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성장으로만 바라보는 시선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홀로 살 수 없고 집단을 이루며 산다. 인간이 좋든 나쁘든 모두 나와 똑같은 존재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두가 서로 다르다. 그러니 서로 다른 사람들의 공존을 도모하며, 갈등을 조정해내기 위해 ‘제도’(institution)가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는 인간의 요청에 의해 의식적으로 창조되었다. 정치제도, 사법제도, 노동제도, 복지제도와 같은 이런 제도은 보통 형식화된다. 이를 형식적 제도(formal institution)라고 부른다.
이와 달리 제도가 무의식적으로 형성되는 경우도 있다. 수 백 년 동안 누적된 습관도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는 제도에 속한다. 전통, 관습, 습관도 있지만 종교, 도덕 등 가치관을 결정하는 제도도 있다. 이런 다양한 문화도 일종의 제도로 손에 잡히지 않는 비형식적 제도(informal institution)다.
형식적 제도든 비형식적 제도는 모든 제도는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고 존재하는 제도는 없다. ‘영향’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경제적 영향, 나아가 성장효과에만 주목한다. 경제학자들이 그렇고 그들 중 ‘신고전학파경제학의 제도경제학자’들이 특히 그렇다. 경제학이 사회과학을 점령하고 있으니 여타 사회과학자들도 주눅이 들어 효과를 ‘성장효과’로 스스로 축소시켜 버린다.
성장 외에도 우리 삶에 소중한 것은 많다
제도가 성장효과를 낳는다는 점은 중요하다. 자원이 낭비되고 혁신이 조롱당할 때 기획재정부라는 형식적 제도는 성장을 촉진시켜 줄 것이다. 반면 한물 간 전통과 습관 등 비형식적 제도는 성장을 심각하게 방해할 수 있다. 제도와 경제적 효과, 곧 성장은 일정부분 상관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제도가 경제적 효과와 성장 때문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종교와 전통 등 비형식적 제도는 소통능력을 향상시킨다. 소통이 원활해지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삶이 즐거워진다. 이게 꼭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문화적’ 효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적 효과가 없다고 해서 ‘무익’하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
경제적 효과, 성장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지 않으면서 또 다른 중요한 효과를 낳는 제도도 있다. 복지제도와 노동제도가 그것이다. 신고전학파경제학자들은 물론이고 그에 굴복한 여타 사회과학자들, 심지어 인문학자들도 이 두 제도를 거론할 때 대부분 성장효과와 경제적 효과에 주목한다.
하지만 복지제도와 노동제도는 원래 성장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그것들은 ‘인권’과 ‘연대’를 위해 창조된 것이다. 곧 경제적 효과보다 ‘인문학적’ 효과와 ‘사회적’ 효과를 낳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는 것이다. 이런 제도들이 성장을 촉진시킬 수도 있고, 성장을 방해할 수도 있다. 곧, 경제적 효과가 불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회적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불분명한’ 경제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회적 효과, 나아가 인문학적 효과가 존재한다면 그런 제도는 존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노동시장규제제도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분명하지 않다. 예컨대, 1990~2004년간 133개국 경제성장률과 노동시장자유화에 관한 모리스 올트먼의 실증연구는 두 변수들 사이에 통계적으로 어떤 의미있는 효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시장은 “적절한 노동시장규제로부터 혜택을 입는다!”
노동 경직 이상으로 기업 자유가 높은 대한민국
요즘 박근혜와 새누리당 김무성이 노동개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 국정원대선개입, 성완종리스트, 세월호 7시간, 메르스 무능, 부친의 친일행적 등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의를 덮기 위해 이걸 몰아붙이는 것 같다. 뒤가 구리니 그럴 수 있다. 그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의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땐 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철학과 신뢰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하다. 이제 좀 더 최근 자료인 2013년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에 관한 자료를 들여다보자. 혹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까봐 미리 밝혀두는데, 이 자료는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에서 가져 온 것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우리의 노동시장규제제도가 다른 국가에 비해 강하다는 건 사실이다. 약 60점인 세계평균에 비해 우리의 노동시장 자유지수가 48.7이며, 177개국 중 135위에 머무르니 규제가 강한 것은 맞다.
하지만 재정자유도와 교역자유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다른 경제자유도는 세계평균을 상회한다. 사유재산제도는 26위로 평균보다 훨씬 더 보장되고 있고, 투자자유도와 금융자유도도 각각 37위와 17위로 세계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더욱이 기업의 자유화는 무려 세계 9위에 속한다. 거의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잘 챙겨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자유로운’ 환경에서도 성장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보 아니면 사기꾼이다!
경제성장의 벽은 노동시장규제보다 재벌과 정치권의 부패
실제로 부패로부터 자유도는 54점으로 세계평균 40.6보다 낮다(낮을수록 부패하지 않다). 177개국 중 46위에 머무르니 OECD 회원국(34개국) 치고 엄청 부패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헤리티지 보고서는 10대 재벌 총수들의 부패로 인한 수감결정은 물론 집행이 유예된 사실을 언급하면서 한국에서 “부패는 실질적 관심사로 남아 있다”고 정리한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장하지 않는다면 노동시장규제보다 오히려 재벌과 정치권의 부패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세계 9위의 자유로운 기업 환경에서 135위의 노동시장규제는 오히려 필요하다. 그것은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회적 효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재론하지만 노동시장이 규제된다고 해서 성장이 지체된다는 학술적 결론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효과가 불분명하고 사회적 효과는 분명하다. 불분명한 경제적 효과는 부패를 척결함으로써 모색해야 한다. 재벌개혁, 탈세추적, 장차관, 국회의원의 위장전입, 투기, 병역기피, 취업청탁 뭐 이런 것부터 개혁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
몽매한 30%의 박근혜 콘크리트 지지층도 내 말 듣고 돌아 서길 바란다. 사기꾼을 몰아내는 것, 그게 우리나라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