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관련된 일 한다는 사람이 왠 대기업 비즈니스의 핵심인 백화점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백화점’이란 것은 시장에서 근대화된 가장 대표적인 비즈니스모델이자 꽤 긴 역사와 배울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의 보물창고다.
사실 오프라인에서는 가장 큰 플랫폼 비즈니스인 셈인데, 온라인 미디어의 대표격인 TV 채널을 포함해 가장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자, 대다수의 스타트업들이 이런 플랫폼 비즈니스를 노리고 사업을 준비하고 있기에 꼭 한 번 짚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서 주로 언급하는 H모백화점 판교점과는 0%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이 백화점은 최근 가장 화제가 되었고 한 회사의 플랫폼 기획역량이 응축되어 있으며, IT와 스타트업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는 곳이기에 쉬운 예를 빗대기 위함이니 다소 거슬려도 넓은 이해 부탁드린다.
백화점의 몰락?
우리나라에 IMF가 찾아오고 아울렛과 할인마트가 등장하면서 사실 백화점 비즈니스의 몰락은 예견된 것처럼 보였다. 아직 제아무리 GDP가 올랐다 한들 우리에겐 정말 노오오오력이 필요한 ‘헬조선’의 암울한 미래와 쥐꼬리만 한 내 월급, 그리고 소비능력 올라가는 꼬락서니 봐서는 턱없이 비싸기만 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이해 불가능’한 구매의 대표적 사례 아니던가.
특히 이 글을 읽고 계실 나 같은 IT업계 남자 사람들에겐 ‘여자친구 손 잡혀(!) 가는 해병대 캠프’요, 여자 사람 입장에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건물’의 위상이다. 반면에 제아무리 할인마트가 광속으로 확장했어도 최근엔 오히려 주춤한 느낌이고(H플러스도 저기 어디 투자회사에 넘어갔단다), 이런 마트들은 싼 가격으로 훨씬 더치열하게 경쟁하는 반면에, 오히려 백화점의 위상은 더 높아지고 있다.
결국, 살아남을 곳만 살아남고 있다는 이야기다.
역사적으로 이런 백화점의 등장은 사실 현대 상업 사회로 진입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유동인구 많은 지역에 복합적인 상업시설이 생겨나게 하면서 더욱 도심화 현상을 가속하는 장소가 바로 백화점이다. 가장 먼저 생겨난 곳은 1852년 프랑스 파리와 1862년의 미국 뉴욕으로 약 200년에 못 미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나름 초현대적인 상업 시설이자 상업사회 고도화의 상징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생겼고, 이후 국토개발 전성기에 주로 건설회사 등을 통해 교통/주거시설과 함께 향후 주요 도심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 하나둘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동의 L모백화점,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 자리 잡은 S모백화점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옆 압구정 G모백화점, 압구정과 삼성역 COEX 인근의 H백화점 등이 있다.
H백화점은 왜 하필 판교에 들어왔을까
역시 입지의 공통점은 많은 유동인구와 지역적 특성(…)이지만 이런 건 교과서에서 다들 배우셨을 테니 넘어가자.
최근 젊은 20대~30대층 대상으로 새로 생긴 H백화점 판교점이 매우 화제인 것은 맞다. 주변에선 꼭 한 번 가보라는 얘기가 들리는 데다, 주차를 1시간 넘게 걸려서 했다느니, 인근 주민 평에 따르면 내 취향에 맞는 괜찮은 곳이 생겼다는 등 생각보다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근래 들어 새로 오픈한 곳이 몇 안 되는 사양산업(?)인 백화점인데다가, 사실 10년 전 분당이 한창 개발될 시절 정자역 인근(백궁지구)에 H백화점 지점 계획이 있었지만 무산된 이후 다시 판교에 생긴 것이다. 왜?
혹시 같은 백화점 체인의 압구정점을 최근 가본 적 있는가? 강남 부흥과 함께 부촌이자 젊음의 거리였던 압구정동은 최근 몇 년 간 일 때문이 아니라 누굴 만나거나 유흥을 목적으로 방문해본 기억이 전혀 없다. 이는 실제로 젊은 층들의 소비인구가 압구정 지역에서 강남권으로 옮겨갔기 때문인데, 실제로 최근 압구정 H백화점은 시니어 집중 전략으로 인근 지역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찾으신다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들어 삼성역 COEX 상권 붕괴와 함께 백화점 업계 3위인 H백화점 입장에서는 전국 10여 개 매장이 있긴 하지만 뚜렷한 성과 향상이 없던 상황이었고, 경쟁 L사는 명동을 비롯해 일본인/중국인 면세점 사업으로 매우 큰 매출 성장을 올리고 있던 데다, S사 역시 최근엔 계열을 분리하긴 했지만 연계된 할인마트와 더불어 용인지역 경기점 오픈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비하면 H백화점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다시 말해 위기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H백화점은 약 10년 전에 분당 정자동 주상복합지구 근처에 신규 지점을 오픈할 계획이었다. 당시 내가 분당 정자동에서 직장생활 하고 있어서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H백화점의 정자점 포기는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선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당시 한참 분당 정자동 카페거리가 흥했던 시절에 세운 계획 무산 이후, 나름 칼을 갈며 준비하고 있었으리라. 현재 정자동 상권은 당시 부동산값 폭등하던 시절에 그 지역 소비를 차지했던 매우 소비력 높은 여성층과 먹는 것에 돈 많이 쓰는 엥겔지수 높은 IT 인력들이 빠져나갔고, 예전 전성기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초라하다.
반면에 판교는 판교주거 지구의 입주는 물론, 인근 테크노밸리에는 강남권의 비싼 임대료나 사옥 분양 조건 때문에 판교로 옮겨온 IT 기업들과 임직원들이 꽤 많아졌다. H백화점 입장에서 이 판교점 카드는 거의 필연적인 선택에 가까웠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화제가 될 것이라고 주변 업계에선 예상은 못 한 듯하다. 그래서 인근 상가 번영회에서 해당 백화점에 대해 시위하고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백화점 하나 생긴 것뿐인데 왜 이리 좋다고 소문나는 걸까?
플랫폼 비즈니스의 모든 것이 응축된 사례
보통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해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방문고객의 모수(모객)’이며 이 고객을 모으는 방법에는 다양한 마케팅 용어와 함께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이란 머리 아픈 용어들,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스타트업에서 고민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최근 스타트업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TV 광고를 한 배달의 민족을 비롯해 요즘 유행이라는 다양한 O2O스타트업들, 게임 업계에서 몇 년 간 핫했던 ‘카카오톡 게임’을 비롯해서 꾸준했던 메신저 플랫폼 입점 열풍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백화점은 대기업들만 가능한 비즈니스이기에 IT업계나 스타트업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초기 마케팅 역량을 비슷하게 동원하기에는 예산이 부족하다. IT서비스 기획자나 스타트업 경영자들은 ‘우린 아마 안 될 거야’라며 투자받기 전엔 모객을 포기하거나, 열심히 개발해서 론칭했어도 얼마 되지 않는 방문자로 인해 심하게 좌절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물론 대기업의 백화점이다 보니 당연히 일정 규모 이상의 초기 마케팅은 하셨겠지만, 솔직히 이 백화점의 사례를 봤을 때 사실 그러지 않았어도 충분히 흥했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관련 기사에 따르면 기사 제목과 논지와는 다소 다르게(아마 경쟁사의 요청도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H백화점 판교점 초기 오픈 실적을 보면 매우 선방했음을 알 수 있다.
H백화점 관계자는 “역대 H백화점 점포 중 판교점의 오픈 초기 매출액이 가장 많았다”며 “내부적으로는 기대한 것 이상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외적으로는 오픈 첫 주말 5일까지만 통계를 밝혔으나 현재도 매출 목표를 20% 초과 달성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식품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대를 차지하는 것과 달리 판교점은 20%를 차지하고 있어 매출 안정성도 높다”고 덧붙였다.
물론 예상하건대 기존 인근의 경쟁 백화점 매출에는 그들의 주장대로 큰 영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주요 방문객들은 판교에서 분당 내 L모백화점과 A모플라자를 방문하던 사람들이 당연히 아닐 테니.
그런데 과연 이 백화점은 신의 한 수 같은 광고나 마케팅으로 고객들을 끌어왔을까? 아니, 했다손 치더라도 주로 H백화점 가봤다며 들리는 내용은 다름 아닌 입점한 상점들의 상품, 즉 ‘타게팅(targeting)된 콘텐츠(contents)’였다.
플랫폼 비즈니스가 놓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자, 서론이 길었지만 지금부터 플랫폼으로서 성공한 선배격(?)인 H백화점 판교점을 훑어보며, 사양산업이라는 백화점 플랫폼이 왜 이렇게 론칭 초기부터 화제인지, 왜 높은 매출을 올리며 시작했는지, IT업계나 스타트업들이 플랫폼 비즈니스가 놓쳐서는 안 될 핵심적인 내용 세 가지 정도 짚어보도록 하자.
1. 마케팅 이전에 챙겨야 할 것은 정확한 고객 타겟팅과 매력적인 콘텐츠(제품)이다.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회전목마가 설치된 백화점은 개인적으로 국내에선 처음 봤다. 운행 여부를 떠나서 단순히 디스플레이만으로도, 내부의 놀이터나 다양한 주변 시설 등을 보면 타겟팅하고 있는 중점 고객층이 보이지 않는가? 바로 서울 강남권 방문할 시간이 없는 20대층 커플과 판교/분당지역 테크노밸리 인근 30~40대 직장인, 인근 판교지역 주거하고 있는 소비력 높은 30대 여성을 중점적으로 노렸기 때문이다.
다소 다른 예지만, 대표적인 온라인 플랫폼 서비스인 페이스북을 생각해보자. 지금 이 서비스는 20대부터 70대까지 소비층이 매우 넓게 퍼져있는 서비스이긴 하지만, 초기에 집중한 것은 대학생층 네트워크였다. 그곳부터 작게 시작해서 지금은 전 세계 인구의 1/7,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도 사용하고 있는 대표적인 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이 되었다.
대학생 타겟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이 페이스북이란 서비스를 많이 접할 수 있을까? 스타트업이든 백화점이든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초기에 가장 중점적으로 사용할 사람들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H백화점 판교점도 같은 선택을 했다. 20대층 외에도 소비력이 더 높으면서 맛있는 식품(끼니 때우기용 푸드코트가 아니다)에 대한 열망이 높고, 아이와 함께 쇼핑하고 싶은 30대 여성층에 가장 집중한 것이 눈에 보인다. 오히려 판교가 아닌 기존 분당지역의 다른 백화점들, L모백화점 수내점, A모플라자 서현점의 다소 높은 타겟층과는 근본적으로 전략이 다른 거다.
만약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을 준비하면서 패션이나 먹거리가 핵심 콘텐츠라면, 먼저 진출할 타겟 연령층과 대상을 잘 이해한 다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있는 시장 타겟을 집중하고 제품/서비스를 개발해야지, 별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다른 계층 다른 곳에 광고해봐야 별로 좋은 효과 기대하긴 힘들지 않을까? 실제로 방문한 초기 타게팅 고객들을 만족시켰기에 주변에서 무수히 많은 방문 평과, 무슨 매장 있다더라는 이야기(buzz)들, 소셜 네트워크의 갔다 온 인증샷들을 타임라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 역시 수백억을 투자 유치하며 사람들의 배달주문 패턴을 모바일로 바꾸도록 유도하기 위해 TV 마케팅 강화를 내세웠으나, 사실 이는 아직 효과를 이야기하기엔 좀 이른 시점이다. 가까운 일본에선 12억 엔의 자금을 투자받아 10억을 내리 TV 광고에 질렀던(…) 일본의 ‘그노시(グノシ?)’ 같은 뉴스 앱 사례도 있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은 기존 오프라인에서 되던 것이 온라인에서 구현된다고 해서 반드시 쓰진 않는다.
이 교훈들은 그만큼 쓸모 있고 자주 쓸 정도로 제품 기획력(상품성)이 독보적으로 좋아야 한다는 의미이며, H백화점 판교점의 현재 상품들은 이런 콘텐츠들에 있어서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하나 타겟 대상에게 꽤 괜찮은 제품들을 입점시켰고 그 전략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마케팅의 본질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 그릇 안에 담을 콘텐츠가 괜찮고 타겟 대상에게 효과적으로 접근하게 되면, 거의 저절로 바이럴 마케팅이 되는 것을 심심찮게 우리는 보아왔다. 이는 내가 오프라인 강연과 페이스북을 통해 자주 설명했던 ‘왜 해야 하나요?’, ‘왜 사야 하나요?’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2. 고객을 세심하게 고려한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은 이제 기본이다.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지하 식품관부터 살펴보자. 일단 꽤 큰 규모에 입점한 콘텐츠의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방문자들이이 모두를 둘러보기 매우 편한 동선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에서 시작되어 가장자리에 있는 사은 데스크(고객이 리워드를 얻기 위해 꼭 가는 곳이다) 옆 할인행사 매대를 비롯해서, 각각의 설계된 위치들은 백화점들의 동선 설계 노하우의 집약일 것이다.
아이들과 사진 찍거나 놀 수 있는 각종 편의시설은 당연한 것이고, 유모차나 붐비는 손님의 이동을 고려한 이동 경로의 폭과 각각 필요한 위치에 영역별로 나와 있는 위치 안내도 등 여태 돌아다닌 쇼핑센터 중 이 정도로 고객을 고려하고 설계한 백화점은 별로 못 본 것 같다. 더더욱 유심히 볼만한 것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층에 입점한 영화관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점포들이다. 회전목마도 그 위치의 옥상에 위치하며, 5층은 캐릭터 상품 외에 간단한 식사 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당연히 기다리고 있다.
이런 세심한 UX는 첫 방문 시에 최소한의 유료 결제나 제품 구매로 유도해야 하는 가장 큰 숙명을 가진 플랫폼 비즈니스에게는 기초 중의 기초이며, 아무리 몇억을 들여 대규모 마케팅을 한다고 한들, 실제로 방문한 고객들이 입점한 많은 제품에 쉽게 접근하고 구매할 수 있어야 플랫폼이라고 어디 명함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예전에 네이버에서 근무할 때 첫 사옥인 ‘그린 팩토리’란 건물은, 입주 몇 년 전부터 인근 임대한 건물에 대규모 조직을 입주시켜가며 온갖 사무공간에 대한 실험을 바탕으로 최적화된 공간이다.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선 UX 디자인이 얼마나 그 회사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지는 물론이요, 방문한 사람들에게 직관적인 편리함을 제공하는지 직접 보며 배울 수 있었던 매우 좋은 경험 중의 하나였다.
그냥 일하기 위한 공간인 사무공간도 이렇게 이용자에게 심혈을 기울인다. 하물며 훨씬 많은 고객이 방문하고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업용 공간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매출로 직결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며, 본질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벗어나 온라인 쇼핑몰을 예로 들면, 어차피 고객들은 자신이 가장 관심 있는 제품에 손길이 가기에 입점한 제품의 노출과 접근, 각종 팝업 등 장애요소와 에러 등 어려움 없이 접근하고 결제까지 이를 수 있어야 실제로 매출이 발생하고, 그 이후에 쓰기 위해 개발한 모든 주문배송/관리시스템들이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온라인 콘텐츠를 예를 들면, 버즈피드나 피키캐스트 같은 콘텐츠 큐레이션(정보들을 입맛에 맞게 제공하는) 플랫폼들 역시 이용자들이 콘텐츠(기사)에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어야 다른 광고를 비롯한 수익모델들이 꾸준히 실현될 수 있다. 그저 사회 관계망(소셜 네트워크) 플랫폼인 페이스북이 그만큼 높은 체류시간을 가지는 이유 역시 가장 관심 많은 주제 중 하나인 소셜네트워크 속의 ‘남들 뭐하나’ 콘텐츠들이 이용자가 접근하기 편하고 보기 편해서 아니던가.
50대~60대를 위한 어떤 모바일 서비스를 기획한다고 생각해보자. 대다수는 안경 없이는 작은 글씨가 안 보이는 고객들일 테고, 우리 세대에선 자주 봤던 복잡한 메뉴는 당연히 많이 접하지 못했을 것이며, 당연히 커다란 글씨 크기와 시선에 따라 쉽게 인지할 수 있는 간단한 메뉴 구조와 위치를 가지고 있어야 그 고객들이 사용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타겟팅이 잘 되고 콘텐츠가 아무리 좋아도, 이 타겟들이 원활하게 이용하지 못한다면 더더욱 그 플랫폼의 성공 가능성은 낮다.
3. 플랫폼은 레버리지(견인)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많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다소 의외의 회전목마를 비롯한 IMAX 영화관과 대형서점, 문화센터 등 다양한 복합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백화점인데, 20~30대 층을 위한 영화관과 서점은 당연하고 H백화점 판교점 문화센터의 콘텐츠를 잠깐 살펴보자.
정통 클래식 공연 외에도 컨템퍼러리 팝 클래식, 연애심리 강의, 작가들의 여행 강의(게다가 주요고객 연령층이 고민할 효자여행이다)와 싱글 여성이라면 더더욱 좋아할 ‘고양이’관련 강의들, 강균성을 비롯한 셀러브리티 강연, 인문학, 철학 등 교양, 악기 등 취미를 비롯해 필라테스, 요가, 건강 관련 및 미취학 아이들을 위한 클래스…
내 페이스북 친구인 어느 벤처캐피털 심사역께서 이런 아이들을 위한 클래스가 왜 문화센터에서 적자를 감수하면서 운영되는지 친구들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물론 당연히 백화점은 플랫폼 비즈니스이니 실제 강연을 운영하는 분들은 유입고객이 많은 백화점에서 고정적인 모객과 함께 기초 강의들을 운영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심화 강의들로 유인할 수도 있지만, 강연 포트폴리오를 알리며 마케팅 차원에서 ‘검증된’ 강사로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화점이 노리는 것은 방문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면서, 주차하고 문화센터로 이동하는 동선 등에서 항상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유혹을 지속해서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히 수업이 있는 시간에는 재방문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고, 매출의 기회와 시간 역시 늘어나게 된다. 특히 아이들 대상 강의는 수업에 들여보내고 끝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부모들이 백화점을 배회하며 쇼핑하거나, 수업 끝난 배고픈 아이를 위해 식품을 사는 등 필요한 물품 구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문화센터 수업에서 제공하는 주차 편의성 등도 이를 견인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이지만, 이런 문화센터에서 큐레이션된 콘텐츠를 기반으로 재방문율(retention)과 압도적인 체류시간으로 쇼핑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고자 하는 목적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으며, 각각 백화점 문화센터의 프로그램들은 그 지역 지점의 주로 타겟층이 어디인지 여실하게 보여준다. (다른 분당권 문화센터 강좌들은 미취학 아이들 외에도 좀 더 나이 든 어르신들의 취미와 관련된 내용-드립 커피 강좌 등-이 분명히 많이 개설되고 집중된 것이 보인다)
문화센터만큼 체류시간이 높은 영화관 역시 타겟층은 상대적으로 젊지만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백화점에 어떤 매장들이 있는지 분명히 각인하며 기억되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 이전 이후 시간에 식사와 쇼핑을 겸하도록 유도한다. 대형서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게 사실 아마존이 온라인 서점에서 음반을 비롯한 다른 물건까지 팔면서 스마트폰을 비롯해 전자책 장비와 eBook 콘텐츠를 팔려고 하며, 애플이 오프라인 애플스토어에선 단순히 자체 제품만이 아닌 연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액세서리와 각종 주변기기를 같이 판매하는 이유이다. 충전하는 도킹 스피커가 필요하면 다른 전자상가가 아니라 애플스토어로 갈 테니까.
플랫폼을 배우려면 시장(Market)으로 가라
플랫폼 비즈니스나 커머스(온라인 쇼핑 등)를 준비하는 스타트업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플랫폼을 배우려면 시장(market)으로 가라’라는 조언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선배 경영자분들이 매우 많이 언급하는 내용이기도 한데, 정말 백화점이나 할인마트에 앉아 사람들이 어떻게 이동하고 물건을 사는지를 살펴보면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매우 본질적이고 중요한 인사이트가 매우 풍부하다.
굳이 일부러 가지 않더라도 내가 물건 사기 위해 어떤 곳을 찾아가는지 되돌아보면, 왜 동네상권이 대형마트에게 패배하며 문 닫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며, 내가 설계하고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가 고객 입장에서 ‘어떤 고객이’, ‘어떤 물건을 꼭 사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구매하는지만 짚어도 최소한의 매출이 일어나는 비즈니스는 체험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난 어린 시절 아버님께서 사업 망하신 이후, 기업 대상 보험영업을 하며 겨우겨우 식구들 생존을 위한 돈을 벌어오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라났다. 내 주변 가족 중에도 이런 세일즈를 하는 나와는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직종의 분들에게 내가 예전에 하고 있던 고민과 어려운 점을 털어놨을 때, 놀랍게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소위 ‘장사’의 기본 중의 기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많다.
지금 세상은 온라인과 모바일로서 뒤덮여 있고 낡은 세상의 혁신을 외치곤 있지만, 사실 이건 시간이 단축되고 공간이 달라졌을 뿐 기존에 존재했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중국 상인들이 1000년 가까이 배워온 그 상업의 역사와 유대인 상인들이 온갖 핍박과 규제 속에서 어떻게든 틈새를 찾아 살아남아 온 교훈들은 다소 멀게 느껴지더라도, 우리 부모님과 선배세대의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기본 역시 매우 중요하다 생각한다.
플랫폼 비즈니스를 생각하고 있는가? 백화점을 가보라.
원문: 허양일의 med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