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기업이 ‘사회적(Social)’임을 강조하다 보니 사회적 기업에 범용이 아닌 ‘전용’ 컨설턴트가 필요하다고는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도 엄연히 ‘기업(enterprise)’이다. 특히 국제개발협력 분야는 국내에서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열정에 들뜬 아마추어가 아니라 기업 활동에 정통한 프로페셔널 컨설턴트가 더욱더 필요하다. 최근 국제개발협력계에서도 사회적 기업을 비롯한 사회적 경제 방식을 적용하려는 노력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좀 위험해 보일 때가 있다. 청년창업 지원책의 일환으로 해외에서 사회적 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것도 그렇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마추어가 보란 듯 프로페셔널 행세를 하는 환경이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사회적 기업계에서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속한 국제개발협력계에서 사회적 경제를 논단하는 소위 ‘사회적 경제 전문가’ 가운데는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전혀 없는 컨설턴트도 종종 보인다. 정말 그래도 되나?
사회적 기업에 컨설팅한다는 어떤 유명 컨설턴트의 약력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젊은 것도 그렇지만 약력에 기업 경험이 전혀 없다. 무슨 ‘사회적 기업가 정신(?)’ 과정을 마친 것이 사회적 기업과 관련된 유일한 경력(아니 엄밀히 말하면 학력)이다. 사회적 기업 ‘경영’ 과정도 아니고 무슨 ‘정신’을 가르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기업교육에서 다루는 리더십 과정 비슷한 것일까?
그 컨설턴트가 만들었다는 강의자료를 보니 더욱 기가 막힌다. 기업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른다. 그래도 일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일거리가 주어진다는 얘긴데 컨설팅받는 기업(심지어 정부 기관)은 컨설턴트를 고용하면서 그 정도도 구분 못 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때운다는 (혹은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쓰는지 모르겠다.
기업 경영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모든 비즈니스는 창업할 때 세무서에 가서 ‘사업자등록’을 한다. 통계적으로 볼 때, 사업자등록을 하고 나서 5년 안에 폐업신고를 하러 다시 세무서에 오는 경우가 95%이다. 뭐가 되었든 창업을 하고 5년만 버티면 (성공이 아니라 그냥 버티기만 하면) 상위 5%에 든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힘든 일이 기업을 경영하는 것이다. 거기다 무대가 국내도 아니고 외국이다. 더욱이 제도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도 아니고 개발도상국이다. 개발도상국에서의 기업경영이 얼마나 더 어려운가에 대한 언급을 괜히 겁주는 것이로 의심하면 곤란하다.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다. 쫓는 토끼가 공식적으로 두 마리니까 더욱 힘겨운 기업이다. 아무 경험 없는 아마추어가 학교에서 ‘사회적 기업가 정신(?)’ 과정을 수료했다고 컨설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차라리 스포츠 정신으로 무장한 열혈팬에게 프로야구단 감독을 맡기거나 반공정신이 투철한 병역면제자에게 국방부 장관을 맡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아마추어에게 컨설팅받지 마시라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는 일반 기업 대상으로 쓰인 책이나 많은 부분이 사회적 기업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해 아래에 그 일부를 소개한다. 사회적 기업이라고 해서 맨날 사회적 경제에 갇혀 지낼 필요는 없다. 컨설팅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좋은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여러 조건 중에 하나는 ‘실무 경험’인데, 컨설턴트가 되기 전에 일반회사에 다니면서 현업 경험을 풍부하게 축적한 자가 훌륭한 컨설턴트가 될 기본자질을 갖추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컨설팅 지식만으로는 반쪽짜리 컨설팅을 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컨설팅 업계를 들여다보면, 대학이나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컨설턴트 행세를 하는 자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한답시고 이것저것 물어보기는 하는데, 산업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기업의 의사결정 체계가 대략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전혀 알지 못해서 실무자가 오히려 컨설턴트들을 가르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회사에서의 현업 경험이 아주 없어야 문제해결을 잘할 수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은 컨설턴트들이 있습니다. 현업 경험자들은 ‘안 되는 이유’, 즉 제약조건들로 머릿속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할뿐더러, 여러 제약조건을 고려하다 보니 그들이 내놓는 해결책도 밋밋하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수학의 기본 중의 기본인 사칙연산을 모르고 이차방정식을 풀 수 있을까요? 기업의 가치가 어떤 흐름으로 창출(이를 Value Chain이라도 합니다)되는지도 모르고 전략이 어떻고 성과관리가 어떻고 논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인력 흐름이 유지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컨설팅사들이 컨설팅 품질의 향상보다는 ‘값싼’ 인력 확보를 통한 수익성 제고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 유정식, 『컨설팅 절대 받지 마라』, 거름, 2007
(국제개발협력계에서 일하는) 사회적 기업과 그 지원기관에 권한다. 사회적 기업에 대해 컨설팅을 받을 계획이 있으면, 우선 컨설턴트에게 기업 경험이 있는지 물어보시라. 기업에서 경영을 했으면 더 좋고, 최소한 의미 있는 (컨설팅할 만한) 시간 동안 직원으로서라도 현업 근무는 했어야 하지 않겠나.
초창기라 사회적 기업에서 컨설팅할 만큼 충분히 근무한 사람이 없다면 일반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개발협력과 사회적 기업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컨설턴트가 최선이라 생각한다.기업 경험은 필수다.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라는 논증
사회적 기업을 컨설팅하는데 일반 기업에서의 비즈니스 경험이 필수라는 주장이 옳은 말이 되려면 사회적 기업과 일반 기업이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일반적 정의를 살펴보면 그 전제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제공, 환경보호처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을 통해 영리를 창출하게 된다. 따라서 기업의 영리성과 자선의 사회성을 통합한 새로운 개념의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선단체와 달리 수익을 냄으로써,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추구한다. 또한 주주나 소유자를 위한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이를 위해 이윤을 사업 또는 지역공동체에 재투자한다.
-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다시 말해 지속적 수익 창출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기업은 ‘기업’이다. 다만 창출한 수익을 어떤 루트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는가 하는 ‘재분배’ 측면에서 다르다고 생각한다. 정의(definition)만 가지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의 본질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본다.
지금껏 접해본 것 가운데 위 그래프가 사회적 기업을 비즈니스로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그래프에 펼쳐져 있는 원호(圓弧)는 사업의 고유한 가치를 나타낸다. 어떤 사업이든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즉 같은 집을 지었다면 그것을 건설회사에서 지어 분양한 것(순수 민간투자 사업)이든 해비타트에서 이재민에게 무상으로 지어 준 것(순수 복지사업)이든 같은 가치를 창출했다고 보는 개념이다. 가치(Value)라기보다는 효용(Utility)에 가깝다. 따라서 모든 사업은 이 가상의 원호 위에 존재하며, 원호는 원점으로부터 거리가 동일한 등가곡선(等價曲線)이다.
그래프에 가로로 그려진 점선은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을 나타낸다. 굳이 비즈니스 언어로 표현하자면 손익분기점(BEP, Break Even Point)과 비슷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기업이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가 이 선 위에 있어야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하다. 참고로 BEP는 아래와 같은 개념이니 비교해 보시기 바란다.
일반 기업의 경우라면 아래와 같다.
즉 원호 위에 어떤 기업이 영업 중이면 그 위치에서 수평선·수직선으로 내린 선이 만드는 사각형의 면적이 그 기업이 만들어 낸 가치다.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선 아래에 있는 가치는 원가로 본다. 원가는 회수되어 기업 활동에 재투자 된다.
그 위에 있는 사각형 면적은 이익이다. 이것으로 세금도 내고, 이자도 내고, 연구개발도 하고, 주주에게 배당도 한다. 그래서 일반 기업 활동도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본다. 직접 기부하는 것만이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본질적 기업 활동에서 창출하는 가치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훨씬 더 큰 사회적 가치가 있다.
일반 기업은 벌어들인 돈으로 ① 다른 기업에 보낸다(대금 결제), ② 직원에게 준다(임금 지급), ③ 정부에 낸다(세금 납부), ④ 주주에게 돌려준다(배당금 지급), ⑤ 사회에 공여한다(기부금 출연)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기업을 공기(公器)라고 한다.
이런 일반 기업 가운데 더욱 많은 사회적 가치를 ‘직접’ 추구하고자 등가곡선 위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위치를 아래쪽으로 이동한 것이 위 그림과 같은 사회적 기업이다. 이때 생기는 사각형의 면적은 일반 기업의 사각형과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같다. 사회적 기업은 자기에게 돌아올 경제적 가치를 ‘자발적으로’ 사회적 가치와 바꾼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익을 희생하여 원가로 바꾼다.
일반적으로 고용 확대를 중시하는 사회적 기업의 특성상 그 원가는 주로 ‘인건비’다(특히 우리나라 상황이 그렇다. 사회적 기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기업청이 아니라 고용노동부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선 위로 살짝 올라온 좁다란 사각형 부분은 개별 사회적 기업의 정책에 따라 책정한 이익유보금(Retained Earnings) 정도로 보면 되겠다. 이 얘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여기까지는 이론적이다.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익을 거두는 사회적 기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럼 현실은 어떤가?
실제로는 지속 가능 수익선 아래에서 수익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그럼 실제 수익과 지속 가능 수익선 사이의 간극은 손실이 된다. 이 손실은 외부 재원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주로 기부금이나 정부 지원으로 메운다.
물론 영리기업도 사업을 개시하고 제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은 기업마다 다른데 적어도 한국에서 인증받은 사회적 기업이라면 3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 예비 인증 기간 2년을 포함하면 5년이다. 만약 그 5년이 지난 후에도 자립할 상태가 되지 못하면? 모두가 곤란한 상황이 온다.
‘지속 가능성이 없어도 사회적 기업이니까 계속 재정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 반대한다.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을 하는데 꼭 사회적 기업일 필요는 없다.
동일한 가치를 실현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형태가 사회적 기업일 때에만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도 자립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사회적 기업이라는 형식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그냥 시민단체(NPO라고 하자)에서 하면 된다. 기업이라는 형식이 모든 일을 하는 데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또 효율만이 유일한 가치 기준도 아니다. NPO가 더 잘할 수 있다면, 뭐하러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 귀중한 자원을 낭비하는가.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