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미국에서 학생들을 만나면서 더 느꼈던 것인데, 지금 현재 산업화된 나라의 20대 졸업생들은,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SKY급 졸업해도 취직 때문에 곡소리가 나는 현상은 이젠 선진화된 세계 어디나 비슷할 겁니다.
사실 인문대, 순수예술했다고 취직이 잘 안 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삼성에 취직하기 위해서 고고학과를 졸업했다면 이상하긴 하잖아요.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가장 어찌 보면 산업계에 가장 가까운 분야, 경영학과가 취직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공대생들은 못 뽑아가서, 부족하다고 난리인데 경영학과는 공급이 넘치고 수요가 부족합니다.
사실 뛰어난 경영자 한 명은 정말 중요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이 CEO에게 몇 백 억씩이나 연봉을 쥐여주는 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그 정도 급이 되면 그만한 밥값을 한단 이야깁니다. 그렇게 경영자가 중요한데, 신기하게 경영학과는 취직이 안 됩니다. 사실 학생들에게 참 많이도 질문받았던 사항 중 하나는, ‘경영학과 졸업해서 취직을 하려면 여기서 더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입니다. 어떤 스펙을 쌓아야 취직이 되나요, 입니다. 그럴 때마다 전 이렇게 말합니다.
전자공학을 잘하면, 뛰어난 전자공학자가 됩니다.
물리학을 잘하면, 뛰어난 물리학자가 될 겁니다.
경영학을 잘하면, 뛰어난 경영학자가 될 겁니다. 경영자가 아니라요.
경영학을 잘하면 뛰어난 경영학자가 됩니다
경영학과는 애당초 ‘경영학’을 공부하는 학과지 ‘경영’을 공부하는 게 아닙니다. 많은 학생들이 경영학과를 졸업해서 뛰어난 경영자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사실 경영학과에서 배우는 경영학이란 사회과학이에요. 실용학문이라기보다 차라리 인문학이라고 말하는 게 나을 겁니다.
포츈 오백에서 얼마나 많은 대단한 경영자들이 학부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했는지 세보세요. 아니면 최근 테크기업들의 유명한 경영자들이 경영학과를 나왔는지 학부에서 무슨 과를 졸업했는지 한 번 따지고 보세요. 반대로, 여러분의 경영학과 교수님들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경영학과를 졸업했는지 세보세요.
예를 들어 군사학과를 나왔다고 소총을 잘 쏘는 것은 아닙니다. 대략적으로 무기이론 정도 배울 수는 있겠지만서도. 마찬가지로 경영학과 졸업했다고 경영 잘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데에 경영학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박태준, 이런 사람들이 이루어놓은 업적들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경영과 경영학은 별개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경영학과 학부생들은 사회과학을 배운 겁니다. 그런데 경영학이 과학적 방법(Scientific Method)을충분히 키워주는가, 논리력을 압도적 레벨로 높여주는가 하면 또 그건 아니에요. 과학적 방법을 학습하기 위해선 철학과나 생명공학과가 차라리 나을 겁니다. 결국 경영학과 학부 4년 동안 대체 무엇을 배웠냐 하면 딱히 뭔가 배운 게 손에 안 잡힙니다. 회계? 경영전략? 조직론?
제가 겪었던, 경영학과 학부 학생들이 자기들이 생각하기에 뛰어난 경영 스킬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결국 ‘말 조리 있게 하고 보고서 조리 있게 쓰고 좋은 PT하고 회계에 잘하고’에 가까웠습니다. 이건 경영자가 아니라 행정병에 가까워요.
근데 회사란, 고객에게 물건을 파는 조직을 뜻합니다. 회사에서 중요한 건 고객에 물건을 파는 ‘영업 행위’입니다. 영업행위를 따지고 들어가 보면, 어디에서는 고객과 술 같이 먹는 접대 행위가 될 수도 있고, 고객의 니즈를 캐치해서 제품에 반영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회사의 모든 행위는 영업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그 영업이라는 걸 학생들은 우습게 생각합니다. 무슨 논리적인 보고서나 멋진 PPT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현재의 경영학과에서 주로 가르치는 것은, 안타깝게도 물건의 포장지를 잘 싸는 법밖에는 안됩니다. 안타깝지만, 전 현실이라고 봅니다. 그러면 그동안 왜 경영학과가 업계의 메인스트림이 되었을까요. 10년, 20년이 아니라 거진 100년 동안 말이죠.
경영학이 주류였던 이유
이 이면엔 이미 정형화된 상품을 시장에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했던 기업의 역사가 존재했다고 봅니다. 사실 한국 산업화 역사 50년 동안 말했던 ‘경영’이라는 것은 ‘관리’에 가까웠습니다. 미국의 제조업 베이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SCM만 해도 관리 기술의 정점에 있으니까요. 이 관리를 경영학과 학생들이 담당했었고, 또 많은 문과 출신들이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IT가 발달하고, ERP/DSS 등이 도입되면서 그 관리 조직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예전 한 번 생각해봐요. 한 30년 전엔 ‘괘도’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거 가져다가 사장님 앞에서 발표하고 그랬어요. 요즘 학생들은 이게 뭔지 모를 겁니다. 아무튼 그런 게 있었어요. PPT가 아니라 사람 키만 한 전지에 마커로 글 적고 줄치고 한 장 한 장 발표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대자보 여러 장 만들어서 발표했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비슷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거 만드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래서 관리조직이 두꺼웠습니다.
그런데 셀로판지 쓰고, 그러다가 이제 PPT가 나오니까 예전이면 하루 걸리던 게 한 시간이면 됩니다. 그러니 관리조직이 두꺼울 필요가 없어요. 즉, 피피티, 이메일, 엑셀 뭐 이런 게 나오니까 관리조직이 점점 더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때문에 요즘의 경영행위라는 것은, ‘고객 이해’에 가깝습니다. 경영행위의 정의가 뒤바뀐 것입니다. 저희 회사에는 경영자가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테일러 이후에 진행되어왔던 생산성 향상이란 비기가 있습니다. 즉, 과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5년만 시간을 돌려 돌아가 보죠. 25년 전까지만 해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던 시대입니다. 1990년이라, 금성사 칼라TV 좋다고 막 책받침 나눠주고 그랬습니다. 좋은 물건이란 정량화가 가능했습니다. 품질이 딱딱 떨어졌어요. 강도라든가, 규격이라든가.
이때 경제 행위는 세이의 법칙이 지배합니다. 기업에서 중요한 것은 생산성을 뛰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00이라는 품질을 가진 제품을 A란 회사는 개당 50원에, B라는 회사는 개당 80원에 만들었다고 칩니다. 어떤 회사가 이길지는 명확합니다. 고객 니즈 명확해요. ‘칼라TV.’ 그럼 그걸 얼마에 만들었냐가 중요하고, 이때 관리기술이란 놈이 필요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고객을 이해하는 행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대의 IT기술이 발달하면서 비용이 낮아집니다. 이제 신규 마켓들은 파편화됩니다. 이젠 괘도도 필요 없고, OHP인가 하는 셀로판지도 필요 없고, PPT 키노트가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이젠 ‘관리’보다도 ‘고객 이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고객을 이해한다는 것.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경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영학과는 수요가 없어졌습니다. 인문대생이 취직 안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경영’이 아닌 ‘사회과학’에 가까워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 경영학과가 취직하기 위해서라면, 경영학이 아닌 경영을 배우라고 말하곤 합니다.
근데 이 경영(부제: 인간에 대한 이해)이라는것은 교수들에게서 배울 수 없어요. <경영이론I>에서도 못 배웁니다. 지금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영이란 세이의 법칙이 지배하던 세계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사람이 아닌 문서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그래서 대학 4년 동안 학교에 등록금을 발라도 경영 못 배웁니다.
사실 제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열심히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 달달 읽고 케이스 스터디 열심히 하고 회계 열심히 듣고 조직론 공부하고… 이런 거보다 집에서 소파에서 손자병법 읽는 것이 나았습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그 두껍고 비싸고 매년 나오는 경영책들보다 천 년도 전에 나온 얇은 책 한 권이 더 낫다니요.
경영학과 출신들의 안 좋은 버릇
더 나아가, 전 경영학과 출신들의 상당수가 좋지 못한 버릇 하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경영학과 학생들은 경영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폴 그레이엄이 스탠포드 MBA를 까면서 했던 말과 비슷합니다. 개발은 개발자를 시키면 개발자가 합니다. 디자인은,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합니다. 고객응대는,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을 고용해서 해결합니다. 그리고 경영자는 굉장히 유명하고 높고 돈 많으신 분 앞에서 자신의 성과를 발표해서 협력을 얻어냅니다. 예를 들면, 삼성의 사장이나 부사장 같은 사람 말이죠. 경영자의 역할이란, 높으신 분을 많이 알고 잘 보여서 그 분들이 여러분의 회사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모든 것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겁니다.
그런 거 없어요.
많은 경영학과 출신들에게서 전 비지니스 로직의 선후관계가 바뀐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고객을 만든다 → 돈을 얻는다 → 더 큰 고객을 만든다’가 아니라, ‘아주아주 큰 기업이 우리를 도와준다 → 돈을 얻는다 → 여러 고객을 만든다’로 비지니스 로직이 전개됩니다. 그러다 보니, VC 앞에서 피치를 하고, 피치를 하고, 또 피치를 하면서 사업을 검증받고자 합니다. 특히 한국이랑은 관계도 없는 실리콘벨리 VC 앞에서 피치를 하고, 그들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때 비지니스 로직은 이렇습니다. ‘Great Prophet(VC)이 우리에게 말씀을 내려주신다 → 이 말씀으로 우린 VC에게서 돈을 얻어낸다 → 고객이 생긴다.’
뭔가 이상합니다. 그러나 전 수많은 MBA나 경영학과 출신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지난 5년간 보아왔습니다. 오히려 경영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애당초 자본시장이니 그런데 관심 없어 눈 앞의 고객에게 물건 파는 것에 집중할 수 있을 겁니다.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린(Lean)해져요. 한국의 재벌들은 사실 그렇게 설립되었습니다. 구멍가게에서, 자동차 공업사에서, 심지어 LG그룹은 지방 어디에 박혀 있는 플라스틱 기술자 묻고 물어 찾아내어 빗 만들다가 시작됐어요. 따지고 보면 이게 린 스타트업인데, 국내 재벌 창업가들은 린 스타트업을 어메리카의 위대한 선지자가 하는 귀한 말씀 없이도 잘 해왔습니다.
경영학과가 취직이 힘들다면, 학교에서 교수들에게 발표만 했던 탓입니다. 그것도 제대로 배우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경영학과 학생들은 SWOT이 무엇인지 알 겁니다. 마이클포터 5 Force가 뭔지 알 겁니다. 근데 5 Force를 언제 쓰고 언제 안 쓰는지는 몰라요. 인하우스가 뭐고 아웃소싱이 뭔지는 아는데 그것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몰라요.
예를 들어 ‘인하우스와 아웃소싱의 장단점을 설명하라’ 라고 질문하면 잘 해요. ‘인하우스와 아웃소싱을 언제 쓰는가’ 질문하면 그나마 좀 대답해요. 근데 ‘경영자가 인하우스와 아웃소싱의 장단점 사이에서 숙고하다가 결국 아웃소싱을 선택했고, 그 결과 그것이 실패하였다면 그 원인이 될 수 있는 변수는 무엇인가 ‘라고 질문했을 때는 대답을 못 합니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안 가르쳐주니까요. 실전에서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실패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전 경영학과 수업 보면 답답합니다. 무슨 리포트를 쓰고 경영을 가르친다 하는데, 그나마 좀 실체적인 경제활동에 대해 개념이 있으신 교수님들이 가끔 학교 앞 상권에 가서 컨설팅이라도 해보면서 경영을 체험해보라고 합니다.
경영학 아닌 경영을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
그런데, 경영이나 실물 경제를 더 쉽고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직접 장사를 해보는 겁니다. 무슨 경영이니,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니, 동아 비지니스이니, 다 접어두세요. 그냥 동대문에 가서 옷 장사를 해보고, 집 앞에서 커피숍 해보고, 가판대에서 붕어빵 장사라도 해보고, 쇼핑몰이라도 차려보고. 그래서 십만 원, 백만 원이라도 남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한 번 벌어보는 겁니다. 옆집이 붕어빵 만들면 난 잉어빵 만들어서 차별화란 경영전략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몸으로 겪어보세요.
경영이 무슨 정장 입고 스포트라이트 받으면서 발표하는 거란 생각을 버려 보세요. 롬멜이 책상 위 전략은 믿지 않는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세요. 경영전략도 책상 위에서 배운 것이 크게 의미 있다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예를 들자면 학생들 과외 뛰어서 오백만 원씩 모아서, 여차하면 학생의 미래 가치를 할인해버려서 교수한테 대략 천만 원 뜯어서, 뭐 한 분에게 이백씩만 다섯 분께 빌리면 천만 원 되겠네요. 이거 자본금 삼아서 뭐라도 할 수 있어요. 제가 학생 때는 어떤 분은 학교 앞에서 솜사탕 장사도 했습니다. 장사라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싸게 사서 내 노동력을 더해서 비싸게 파는 겁니다. 경영서적 보는 거보단 훨씬 재밌는 경험일 겁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매거진 ㅍㅍㅅㅅ에서 인터뷰했던 8퍼센트(「‘8퍼센트’ 이효진 대표 인터뷰」) 같은 경우는 남들이 사업계획 세우고 있을 시간에 그냥 서비스를 릴리즈하면서 고객을 배워 나갔습니다. 최신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도 없었고, 요즘 가장 핫하다는 머신러닝도 없었습니다. 서버 500원에 한 달 빌렸답니다. 지금에서야 내부적으로 최신 데이터베이스나 머신러닝 시스템, 심리기반의 신용평가 모델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초기엔 그런 거 없이 중요한 고객에 집중했고, 때문에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전 이렇게 많이 이야기합니다. 경영서적을 열심히 보는 것은 마치 요리책을 열심히 보는 것과 같습니다. 요리책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고등어를 적당히 굽습니다’,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고’, ‘센 불에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익힌 후’… 이걸 식당 아주머니가 보면 잘 이해합니다. 근데 제가 처음에 자취 시작할 때는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습니다.
경영서적도 사실 그렇게 쓰여 있어요. 어느 정도 숙련된 경영자가 보면 와… 이게 여기에 다 있었네, 이렇게 체계화되어있네, 할 수 있습니다. 기업 경영하신 분이 MBA 가면 이렇게 싹 정리되어 있네, 좀 더 일찍 알 걸, 이라고 감탄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경험이 없다면, 학부생들 눈에는 이게 손에 잡히는 어구들이 아닙니다. 시험 문제는 잘 풀겠죠. ‘무를 어떤 크기로 썰어야 하는가?’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이건 아는 게 아닙니다. 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와 공부
만약 학생들이 경영학이 아닌 경영을 공부한다면, 학교에선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한 가지를 배우게 될 겁니다. ‘나’에 대해서입니다. 전 지금 경영학과 학생들이 경영에 대한 관점 중 가장 큰 문제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느냐’가 정말로 중요해요.
예를 들면 잡스가 구글식의 조직을 꾸미면 아웃풋이 안 나올 겁니다. 반대로 브린이 애플의 조직을 맡으면 미쳐버릴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선 안 가르쳐줘요. 월마트의 힘 중에 하나가 샘 월튼의 겸손함이라고 말해요. 근데 CEO가 겸손하지 않은 회사 수도 없이 댈 수 있습니다. CEO가 겸손해서 말아먹은 케이스도 꽤 많을 겁니다.
학생이 피아노가 적성인데 수학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경영학과의 수업은 ‘『종의 기원』이 대단한 책이다 → 이 책을 잘 읽히자 → 피아노 치는 아이에게 이 책을 읽히면 성공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패러다임이 짜여 있습니다. 경영전략은 그것이 어떤 것이냐, 어떤 환경에서 수행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가’ 실행하느냐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소녀시대가 소녀시대 춤을 추면 예쁩니다. 근데 남자 고등학생이 소녀시대 춤추면 그건 개그물이에요. 전 요리책 보고 이해가 안 가서 디씨 자취갤, 한식갤 같은데 가서 물어봤어요.
고등어를 노릇노릇하게 구우라는데 이거 몇 분 구우면 되나요?
– 그거 후라이팬 따라 다르고 가스렌지 화력 따라 다르고 고등어 상태 따라 달라서 뭐라고 할 수 없네요.그래도 뭐 적당한 그런 거 없나요?
– 없어요. 너무 달라서;; 걍 몇 마리 굽다 보면 압니다.
가지고 있는 후라이팬이랑 가스렌지랑 고등어 상태에 따라 고등어 굽는 게 다 달라요. 이걸 어떻게 더 배울 수 있을까요. 각 가스렌지 회사별 분류하고 고등어 냉동상태 따라서 테이블표 만들고 노르웨이산인지 러시아산인지 봄철인지 가을철인지 겨울철인지에 따라 다 구분할까요? 불가능할 겁니다. 그럴뿐더러 의미가 없어지죠. 지나친 계획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경험입니다. 결국 한 마리는 태우고 한 마리는 설익히면서 배울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고등어 한 마리가 이럴 진데, 경영전략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리소스의 중요성이라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학교에서 경영 배웠다는 거 들어보면 언제나 주어가 빠져 있어요.
최소한 경영학과에서 경영학이 아닌 경영을 배웠다면, 자기가 어떤 식의 경영전략을 수행할 수 있고, 어떤 식의 경영전략을 수행할 수 없는지를 대강이라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무기가 무엇이냐는 거죠.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수류탄인지 소총인지 안 배웠어요.
클라우제비츠의 입을 빌리자면, 역시 경영이란 것도 자신(의 회사)와 세계(고객)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입니다. 근데 전자는 없고 후자만 배워요. 왜냐면 여러분이 배운 건 경영학이라서 그래요. 표준화할 수 없다면, 그건 학문이 아닐 겁니다. 김태희는 A가 맞고 전지현은 B가 맞고 송혜교에겐 C가 맞다고 쳐봐요. 이건 학문이 아니거든요.
경영학과 취직 안 되는 이유? 경영학은 실전기술이 아니기 때문
직접 사업을 실패를 온전히 자기가 떠안는다는 생각을 안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얼마 전에, 대기업 신사업팀과 회의를 했습니다. 이 회사가 이번에 뜨는 분야에서 엄청나게 큰 일을 벌인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뭔가 굉장히 검증된 유명한 솔루션이 있어서 플랫폼화시키겠답니다. 이걸 사오기 바로 직전이고, 싸인만 하면 된다고 흥분하더라고요.
솔직히 ‘아, 또 말아먹겠네’ 싶었습니다. 웹개발자 없이 웹을 개발해주며, Django와 AngularJS란 웹 프레임워크의 UI를 만들어주는 IUEditor(I . Editor . U가 아닙니다…)가 설치된 맥북을 조용히 켜서 계산해봤습니다. 그 솔루션이 사기가 아닐 확률 65%(많이 쳐서 이렇습니다), 한국에 적용가능할 확률 30%, 플랫폼 공급자 쪽에서 이걸 사용할 가능성 20%, 플랫폼 소비자 끌고 올 확률 20%. 비용은 솔루션 가격 대략 50억, 인건비 및 부대비용 대략 75억, 개발비 대략 30억. 성공 후 마켓 플레이스 가격 대략 300억.
대략 125억을 부어서 0.7%의 성공확률로 베팅해서 300억을 만든다는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제가 뭔가 과소평가했다는 가정하에 팩터를 x10을 줘도 7% 밖에 성공확률이 안 됩니다. 그런데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훌륭한 계획이네요.”
아무튼,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사실 전 취직을 위해서 대학을 간다는 말에 상당히 거부감이 있는 편이고, 또 대학은 학문의 요람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게다가 유물론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경영학, 경제학이야말로 철학, 미학, 수학, 물리학과 비견될 수 있는 학문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경영학은 ‘학문’입니다. 실전 기술이 아닙니다.
경영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존경받는 경영학자가 될 수 있습니다. 뛰어난 경영자나, 뛰어난 신입사원이 되는게 아닙니다.
원문: JD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