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5.10.23.자 ‘오마이뉴스’에 경실련 간사 이수련 씨가 기고한 「정부가 자랑하는 한국형 원조, 그 부끄러운 이면」에 대한 의견입니다.
원문에서 이수련 씨는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이 문제라고 적시한다. 그 이유로서 공여국인 한국 위주의 계획이며, 의도가 불순한 개발금융을 도입하려고 하고, SDGs와의 연계성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길지 않으니 일단 원문을 읽고 오시는 것도 좋겠다.
제발 ‘한국형’은 쓰지 말자
원문에서
‘덴마크, 스웨덴과 같은 선진공여국들은 개발도상국의 빈곤과 삶의 질 개선을 원조 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
면서 한국이 ‘글로벌 리더 국가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대표 콘텐츠로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이라 밝힌 것을 비판했다.
맞는 말씀이다. 한국 정책문서는 창피할 만큼 솔직해서 문제다. ODA 기본계획이 영문으로 발표되는 것은 본 적이 없으니 순수하게 국내용 문서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자원외교’를 기치로 내걸 때도 얼굴이 화끈거렸던 생각이 날 정도다. 세상 모든 나라가 자원외교를 한다. 하지만 어떤 나라도 자원외교를 한다고 떠들지는 않지 않는가…
게다가 ‘글로벌 리더 국가’가 되겠다면서 그 내용은 ‘한국형’으로 채우겠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어떤 모델도 ‘한국형’이라 이름 짓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 현대사를 돌이켜볼 때, ‘한국형’이라는 이름은 늘 어떤 약점을 감추고자 할 때 등장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번듯하게 하지 못할 때, 그 변명으로 ‘한국형’이라는 이름을 써왔다.
우리가 ‘한국형’이라는 이름으로 덮고 싶은, 개발협력에서 꿀리는 면이 뭘까? 시민사회의 지적대로라면 원조 증액 면에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과 구속성 원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GNI의 0.25% 약속은 당분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한국의 원조 증가속도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이었다.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 (이쯤에서 ‘4대강에 쑤셔 박은 22조 원’을 언급하면서 흥분하시는 분들 있다. 나도 그 돈 생각하면 열 받는다. 그러나 좀 분리해서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구속성 원조도 계속 비구속화 해나가고 있다. 속도가 좀 느릴 뿐이다.
내가 보기에는 ‘한국형’을 강조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선진 공여국입네 하는 나라들의 입장을 무조건 추종하는 자세다. 우리는 후발주자다. 선발 주자의 현재와 비교하면 모든 것이 좀 뒤져 보이는 게 당연하다. 그들이 우리와 같은 수준일 때, 즉 과거의 그들과 비교해야 한다. 자세한 얘기는 ‘우리 개발협력계에는 우리 논리가 없다‘에 적어 두었다.
개발금융에 대해 비난하려면 근거를 대라
재원 마련에 대해서 원문은 아래와 같이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면서 개발금융을 비난한다.
재원 마련에 있어서도, 정부는 개발금융을 혼합하여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는 개발금융을 통해 특정 부처(기획재정부)의 개발협력정책 장악도를 높이며 한국의 ODA 사업을 상업화할 가능성이 있다. ODA라는 공공재를 사유재로 전락시킬 뿐이다.
개발금융을 도입한다고 해서 기획재정부의 개발협력 정책에 대한 장악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좀 과한 비약이다. 개발금융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기획재정부는 이미 외교부와 함께 개발협력 주무부처다. 유상원조가 조금 더 늘어난다고 원조 전반에 걸친 장악력이 늘어난다? 또한, 유상원조 말고도 (무역보험공사를 통하여 산업통상자원부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절반을 빼면) 수출금융의 절반을 이미 점유하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개발금융을 도입하면 개발협력 정책에 대한 장악도가 높아진다? 글쎄… 다시 생각해도 비약이다.
게다가 개발금융을 도입하면 ODA 사업이 상업화한다? 공공재인 ODA가 사유재로 전락한다? 이런 주장에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다. 툭 던져보고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얘기할 일이 아니다. 확실한 근거가 없다면 주장을 철회해야 한다. 근거 없는 비난은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긴, 개발금융이 무기 판매에 지원하는 사악한 금융수단이라는 발표도 아직까지 아무도 철회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개발금융에 대한 지나친 우려에 우려를 표한다
개발금융에 대한 시민사회의 초기 반응 가운데 “남을 도와주려면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줘야지, 남에게 빌려서 다시 빌려준다면 도와준다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얼핏 꽤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왔었다. 그분이 World Bank 등 MDB들이 모두 은행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을 모르고 그랬는지, 알고도 일부러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반응 역시 가관이었다.
이 발언을 전해 들은 개발금융 도입 찬성 측 일각에서 “NGO나 자기 돈으로 좀 도와주라 그래, 맨날 다른 데서 Fund-raising 한다고 손 벌리지 말고.” 라는 반응이 나왔다. 비상식적 반응에는 역시 비상식적 대응이 나올 뿐이다.
개발금융 도입이 ODA 사업을 상업화하고, 공공재가 사유재로 전락한다고 비약해 주장하기 전에 그 근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시길 강력히 권한다. 혹시 그 근거가 비즈니스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아닌지, 혹시 그렇다면 원조자금이 개발도상국을 향하는 현금흐름에서 얼마나 차지하는지 한번 따져 보시라. 원조는 개발협력에 있어 이미 주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발금융에 대해서 우리끼리 벌이는 논란은 무의미하다. 내가 공, 사석에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새로운 ‘상품’이 나왔으면 제일 먼저 고객에게 물어볼 일이다. 고객에게 물어보면 될 일을 영업팀과 감사팀이 싸운다고 해답이 나오겠나? (개발금융에 대한 오해를 거두시라)
SDGs는 다를까?
원문은 2차 ODA 기본계획이 SDGs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빠져 있다면서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아는 기본계획은 방향만 설정하는 것이다. 기본계획이 뼈대를 갖추면 각 부처에서 세부계획을 수립해서 제출할 것이다. 1차 때도 그랬다.
정작 내가 궁금한 것은 SDGs에 왜들 그렇게 몰입하는가다. SDGs 말고는 개발협력계에 중요한 것이 없다면서 온 세상이 다 SDGs에 푹 빠져 있는 지금, 15년 전이 생각난다. 2000년, 그 이름처럼 야심 찬 계획 하나로 세상을 구원할 것 같았던 MDGs가 아닌가. 계획대로 빈곤층은 1/2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반가운 얘기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얼마가 MDGs 덕분에 줄어든 걸까? 설마 전부가 MDGs 덕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MDGs에 대한 평가는 도대체 어디 있나? 또, SDGs가 MDGs와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UN에서 15년간 쓰던 간판이 낡았으니 새 간판을 걸고 ‘신장개업’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혹시, 반기문 총장 때문에 더 열광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 생각도 하기 싫다…)
원문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우리나라 개발협력 계획이 SDGs를 달성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바지해야 하는지 꼭 밝혀야 하는가? 그것도 사업별로? 이제 각 원조사업마다 ‘이 사업이 SDGs 몇 번 목표의 몇 번 세부과제에 대응한다’고 적어야 할 것이다. MDGs 때도 그랬지만, 이제 과제 수가 엄청나게 늘어서 실무자들만 더 고달프게 되었다.
원조가 아니라 개발이 필요하다
어차피 원조는 개발 수요의 일부만을 충족할 수 있다. 즉, 개발협력은 원조 그 이상을 다루어야 한다. 우리나라 개발협력의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인 ‘국제개발협력위원회’가 실은 원조만을 다루고 있다 보니, 학계나 시민사회는 원조가 곧 개발협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일부 있는데,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원조는 점점 더 영향력을 잃고 있다. 고객국의 진정한 개발을 위해서는 원조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
원문 말미에서는 ‘한국형 ODA 모델’에 대해 다시 한 번 다루고 있는데, 글 쓴 분이 뭘 주장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ODA 기본계획에서는 한국형 ODA 개발모델이 향후 협력대상국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 장기적 평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외적 성장뿐 아니라 제도적 성장을 비롯한 다면적인 발전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형 ODA 개발모델’이 협력대상국에 미치게 될 사회적 영향에 대한 평가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형 ODA 개발모델’ 추진은 무책임한 처사다.
정부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개도국 정부에서 농촌개발의 국제적 성공모델로 ‘한국형 ODA 개발모델’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유를 추진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도국은 현지주민을 고려하는 민주적 정부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현지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다층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장기적 평가가 함께 이루어지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국형 ODA 개발모델’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도대체 ‘한국형 ODA 모델’을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형’이 적절하지 않으면 뒤에 평가를 어떻게 하든 가치 없는 짓이다. 만약 평가체계만 올바르면 ‘한국형’이 적절하다는 말인가?
또, 개도국의 거버넌스가 열악한 것과 현지 주민들의 삶의 질을 다층적으로 평가하는 방안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혹시, 개발협력이 현지의 민주화까지 이뤄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개발협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다. 반백 년이 넘도록 저소득 문제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그 이상을 다층적으로 평가한다? 남을 도울 수는 있어도 구원할 수는 없다.
원문은 끝으로 ‘새로운 공여국으로서 세계모범국가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아직도 자국 중심의 국가관이 원조정책에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다. ‘자국 중심의 국가관’이란 어색한 표현은 ‘자국 이해관계 중심의 가치관’이라 고쳐 읽으면 되겠지만, 원조 정책에 그것이 담겨있어서 부끄럽다고? 나도 부끄럽다. 그러나 나로서는 현실을 외면하고 무조건 ‘국제사회’의 원칙을 따라 하자는 주장이 여전히 우리 개발협력계에 존재하는 것이 더욱더 부끄럽다.
원문: 개발마케팅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