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소수민족은 55개가 있는데 조선족도 그중 하나이며 출신 지역은 흑룡강(헤이룽 강), 요령성(랴오닝 성), 길림성(지린 성) 이렇게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엄밀하게 따지면 조선 후기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 영토였던) 간도 지역에 살던 토착민들의 후손들, 그리고 일본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지역으로 건너갔다가 눌러앉은 독립유공자분들의 후손들도 적지 않다.
우리가 연변 사람으로 알고 있는 길림성 조선족이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고, 요령성과 흑룡강은 조선족 사회에서도 소수에 해당한다. 연변 조선족의 경우, 특히 나이가 든 분들은 중국어가 약한 편인데 이유는 자신들끼리 조선어(여기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로 이야기해도 충분한 인구와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교육도 조선어학교에서 받았으니 말이다. 함경도나 황해도 등 이북 말투와 유사한 편인데 영화 황해에서 나온 말투가 바로 연변 조선족의 언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요령성 조선족의 경우 중국어가 능통한데 반대로 조선어가 약해 사실상 한족화 되어가는 느낌이고, 흑룡강의 경우 하얼빈이라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출신들이 많아 비교적 중국어와 조선어를 비슷하게 구사한다. 흑룡강 조선족은 결혼도 해당 지역 출신을 우선 고집하는 것을 보았다.
조선족들의 경우 확실히 한국인들보다 타고난 상재가 있는지라 북경이나 상해의 초기 한인타운의 개발을 주도했고 이후에는 새로운 한국인 거주지 등을 잘 개발하며 상당한 부를 이룬 사람들이 있는 편이다. 보편적인 소득 수준도 일반적인 한족들보다 높은 편이고 당연히 생활 수준도 좋다.
일례로 북경의 최대 한인타운인 왕징도 그들이 처음 만들었고 현재 가장 많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상해의 경우 롱바이와 홍첸루 부근의 대표적 한인아파트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롱바이라는 지역은 아예 조선족 거주지 지역으로 지금까지 성황하고 있다.
우리는 쉬쉬하는 역사이지만 과거 항일전쟁 시대에 막강한 전투력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우던 팔로군에 조선족들이 유독 많았다. 항일전쟁에 참여하는 조선인들이 대부분 있던 지역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팔로군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으로 대부분 참전했었다. 즉 현재 조선족들의 경우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거나 최소한 엄청난 고생을 한 기억을 가지고 있으니 초기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하여 통역으로 채용되었을 때 당연히 우호적인 감정을 가질 수가 없었다.
반면 한국인들은 당시만 해도 획일화된 역사관과 그 특유의 꼰대 마인드로 ‘너는 조선인의 후예 즉 한국인이니 중국이 아닌 우리 한국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그게 애국하는 것이다’라는 식의 국정교과서에나 들어갈 법한 설법을 하곤 했다. 이런 상황 나도 참 많이 봤다. 한심한 일이었다. 경제적으로 좀 우위에 있다고 무시하는 모습도 많았다.
하지만 현대사로 보나 지금의 국가관으로 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강요하니 조선족들 처지에서 볼 때는 한국인들이 웃기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여타의 사고(?)도 발생하고 업무적인 트러블도 발생하니 한국 기업에서는 ‘조선족들은 중국인들보다 더 일을 안 하고 잘 속인다’라는 선입견이 생기고 반대로 조선족 사회에서는 ‘한국인들은 착취만 하고 여자만 밝히고 사기만 치는 믿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의 몰이해에서 발생한 어처구니없는 오해와 사고들이다.
물론 지금은 한국인과 조선족들의 사이가 다시 좋아졌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경제와 중국 경제의 의존도가 매우 높아져서 서로 일을 긴밀하게 해야 하는 상황(한 마디로 함께 돈 벌어야 하는)인 것이 주요한 이유이고 두 번째로는 한류 때문이다.
이미 한국사회에 조선족들의 경제적 비중은 재미, 재일 교포를 넘어선 수준이고 중국 현지에서 일해야 하는 한국기업들도 그들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한류라는 예기치 않던 대중문화가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그들도 중국인들에게는 (한국인과 비슷한 수준의) 우호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니 굳이 한국인들을 미워할 이유가 많이 희석되었다.
뭐,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할아버지, 아버지들이 이제는 늙어서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그 이야기를 해 줄 사람이 몇 남지 않은 탓도 있다. 우리나라만 아직도 빨갱이들이 당장 쳐들어올 것 같은 난리인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정작 빨갱이 군대인 중국 공산당 홍군의 원류와 그 후예들과는 그렇게 잘 지내면서 말이다.
조선족 자치주는 이제 사실상 백두산 관광으로 먹고사는 심양, 연길 쪽을 제외하고 이제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토지의 경우 사회주의 체제상 국가가 개인에게 100년간 세를 주어 사실상 개인이 소유한 셈인데 이 경우 팔지 못하고 한족들에게 소작을 주는데 최근에는 사실상 편법을 동원해서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조선어 학교, 조선어 신문사, 조선어 방송국은 이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젊은이들은 다 대도시 혹은 한국으로 떠나 버렸고 그들은 성공해서 고향으로 금의환향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으니 그 지역도 노인들 혹은 중국인들만 남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전 세계 어디든 중국인 화교들이 자리를 잡았고 경제적인 부를 잡는다. 내가 보기엔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인다.
시스템상 우리는 (사)교육비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그 투자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지 못하니 실업률이 높고 그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 그중에서도 말이 통하는 조선족들이 들어와서 차근차근 부를 쌓아가고 있다. 대림 부근에 은행들이 조선족 고객 모시기에 아주 난리가 났더라. 또한, 그들은 함께 재개발 조합을 만들고 부동산을 사들이는 등 연합화 된 그들의 경제력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반대로 중국의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완벽하게 개인플레이로 ‘나 하나만 잘 될 방법’에만 골몰한다. 물론 나 혼자만 잘 되려고 하는 결심과 행동은 현실에서는 대게 실패하더라.
심지어 암흑가 쪽에서도 그들은 확실하게 챙기는 것 같다. 영화 황해는 아주 리얼한 현실인 듯하다.
아직 한국사회에서는 막연하게 조선족 혹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반감만을 표현하던데 내 생각은 좀 더 제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출입국 및 세금 그리고 범죄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만 제대로 이뤄져도 함께 윈윈 할 수 있을 것이다. 점점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러한 제도적인 준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민자와 토종인들의 갈등으로 사회는 점점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반대로 중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좀 함께 먹고살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이 대목도 할 이야기가 정말 많지만, 오늘의 주제가 아니니 일단 패스…
마지막으로 조선족을 조선족이라 호칭하는 것은 전혀 비하가 아니다. ‘넌 전라도 출신이야 충청도 출신이야’만큼 자연스러운 이야기다. 조선족이라는 말은 비하의 의미가 전혀 없는데 어느 순간 무척 조심스러운 언어가 되어 가더라. 그건 우리 사회가 조선족 혹은 중국인들을 향해 일반적으로 조금 낮춰 보았던 습관이 있던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재중교포’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흑인이 니그로와는 다른 의미인데 괜히 찔려서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용어가 많으면 헷갈린다.
원문: 김두일님의 brun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