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미음악을 좀 오랫동안 듣다 보니, 틴 팝 스타(우리식으로는 ‘아이돌 스타’)가 일반적인 ‘뮤지션’을 넘어 ‘아티스트’로 가려는 욕심이 과도한 나머지 제대로 헛발질하는 경우를 제법 많이 봤다. 그 대단한 비틀즈도 틴 팝 스타에서 아티스트로 가기 위해 몇 장의 앨범을 거쳐야 했는데 말이다.
2.
‘소아성애자’니 뭐니 하는 과도한 표현까진 쓰고 싶지 않지만, 여러 가지 이야기들 및 사진/뮤비/가사를 보니 다른 건 몰라도 아이유(혹은 아이유의 뒤에 있는 기획사/기획자/프로듀서) 역시 그 많은 영미음악계 틴 팝 스타들이 그랬듯 이제 ‘아티스트’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었던 것이 확실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녀는 ‘있어 보이는’ 이미지들을 여기저기서 가져와 콜라주 마냥 붙여댔다.
그런데 아이유는 자기가 가져온 갖가지 상징 및 이미지에 대해서 피상적인, 즉 겉핥기식 이해밖에 하지 못한 듯하다. 마치 대학원 갓 들어온 석사과정생이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는 어려운 이론가들의 책들을 몇 개 읽고 나서, 그것을 자기 나름대로 (혹은 멋대로) 이해한 후 글을 쓰거나 발표를 할 때마다 마구잡이로 그것들을 인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데리다의 이론으로 케이팝을 분석해보겠습니다’ 하는 식이다.
3.
김창완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과 작업도 하고, 기타도 다룰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로 이미지 구축하고, 장기하 같은 인디계 스타와도 교제하고. 이러는 과정에서 그녀가 얼마만큼 ‘내실’을 다졌는지, 즉 얼마나 음악적 ‘내공’을 쌓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녀의 인품이 아닌 음악이기에, 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음악 및 그와 관련된 이미지들을 듣고 보면서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의 음악을 들어보고, 또 음악 내외적으로 관련된 논란들을 찬찬히 살펴보니 그녀는 빨리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욕심은 넘치지만 아직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을 쌓지는 못한 것 같다. 혹은 진짜 아티스트가 되기보다는, 그저 아티스트처럼 ‘보여지길’ 바란 것 같다는 느낌도 조금 든다.
4.
대학교에서 대중음악 관련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의 페이퍼를 받아 읽다 보니, 많은 20대 초중반 여성들이 아이유를 일종의 ‘워너비’로 생각하고 있음을 바로 알았다. 당사자인 아이유가 이것을 모를 리 없을 거다. 그런 선망을 받는 것이 자신의 ‘아이돌이면서도 아이돌스럽지 않은’ 모습 때문임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주체성 있는 젊은 여성 뮤지션. 게다가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녀가 ‘아이돌’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녀의 음악과 이미지가 생산-유통-소비되는 방식이 아이돌의 그것과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돌은 기획사에 의해 발탁되고 ‘훈련’되며 그들이 덮어씌운 이미지를 등에 업고 세상으로 나온다. 그 과정에서 누구는 화려한 춤으로, 누구는 수려한 외모로, 누구는 뛰어난 노래 솜씨로, 누구는 매력적인 몸매로, 누구는 재치있는 입담을 자신의 이미지로 삼는다.
아이유는 어떠한가? 그녀 역시 기획사에 의해 발탁되고 키워졌으며, 그들이 씌워준 이미지를 입고 있다. 그녀의 귀여운 외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능력 및 ‘다양한 장르에 조숙한 이해도를 갖춘’ 싱어-송라이터 이미지 역시 기획사가 입혀준 것이다. 물론 아이유가 그 이미지를 지금까지는 잘 소화해낸 것도 사실이다. 마케팅 용어를 쓰면 그녀는 ‘브랜딩branding(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기가 막히게 해낸 셈이다. 이는 그녀를 20대 초중반 여성들의 워너비로 자리잡게 한 가장 큰 힘이다.
이번 앨범 역시 그렇다. 작사도 전부 아이유가 했다. 프로듀싱 과정에도 아이유가 참여했다지만, 사실 어찌 보면 그 부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앨범과 같이 나온 그녀의 뮤직비디오, 스틸사진, 인터뷰 내용까지 이 모든 것이 제법 분명하게 하나의 테마를 향해있었다. 여기에는 기획사 및 소위 다양한 분야의 ‘이미지 디렉터’들의 손길이 강하게 느껴진다. 즉 하나의 콘셉트를 향해 기민하게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것.
5.
그래서 이번 논란에 대해 아이유를 비난하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 그녀가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건, 혹은 기획사에서 그녀를 아티스트로 자리 잡게 하려고 했건, 어느 쪽 입김이 더 컸는지 정확히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공개된 결과물을 통해 ‘미루어 짐작건대’ 아티스트로 빨리 가고자 하는 이 무리한 발걸음 역시 기획사 및 ‘디렉터’의 치밀한 작업 결과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유가 힘없이 당했고, 모두가 다 기획사 탓이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가 롤리타 영화 포스터처럼 사진 찍을래!’가 아니라 ‘아이유야, 이 선글라스 쓰고 이런 콘셉트로 포즈 취해봐~’가 실제 제작 과정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고, 그런 와중에 아이유를 비난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것이다. 표절곡으로 이효리를 비난했던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사실 아이유는 아티스트가 되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아티스트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발걸음은 ‘내 스스로의 창조력’이 나의 작품에 반영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음악뿐 아니라 외적인 이미지 모두 스스로 구축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나의 이미지를 온전히 지배하고,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아티스트다. 뛰어난 디자이너의 옷을 훌륭하게 잘 소화해내는 모델을 보고 ‘옷 잘 입는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원문: 이규탁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