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이유의 음반을 산 인간이다. 물론 딸이 사달라고 해서 사다준 거지만. 그 전에 딸과 함께 음악을 들었고 사줘도 된다고 생각했다.
브로마이드를 선물로 받아왔는데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보라색 밴드로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거였는데 SM을 연상케 하거나 무언가 인간을 상품화한다는 느낌 같은 게 있었다. 딸아이는 거기서 체셔 고양이의 이미지를 보았다. 나는 침묵했다. 채셔고양이같기도 하고 선물포장을 온몸에 칭칭 감은 아이 같기도 하고 밴드로 온몸을 감은 채 그레이씨의 침실에서 발견될 성인 앨리스같기도 한 아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들의 비판은 왜 아이유에 머무는가
이후에 이 음반을 놓고 주로 인터넷을 통해 논란이 이는 걸 보았다. 아마 그 분석들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 싶다. 당연히 과장된 면도 있다. 그러니까 그냥 음악을 그 고정된 코드에 맞추어 듣고 분석하지 않는다면 음악은 충분히 다른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음란마귀가 씌어서 그렇게 보일 거라는 반박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대중문화는 음란마귀에 씌어 있다. 그들의 비판은 왜 아이유에 머무는가. 그들의 비판은 왜 한국의 썩어빠진 문화 전체를 향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기자를 두고 “아가씨”라거나 “야”라고 말하는 자들이 지배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섹시하다는 말이 대낮의 인사고 밤의 거리에는 불륜과 매매춘이 넘쳐나는 나라. 왜 이런 왕궁의 음탕은 비판하지 않고, 거의 소음과도 같은 대중문화, 발가벗은 소녀들의 율동에 취해 지내던 자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아이유만을 문제삼는 것일까?
왜 유재석은, 김병만은, 무수한 걸그룹들과 아이돌은 괜찮은 걸까? 대학생들의 축제는 어느 순간 짝퉁 아이돌의 세상이 되고 이 나라의 아이들은 아이돌이 되는 게 꿈이 되었는데. 그걸 그렇게 만든 정치가들과 방송국들과 문화담당자들은 왜 그냥 놔두고.
그저 스물셋을 우습게 아는 사회
아이유의 새 음반 Chat-shire는 일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채셔고양이를 슬쩍 동원하지만 거기서 슬쩍 미끄러지며 재잘거림과 Shire라는 말이 환기하는 낯선 지방을 연결시킨다. 여기 수록된 곡들은 모두 스물셋 아이유 자신의 앨리스스런 재잘거림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건 잃어버린 자기정체성을 찾는 물음들이기도 하다. 아이와 어른, 미성년과 성년, 순수함과 성적 도취,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경계들 위에서 채셔고양이처럼 이동하게 한다. 그 비ㅡ존재는 여기 그리고 저기에 있으며 성숙한 아이(girlady)다. 그러니까 논란이 되는 제제는 그 경계에 있는 어떤 상태ㅡ아이유의 내면에서 순수함의 상징으로 존재했던ㅡ를 의미할 뿐, 어느 소설 속의 아이로 고정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아이유 사태를 일종의 ‘노이즈’로 생각한다. 진지하지도, 본질적이지도 않다. 더 나은 어떤 상태에 대한 고민도 없고, 스물셋의 재잘거림을 성숙에 이르게 할 지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스물셋을 우습게 안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어느 스물셋의 눈에는 그런 세상이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너무 쉽게 허무해질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