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설픈 풍요는 최악의 불행이다.
남미가 덜 풍요롭거나 더 멀었다면, 유럽인들이 그렇게 열심히 괴롭히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북미가 더 풍요롭거나 덜 멀었다면, 유럽인들이 그렇게 가만히 놔두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미가 단일 작물 재배 및 수출로 충분히 재미를 보기 어려웠다면, 어쩔 수 없이 산업을 다변화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북미가 단일 작물 재배 및 수출로 충분히 재미를 볼 수 있었다면, 눈부신 공업의 발전은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괜히 젊을 때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불행 중 하나로 성공을 꼽는 게 아니다.
2. 특히 풍요로움의 근원이 하나면, 일단 긴장 타고 봐야 한다.
볼리비아는 은만 팔다 망했고, 쿠바는 사탕수수만 팔다 망했다. 칠레도 초석만 믿다 망했다.
일년에 몇십 조씩 버는 삼성이 괜히 쪼는 게 아니다. ‘쟤넨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라고 하는 사람들은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백년 전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2006년 모토롤라의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22%였다. 5년 뒤 모토롤라 휴대폰 사업부는 구글에 인수됐다. 90년대 초 코닥은 미국에서 18번째로 큰 기업이었다.
지금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얼마나 갈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게 경제적 풍요로움이든, 정신적 풍요로움이든 간에, 생각보다 오래 안 간다. 그리고 우리 삶은 생각보다 길다. 물론 인생은 어떻게든 흘러가게 마련이기 때문에,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 고작 한 번밖에 못 사는 인생을 그저 운명에 맡겨도 상관없다면 괜히 도박이 불법인 게 아니다.
3. 물론 압도적인 풍요로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덕분에 그래도 잘 먹고 잘 산다. 빈부 격차가 심하긴 하지만, 그건 뭐 다른 남미 국가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젊을 때 성공하려면 주커버그마냥 성공해 버려야 한다. 밀리언 달러는 날릴 수 있지만, 빌리언 달러는 여간해선 안 날아간다.
내 재능이, 내 행복이, 내 삶이 석유 급이라면? 즐기는 데 집중하면 된다. 평생 가도 다 못 즐길 테니.
4. 아무튼, 다양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괜히 주식 투자할 때 포트폴리오를 짜는 게 아니다. 지금 잘 하는 걸로 다음에 잘할 걸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한다.
“사탕은 그때까지 저개발의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개발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지금 잘 하는 건 다음에 잘할 것을 찾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중요한 건 ‘이걸’ 잘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잘 하는 것’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 아무리 잘 대응하더라도 다음 물결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반짝 하고 만다. 포트폴리오가 중요한 이유고, 다양성이 소중한 이유며, 끊임없이 외연을 넓히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5.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치료법으로 혼동한다”
브라질 사람들은 소고기를 팔수록 가난해지지만, 그럴수록 열심히 소를 키운다. 그걸 보고 멕시코 사람들도 열심히 소를 키운다. 멕시코 소들이 먹는 여물에는 농민의 식사보다 많은 단백질이 들어 있다.
혼동의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눈 앞에 있는 작은 것을 향한다. 큰 것에는 여간해선 쫄지 않는다. 보지 않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위협만 본다. 그 문제만 푼다.
작은 문제를 풀다 보면, 언젠간 뭔지 모를 현재의 불합리하거나 불쾌한 상황이 타개되리라고 본다. ‘이렇게 하다 보면 너도 언젠가는 잘 될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은 개 거지 같은 말이다. 이 말의 속뜻은 이렇다. ‘너가 계속 이렇게 해야 내가 계속 잘 될 수 있어’. 알량한 스펙 쌓기는 절대로 경쟁력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6. 적절한 부족은 축복이다.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이다.
삼국동맹의 침략 전 파라과이가 번영할 수 있었던 건 파라과이가 “대륙의 오지에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식민지 시절 미국이 플랜테이션 농업보다 공업화에 집중한 것도 “메마른 토양과 하층토로 인한 핸디캡” 때문이다. 축구에서 손을 쓸 수 있었다면, 우리는 메시의 현란한 발재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피터 터친이 쓴 <제국의 탄생>에 따르면, 모든 제국은 변방에서 태어났다. 그러고 보니 이 책도 독도에서 읽은 책이다. 2012년 4월에.
적절한 제약은 예술을 낳는다. 풍요로워서 약탈당했고 변방이어서 발전했다. 의외로 풍요는 풍요가 아니고, 빈곤은 빈곤이 아니다. 압도적 풍요와 절대적 빈곤이 아닌 이상, 어중간한 풍요와 어중간한 빈곤은 사실 위기고 기회다.
7. 물론 부족한 게 도를 넘으면 답이 없다. 절대적 부족 상태만은 피해야 한다.
한때 번영했던 아이티도, 파라과이도, 도무지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망하더라도 빚은 지지 말자. 더 이상 개천에선 용이 나지 않는 이유다.
8. 절대적 빈곤의 상태에선, 극약 처방 외엔 답이 없다.
당연하지만, 모든 극약 처방은 독하다.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작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예외 없이. 극약 처방은 보통 ‘모두 죽느니 한 놈만 죽이자’ 식이 된다.
박정희가 그랬고, 리콴유가 그랬다. 당연하지만, 가장 좋은 건 절대 이 지경까지 오지 않는 거다. 극약 처방 외엔 답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이렇게 되면 그냥 답이 없다.
9. 결론
끊임없는 비관론에 기반한 무한한 도전 의식만이 지속적인 풍요를 보장할 수 있다. (이 말 되게 멋있…)
출처: 바보들의 아름다운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