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8년차 게임업계인, 90년대 게임개발의 추억을 말하다 에서 이어집니다.
꿀위키가 고발하는 게임업계, 그 진실은?
리승환 : 제가 뭐 엄청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건 아니지만, 게임 회사 사람들이 힘들다는 게 좀 엄살이 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신성일 : 우선 개고생 맞기는 해요. 예전에는 돈이 없고 배고파서 혹사였죠. 돈이 생긴 다음부터 배는 고프지 않지만, 밤새서 일하는 건 마찬가지이거든요. 여기다가 그 때 전혀 없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조직 규모가 100명 이상으로 늘어나고, 작아도 40명… 이러다보니 엄청난 사내정치가 난무하게 됐어요. 라인이 막 형성되고…
차경묵 : 그 때 대다수 회사들 사장님들 마인드가 기업 경영하고는 좀 거리가 멀었어요. 대표, 이사, 다 게임 만들어 온 사람들이라 조직이 커지는 데에 잘 대처하지 못했죠. 옛날 미리내 엔터테인먼트가 제일 컸을 때가 60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이제는 한 프로젝트가 그 규모를 훌쩍 넘어버리니 관리가 쉬울 리가 없었죠.
리승환 : 꿀위키의 징징거림도 거기서 기인했다?
신성일 : 네. 게임 개발한 사람들은 게임업계 꿀위키 보면서 “어찌 예전이랑 똑같냐?”, “와, 이거 진짜 그렇네?”라고 해요. 최근 사례 위주지만, 그런 풍토가 다 게임회사가 막 커지면서 생겨난 것들이에요. 회사들이 급속하게 팽창할 때 내실을 다지기 힘들고, 조직문화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걸 신경을 못쓰게 되니, 내부적으로 고름 터질 일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죠.
외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게임업계 사람들이 게임 만드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게 아니에요. 사내 문화가 스트레스 주는 거죠. 게임 개발 특성상 회사에 들어오면, 전혀 살아오면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조우하게 돼요. 공대에서 공부하던 사람이 IT 회사 다니다가 게임 회사 와봐요. 그림, 음악, 소설… 이런 거 하는 사람들 보면 미치죠. 이런 상황을 잘 다스리지 못했죠.
차경묵 : 솔직히 게임 개발하는 사람이 고집도 되게 세요. 대부분 사람은 디렉터를 그저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규모가 커지면 한 명이 아니라 팀에 가까워져요. 더군다나 각각의 팀도 아트 디렉터, DJ 디렉터, 테크니컬 디렉터 등등 개성이 강해요. 관리에 별로 익숙하지도 않고, 곤조도 있고… 그걸 잘 뭉치게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많이 발전한 거죠. 적어도 시스템은 잡혔으니.
리승환 : 꿀위키에 등장하는 사례들의 책임이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신성일 : 이게 사실 양쪽 모두 문제가 있기는 해요. 회사도 팽창하다 보니 직원들 신경 안썼지만, 또 개발하는 종사자 분들도 사실 애티튜드 문제도 있고… 회사에 더 책임이 있겠지만, 양 쪽 모두 과실이 있다고 봐요.
리승환 : 뭔가 게임회사 다니면서 참 행복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성일 : 사업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그거에요. 개발자가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물론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고, 시장도 커지고, 여기서 온라인 게임을 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죠. 하지만 그보다 큰 목표는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전까지 게임회사 안에서 사람들이 굉장히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기본적으로 게임업계가 사람을 키우는 쪽에 좀 약해요. 그러다보니 게임업체는 이미 다 숙련된 사람만 쓰려고 하죠. 다른 산업은 사람 양성을 하잖아요. 생활태도에서부터 모든 걸 회사에 맞게 바꿔나가요. 물론 게임회사도 나름 노력하지만, 규모에 비하면 그런 노력이 부족해요. 그런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직원들의 태도도 남들 눈에 좋게 보이기 힘들죠… 물론 개성은 존중해야죠. 하지만 이러면 직장 내에서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요.
차경묵 : 게임업계가 지금도 그렇지만 직급 개념이 많이 약해요. 심지어 지금도 타이틀에 가까운 그런 수준인 곳이 많아요. 조직이 작으면 커뮤니케이션 좋고 빠른데, 덩치가 커지니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죠. 물론 어디나 직급 높다고 일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대기업이나 정부조직을 보면 보통은 직급 타이틀로 그 사람의 능력에 대한 최저 퀄리티를 예측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게 게임 쪽은 좀 없어요. 그냥 적당히 타이틀만 달아주고, 업무 영역에서는 별 관련 없는 경우가 많죠. 업계가 체계화된 숙련과 학습을 잘 시키지 못하니, 자꾸 기존 인력만 돌리는 거죠. 저만 하더라도 사부, 사수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시킨 거 열심히 하다보니 익히고 어깨너머로 배우고 그랬어요. 프로젝트가 커지면서 조금 달라지고는 있는데, 개발자 자체가 다른 직군에 비해 더 많은 학습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아직은 부족하죠.
리승환 : 저도 이회사 저회사 다녀봤지만, 다른 데도 똑같은 것 같은데요…
차경묵 : ……
리승환 : 그래서 게임업계 내 이직이 잦은 것 같기도 합니다.
신성일 : 사람 키우는데 약하다보니 외부에서 다 된 사람 불러다 쓰고… 그러면 또 이직하고 계속 순환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웬만큼 능력 되는 게임 개발자들은 먹고 살기는 편해요. 수요가 꽤 있으니.
차경묵 : 게다가 그런 상황이다 보니, 개발자들도 요령이 생기죠. 보통 회사는 좋은 인력은 못나가게 신경 써주고, 그래도 옮기면 향후 돌아올 때도 좀 꺼림칙해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데 게임업계는 다니던 회사에서 나갔다 들어오는 게 연봉 올리기도 더 좋아요.
리승환 : 가열하게 자기 업계를 디스하는군요.
신성일 : 그리고 유해한 의사결정이 아니라, ‘이상한’ 의사결정이 좀 많아요. 인사도 그렇고, 프로젝트도 그렇고. 대외도 그렇고… 쭉쭉 커가다보니 그 틈을 문화가 아닌 사내정치가 비집고 들어왔죠. 뭐, 이것도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차경묵 :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스타트업의 작은 조직에서 시작해 새로운 경영방식이 도입된 곳이 많잖아요? 애자일이나, 린이나, 이런… 그런데 한국 게임업계가 나름 프로세스 이름을 붙일 정도로 발전된 건 없어요. 사람 키우는데 약하고 이직이 잦으니, 경험이 쌓이는 일이 별로 없죠. 조직 문화나 프로세스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특정 개인의 경험이나 운영에 가까운 경우가 많고 그래서 숙련된 사람이 새로운 조직에 가면 적응이 안되는 경우도 있고.
리승환 : 새로운 조직 모델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군요.
차경묵 : 크로스파이어를 보세요. 1년 사이에 몇 백명 규모가 되고, 매출액은 수천억대로 커요. 그러면 정신 차리기도 힘들 정도로 조직이 커지죠. 게임업계는 조직 모델이 다른 산업처럼 안정화가 안 됐어요. 그러다보니 저처럼 많은 업계인들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하는 거고…
리승환 : 외국 프로세스를 도입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까?
신성일 : 한 때 미국에서 하는 거 따라하는 게 유행이었죠. 이렇게 해야 된다고, 잘 모르면서 따라하고… 그런데 문화가 다르잖아요…
차경묵 : 일본, 북미, 유럽은 경험도 많고 역사가 있어서 관리가 되죠. 그런데 그냥 따라하면 답이 안 나와요. 무엇보다 온라인 게임 특성이 다르잖아요. 프로덕션 과정은 비슷하다고 해도, 런칭 후의 서비스 운영은 전혀 달라요. 사실 온라인 게임 쪽으로는 북미와 일본조차도 삽질 많이 했어요. 지속적으로 MMORPG 시리즈를 다수 개발하여 출시하고 수년 간 서비스에 성공한 회사는 전세계에 엔씨 밖에 없어요. 소니도 에버퀘스트 2이후 진행 못하고…
모바일 게임으로의 급변, 또 다시 혼돈에 빠진 게임업계
리승환 : 그토록 개고생했는데 경력은 다 인정 받았나요?
신성일 : 그렇지는 않죠. 아무래도 작은 회사는 덜 인정받을 수밖에 없기도 하고… 국민연금 등 서류로 정식처리되지 않은 건 인정되지 않는 문제도 있었어요. 저도 국민연금, 4대보험 가입되지 않는 곳에서 일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건 인정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그런 회사들이 부지기수였어요.
차경묵 : 저도 99년부터 일을 죽 해왔는데, 어느 날 경력 증명을 하려고 보험납부내역서를 떼보니 2년 반이 빠지는 거에요. 직급이나 돈이나 다 손해죠. 2000년대 중반에 소프트웨어 기술자 등록제가 생길 때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게 그런 거에요. 저같은 경우는 게임 개발한다고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고, 게임업계가 터지기 전 영소한 회사를 다니다보니 증명도 안되고… 그런 사람들은 앉아서 얻어맞은 거죠.
리승환 : 앞서 리스크 이야기를 했는데, 게임업계에서 바라보는 리스크는 어떤가요? 점점 높아지고 있나요?
차경묵 : 엄청 높죠. 갈수록 리스크를 부담스러워하니 신규 MMORPG 프로젝트가 잘 안 나오죠. 경기 때문에 더 위축되기도 하고.
신성일 : 그래서 모바일로 그 자금이 유입되기도 하고… 뭐, 그래요.
리승환 : 참 정신없는 업계로군요.
차경묵 : 게임업계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어요. 이제 겨우 온라인 자리잡았나 했더니, 벌써 모바일이라니.
신성일 : 그래서 되려 기회도 많죠. 고정산업이 오래가는 건, 새로 뭐 하기도 힘드니까요.
리승환 : 퍼블리셔가 개발사를 등쳐먹는 경우는 없는지요?
신성일 : 있기도 하겠지만 그건 케바케(case by case)에요. 이건 게임업계 구조상 어쩔 수 없어요. 심지어 퍼블리셔가 내부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을 때도 무조건 게임을 내놓는 게 아니에요. 잘나오면 발매한다는 자세에요. 물론 개발사는 게임이 망하면 오링일 수 있기에 좀 더 도박성이 있지만, 반대로 잘되면 그만한 대박도 없죠. 개발사와 퍼블리셔는 동반자이지, 누가 우위는 아니에요.
차경묵 : 맞아요. 퍼블리셔기 때문에 잘 받고 그런 건 없어요. 능력 있는 개발사면 오히려 반대로 진행되기도 하고요. 대신 개발 쪽이 좀 더 피곤하기는 할 거에요. 게임 개발비가 많이 들기는 하지만, 사실 마케팅비가 더 들기 때문에, 안되는 게임은 몇 백억이 들어도 드롭이에요. 그래서 중간에 게임 뒤집는 일도 일상다반사에요.
리승환 : 요즘은 되려 퍼블리셔가 맛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네오위즈게임즈도 그렇고…
차경묵 : 그건 플랫폼 격변 시기니까 어쩔 수 없죠. 게임업계가 워낙 빠르게 바뀌잖아요. 컨텐츠 방향이나 플랫폼이나 워낙 빠르게 바뀌는데, 퍼블리셔들도 전략을 잘 바꾸지 않으면 한 방에 훅 가는 거죠. 그래서 퍼블리셔는 리스크 관리와 매출 증대를 위해 투자, 인수를 하는 거고요. 처음 개발을 맡길 때 몇십억 개발사에 투자하고 런칭한 후, 잘 되면 퍼블리셔가 지분을 매입하는 식이죠.
신성일 : 넥슨이 특히 그걸 잘해요. 넥슨이 순혈주의라 불릴 정도로, 거의 100% 인수하는 식으로 가거든요. 던파, 서든어택 다 인수했잖아요. 퍼블리셔도 좋은 개발 파트너 계속 찾을 수밖에 없고, 걔네 놓치면 실적 확 떨어져요. 주가 방어를 위해서라도 인수하고 그러죠.
차경묵 : 그렇게 팍팍 질러서 게임업계 커진 것도 있어요. 북미에서는 스튜디오 – 퍼블리싱 구조가 일찍부터 자리잡혀 있었어요. 거대 그룹에서 자금 투입하면서 게임 만들고 잘되면 아예 퍼블리셔 그룹에 계열사, 자회사로 편입하는 식이죠. 넥슨이 그걸 제대로 도입했는데, 그 전에는 커도 수십 억 수준이었거든요. 그런데 네오플을 일본에서 돈 빌려서까지 4000억에 인수하며 아주 난리가 났죠. 그리고 그걸 금방 다 벌어버리고, 넥슨이 대단하기는 해요.
리승환 : 앞서 말한 게임업계 조직 문화는 모바일도 마찬가지인가요?
차경묵 : 모바일은 그렇지 않아요. 신생업종이다 보니 각하처럼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런 게 없거든요. 드래곤플라이트 만든 회사도, 그 이전 만든 게임들이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어요. 그래서 투자도, 퍼블리싱도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게 카카오 게임 들어가면서 대박이 났고, 요즘 거기 대표 바빠서 만나자고 하기에도 미안해요. 모바일은 기존 프로세스가 많이 무너졌죠. 이전처럼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천재 디렉터가 나오던 패키지와도, 대형 팀이 꾸려지는 온라인 게임과도 많이 달라요.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수준이죠.
리승환 :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이야 두말할 것도 없겠지만, 또 다시 온라인 게임처럼 블록버스터화, 대기업 독점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차경묵 : 아직은 초기라서 잘 모르겠어요. 모바일 시장이 성장하면서, 개발자는 개발팀들이 시장에 나올 채널이 많이 나눠지면 이전처럼 큰회사들 위주로 다 재편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정통의 거장들보다 새로운 거 내놓을 수도 있겠죠.
리승환 : 반대로 또 모바일 게임은 너무 독창성이 없고 카피캣만 넘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신성일 : 뭐, 전혀 틀린 말은 아니죠. 카카오톡에 들어가는 캐주얼 게임 만드는 분들과, 게임업계 정통 거장을 비교하기는 힘들죠. 하지만, 물론 독창성은 인정해야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게임은 많지 않아요. 저는 카톡 게임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데, 그런 게임 알리고 팬 만든 건 그 게임들이잖아요? 저도 예전부터 콘솔 게임, PC 패키지 게임 많이 했으니, 요즘 게임이 굉장히 인스턴트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이제 이 온도차를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그렇게 풀이 커지면서 또 독창성도 생기는 거고.
저는 지금의 상황에서 애니팡, 드래곤 플라이트도 하나의 미덕으로 볼 수 있다고 봐요. 이런 게임들을 통해 앞으로 계속 저변이 넓어지고, 많은 사람이 게임을 소비재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겠죠. PC방으로 이미 게임이 어느 정도 대중화됐지만, 모바일로 게임이 대중화되면 정말 전국민이 킬링타임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열리겠죠. 예전처럼 게임이 너무 하고 싶어서 돼지저금통 뜯어서 용산 가는 시대를 넘어, 자연스러운 짧은 게임 스타일을 받아들이게 되겠죠. 또 그 중에도 코어 게이머들은 지금과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테고.
게임과 사회의 새로운 만남에 필요한 것들
리승환 : 이제 위험한 떡밥, 게임과 사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NC소프트의 야구단 창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성일 : 저는 NC소프트가 사회공헌은 아닐지언정 게임 회사 이름 달고 있는 야구팀의 등장은 그간 음지에 있던 게임업계가 양지로 나오는 길이라 생각은 해요. 일본의 모바게를 운영하는 DeNA도 야구팀을 굴리잖아요. 그렇게 양지로 나오는 건 적어도 야구팀만큼은 게임을 음성적으로 바라보다가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거에요. 그런 노력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차경묵 : 올해 한국 e스포츠협회장으로 전병헌 의원이 들어왔잖아요? 반대로 게임산업협회에서는 남경필 의원을 협회장으로 추진할 예정이고요. e스포츠를 소비하는 영역과, 게임을 만들고 서비스하는 영역에 게임과 관계 없던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기대반 걱정반이에요.
리승환 : 게임업계 유명 경영인이 양지로 나왔다는 게 의미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차경묵 : 그런데 지금 초기 게임개발한 분들 중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많지는 않지만 은근 있어요. 좀 넓게 보면 김정주, 김택진 대표까지도 끼울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분들의 사회 네트워크가 사실 주류사회 네트워크는 아닌 것 같고… 이렇게 산업이 커졌는데 좀 그런 움직임이 약하죠. 다른 업계는 간판 달려고 서로 정치싸움 하는데, 이 쪽은 안하려고 하고 자기 오면 바로 넘기고…
신성일 : 유인촌은 둘째치고 그 전 이창동 장관도 영화감독 출신이잖아요. 게임 비즈니스는 영화산업보다 훨씬 커요. 그런데도 드라마, 영화계에서는 장관, 국회의원 나오고 주류가 되어 있는데, 우리 게임업계는 비주류죠. 본인들이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차경묵 : 사실 귀찮겠죠. 뭐, 그게 기본적으로 개발자 마인드같긴 하지만요. 삼성처럼 삼성 장학회가 있어서, 거기 출신들이 판검사가 돼서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시스템은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이 쪽 출신 장관이나 의원 나왔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전병헌 의원도 업계 출신은 아니지만 코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신성일 : 작은데 돈은 되니까 사회에서 건들 수밖에 없고, 여가부에게 얻어맞는 거죠. 사이즈 대비 돈이 되고, 그 갭이 너무 크달까…
리승환 : 참 억울하기는 하겠습니다.
신성일 : 뭐, 산업이 얼마 안됐으니 당연한 거죠. 게임 산업은 아직 어린이에요. 게다가 한 방 산업이기도 하고요. 돈은 많고 주머니는 터지려고 하니까, 어른들이 돈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저 시간 흐르면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래된 산업에 익숙한 어르신이 “맞고 줄래, 그냥 줄래?”라고 윽박지르는 격이죠.
차경묵 : 뭐, 애초에 밑바닥에서 시작했으니 “엄마가 주지 말랬는데…” 이것도 없고.
신성일 : 엄마도 없는 사생아죠. ㅋㅋㅋ
차경묵 : 결국 “돈 있으니까 그냥 줄게. 더러우니까 해외에서 돈 벌어야겠다.” 이런 셈이 안 되리라는 법도 없죠.
리승환 : 결국 답이 안나오는군요.
신성일 : 약간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안타깝기도 하지만 장기적 노력도 필요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야 할 일이라 생각해요. 지금 게임 즐기는 유저들이 노인이 되면 달라질 거에요. 지금은 높은 분들 시간 나면 골프, 등산, 바둑… 이런 거 하잖아요? 그거 못하면 TV에서 골프, 등산, 바둑을 봐요.
그런데 우리가 늙으면 뭐하겠어요? 가장 저렴한 게임하지 않을까요? 그 때가 되면 많이 다를 거 같아요. 우리는 이제서야 게임이 대중화되던 시대에 살고 있어요. 오락실 다니던 세대, PC방 다니던 세대, 모바일 게임한 세대… 즉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됐을 때 어떨까… 를 생각하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그 흐름과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으니까. 이명박 식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를 공유하게 되는 거죠.
차경묵 : 영화나 TV나 다 그런 거 거쳐 왔어요. 책도 처음에 나올 때도 그랬다고 하고, TV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이거 보면 안된다고 했어요. 원래 새로운 매체는 나오고 커질 때마다 이것 때문에 세상이 망한다는 이야기가 돌았죠.
리승환 : 그렇다고는 해도 게임이 생산적이지 않다는 시선이 쉽게 걷힐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신성일 : 생산적이지 않은 게 뭐 어때요? 그럴 거면 일하고 공부를 왜 합니까? 인간이 왜 태어났을까요? 놀기 위해 태어난 거잖아요. 물론 저도 일을 하고 돈도 벌지만, 놀려고 버는 거에요. 이거는 다 마찬가지잖아요? 물론 윗세대들 다 힘들게 자랐고, 고생하며 경제발전 시켰으니 노는 게 죄악인 것처럼 생각하는 시각이 있을 수는 있지만요.
리승환 : 그렇다면 중독 이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성일 : 중독될만한 거 졸라 많아요. 다들 자제력 가지고 사는 거죠. 솔직히 게임이 재미있어서 빠져드는 경우가 없지는 않죠. 그런데 우리 어른들 보세요. 남자 중 알코올 중독, 여자 중 쇼핑중독, 없나요? 그렇다고 술 욕하고 쇼핑 욕하지 않잖아요. 저는 게임이 그런 측면만 대중에게 부각되는 게 참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중독될 사람이면 솔직히 뭘 해도 위험해요. 그렇다고 놀자고 태어났는데, 이 나라를 완전 감정 없는 이퀄리브리움 영화처럼 만들 수는 없잖아요. 다들 그렇게 살면 그게 무슨 유토피아입니까? 디스토피아지.
차경묵 : 저도 비슷하게 봐요. 단점이 너무 부각되는데 장점이 있거든요. 그냥 ‘재미있다’라고 할 게 아니라, 게임이 사회 긴장도를 낮추는 역할도 수행한다는 쪽으로 봤으면 해요. 사실 게임만 아니라 할 게 많아요. 저도 여전히 게이머로, 개발자로 게임을 많이 즐기지만, 지금 저는 게임보다 재밌는 거 많다고 생각해요. 거의 매일같이 크로스핏을 하는데, 요즘 흔한 표현으로 쓰면 그것도 중독이거든요. 6개월 90만원 질렀는데, 게임에 그렇게 돈 안 써요. 이게 사업이 주는 스트레스, 일이 주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긴장도 낮추는 거에요. 게임도 마찬가지고요. 다들 텐션을 낮추기 위한 다 같은 수단이죠.
리승환 : 그러다 긴장도를 높이기 위해 PC방의 전원을 내리는 일도 나오고(…)
차경묵 : 뭐, 새로운 매체가 배척당하는 건 당연했던 것 같고, 사회 전체가 같이 노력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신성일 : 일단 게임시장이 커진만큼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죠.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고, 좋은 법만 내놓아도 별 문제 없을 거라고 봐요. 양성화하되 문제점을 제거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잘 보고 만든 법이 아니라, 나쁘다는 인식 하에서 만드니까 좀 많이 꼬였죠. 자꾸 엉뚱하게 끼어드는 게 심판이 경기에 선수로 뛰려고 개입하는 삘이죠.
차경묵 : 반대로 게임업계 입장에서 본다면… 사실 게임업계 사람들이 무조건 ‘참견하지 마라, 싫다, 멋대로 하게 내버려둬라’가 아니거든요. 그보다는 그냥 관심이 없어요. ‘우리는 게임 열심히 만드는데, 저 법은 뭐지? 귀찮긴 한데 뭐야?’에 가깝죠. 암묵적 규칙이 아닌 진짜 규칙이 필요한 시점이 됐는데, ‘일단 게임 만드는 너희 나쁘다.’라고 하면 납득할 수 없죠. 저도 그동안 사회생활 중 90%이 게임개발인데 이게 부정당하는 것은 제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럼에도… 게임업계가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건 저도 동의하는데… 이번에 이런 사회에 대한 무관심이 어떤 댓가로 돌아오는지는 업계인들도 느꼈으니 바뀌겠죠. 업계도, 사회도 서로 너무 관심이 없었어요. 사회도 바뀌어야 하지만 게임업계도 자세를 달리 해야죠.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자유롭게 하는 한에서, 규칙을 정하는 게 맞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