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는 이른 새벽 지하철로 출근한다. 생기 없는 사람들을 듬성듬성 싣고 지하철은 맥없이 구른다. 나는 매일 수면부족으로 역겨움을 참고 간신히 객차에 몸을 싣는다. 지하철 문은 아주 살며시 닫힌다. 그리고, 마지 못해 간다는 듯 천천히 출발한다. 잠에 덜 깬 사람들은 지하철을 따라 휘청거린다. 나는 그 안에서 최대한 의식을 놓으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그 새벽엔 항상 졸음으로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다. 그러면 반드시 지하철은 내가 가야 하는 역에 선다. 그리고 나는 병원 정문으로 비적거리며 들어간다.
1.
특별히 곤두선 아침, 나를 따라 지하철 승강장에 올랐던 70대 노인을 응급실에서 받았다. 그는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러 나온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유난히 핏기 없는 얼굴로, 다른 핏기 없는 사람들 틈에 섰다. 사람들이 엉키고 엉성하게 서 있어, 그는 그 중에서 구분되지 않는 노인이었다. 플랫폼으로 지하철이 느리게 들어오자 그도 지하철을 탈 채비를 했다. 특별한 것은, 그가 지하철이 오기도 전에 지하철을 타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빈 플랫폼으로 허공을 향해 뛰었다. 분명 그는 역이 아닌 다른 곳에 가려고 했을 것이다.
날아간 그는 선로 가운데를 밟고 뒤로 넘어졌다. 그의 허벅지가 선로 가운데 놓인 채로 그는 대자로 나동그라졌다. 뒤따라온 육중한 8량의 지하철은 그의 두 다리를 지긋하게 밟고 운행했다. 그의 양 다리와 그의 몸통 사이로 수많은 바퀴가 철컹거리며 지났다.
119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꾀죄죄한 그의 상반신만을 싣고 왔다. 구급차에서부터 링겔이 달려 급박하게 떨어지고 있었다. 성인 한 명이 눕기 좋은 길이의 카트에는 그의 머리부터 몸통과 골반까지만 놓여 있었다. 투박한 손길로 칭칭 감긴, 핏물이 베여 나오는 두터운 붕대 아래 카트는 허전하게 비어있었다. ‘소아 환자를 실은 것 같군.’ 뒤따라 한 대원이 뻣뻣하게 굳은 그의 두 다리를 안아 들고 왔다. 그 두 다리는 고통의 흔적 때문인지 곧게 쭉 뻗어 있었다. 그건, 바지에 등산화까지 신긴 마네킹 다리 같았다. 애초에, 사람의 다리만 잘라서 보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건 누가 봤어도 잘 만들어진 사람 모형의 다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
그의 정맥로를 확보하고 수혈을 신청했다. 그리고 나는 정형외과 동료에게 전화했다. “긴 말 안 할게. 양측 대퇴부 완전 절단이야. 일단 빨리 내려와.”
나는 의족같이 생긴 두 다리를 받아 구석에 놓고, 붕대를 끄르기 시작했다. 붕대는 너무 두꺼워서 반대로 풀어나가는 것도 한참 걸렸다. 식염수 통을 들고 옆에 대기하던 인턴이 긴장했는지 침을 꿀떡 삼켰다. 그의 목젖이 흔들리는 것이 거슬릴 정도로 나는 완연히 곤두섰다. 붕대를 완전히 제거하자, 처참하게 파괴되버린 그의 대퇴골 부위가 드러났다. 굳이 말하자면 대퇴부 상방 1/3 지점이었다. 처음 충격으로 대퇴골과 근육과 신경과 혈관이 각자 분쇄되어 터져나가 곤죽이 되어 있었다. 하얀 뼛조각은 사방에 묻어 있고, 근육의 단면은 각자 짓이겨져 있었으며, 혈관과 신경은 면발처럼 사방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지하철의 바퀴가 너무 강렬하게 살더미를 짓뭉갠 까닭에 모든 게 엉켜 붙어 버렸는지 피조차도 많이 나지 않았다. 나는 역겨운 표정의 인턴에게 끊임없이 식염수를 붓도록 지시했다.
손상 부위를 정확히 확인하고 다리를 붙일 수 있을까 판단해야 했다. 나는 식염수가 흐르는 단면에 머리를 박고 뼛조각들을 덜면서 근육을 결대로 모았다. 모으고자 하는 옆 근육과 그 옆 근육이 바퀴와 철로 사이에서 묻은 진한 쇠녹으로 한데 붙고 엉겨 있었다. 형체가 혼돈스럽게 어질러져 처음부터 어떤 근육이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그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짓밟고 뭉개며 지나간 자리 같았다. ‘씨발. 돼지고기나 소고기도 이렇게 만드는 건 쉽지 않을거야. 접합은 무조건 불가능하군.’ 잠시간의 시도 후에 포기한 나는 단면을 약간 정리만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소독 후 다시 붕대를 감았다.
3.
“내가 사는 거요? 아니면 죽는 거요?”
“환자분은 살게 되실 겁니다.”
“그럼 내 다리는, 다리는 어떻게 되는 거요.”
“그건 죽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붙일 수 없어요.”
“아아… 아… 왜 난 죽지 않은 거요? 아니, 근데 왜 다리만 죽은 거요? 아니, 나는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요?”
“다행이지요. 그런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도 흔치 않습니다.”
“다행같은 소리는 ! 아… 죽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실패한… 아니 선생. 나한테 빨리 죽는 방법을 알려 주쇼. 지금 당장. 빨리 죽는 방법을 알려달란 말이오.”
“저는 그런 것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드릴 수도 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끝까지 살릴 겁니다.”
4.
그와 그의 두 다리를 같이 들고 엑스레이실로 갔다. 오른 다리의 절단면 밑에는 오른 다리였던 것을, 왼 다리의 절단면 밑에는 왼 다리였던 것을 놓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주인이 없는 다리는 자꾸 모로 누웠다. 몸통과 방향을 맞추기 위해 누군가가 두 다리가 하늘을 보도록 양손으로 붙들어 주어야 했다. 사진으로도 짓뭉개진 근육과 산산조각난 뼈가 찍혀 나왔다. 그 뼈가 연결되어 있어야 할 사이에는 검디 검은 허공이 대신 찍혔다. 나는 그 허공에서 육중하고도 힘없이 구르는 바퀴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5.
“이건 정말 절대로 못 붙입니다. 단면을 다듬고 봉합해야 합니다.”
정형외과 교수님은 첫 마디부터 단호했다. 각자 출근하는 길에 비보를 듣고 몰려든 가족들은 첫 마디부터 혼비백산했다.
“그럼 앉은뱅이가 되는 거 아니요. 병원에 왔는데 그걸 못 붙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목숨을 살려 왔으면 다리도 살려 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정형외과 의사가 다리를 절단한다는 말은, 내과 의사가 생명을 포기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건 제가 가장 끝까지 하기 싫어하는 말이지만, 의사의 신념을 다해서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부위는 깔끔하게 잘려도 붙일까 말까 하는 곳이에요. 이건 어떤 일이 있어도 못 붙입니다. 직접 보셔야 감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기적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최선을 다하면 이루어지는 기적 말입니다.”
“제가 볼 때는 70세 노인이 두 다리가 전부 잘리고 쇼크 없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기적은 두 다리가 잘렸지만 병원에서 전부 붙여서 다시 걸어다니는 게 기적이란 말입니다!”
나는 기적에 대한 이견과 난상을 듣고 생각했다. 기적은 처음부터 그가 지하철에서 몸을 던지지 않는 일이 아니였을까. 그가 살아갈 의지를 얻어, 지하철 역 따위는 기웃거리지 않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바로, 기적이 아니었을까.
6.
몇 명의 가족들만 그 단면을 직접 보았다. 평생 땅을 굳건히 디뎠던, 자기 아버지의 다리가 무참히 짓밟혀져 다신 되돌아 올 수 없는 광경을. 그건 일반인은 보기 쉽지 않고, 타인의 다리여도 참기 힘들다. 그들은 아버지의 다리를 보고 참지 못해 오열하며 손발을 저몄다. 딸 하나는 혼절하려고 해 옆에서 붙들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함이 육중한 열차 바퀴가 되어 아버지의 다리를 짓눌러버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자기들의 하중으로 그 다리가 터져 나가 살점과 파편을 누르는 장면을 상상해버렸을 것이다. 이 장면이 꼭 필요했을까, 앉은뱅이가 되기 전에 꼭 거쳐야 할 것이 이 장면이었을까. 이걸 수술의 진행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들은 곧 동의서에 묵묵히 서명했다. 그리고, 환자는 남은 생을 앉은뱅이로 살기 위해 수술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7.
그의 상반신이 응급실에서 올라가자, 나에겐 그의 피묻은 한 쌍의 다리만 남았다. 피가 군데군데 튀어있는, 카키색 등산바지와 닳아빠진 고동색 등산화가 아직 신겨 있는 두 다리는 주인을 잃고 공허하게 누워 있었다. 그것들은 칠십년이 넘게 땅을 디뎠지만,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심지어 엑스레이조차 찍을 의미도 더 이상 없었다.
나는 두 다리를 각각 한 손씩 나눠 들고 커다란 주황색 의료용 폐기물 봉지 앞에 섰다. 이것을 내가 버려야 했다. 바지와 신발을 벗겨서 버릴까 하다가, 이미 피가 묻어 이것도 의료용 폐기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어차피, 아랫단만 남은 바지와 앉은뱅이가 신던 신발 같은 것은 세상에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나는 큰 봉투에 다리를 순서대로 한 개씩 던져 넣었다. 성인의 허리 높이에 오게 되어 있는 봉투에, 잘린 다리는 알맞게 들어갔다. 봉투 안으로 두 개의 짓이겨진 단면이 고개를 내밀었다. 다른 사람이 치울 때를 감안해 주둥이를 틀어 봉투를 묶었다. 폐기물 표시가 큼지막하게 인쇄된 주황색 봉투 안에 다리가 잘 포장되었다. 그래 놓으니, 그것은 꼭 누가 쓰다 버린 의족 한 쌍처럼 보였다. 그걸 상자에 넣어 치우고, 나는 다른 일을 시작했다.
8.
“어제 오전 8시쯤 서울 지하철 1호선 구로역에서 70대 남성이 선로에 뛰어들어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사고로 인천역 방향 전동차 운행이 40분 동안 지연돼 출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경찰은 이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뛰어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9.
아침부터 격렬했으므로, 밤새, 그리고 다음 날 아침까지도 응급실은 격렬했다. 나는 당연히 밤을 새고 더욱 큰 걸음으로 비적거리며 퇴근했다. 햇살이 강렬했고, 나는 온 몸에 핏기를 잃은 것처럼 걸었다. 나는 집에 가기 위해 늦은 출근길 사람들과 지하철에 섞였다.
의식이 가물거리다가, 어제 환자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나는 정신을 붙들고 기사를 검색해 읽었다. 큰 부상. 전동차 운행 지연. 출근길 시민의 큰 불편. 자살 시도.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곳에는 짓이겨진 근육의 결을 빗는 사람과, 그걸 다시 잘라 몽당다리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없었다. 다리를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이나, 자신의 아버지의 터진 살을 보고 구토하고 혼절하는 자식들도 없었다.
인간의 발가락 한 개만 없어져도 환상통(幻想痛)이 온다. 환상통은 그 자리가 없어지는 순간의 통증을 그대로 받는다. 두 다리가 동시에 날아가는 순간의 환상통을 평생 이겨야 하는 사람, 여간 해서 자를 수 없는 사람의 사지(四肢), 그것보다 죽어야 했는데 여생을 앉은뱅이로 살아버린 사람, 그것도 신체가 없어져 이젠 더 이상 죽을 수도 없는 사람, 그 전에 죽으려고 몇 년을 고민하다가 지하철 앞에 몸을 던진 사람의 이야기도 없다.
그곳엔 ‘큰 부상’이나 ‘출근길 시민의 큰 불편’이 있을 뿐이었다.
나의 퇴근길은 불편하지 않았다.
내가 탄 지하철은 덜컹이며 한없이 육중하게 굴러가고 있었다.
기적처럼
원문: 남궁인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