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8년에 차벽(“명박산성”) 활용을 기점으로 경찰은 집회를 컨트롤하는 전술의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종로-광화문-시청 쪽이 애초에 대규모 집회가 확산되기에 별로 좋은 지형이 아니다 보니 가능한 플랜이다. 차벽을 통해 인원이 전진하거나 빠질 수 있는 통로를 거의 틀어막아두는 것이다. 2009년부터 검토를 거쳐서 도입된 차벽보다 더 거대한 크기의 반투명 차폐막-트럭은 시위대를 더욱 완벽하게 차단한다. 2008년 여름 초반부에만 해도 집회 참가자들은 전의경들과 직접 부딪혔지만, 이제 몸과 몸이 직접 충돌하는 지점은 극소화되었다.
2.
차벽/차폐막을 통해 통로를 틀어막고 전선을 최대한 좁게 형성하는 게 제1원칙이라면, 두 번째 기법은 살수차(물대포)를 동원해 전선에 달라붙은 시위자들을 타격하고 분산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기법은 지난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훨씬 두드러졌다.
차단막 너머에서 최루액/캡사이신이 섞인 물을 분사하면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집회자들의 수를 줄일 수 있을 뿐더러, 이들을 더 큰 규모의 시위대 본체로부터 고립시킬 수도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전의경 손실을 줄일 수 있으며, 방패로 직접 시위대를 타격하는 것보다 제3자들이 보기에 훨씬 덜 자극적인 그림을 만들 수 있다. 캡사이신이나 최루액 농도가 아무리 짙다해도 카메라에는 그 사실이 담기지 않으며, 직접 이를 몸으로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 의미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3.
경찰의 전술적인 목적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집회구성원들의 이동역량을 무력화한다.
- 충돌 자체를 최소화함으로써 ‘그림’이 만들어지지 않게 한다.
- 충돌가능성이 있는 현장진압 역시 최소화하고, 대신 채증카메라를 통한 소송전으로 집회 대상자들을 개별화하여 확실하게 ‘타격’한다.
차폐막, 살수차, 채증 카메라는 21세기 초 집회 진압전술의 핵을 이루는 세 가지 테크놀로지다. 사람들은 집회 현장에서 누군가가 경찰에게 붙들리거나 얻어맞는다면 분노로 단결하지만, 집에 돌아간 뒤 몇몇 사람들에게 발송되는 벌금고지서는 철저히 운없는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진다. 벌금 연대 네트워크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개별화’ 전략은 앞으로도 유효하게 작동할 것이다.
4.
1~3 항목이 경찰이 집회현장을 대하는 방식이었다면, 좀 더 넓은 범위에서 볼 때 경찰력은 정부가 집회를 통제하는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무력화된 집회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보여주기'(demonstration)로서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못한 제3자들을 설득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에 맞서 정부가 여론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식은 불법/선동/폭력/혼란/반정부/전의경보호 등의 수사적 프레임을 통해 한국인들의 의식에 깊숙히 내재된 국가주의적 감성을 일깨우는 것이다. “집회는 ‘선동당한'(=비합리적인) 이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할 뿐인) 전의경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경제생활에 혼란을 초래하는 불법적인 행위로 그 배후에는 반국가 세력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2008년의 “촛불좀비” 및 “선동”의 수사가 유행하면서 우파들이 중도파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으며,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국가, 질서, 권위에 대한 무비판적인 존경심은 이러한 언어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이러한 언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중들로 하여금 집회 참여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갖도록 조장하고 현실에 대한 불만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감내하도록(“노오력”) 하는 것이다.
5.
심각한 부상을 입은 노인 참여자가 발생한 것을 제외하면 경찰은 지난 토요일도 상황을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8-10만명이 모인 집회인데 사람들은 종로에서 더 움직이지 못했고 연행자 수도 5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 시내 유치장 수감가능인원을 생각해 볼 때, 8-10만 단위 집회에서 50명만 연행한 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최루액은 효과적이었지만 사실 농도가 덜했어도 큰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그만큼 차폐막은 완벽했다.
11월 중순에 접어들고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면 사실상 올해 대규모 집회가 추가적으로 열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경찰은 아마도 몇 차례의 중소집회만 성공적으로 틀어막는다면 내년 여름까지 특별히 걱정할 일은 생기지 않을 거라 예측하고 있을 듯 하다.
6.
따라서 이제부터의 주된 쟁점은 여론전이다. 5개 정부부처의 합동 대국민 담화를 비롯해 우파 측에서는 며칠 전부터 계속 “폭력적인” 집회를 비난해 왔으며, 당장 각 언론에서 혼란, 불법, 폭력과 같은 키워드가 난무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이 카드는 지금까지 무난하게 작동해왔다.
동시에 집회를 비난하면서 본격적으로 각종 ‘개혁’ 법안들을 더욱 비타협적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 높다. 집회를 물리적으로, 여론 상으로도 틀어막고 총선까지 반대파의 무력감을 고취하며 “혼란”이란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지지파를 결집하는 게 정권의 마스터플랜일 것이다.
7.
그러나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애초에 이번 집회에 모인 대규모 인원이 보여주듯, (특히나 교과서 국정화 사태 이후)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이 집회/시위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을 다시금 앞지르기 시작했다. 새누리와 경쟁하는 정치세력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미지수지만, 2008년 이후 “7년만의 10만 집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 분노가 일회성인지 아니면 지속될지는 중요한 변수다.
두 번째로, 온라인 상에서도 우파들이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오던 “선동”, “폭력”, “불법”의 수사가 예전처럼 집회 자체를 틀어막는 기능을 점점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전의경들은 애초에 집회 참여자들과 부딪힐 일도 별로 없다. 당장 총선이 어찌되느냐를 넘어서, 이러한 집회 혐오와 국가주의의 언어를 깨트리고 무력화시킬 수 있느냐는 장기적으로 더 중요한 이슈일지도 모른다.
8.
1~7이 기본적으로 정부의 행동양식에 관한 것이었다면, 2000년대 후반 이후 ‘거리의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립항을 이루는 집회 참가자들에도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2008년 촛불집회의 독특함은 ‘지도부’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축소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집회참가자들은 지도부의 전술적 통제를 불신했고 광우병대책위원회를 포함한 주최측은 집회를 지도한다기보다는 장소를 선정하고 행사를 홍보하며 촛불 등 몇 가지 편의물품을 제공하는 일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 집회가 ‘사회불순세력’의 선동의 산물이었다는 우파의 프로파간다적인 해석은 사실관계에서부터 틀린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 정도로 조직적인 지휘가 가능한 주체 자체가 부재했다.
9.
우리는 사람들이 집회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조직화된 ‘전투’에서 각자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문화제’로 바뀌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2002년 효순이/미선이 집회에서 시작되어 2008년에 본격적으로 수용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어떤 목적을 위해 전술적으로 행동하면서 경찰과 충돌하거나 그것을 따돌리는 대신 주어진 공간을 점거하고 탈-법적인 시공간을 향유하는 게 집회의 행동양식이 되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나 신좌파적인 낭만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은 “집단지성”, “시민의 축제” 등의 찬탄을 금할 수 없었지만, 이명박 정권과 경찰이 개인들의 자유로운 참여로 이루어지는 문화제 모델에 감정적으로 동조하지 않았음은 확실하다. 이들의 주관심사는 새로운 형태의 집회를 어떻게 무력화시키느냐에 있었고, 이 시점부터 행정의 집회통제 모델이 점차 진압에서 관리/봉쇄로 바뀌게 된다. 2008년 촛불집회가 5월부터 9월까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해보면 이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2008년 6월 초까지만 해도 경찰의 대응방식은 진압 모델에 가까웠고, 몇 차례 큰 충돌을 겪은 뒤 이들은 통제대상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문화제 모델을 채택한 대규모 집회는 유감스럽게도 경찰의 온정적인 포용을 얻지 못했고, 경찰은 이를 좀 더 편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문화제 모델의 등장부터 집회 인원수는 그다지 중요한 요인이 아니게 되었다. 경찰은 이제 자신의 임무가 거대한 군중을 통제하는 대신 문화제가 열리는 정해진 공간만 확보하는 것으로 바뀌었음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군중의 통치가 공간의 통치로 전환한다.
10.
여기에서 지도부의 무력화와 문화제 모델의 등장, 나아가 “선동”의 수사가 공유하는 공통의 전제가 있음을 짚어두자. 그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표현”만을 유일한 선으로 이해하는 인간모델로, 나는 이를 개인주의적 자유주의(individual liberalism)으로 부르고 싶다.
애초에 이러한 사고는 90년대부터 진보적 자유주의 진영에서 보수적 인간관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었으나, 2000년대부터 소비주의 및 탈정치주의와 결합하면서 정치적 참여 및 저항과 같은 행위에 대한 요구를 무력화시키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선동”의 수사학의 핵심은, “좀비”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 집단화된 군중들이 개인의 자율성을 상실하고 사회질서를 붕괴시킨다는 두려움에 있다.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는 집단화된 정치적 참여를 기저에서부터 무력화시키며, 집회/시위와 같은 정치적 저항은 ‘어리석고 끔찍한 일’로 간주된다.
11.
개인의 자율성이 유일하게 참된 가치로 등장하는 사태는 이른바 저항/참여의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치적 저항의 조직모델이 기본적으로는 전위대-군중의 중앙집권적 체계였다면, 2008년은 이 모델이 완전히 와해되고 그 누구의 지시에도 따르지 않는 개개인들의 자율적인 참여로 집회가 작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등장한다. 공동체/조직 모델이 빠르게 붕괴되고 개인주의적 모델이 자리잡은 2000년대 중반 대학가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2008년 촛불집회의 변화가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자율적인 개인들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일종의 문화적 실천을 공유하는 것 정도였고, 이것을 수용하기 위한 조직양식으로서 문화제 모델이 집회에 빠르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실질적인 효과는 여론조사 및 투표 뿐인데, 아직까지 대규모 집회가 투표에 의도한 바 만큼의 영향을 준 사례는 없다.
12.
거칠게 정리하자면,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및 ‘법과 질서’의 보편화는 정치적 저항의 표현물로서 집회의 형태 자체를 바꾸었을 뿐더러, 집회가 일관된 전술적 행위로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근본적인 제약조건으로 기능한다.
간단하게 말해 현재 집회는 우파의 프레임 위에서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한 불만은 계속해서 표출되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형태의 행동양식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에 염증을 느끼고 있지만, 아직 공동체를 구성하는 대안적인 방식에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100명의 개인은 분업/협업을 통해 효율적으로 연결된 10명의 조직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집회 이후 여론전의 양상이 집회의 불법성/폭력성이나 경찰의 과잉진압, 집회와 시위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반민주주의”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지점이다. 전술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논쟁들은 정작 집회 자체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고 우리가 그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논의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데서 일종의 덫과 같이 기능한다. 물론 민주적 절차 자체는 중요한 논쟁거리지만, 이것이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며 핵심은 집회를 통해 표현하려던 주장에 있다는 사실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물리적인 집회 자체만이 아니라 집회의 연장선으로서의 여론전을 위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전술을 필요로 한다. (진보) 언론이 집회를 보도하는 방식도, 정당을 비롯한 공식화된 정치세력이 집회를 활용하는 방식도 현재의 패턴을 무익하게 반복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13.
따라서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질문들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몇 가지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본다.
1) 오늘날 집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수의 인원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인가, 경찰을 돌파하고 권력의 중심부와 물리적으로 대면하는 것인가, 집회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확산하는 데 있는가?
2) 1번의 질문에 맞춰서, 집회의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행동방식은 무엇인가?
‘법’은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테두리인가, 아니면 (종종 한국의 재벌들이 그러하듯) 약간의 페널티를 감수하고 넘어서야 할 지점인가? 아직 우리는 SNS 및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과 같은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인가?
3) 집회를 어떤 식으로 조직할 것인가?
문화제 모델을 고수할 것인가, 혹은 (전자와 병존하면서도)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행위모델을 구축할 것인가? 어떤 형태의 연락 및 자원분배체계를 구성할 수 있는가? 새로운 참여자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면서도 그를 효과적으로 배치할 수 있는 방식이란 무엇인가?
더 효과적인 집회를 위한 고민으로,
4) 어떻게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느끼도록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무의미한 발악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무력감을 제거하고 우리 자신의 행위에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하는 맥락/서사를 어떻게 제공할 것인가?
5) 경찰의 갖가지 테크놀로지를 우회할 수 있는가?
예컨대 채증, 차벽, 소송을 어떻게 무력화하거나 약화시키거나 우회할 수 있는가? 예컨대 현재의 차벽은 문화제 모델조차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다. 채증에 대해서는 현재 마스크를 통해 얼굴을 가리는 방법 밖에 없는가?
집회를 물리적인 것으로만 이해하는 대신 조금 더 긴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6) ‘집회 이후’에 어떤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집회 이후 ‘벌금폭탄’의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느냐도 포함된다. 벌금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집회 참여자들의 네트워크(부담을 개인화하는 게 아니라 모금 등을 통해 분담하는 시스템), 입법 및 사법을 통한 경찰의 과잉진압 견제, “도로교통법”을 무차별적으로 집회참여자에게 적용하는 검찰과 이 적용을 승인하는 재판부에 대한 비판 등등. 한편으로 정부와 경찰의 ‘공격’을 어떻게 방어하고 흡수할지,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는 참여로 이어질지 등등.
7) 여론전을 어떻게 프레이밍할 것인가?
집회의 무게가 필연적으로 더 많은 대중의 설득에 놓인다면, 지금과 같은 집회를 위한 집회의 덫에 갇히는 대신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담론의 논리를 설정할 것인가? 준법VS. 불법, 혼란VS.질서의 프레임을 깨트리는 대안적인 프레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예컨대, 마키아벨리가 말했듯 복수의 정치적 의사표출을 체제의 ‘건강함’으로 이해하는 논리처럼 집회 자체의 정당성을 설득하는 작업과, 집회와 같이 ‘권력을 갖지 않은’ 사람들의 의사가 무시되는 한국의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비판, 집회에서 다루는 의제의 중요성을 논의의 가운데로 끌어오는 방법 등등.
이러한 실천 역시 개개인의 분투가 아니라 조직화된 집단적 차원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개개인이 실천에 나서기까지의 역치값을 낮추기 위해 참여가 용이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등. 결국 두 가지 질문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의 목적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