 역시 커졌다.
지스타 원년 – 일산 지스타의 시작: 2005년~2008년
2005년부터 KAMEX는 지스타로 이름을 바꾸고 일산 킨텍스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역 코엑스라는 ‘교통요충지’를 포기한 것이 많은 우려를 낳았다. 당시 일산은 지금보다 더 교통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6년에 ‘바다이야기’ 사건 등이 터지면서 2007년에는 꾸준히 증가하던 참가자 수가 줄어들기까지 했다. 여전히 온라인 게임이 강세였으며, 나중에 한빛소프트에 헬게이트를 열어준 빌 로퍼의 ‘헬게이트: 런던’이 2006년 지스타 베스트 컨텐츠에 선정되기도 했다.
비록 참가자 수는 줄었으나 2007년 지스타는 양적, 질적으로 볼거리가 무척이나 풍성했다. 무엇보다 리니지의 뒤를 이은 대작 아이온과 헬게이트 런던의 물량 대결은 게임쇼의 위상을 한 단계 높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07년에는 한국 게임계의 산타클로스 빌 로퍼에 이어 우주로 간 개발자인 리차드 개리엇이 엔씨소프트의 타뷸라 라사와 함께 지스타를 방문하기도 했다. 먹튀 소리도 들었지만, 리차드 개리엇이 한국 온라인 게임을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리차드 개리엇이 아이온을 플레이하는 사진들은 해외까지 널리 알려졌다.
한편 한국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가 함께 열리면서 다양한 게임개발에 대한 담론들이 오갔다. e스포츠 시장의 활성화와 함께 각종 이벤트 또한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 시기는 많은 온라인 게임이 쏟아져 나오던 때이기도 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 썬, 제라 등 다음 MMORPG의 빅3로 꼽히던 게임들이 화려하게 데뷔한 것이다. 물론 당시 쏟아져 나온 많은 온라인 게임들은 아이온 정도를 제외하면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이는 이후 다수 MMORPG의 성공에 기반이 된다.
부산 지스타 시작: 2009~2011년
2009년부터 지스타 행사장은 부산으로 옮겨갔다. 그 동안 문화 행사들이 서울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열리는 지스타는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모았다. 그 기대에 답하며 2009년 지스타는 부산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대성황을 이룬다. 당장 방문자 수만 하더라도 2008년 19만명에서 5만명이 늘어난 24만명이 참여했다.
이 시기에는 국산 게임의 대작화가 이어졌다. 특히 국내 2세대 MMORPG 빅3로 꼽히는 블레이드&소울, 아키에이지, 테라를 비롯해 제작비 100억 원 이상의 게임이 꾸준히 나오면서 많은 볼거리를 제공했다. 행사가 커지고 국내 온라인 게임이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디아블로3, 스타크래프트 2 등의 해외 게임도 지스타에 많은 공을 쏟았다.
또한 한국 게임 시장의 성장에 따라 기존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확장도 이뤄져, 엑스박스나 플레이스테이션 같은 가정용 콘솔기기들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소셜 게임들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모바일게임과 소셜게임 부스들이 온라인게임들만큼 큰 부스를 차지했다. 이 시기에는 단순히 소비자들이 즐기는 수준을 넘어, B2B관들이 크게 성장하기도 했다.
지스타 민간이양과 모바일 게임의 시대 : 2012년~2014년
정부의 게임지원이 끊어지면서(…) 지스타는 점차 민간으로 이양되기 시작했다. 한국 콘텐츠 진흥원 주관에서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직접 주관을 맡는 쪽으로 넘어갔으며, 2013년의 중독법 이슈가 일기도 했다. 거기에 2014년에는 부산 시장으로 손인춘법을 공동발의한 서병수 시장이 당선되어, 보이콧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 당시는 게임 시장의 중심이 온라인에서 모바일로 옮겨가는 시기였다. 때문에 예전처럼 크고 화려한 부스가 보기 힘들어지긴 했지만, 2012년과 2013년에는 닌텐도가 부스를 내는 등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준비되었다. 2014년은 VR붐과 함께 VR 기기도 전시되면서 관람객들에게 더 많은 체험할 거리를 제공했다. 소니는 여전히 가정용 게임들을 들고 오며 한국 시장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이 시기에는 B2B관이 크게 성장했다. 2014년 제2벡스코 전시장에 준비된 B2B관은 일반 관람객은 들어가지 못하는 비지니스를 위해 준비된 공간이었는데, 단순히 참가한 업체의 수만 보면 B2C관을 앞질렀다. 이는 한국 게임이 점점 산업으로 자리 잡혀 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온라인 게임 업체들의 숫자가 적어지면서 예전처럼 크고 화려한 부스는 적어지고, 부스와 부스의 간격이 넓어져 쾌적한 관람에는 도움이 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인기 게임의 체험을 위해서는 두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한다.
게임 시연회에서 게임 문화로의 확장: 2015년
2015년 지스타에서는 네오위즈, 스마일게이트, 위메이드, 컴투스 등 주요 게임사가 B2C관에 참여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참여한 업체들은 이전보다 확실히 준비를 해왔다. 시연 중심이던 기존의 상투적인 방식을 벗어나 지스타를 문화의 장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다.
먼저 가장 많은 부스를 차지한 넥센은 무려 15종의 게임을 내세웠다. 이 중 신작 게임 ‘야생의 땅 듀랑고’는 고생물학 전공자 강임성 씨가 기획을 맡아 거대한 식생 시뮬레이션 환경을 내세워 주목을 받았다. 이보다 더 큰 주목을 끈 곳은 60부스를 활용한 팬파크로, 유저들이 직접 만든 상품을 판매했다. ‘지스타 내 서코’를 방불케 했다.
최근 1조 이상의 밸류를 인정받은 4:33은 로스트킹덤을 내세웠다. 비록 많은 부스를 차지하지는 않았으나, 기존 온라인 게임 위주로 짜인 지스타에서 폐쇄형 부스 중심으로 모바일에 적합한 부스를 차렸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브랜드와 잘 엮은, 오후 4:33에 던진 선물 던지기 이벤트는 큰 인기를 끌었다.
엔씨소프트의 행보는 가장 파격적이었는데, 항상 여러 신작의 게임 시연 형태에서 벗어나 MXM이라는 한 가지 게임의 IP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이곳에서는 게임 시연 중심의 기획에서 벗어나 MXM의 캐릭터들과 각종 회사들이 콜라보한 음악, 사진기, 운동화, 오로나민C(…) 등을 전시하며 게임 내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려는 시도를 선보였다. 물론 여전히 시연대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고, 이벤트 매치를 구경하며 탄성을 자아냈지만. (…)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가장 크게 지른 곳은 지스타 행사장 안이 아닌 밖이었다. 지스타 기간에 맞춰 블레이드앤소울의 인기 캐릭터 ‘진서연’을 내세워 게임을 주제로 한 최초의 뮤지컬을 열었다. 뮤지컬 1세대 배우 남경주가 감독을 맡은 이 작품은 6개월에 가까운 준비 기간으로 기존 대형 뮤지컬 못지 않은 무대를 선보이며 게임을 문화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게임은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IP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문화로 확장되고 있다. 콘텐츠가 점점 중요해지면서, 게임 밖까지 콘텐츠를 확장하여 게이머를 붙잡으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의 추세로 볼 때 내년 지스타에서는 게임 밖으로 나온 게임 콘텐츠들을 더 많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