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허지웅 씨가 “매달 6건 이상의 기고문을 청탁받는 필자들이 기자 평균 월단위 급여에 근접하게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라는 트윗을 남겼고, 여기에 대해 서화숙 한국일보 기자가 “기자들이 얼마나 일 많이 하는지 모르나보다. 나처럼 30년 넘은 기자가 한달에 6건 씀. 그리고 기자들 월급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님. 많이 주는 방송이나 몇 개 신문사를 제외하면.” (링크 1, 링크 2)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실 프리 라이터의 조직화, 최저고료 요구 등에 있어서 허지웅 씨의 문제제기는 적절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6건 = 기자월급’이라는 도식을 꺼내자, 그 도식을 서화숙 씨가 비웃고 여기에 다시 감정적 대응을 하고 결국 논점은 산으로 갔다. 해당 트윗들은 여기에 정리했으니 링크를 타고 가자.
매사가 그렇듯, 단순화한 도식은 외우기는 쉽지만 좀 더 복합적 문제가 가려지곤 한다. 가장 뻔한 문제는 역시 ‘건수’가 도무지 좋은 척도가 아니라는 점인데, 드라마 줄거리 소개 위주로 대충 우라까이(주: 살짝 비틀어 베껴오기)하는 기사도 1건이고 작품의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함의를 심층 리뷰하는 글도 1건이다. 전자는 15분이면 쓸 수 있고, 후자는 며칠을 써도 힘들다. 그런데 문제는 전자와 후자의 고료가 같거나, 운 나쁘면 전자가 오히려 높기도 하다. 대체로 잘팔리는 대중지는 돈이 있는 반면, 안팔리는 전문지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지에 실리는 글은 그냥 기자가 후딱 쓸 수 있기에 시장이 좁다. 물론 외부 칼럼을 많이 받지만 전문성보다는 필자의 이름값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돈이 없는 매체는 아예 돈이 없어서 후려치거나 제대로 못주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딜레마를 깨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들을 제대로 된 대우로 장려하고 늘릴 수 있을까, 같은 논점으로도 이어지는 부분이다.
여튼 다시 노동과 댓가 문제로 돌아가서, 모든 노동행위에 정당한 대가를 기대할 수는 없을지언정, 후려치기는 문제가 있다. 가장 좋은 길이라면 역시 노동시간만큼의 대가가 돌아오는 것이다(역설적으로 이것이 그나마 지켜지고 있는 곳은 고료를 기계적으로 책정하고 물가상승 같은 것도 나름대로 반영하는 관공서 매체들이다). 프리라이터가 글에 풀타임으로 노동력을 투여한다면 생계 가능 수준은 충족하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하며, 일종의 글감 아웃소싱인 프리라이터 분야에 엮여있는 구도와 논점들을 약간 다시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상당 부분, 본 필자가 이미 2008년에 이미 글로 써놨더라… 물론 이것도, 프리 라이터 자격으로 기획회의라는 출판 전문지의 외주글로 쓴 것. 여하튼 이하는 그 내용을 셀프 펌해온다. 물론 ㅍㅍㅅㅅ 편집진의 짤방과 기타 편집 들어간 버전이지만.
프리라이터의 조건 : 그들은 글솜씨만 필요한 게 아니다
별다른 조직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 하나를 무기삼아 이런 저런 지면에 글을 써서 먹고사는 글쟁이들에게, 프리라이터라는 명칭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거의 비슷한 의미를 지녔으나 전문성의 측면에서 어감이 무척 다른 자유기고가라는 용어를 밀어내고 있다. 어차피 (대체로) 소속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대부분의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리라이터들은 글 자체를 예술적 창작에 대한 욕심으로 다루기보다는, 대부분 전문분야에 대한 실용적 기획을 주로 다루며 글 역시 그 과정에서 나오는 하나의 결과물로 다룬다. 해당 분야를 소재 삼아 자기표현을 하는 작가와는 달리, 그냥 그 분야의 전문 인력인 셈이다. 그렇기에 창작의 기술보다 더 중요하게 기획 마인드가 필요하며, 기획자, 저널리스트, 창작자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
필자의 경우는 현재 만화를 중심 분야로 하며, 온라인 매체 문화와 미디어 소통 일반까지가 담당영역인 뻗고 있는 ‘프리라이터’다. 현 상황은 특수한 경우라기보다는 동세대의 나름대로 보편적인 경로를 거쳤다. 공모전 입선이나 특정 지면의 러브콜에 응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떠오르던 손쉬운 자기 글 대중화 방법이었던 PC통신이 시발점이었다. 동호회 게시판 등에 분석글이나 정보글을 남기며 글을 연마하고, 그러다가 결국 직접 동호회를 만들었다. 잡지 지면에 투고글을 보내기 시작하고, 호흡이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하여 만화 비평 웹진 『두고보자』를 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자 점차 다른 지면으로부터의 글 의뢰, 공공사업 기획, 전시, 출판 등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글쟁이에서 기획자로 영역이 확장되자 그 분야의 인적 네트워크가 넓어지고, 다시금 여러 작업들로 이어졌다. 즉 특정한 데뷔무대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확장된 미디어 환경을 활용하여 하나씩 운신의 폭을 넓혀간 방식이다. 현재는 블로그 같은 개인 미디어가 더욱 보편화되어 있으니, 이런 방식의 프리라이터 입문의 경로가 더욱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프리라이터는 글 솜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대부분의 프리라이터들이 쓰는 글이 문학보다 실용문에 가깝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프리라이터로서 자리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기획 마인드다. 단지 해당 분야에 대해서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애정이 아니라, 그 판이 돌아가는 방식을 충분히 인지하고 개입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잡지 연재라면 지면 성격을 분석하고 자신의 코너의 방향성을 조율하여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출판기획이라면 최초 기획서를 들고 가는 것은 물론 출판사 편집인들과 같이 마케팅 회의까지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라이터는 가내수공업 자영업자라는 분류로 치자면 작가들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자기표현보다 자신에게 의뢰된 것, 의뢰측이나 해당 분야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유능한 프리라이터는 트럼프의 조커 카드와 같다. 왜냐하면 프리라이터가 얌전히 자신이 바라는 칼럼 연재만 하는 식으로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식으로 글 의뢰가 들어올지 모르고, 지면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는 매번 다를 수 있다.
특히 지명도가 올라갈수록 그렇다. 『한국문화예술대계』전집 같은 학문적 성격이 강한 책에 해당 분야의 챕터를 집필할 수도 있고, 중고등학생 대상 소식지에 칼럼을 넣을 수도 있다. 미술 전시회 도록에 들어가는 심층 작가론을 맡을 때도 있으며, 그냥 업계 최신 뉴스를 담백하게 넘겨야 할 때도 있다. 모든 것이 다 맞춰진 상태에서 특정 집필 주제를 의뢰받기도 하지만, 공공기관이 진행하는 한국만화 해외 홍보 사업을 위해 책자 작업을 의뢰받으며 아예 사업 전반의 기획 컨셉을 만들어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굳이 모든 분야의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문 분야 내에서는 여러 형태의 일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리라이터의 딜레마 1. 좁은 시장 vs 살아남기 위한 피나는 자기관리
프리라이터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관리한다. 그것이 바로 가장 큰 이점이자 치명적인 약점이다. 스스로 들고 가든 부탁을 받든,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프리라이터의 작업이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바로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조직 내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다. 만약 잡지사의 기자 중에 평론가급 만화 전문가가 있고 작업을 시킬 여력이 된다면, 신간 리뷰를 위한 외부 칼럼니스트는 필요 없다. 출판사 김과장이 아이템을 기획하고 완성 원고도 이미 물색해 놨다면, 프리라이터의 작업에 따로 돈을 지출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프리라이터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조직화된 클라이언트가 할 수 없는 영역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이질적인 틈새에만 집중하면 어차피 수요가 없다.
그렇다면 해야 하는 것은 수요가 있는 해당 분야에서, 조직화된 이들로는 충족하기 힘든 강력한 전문성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프리라이터는 프리라이터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것도 계속 전문성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데, 프리라이터에게 의뢰해서 작업한 노하우를 조직에서 배워가기 때문이다. 첫 해에는 외부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기획한 출판 사업이, 그 다음 해 사업부터는 이전 출판의 형식을 그대로 반복하며 내부인력으로 관리하는 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경우 단순한 반복을 표방하기에 외부 전문가의 작업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것은 어차피 조직의 입장에서 볼 때 줄어드는 비용과 견주어 판단하기 마련이다. 혹은 최악의 경우, 아예 품질의 차이를 판별할 줄 모른다든지. 따라서 전문성을 향상시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전문적 실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나만이 가진 더 훌륭한 전문성이 당신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어필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자신을 스스로 관리한다는 것의 또 다른 요소는 바로 이해관계다. 조직에 속하면 해당 분야에서의 이해관계의 상당부분이 자동적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프리라이터는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다스려야 한다. 물론 해당분야의 전문인력이면서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울 방법은 전혀 없다.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서 술자리를 한다는 식의 직접 대면의 차원이야 당연히 이런 점이 적용될 수 밖에 없고, 심지어 문자 그대로 그냥 글만 쓰더라도 그렇다. 어떤 부분을 더 밀어주고 싶은지, 어떤 부분은 비판하고 싶은지 자신의 소신에 의한 선호 역시 엄연한 이해관계로 엮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해관계를 보다 폭넓게 펼치고, 큰 시야로 융통성 있게 조율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결국 장점은 어쨌든 능력이 늘어다는 것, 단점은 무척 피곤하다는 것이다.
프리라이터의 딜레마 2. 요구되는 전문성 vs 부지런하면 바보
이렇게 이야기하면, 힘든 점은 있지만 무척 도전적이고 매력적인 직종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약간만 들춰보면 좀 더 세세한 난관이 하나 가득하다. 그중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시장이 협소하다는 것이다. 소속된 바 없이 프리라이터가 정기적인 고료로 정상적인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현재의 한국 글 시장에서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상품의 품질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원고지 매수로 계산을 하다 보니 차등 시장이 없고 경쟁이 애매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치밀한 자료 조사와 촌철살인의 진단으로 쓴 저널리즘으로 치자면 특종급 글과, 그냥 대충 느낌으로만 어렴풋이 서술한 글이 같은 가격, 예산상 잡혀 있는 원고료에 팔리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니 품질을 대가로 더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또는 품질 좋은 원고를 위한 경쟁 속에서 글 값이 올라가지도 않는다. 그 근간에는 품질에 따라서 차별화되는 지면 경쟁 자체가 부족한 좁은 시장의 한계가 있다. 연봉을 받고 연간 계약으로 프리라이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 단위로 결제하는 방식 역시 글값 상승을 막는다(최근에는 영화의 이동진 기자나 미국야구의 민훈기 기자 등 진일보한 경우들이 생기고 있기는 하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고료만 주어지는 제한된 시장에서 원고로 먹고 사는 것은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고정 인세를 벌어다주는 베스트셀러 책을 내든지, 제대로 된 월급을 주는 정규 직업을 취하든지, 원래 잘사는 집안이든지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미니멀리스트 생활로 버틸 수 밖에 없다. 업계 전문 인력 역할이 메인이고 글이 부수적인 것이면 그나마 낫고, 글이 메인이라면 생계는 더욱 압박받을 것이다. 아, 그 와중에서도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 자기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전문성을 계속 향상시키고.
프리라이터의 딜레마 3. 조직화의 어려움 vs 직종의 매력성
여기에 연결된 다른 문제가 바로 조직화의 어려움이다. 작년에 성공적인 파업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신장시킨 미국의 극본작가조합의 사례에서 보듯, 물리적 조건을 향상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조직적 압력이다. 하지만 프리라이터라는 직종은 그나마 팀 작업에 익숙한 미국 극본작가들과는 달리 작업 방식이 각각의 사업체 사장 같은 면이 있다(수익면에서는 하위 노동자이면서도). 조직화를 통한 문제 해결, 즉 민주사회의 ‘노동’ 상식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는 쪽이 좋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그대로 되짚어보면 프리라이터의 매력 역시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문성과 범용성, 그리고 무엇보다 자율성 말이다. 나아가 해당 분야에서 스스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의 즐거움을 고수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적인 난관들을 무시하고 자유로움만 보고 뛰어들 수 있는 직종과는 거리가 있다. 이 분야로 오시라고 추천하지는 않겠지만, 오시는 분들에게는 기꺼이 응원을 보내겠다.
======
…대략 이쯤에서 원래의 글은 끝을 맺는다. 아마도 후속글을 써야한다면, 더 품이 많이 들어가는 깊이 있는 전문적 내용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것의 가치, 그럼 얼만큼 받아야 정당한 것일지 계산해보기 위한 좀 더 세부적 변인들, 권리를 제도화하기 위한 다른 나라 참조 사례들, 전문분야를 인정받는 프리라이터가 빠질 수 있는 유혹의 함정을 2012년 미국의 조나 레러 스캔들 등을 통해서 살펴본다든지 뭐 그런 내용들을 꽉꽉 눌러담아 볼 수 있으리라 본다. 그러니까, 그런 글을 써내도록 돈을 주고 원고 의뢰를 해주세요.
…아, 앞서 이야기를 까먹었는데, 프리라이터로서의 능력치 가운데 하나는 이런 글감 영업이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