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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대놓고 얘기해 본 적은 없으나, 중고딩 때 노래하겠다고 방황하던 시기가 있어 나름 당시에 느끼고, 당시에 한계라 여겼던 음원 산업에 대한 감상을 합쳐서 올해 투자한 음악 기업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여담이지만 1992년 MBC 방송아카데미 설립 첫해 오디션에 합격한 적이 있습니다만, 그때 심사위원이 가수 이승철씨와 기타리스트 손무현씨 였습니다. 이승철씨는 20년이 지나서 슈스케 심사위원이 또 되셨네요. (아아… 심사위원이 끝나질 않아…!) 암튼 그랬던 제가 지금은 이렇게 생계형 VC로 살게 되어서 인생 참,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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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얘기로 바로 들어가기 전에 예술 얘기 조금만 해보겠습니다. 음악은 다른 예술과 구별되는 뚜렷한 두 가지 특징과 그로 인해 파생된 세 번째 특징이 있습니다. ‘휘발성’과 ‘수동성’, 그리고 ‘다수의 공통 경험’이란 특징입니다.
먼저 휘발성에 대해 얘길 하자면, 인류는 무려 19세기까지 음악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그림도 그려서 보존할 수 있었고. 시와 소설도 글로 써서 남길 수 있었으나. 음악은 악보에 기록한다 하여 물리적으로 소리를 보존할 수가 없었고 개별 연주자의 특징을 남길 수도 없었습니다.
둘째로 수동성을 보죠. 휘발성에서 음악은 무용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 있다고 가정할 때 무용은 내가 눈을 감아버리면 능동적으로 그 감상을 배제할 수 있지만 음악은? 소리는 다릅니다. 한 공간 안에서 내가 소리를 듣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다. 귀 막는다고 안 들리나요? 덜 들릴 뿐이지요. 아무튼 상대적으로, 음악은 내가 능동적으로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음악은 수동성을 가진 예술입니다.
음악이라는 선율은 음파라고 하는 파동의 형태로 전달됩니다. 파동은 지향성이 없기 때문에 공간 전체에 퍼집니다. 즉 누구 한 명만을 상대로 전달되지 않죠. 공간에서 소리를 내면 파동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그 소리를 들어야만 합니다. 때문에 음악은 다수의 공통 경험이라는 속성도 추가로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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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산업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동력은 위 특징 중 휘발성을 기술이 제거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휘발성이 극복되면서 20세기 가수들은 그 이전 시대와는 차원이 다른 부와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저장매체의 발전과 함께 약 100여 년간 음악산업의 황금기가 열립니다.
그러나 그 100여 년간 변하지 않은 것은 유통업체가 수익을 대부분을 차지하고 가수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아요. 물론 앨범이 천만 장씩 팔리던 시대에 김건모 씨는 건물주가 될 수 있었고, 미국에서 마이클 잭슨은 네버랜드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것이지, 오늘날도 그것이 유효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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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가 유지되지 못한 데에는 두 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 1)기술발전과 2)음원 공급의 증가입니다.
1)기술발전은 이미 다들 아시는 MP3 파일과 스트리밍입니다. CD의 제작단가가 매우 저렴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무한히 재생산하기는 부담스럽죠. 반면 MP3는 무한히 복제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MP3 역시 복제할 오리지널 소스파일을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습니다. 아이튠즈와 멜론이 시장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의 핵심이 여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리밍도 초기에는 통신요금의 문제로 대중화가 어렵다가 WIFI의 보급과 LTE DATA 요금제가 나오며 이젠 MP3 파일조차 구입하고 다운받기 귀찮은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덕에 스포티파이와 Deezer, BEAT와 같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아이튠즈와 멜론에 대항해 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구요. 그렇게 해서 우리 음원 산업의 황금기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2)음원 공급의 증가는 여기에 가속을 더합니다. 음원을 소비해 줄 인구는 평균 인구증가율에 한정되어 증가하는데 이 한정된 인구의 한계 소비 시간을 두고서 수 많은 음악들이 오늘도 새로 공급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들 음악들은 디지털 음원의 형태로 보존되고 재생되기에 흘러간 음악이라고 쉽게 사라져 주지도 않습니다. 아무 때나 쉽게 찾아서 다시 들을 수 있는 수많은 기술과 서비스로 이미 주변이 가득 차 있지요.
여기에 SNS까지 합세하여 예전 같으면 흘러갔을 음악들이 시즌만 되면 ‘좋아요’와 ‘공감’ 버튼으로 되살아 나기까지 합니다. 봄만 되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 가을만 되면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벌써 일 년’이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것을 우린 이미 수 년째 경험하고 있지요.
거기다가 음악하고 노래하는 사람들의 물리적 숫자 역시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성대가 신체기관 중 가장 느리게 노화되다 보니 20대에 한 번 이름을 얻고 나면 거의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현역으로 활동이 가능합니다. 가요무대가 그걸 증명하지요.
이들 모두가 만들어내고 부르는 개별 음원들의 공급 총량은 오늘도 늘어만 가기에 각각의 디지털 음원 하나씩의 한계효용과 지불가치는 한정된 소비 시간 안에서 제로수렴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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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뮤직 비즈니스는 바로 이런 한계효용 제로의 제품을 서비스하는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들이 실현자인 가수들에게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 못하는 본질 이유기도 합니다. 고객들의 개별 콘텐츠에 대한 지불가치가 제로 수렴되어 있다 보니 제품과 서비스를 유지하는 회사도 ROI를 맞추기 어려운 것이지요.
사실 음악 자체는 우리 모두가 좋아하고 우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재화이자 콘텐츠이자 서비스입니다. 그러나 위의 이유로 음원의 한계효용은 제로로 수렴했다는 것이 제가 보는 현실입니다. 그것이 Spotify와 Deezer와 BEAT 등의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 사업이 그 필요성과 활용성에 의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투자를 끝까지 망설이고 하지 못한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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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이든 그 본질을 파고 들어가면 항상 답은 그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먼저 언급한 음악이 가진 세 가지 특성이 바로 그 해답이란 것이죠.
휘발성과 수동성, 그리고 다수의 공통 경험, 이 세 가지가 향하는 지점은 ‘재생산 불가’입니다. 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개별 재화와 서비스의 한계효용이 극대화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음악 시장에서 한계효용을 극대화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제품 또는 컨텐츠, 서비스는 결국 라이브 공연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제가 BEAT 같이 뛰어난 기술 기업을 마다하고 마이뮤직테이스트에 투자를 결정한 가장 본질적인 로직 베이스는 여기서 기인했습니다.
현재 시장에는 마이뮤직테이스트를 원탑으로 케이팝유나이티드, 부르다 콘서트, 엔터크라우드 등의 스타트업들이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전통 공연시장에 뛰어들어 음악 산업을 혁신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들이 Spotify나 Deezer나 BEAT 만큼 알려지지 않았으나 음악이라는 산업 영역에서 스트리밍 이후 가장 크고 강한 움직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문: 박영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