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침몰할 것인가
호사가들은 그래 왔다. 일본도 20년간 그랬듯이 중국도 그럴 것이라고. 사실 실제 지표들이나 다른 외부의 역학적 수치들만 봐도 중국 경제는 다소 그들이 말하는 위기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동안 너무나도 빠르게 달려왔던 중국 경제가 앞으로 한동안 격변의 널뛰기를 겪게 될 것임은 분명한 듯 보인다.
문제는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꽤 많은 분들이 그저 지켜보고만(!) 있다는 점이다. 항상 방관자적 자세를 유지하는 전문가들의 단편적 의견이나 겉으로 드러난 지표만 가지고는 우리가 중국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중국 내부에 대한 정보들은 영어로 번역된 것조차 찾기 힘들며, 실제로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인구 13억이 넘는(집계되지 않은 인구를 따지자면 더 많을 것이다) 이 시장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지켜보고만 있겠다는 것은 이 기회를 놓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참 달려온 제조업에서 이제는 다른 산업으로 전환해야만 하는, 이 커다란 나라에서 어찌 기회가 없다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위기가 곧 기회”라고. 그래서 직접 가서 체험하고 중국을 배워보려고 한다. 그리고 가서 확인하기 전에 먼저 내가 알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생각보다 잘 모르는 중국
예전에 중국이 세계의 대표적 공장일 때에는 Made in China, 중국이 만든 것들을 전 세계로 쏟아냈었고, 한참 분위기 좋을 때는 중국 내부에서만 모든 일이 만들어지고 벌어졌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제조업의 명성은 베트남과 대만 등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있으며,이제 그 공장의 모터와 시계는 점차 멈추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최근 샤오미나 화웨이의 눈부신 성장, 알리바바와 텐센트와 더불어 드론 산업 등 여러분들도 많이 알고 계시겠지만, 과거 조금 먼저 60, 70년대 고성장을 달리던 한국의 입장에서 중국이란 곳과 거기서 나온 ‘중국산’은 ‘짝퉁’, ‘가짜’, ‘저가’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아직도 머릿속에서이런 중국에 대한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면, 이런 선입견과 오해는 이만 접어두라고 하고 싶다. 왜냐하면, 그동안 우리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중국은 많이 바뀌고 있으며, 그 속도(speed) 역시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중국 고속철도는 이미 그 경쟁력에서 한국을 앞질러서 최근 태국 고속철 사업에서 일본과 경합했고, 최근 인도네시아 고속철 사업도 따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미 미국 대비 2/3 가격에 600km/h 성능은 물론이고 세계 최장의 고속철 노선 구축과 실제 운행사례들은 우리가 그간 ‘관심’이 없었던 대표적인 사례이다. 심지어 항공 우주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들어선 3년 전에 상하이 출장과 2년 전에 멤버들을 데리고 상하이에 전체 워크샵을 다녀온 적이 있다. 불과 1년이 지났을 뿐인데, 달라진 상하이의 모습에 나도 놀랐지만, 같이 간 친구들은 그간 중국의 성장은 뉴스로 듣긴 했지만 상상 이상,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감상이었다. 국내 수입되는 중국산이야 당연히 자극적인 짝퉁, 가짜, 온갖 자극적인 막장 사례만 논란이 되지, 실제로 경험해본 중국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생각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에서의 실패 원인들
왕년에 건설 외에도 무역업 종합상사에서 전 세계를 누비던 시절, 그저 중국은 못사는 나라라는 편견에 한국 전자제품들을 들이밀었더니, 실제로 그 제품들을 사줄 2~3%, 대한민국 전체 인구만큼 있는 그 사람들은 소니나 구찌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더라는 전설은 내 주요 거래처가 제조 및 무역회사이던 약 20년 전 쯤 이야기인 것 같다.
예전에 어느 한국 기업에서 중국 법인에 대규모 투자, JV를 설립해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산당 간부 라인과 연결되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지만, 나중에 공산당 라인이 바뀌면서 허무하게 무산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10년 전 이야기이고, 시진핑 체제로 바뀌면서 부패척결에 대외적으론 매우 민감하게 대응해서 이제는 더는 그런 이야기는 안 통한다고 한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니 아직 남아있겠지만)
예전 한국 대표적인 대기업 중국법인에 근무하셨던 분의 책 내용에서 언급한 사례 중에서도, 당시의 수년 전 중국 진출 초기에 중국법인 이전 멤버들의 어느 행동 하나 때문에 수년째 끌고 오던 어떤 협상이 결렬되고 좌절한 이야기를 언급하셨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 중국이어서 당연한 이야기이고 우리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퍼져있는 화교 문화권 역시 어마어마한 규모이고 큰 시장인데, 전에 있었던 게임 회사에서도 중국 문화권 대상 테스트를 위해서 타 지역에 게임을 테스트 출시했지만, 생각보다 반응뿐만 아니라 결제율이 예상보다 떨어지는 걸 보고,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난 이후에는 무릎을 탁 쳤던 적이 있다. 바로 생각보다 큰 환경과 문화의 차이이다.
1000년 역사가 넘는 상거래의 선진국, 그리고 선불(pre-paid) 문화
얼마 전 국내에서 열린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관련 행사에서 키노트 스피치로 발표하신 허진호 대표님(한국에 최초로 민간 인터넷 서비스를 보급하신 분)의 강의 내용에 언급된 명나라의 ‘정화’란 인물의 사례를 들으면서, 이게 바로 중국의 특성, 소위 대륙의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부주도와 민간주도의 글로벌 진출의 성과 차이를 나타내는 사례이긴 했고, 물론 나도 미약하게나마 민간 주도의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들을 준비하고 있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콜럼버스의 1492년 원정에서 약 90년 앞선 1405년에 전 세계 원정을 나선 역사적 인물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에는 그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도전과 실패가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정말 지겹도록 들었을 기원전 시절의 비단길, 실크로드의 사례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핍박받으며 틈새를 찾아 금융업을 만들고 살아남던 시절에 이미 유럽과 중국을 이어가며 진귀한 물건들을 육로와 해상으로 각국에 날라 교역을 벌여왔던 그들이다. 물론 정치적으로 외국 문물을 배척하는 정책들도 그들의 역사에서 물론 있었지만, 이런 무역 거래에 있어 개방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는 왜 한국에 뿌리 깊이 자리매김한 미국식 사고방식들, 특히 미국처럼 수표(check)기반 또는 신용카드(credit card) 기반 결제가 많이 이루어지는 신용문화가 아닌 Pre-paid(선불) 문화가 그들에게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처음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실 육로든 항로든 무언가 물건에 대해서 가치를 교환할 때 가장 편리한 수단인 화폐의 지불은 물건 거래 시 바로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실제로 대만 이외에도 화교권들이 깊숙이 경제에 관여하고 있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지역에서도 역시 이런 Pre-paid 문화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우리가 그저 관광지에서 만나는 외국인 대상 고급진 레스토랑과 호텔/리조트 안에서는 절대 알아채기 어렵지만, 신용카드 점유율, 가맹비율은 물론이요 하다못해 휴대전화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USIM마저도 요금을 포함해 대부분 Pre-paid이다.
고속 성장과 제조 속도에 가려진 품질에 대한 집착
기계가 안 되면 사람이 하는 게 중국이었다. 13억이 넘는 풍부한 인적자원은 물론이요. 예전에 어디 전자제품 조립라인에서 일하는 숙련공의 일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결코, 그들이 나태하거나 일 못 한다고 하기 어려운 정도의 놀라운 속도와 멀티태스킹 능력에 놀란 적 있다. 이런 사람만 하더라도 한국 인구 대비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계화, 첨단화 역시 이미 눈부시게 발전했다.
중국의 류비쥐(六必居)라는 브랜드를 혹시 들어본 적 있는가? 1530년에 생겼으니 약 500여 년 살아남은 중국의 대표적인 장아찌와 식품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쉐이징팡(수정방-水井坊)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원래 취엔싱따취(전흥대곡주-全興大曲酒)라는 이름이었던 주류의 흑역사와 확연히 대비되도록 꽤 오랫동안 살아남은 대표적 브랜드 중 하나이다.
생각보다 놀랐던 것이,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이란 나라는 가짜 제품도 많고 우리가 상식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음식에 장난치는 재앙들(가짜 고춧가루와 우유 사건들)로 기억되지만, 사실 이건 인구가 많은 데다 상식에서 어긋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지, 실제로 중국 내부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그런 속임수 쓰는 식품업자들이 없었는가 되돌아본다면 말이다.
사실은 류비쥐 같은 오래된 식품 브랜드들이 살아남은 역사에는 그들 역시 제품 품질 관리에 대한 집착이 있었고 그 입맛에 맞게 꾸준히 사랑하는 고객들을 놓치지 않았기에 가능했으리라. 얼마 전에 내 페이스북에 언급하기도 했던 우황청심환을 만들고 지금까지 이어오는 퉁런탕(동인당-同仁堂)의 이야기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달라진 환경과 그 유연함
예전에 잘 아는 변호사분에게 지인 중에 중국인 변호사를 소개받으며 들었던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것이 그가 상하이의 무역지구 관련 단체의 대표로 겸직하고 있고, 그 하위 인사에 상하이 시 각종 분과별 공무원들이 소속된 것을 보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적이 있다. (어느 입주기업이 운송하는 데 불편함이 있다는 민원이 있으면, 하루아침에 없던 도로도 세울 정도라는데 우리식 사고방식으로 이해가 어려운 것은 당연할 정도)
불과 10년 전의 중국 모습은 매우 폐쇄적이고 내부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어느 순간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의 중국 사회의 변화는 실로 매우 빠른 것이었다. 특히 마오쩌둥에 의한 희대의 흑역사 중 하나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이후 천안문사태 이후에 중국인들은 어찌 보면 그동안 겪어왔던 경직된 중국 사회에서 새로운 희망과 격변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에게 유명한 마윈 회장과 그의 알리바바 역시 어찌 보면 공산당 연줄과 일류대인 북경대와 칭화대 학연 없이 오로지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를 만나 성장한 거대 기업가의 사례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물론 우리도 잘 알고 있는 BAT(Baidu, Alibaba, Tencent)와 해외상장한 중국기업들은 서류상 사실 외국 기업에 가깝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도 어찌 보면 머지않은 근래에 한창 인터넷 닷컴/모바일 열풍들을 겪지 않았던가.
특히 시진핑 주석 이후의 중국 사회는 기존 주력사업이던 제조업,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새로운 서비스업 창출 등 산업 변화에서 적극적이며, 인터넷과 모바일을 만나 한동안 강압적으로 통제되던 환경에서 이제는 학연, 공산당 연줄 없던 일반적인 사람도 어찌 보면 새로운 도전을 꿈꿔볼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어찌 보면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중국이다.
무시무시한 교육열과 억압된 사회의 콘텐츠와 욕구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늘어나는 인구 때문에 자녀 하나만 낳을 수 있었던 나라가 중국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인간의 기본 권리에 대한 통제이긴 하지만, 덕분에 우리나 우리 부모세대도 겪었던 60~70년대 배고팠던 시절, “하나 낳아 잘 기르자”라는 그 신조대로 80년대 이후 아예 강제되는 사회였고, 위반할 경우 처벌도 엄격했다. 유명 감독인 장이머우(張藝謀)가 2남 1녀를 기르는 대가로 13억 정도를 냈다고 하니 무시무시했다. (불과 1년 몇 개월 전 기사)
우리도 그래 왔지만, 하나라서 더욱 귀중한 자식에게 배고픈 시절을 물려주지 않도록 중국 부모들은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학 가고 공부한 중국인들은 실제로 미국 대학에서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는 중국인 유학생들이며, 그들의 배우려는 의지는 정말 세계 최고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강하다. (물론 당연히 풍족한 부모의 지원으로 열심히 노는 친구들도 있지만 말이다)
최근 들어 실리콘밸리에 급증한 인도인 이후 중국인 유학생들 역시 이런 맥락에서 설명된다. 사실 강제 조절되던 출산율은 통제가 풀린 최근에도 중국 인구는 예측보단 많이 늘어나고 있진 않다. 자식 하나에 전 재산을 걸어 투자한, 곱게 자란 그들이 바로 어려운 일에 싫증 내고 직장은 너무나도 쉽게 자주 옮기는 바링허우(八零后, 80년 이후 세대)이다.
소위 지금 중국 역사상 가장 크리에이티브하며, 트렌드에 민감하고 자국 내 소셜 네트워크에 번개같이 공유하며, 번 돈 족족 소비에 쓴다는 그들인데, 어찌 보면 이들에게 아직 콘텐츠는 부족하고 또 부족하다. 최근의 커피 열풍을 보면, 기존에 녹차/홍차로 표현되는 고루한 어른들의 문화인 茶(tea) 대신 트렌디하고 어메리칸스타일의 커피 한잔 하는 게 이상할 리 없다. 한국의 외국계 커피 체인 열풍의 대표 격인 스타벅스처럼.
이미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공산주의이고 사유재산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중국에서는 부동산, 특히 토지의 소유권은 모두 국가에 귀속된다. 국가의 땅을 빌리는 구조인데 부동산 계약은 주핑허통슈(租凭合同书)라는 한시적 이용 권리 계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대도심의 부동산 시세와 생활 물가는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실제로 이렇게 부동산 매입에 쓰이지 못하는 돈들은 중국 내부 경제에서 돌아다니기도 하겠다만 해외로 빼돌려져서 투자자본으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실리콘밸리를 일으킨 투자자금으로 조성되었던, 미국 국채를 샀던 자본 역시 중국계 자본이 꽤 된다. 오죽했으면 제주도의 땅을 다 사버릴 기세로 사들인 중국인의 부동산 취득이 이슈가 될까.
소유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 중의 하나이다. 인구 13억의 상위 5%만 따져도 우리나라 인구를 훌쩍 넘는데, 욕구불만의 중국 자본들에 매력적인 투자 상품을 팔아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꼭 기업이 아니더라도 콘텐츠로서도 말이다. 만약 앞으로 기초과학과 기술력, 제품 개발속도에서 못 따라가게 된다면 이제 남은 건 우리의 한류 콘텐츠를 만들고 증명한, 그리고 여러 센스를 발휘해 멋지게 응용/융합해서 요리해낸 ‘트렌드 감각’ 아닐까.
원문: 허양일님의 med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