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는 좋았다. 때와 장소에 따라, 심지어는 사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던 휴대폰 가격의 차별성을 없애고 가계 통신비를 인하하겠다던 단통법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호갱을 막겠다던 단통법은 사실상 전 국민을 호갱으로 만들었고, 이통사는 엄청나게 늘어나는 영업이익에 매출은 떨어졌다며 황급히 언플하기 바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 함께 평등한 호갱이 된 것일까? “어차피 나는 못 먹던 거, 모두 다 못 먹게 되었으니 만족한다!”고 외칠 훌륭한 인격자가 있다면 그 만족을 잠시 넣어두시라. 단통법은 지하 1층에 있던 보조금을 지하 7층으로 몰아넣은 것일 뿐이니 말이다.
판매자가 물건을 싸게 팔겠다는데 왜 불법인 건지, 그보다 애초에 약정이니 위약금이니 다 접어두고 그냥 휴대폰 자체를 싸게 팔 수 없는 건지는 생각하지 말자. 대한민국에서 이것저것 다 따지다간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괜히 쓸데없는 생각하며 산소 낭비하지 말고,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을 편하게 먹고” 지하 7층으로 함께 가보자.
표인봉과 현아를 찾아라!
먼저 이런 불법 보조금이 어떤 형태로 주어지는지 알아보자.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페이백’과 ‘현금완납’이다. 페이백이란 휴대폰을 출고가로 구매하되, 이후 대리점으로부터 일정 금액을 다시 현금으로 돌려받는 것을 의미한다. 페이백되는 현금을 사은품, 별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반면 ‘현금완납’은 판매점에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휴대폰의 할부원금이 0원, 즉 완납 상태로 개통되는 것이다. 정상가에 비해 싼 가격으로 일시불로 구입하는 개념이다. 페이백의 위험성(돈을 못 받을 가능성)도 있고, 할부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기에 한동안 가장 사랑 받던 방식이다.
자, 이제 기본을 알았으니 인터넷이나 주변 대리점에서 페이백을 찾아보면 될까? 아니다. 전혀 어림도 없다. 우리 모두가 알 듯이 일정 이상의 보조금은 편·불법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단통법 이후에는 완전한 불법이 되었다. 그렇기에 대놓고 페이백과 현금완납을 언급할 수는 없다. 여기서 나온 것이 표인봉과 현아다.
표인봉은 페이백을 뜻한다. 페이백의 초성 ㅍㅇㅂ이 그대로 표인봉으로 바뀐 것이다. 현아는 ‘현금완납’이 ‘현완’으로 줄었다가 그 초성이 그대로 현아로 변한 경우다. 판매조건에 표인봉이나 현아가 들어갔다면 페이백과 현금완납이라고 보면 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표인봉 사인 32장 받았어요: 32만원 페이백
현아가 춤 20번 췄어요: 20만원 현금완납
육수 64그람 ㅅㅋㅂㅇ 59욕 인봉형한테 싸대기 15대 맞았어요
같은 물건이면 싼 곳을 찾는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판매점이 마음대로 더 싸게 팔았다간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판매조건과 정보는 전달해야 하니, 뽐뿌를 비롯한 휴대폰 커뮤니티에서는 각종 은어가 난무한다.
제목의 은어를 알아들을 수 있게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아이폰 6S 64GB SKT 번호이동 59 요금제 페이백 15만원으로 구입했어요.
가끔 시사적인 이슈와 이렇게 엮이기도 한다.
게티 번이점프대에서 순두부 61봉지 사면 조현아 사장이 땅콩 33개만 받고 회항하겠다네요.
(KT 번호이동 순 61요금제를 쓰면 33만원 현금완납을 해주겠다.)
이쯤 되면 이제 은어가 아니라 그냥 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단통법 시대의 신풍경
온갖 은어를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바로 싼 값에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통법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마찬가지로 단속 역시 훨씬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더 폐쇄적으로 변하고 있다. 불법 보조금을 신고하는 폰파라치 때문에 웬만한 곳은 기존 구성원의 추천이 있어야만 가입이 가능하다. 명함과 재직증명서를 보내야 가입을 받아주는 곳도 상당수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원한다면 오프라인 매장에 ‘내방’을 해야 한다. 무사히 신원을 증명하고 매장 주소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절반만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007 뺨치는 첩보전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근래엔 접선 장소에서 몸 수색 후 조건이 제시되는 괴 전화를 전달받거나, 이어폰을 귀에 꽂아주기도 한다. 중간에 절대 다른 행동을 하거나 직접 페이백 등의 조건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 폰파라치로 의심받고 쫓겨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대 살아남기
여기까지 오니 무슨 생각이 드는가? 그래, 휴대폰 싸게 사기 참 어렵다… 사실 당연하다. 불법이니까. 정보를 찾기 위한 노력과 시간을 생각한다면 싸게 사는 게 결코 싸게 사는 것이 아닐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거래는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사기에 굉장히 취약하다. 실제로 지난 5월 라면 40개를 계좌로 넣어준다는 말에 개통했다가, 진짜 라면 40개가 택배로 도착한 사기…인지 아닌지 모를 사건도 있었으니 말이다.(참조: “40만원 대신 라면 40개가 왔어요ㅠㅠ” 페이백 피해 네티즌 호소 ‘시끌’)
그렇다면 불법적인 모험을 하지 않으면서도 호갱이 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단통법 시대, 떳떳하면서도 저렴하게 휴대폰을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
하나. 해외 직구하고 반값 요금제 사용하기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웬만한 전자제품은 한국이 미국보다 더 비싸다. 심지어 바다를 건너오는 운송료와 세금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아이폰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정식 출시된 아이폰 6S 64GB 기준 국내 소비자가는 106만원. 이에 비해 미국 판매가는 $749로 환율에 따라 좀 달라지겠지만, 이것저것 다 더하더라도 95만원 정도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무시무시한 2년 약정과 위약4(약정을 중간에 해지할 때 반환해야하는 공시지원금)을 생각하면 충분히 해볼 만한 거래이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중국 저가폰이나 알뜰폰 같은 것을 구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샤오미나 화웨이의 경우 30만원대로 높은 스펙의 플래그쉽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 있다.
여기서 끝난다면 불법 보조금을 받는 것만 못하다. 기왕 약정에서 자유로운 몸이 된 겸에 꼭 알뜰폰 요금제를 이용하도록 하자. CJ 계열 알뜰폰인 헬로모바일의 반값 유심 요금제를 쓰면 데이터 5GB 기준, 월 요금 34,000원에 사용할 수 있다. 다른 통신사에서 이 정도 조건을 사용하려면 최소 5만원대 요금제는 사용해야 한다.
통화품질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기존 통신사의 망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것이기에 품질은 동일하다. 특히 헬로모바일은 SKT와 KT 통신망을 모두 취급하므로 지역 상황에 따라 골라 개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약정이 없어서 언제든지 자유롭게 휴대폰이나 요금제를 바꿀 수 있고, 해지 위약금도 없다는 점은 단순히 휴대폰을 싸게 사는 것 이상으로 통신비 부담을 완화해줄 것이다.
둘. 보조금을 많이 주는 곳에서 구매하기
단통법으로 인해 휴대폰 지원금이 공시되고 (표면적으론) 모든 판매점에서 같은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한 통신사 내부에서의 이야기이다. 소비자는 통신사를 비교해 더 저렴한 곳을 선택하면 된다. 헬로모바일의 경우 법적으로 가능한 최대 보조금을 제공하는데, 이를 적용할 경우 갤럭시 S6 64GB는 기존 출고가 약 80만원이 42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LG G4는 약 70만원에서 32만원으로 절반 이상 저렴해진다. S사가 각각 47만원, 42만원에 판매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별로 차이가 안 난다고? S사가 8만원 요금제, 헬로모바일이 5만원 요금제를 사용할 때 주어지는 보조금이란 걸 생각하면 실제 납부 요금에서는 상당한 차이 벌어지니 꼼꼼히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셋. 리퍼비시 0원 폰 구매하기
할부금도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중고를 구매하기도 불안하고 귀찮은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이다. 리퍼비시 폰이란 초기 불량 등으로 환불이나 판매되지 못한 제품을 신제품 수준으로 정비하며 다시 판매하는 것이다. 중고폰보다는 조금 비쌀 수 있겠지만, 약정과 함께 보조금을 받으면 현재로선 가장 싸게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다. 헬로모바일의 경우 현재 아이폰 5S 16GB를 24개월 약정에 기기값 0원으로 판매하고 있으니 굳이 최신폰이 필요없다면 이쪽을 선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대호갱시대의 미래는?
단통법 시행이 앞으로도 2년이 더 남아 있는 상황. 주무처인 미래부가 “가계 통신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라고 이야기하고, 통신사의 영업이익이 고공행진하는 것으로 봐선 아마 앞으로도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결국 소비자가 더 공부하고 스마트해지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렇다고 너무 음성적인 정보만을 찾아 헤매진 말자. 집으로 배달된 수십 명의 ‘진짜’ 표인봉을 보며 망연자실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