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짓기 귀찮아서 그냥 평균 퉁쳐서 ‘18년차 게임업계인 인터뷰’로 합니다. 월급 30만원 그것도 체불 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해 이제는 어엿한 모바일사 대표가 된 언제 또 치킨집 차릴지 모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공개합니다.
1. 게임 개발한다고 하니 ‘오락실 차리냐?’는 말을 듣던 시대의 게임 인식
리승환 :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좀…
신성일 : 안녕하세요. 1996년부터 게임을 만들고 있고, 지금은 모바일 게임사 플레이어스 대표로 있는 신성일입니다.
차경묵 : 네. 저도 아마추어 합쳐서 게임업계에 들어온지 17년이 됐네요. 지금은 모바일 게임사 플라스콘 대표로 있습니다.
리승환 : 회사 이야기도 좀 해주시죠.
신성일 : 그런 건 필요 없고, 게임 나오면 홍보 글이나 좀 써주시죠.
차경묵 : 저희는 버블 파이터 내놓았습니다만, 역시 다음 게임 홍보 글이나…
리승환 : …..
신성일 : 아직 게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아무튼 게임빌을 통해 일본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게임빌 주식 좀 사세요.
차경묵 : 저희는 넥슨에 투자 받았습니다. 요즘 넥슨 주가 떨어지던데, 던파 현질 좀 하세요.
리승환 : 헛소리는 이쯤 하고… 그러면 두 분은 1세대 게임 개발자에 속하는 건가요?
신성일 : 아니오. 80년대에도 게임개발이 있기는 했어요. ‘신검의 전설’도 있었고, 슈팅게임 ‘그날이오면’도 있고… 이런 분들이 1세대죠.
차경묵 : 우리는 90년대 중반부터 시작이니까 그 뒷세대에요.
리승환 : 그 때 게임개발사들이 좀 있기는 했나봐요?
차경묵 : 그 때는 해외 게임들 배급하는 유통사들이 좀 있었죠. 동서채널게임, SKC, 이런….
리승환 : 90년대에 게임 개발한다고 하면 주변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신성일 : 좋고싫고를 떠나 이해를 아예 못했어요. 오락실 차리느냐고 묻던데요. -_-…
리승환 : ……
차경묵 : 저같은 경우도 게임업계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게임 만든다는 개념을 이해 못해서 그냥 프로그램 만든다고 했죠… 그러던 분들이 애니팡 하트를 날리는 시대니까, 정말 격세지감이죠.
리승환 : 그러고보니 차경묵님은 인디게임 개발자 출신이군요!
차경묵 : 네. 저는 96년부터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그 때는 인디게임이란 말도 없었고… 그냥 상용게임, 비상용게임으로 구분했어요. 인디게임 개발자라 하지 않고 아마추어 개발자라고 했죠. 그때는 상용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아마추어 사이에서는 괜히 ‘우와~’ 이러고… 상용게임 만들면 프로라고 인정받던 시대죠. PC통신에서 아마추어 게임 만들던 사람들이 인정 받고 상용 게임 만드는 것 부러워하고…
리승환 : 같이 게임을 만들던 아마추어 분들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차경묵 : PC통신을 통해 같이 작업했어요.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다 동아리가 있었어요. 하이텔이 제일 오래됐고, 나우누리가 좀 젊은 사람들이 많았죠.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에는 김학규 대표 등 은근 레전드가 있었어요. 물론 그때는 지금 20대가 쓸법한 가벼운 글 남기고 그랬죠. 뭐, 정작 게임을 아마추어 팀에서 끝까지 만든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보니 알파, 베타 버전 정도까지 내놓고, 어느 순간 팀이 막 사라지고 연락 안되고…
리승환 : 그런 분들이 나아가서 게임회사 만든 경우도 있었습니까?
신성일 : 가람과 바람 팀이 그런 케이스죠. 8용신 전설을 개발한 회사인데, 밉스소프트웨어 내부 개발팀으로 들어갔어요. 어떻게 보면 순수 아마추어 팀이라 하기 뭐한 게, 처음부터 상용게임 만들겠다는 명확한 목표는 있었으니까요.
차경묵 : 어떻게 보면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를 만든 손노리도 좀 비슷한 형태로 볼 수도 있겠네요. 제가 다녔던 팀 중 하나는 개인병원의 방 하나가 빈 걸 임대해서 사무실로 썼던 경우도 있어요. 박근혜가 6인 병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던데, 정확히 PC가 6대 있던 공간이었어요. 물론 사람은 10명이었지만;;;
2. 직원 수만큼의 컴퓨터도 없고, 김치찌개에 참치를 넣지 못한 눈물의 90년대
리승환 : 그래서 실제 회사 들어가서 상용게임 만들어보니 어떻던가요?
차경묵 : 첫 느낌은 ‘회사가 아니구나.’ 정도.
리승환 : ……
차경묵 : 그 때가 98년이었는데 사실 게임 회사 개념도 별로 없어서… 상용게임 만드는 회사도 그냥 ‘팀’이라고 불렀어요. 면접 보라고 해서 연락을 하니까 주소도 없어요. 신천역 몇 번 출구로 나오라고 해서, 나가서 전화했더니 웬 주택가 지하로 데리고 가는 거에요. 개발자는 5명인데 PC는 3대밖에 없었어요. 식사하는 동안 다른 사람이 또 작업하고… 식사도 직접 해 먹는 곳이었어요.
리승환 : 신입 축하는 좀 해주던가요?
차경묵 : 새로운 사람 왔으니 김치찌개에 참치를 넣어 주더군요. 이후 참치는 볼 수 없었습니다(…)
리승환 : ……
신성일 : 제가 소프트액션에서 일할 때도 주거용 아파트를 사무실로 썼어요.
리승환 : 거기는 그래도 폭스레인저도 만든 이름 좀 있는 회사니 달랐겠군요.
신성일 : 그럼요. 우리는 사람 수만큼 컴퓨터가 있던 좋은 회사였죠.
리승환 : ……
신성일 : 뭐, 거기도 재미있는 사건 많았어요. 김학규 대표 친구가 거기서 일하다가 안좋은 일 당한 적이 있거든요. 그걸 김학규 대표가 소프트액션 사장이랑 BBS에서 항의하고…
리승환 : 경묵님이 다니던 회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차경묵 : 일도 오래 안 해서 모르겠지만, 지인이 우연히 게임 관련 행사에서 그 대표님을 만났는데, 지금은 다른 일을 하신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리승환 : 다음 회사에서는 돈 좀 주던가요?
차경묵 : 그 다음 인천 공단에 있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그 때 고3이어서 일주일 2번씩 왔다갔다 하면서 일했죠. 거기는 특이하게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어요. 98년이니 엄청 빠른 거죠. 리니지가 동접 1만 찍을 때 “야, 이거 미쳤다! 우리도 리니지 만들자!” 이런 분위기였거든요. 그래서 기획자 1명, 프로그래머 1명, 나머지 그래픽 몇 명이서 일을 시작한 거죠.
리승환 : 대우는 어땠었나요?
차경묵 : 처음에는 그래픽으로 일을 시작했어요. 딱히 그래픽을 잘했다기보다, 그 때는 그냥 빈 자리 투입하고 그런 식이라… 월급이 50만원이었는데… 그것도 3~4개월 일하고 2달 월급밖에 못 받았어요.
리승환 : 억울했겠군요…
차경묵 : 그 때는 돈을 받건, 뭐건 간에 상용 게임 투입 됐다는 의미가 컸죠. 학교 졸업하고 99년에 가마소프트라는 곳 가. PC 패키지 만들다가, 온라인 게임으로 전환한 회사였어요. 사실 여기가 더 억울한데(…)
리승환 : 이거 무슨 ‘전국 불행자랑’입니까…
차경묵 : 그 때는 월급을 기대하는 건 둘째치고… 회사가 지원센터에 있었는데, 그냥 입주해 살았어요. 숙소도 아닌데 수면실에서 자고, 빨래는 근처 친구 집에서 하고…
리승환 : 계속 불행을 자랑해 보시죠…
차경묵 : 회사가 월급 줄 돈이 없으니 그만두고, KRG 소프트로 가서 드로이얀 2 기획 보조로 투입됐어요. 나름 감명 깊었던 게, 박지훈 사장님, 김종우 부사장님이 1997년에 드로이얀 데모버전 만들어서 PC 통신 올렸던 사람들이에요. 제가 그 때 PC통신에서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는데, 드로이얀 해보고 게시판에 리뷰를 길게 달았어요. 사장이 제 리뷰가 첫 리뷰라서 감동받아서… 기억하고 게임개발자 활동하는 거 알고 연락을 주더라고요.
리승환 : 그래도 거기는 월급은 줬나 보군요.
차경묵 : 여기는 월급은 꼬박꼬박 줬지만, 6개월만에 관뒀습니다.
리승환 : 잘렸나요?
차경묵 : 아니오. 4층에서 일하고 5층 수면실에서 자는 작업의 반복이었어요. 일어나서 12시까지 일하고… 그런데 관리센터에서 난방을 안해주는 거에요. 한겨울이었는데 내복에 옷 두 개, 잠바 걸치고, 이불 두 개 뒤집어쓰고…. 그 생활을 6개월 하고 나니 20살이라고 해도 몸이 나가더라고요;;; 계단 올라가다가 땅을 딛는 순간 몸이 갑자기 허리가 안 움직이며 쓰러졌어요. 바로 응급실로 갔는데, 근육이 너무 수축해서 신경을 제대로 눌렀다더군요. 이후 석달 동안 집에서 계속 누워 있었죠.
리승환 : 눈물의 나날이군요.
차경묵 : 그래도 그 때는 정말 기분 좋았어요. 드로이얀 2가 출시돼서 보니까, 기획 어시스턴트로 제 이름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신성일 : 스탭롤에 이름 뜨는 것만큼 게임 개발자에게 감동도 없죠.
3. 남한판 아오지탄광, 90년대의 게임계발
리승환 : 신성일 대표님도 불행 자랑 좀 해보시죠(…)
신성일 : 저는 시작은 꽤 깔끔했어요. 96년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알바로 시작했어요. 오렌지소프트라는 회사. 용기전승, 하이리워드, 이노센트 투어 등 일본 게임을 가져다가 로컬라이징하는 회사였어요. 거기가 KSS라고 ‘오, 나의 여신님!’ 애니도 만들고 하던 회사에서 제작한 게임을 주로 한글화해서 유통하던 회사였죠. 그러다가 회사가 욕심이 생기니 자체개발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나온 게 ‘머털도사와 백팔요괴’라는 SRPG 게임이었어요.
리승환 : 그 때도 지금처럼 게임업체 취직을 원하던 사람들이 많았나요?
신성일 : 없었죠.
리승환 : 왜죠?
신성일 : 그 때는 게임개발회사가 너무 힘들었어요. 요즘 게임업계를 3D라고 하는데, 그 때는 그냥 아오지탄광(…) 이었어요. 아예 사람들이 존재 자체를, 정보 자체를 몰랐어요. 번듯한 산업이 아니었죠. 외산 게임 위주로 유통업체들의 장이었는데, 그건 개발자의 영역이 아니죠.
리승환 : 오오… 드디어 성공… 미래가 보이는군요.
신성일 : 첫 회사는 어차피 알바 개념으로 시작했고 그러니 넘어가고… 소프트액션은 병특을 위해서 들어갔는데, 여기서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됐죠.
리승환 : 월급은 좀 받았습니까?
신성일 : 네… 정말 좀 받았습니다. 20에서 30…
리승환 : …… 왜 일했습니까…
신성일 : 모든 업체들의 레파토리였죠. “너는 나중에 병특 받을 거야.” 이런 개런티를 거는 건데…
차경묵 : 사실 저도 몸 망가지면서 나간 것도 있지만… 제 앞에 이미 병특 대기만 3명이었어요. 1년에 한두개 나는데;;; 당시 게임업계가 워낙 채산성이 안 좋다보니 병특 의존도가 높았어요. 병특 기대할만할 애들을 싼 값에 부리기도 하고… 그렇게 희망고문 하면서… 병특의 피를 흡수하며 커나간 업계죠.
리승환 : 저도 병특 출신이지만 대우가 정말 바닥 of 바닥이었군요.
신성일 : 정말 병특이 최종병기였죠. 병특의 희생이… 그 피와 시체가(…) 그게 게임계의 초석이었습니다.
차경묵 : 넥슨도 카트라이더 대박나기 전까지 병특으로 운영됐어요. 뭐, 하긴 애초에 김학규 대표가 군대 끌려갔으면 맥이 끊기는데;;; 김대중 정부부터 정통부 힘 받으면서 정통부에 붙는 게임업체도 많았죠.
리승환 : 그래서 병특은 갔습니까?
신성일 : 아… 미리내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때… 병특이 확정됐는데… 아… 아…
리승환 : 그랬는데요? 배신 당했습니까?
신성일 : 아니, 지금의 국민영웅 싸이… 처럼 이런저런 병역비리가 터지며 병특 2년 수행했다가, 다시 군대를 가게 됐지요. 그냥 바로 갔으면 차라리 덜 억울했겠는데… (리승환 주 : 이 부분이 원래 싸이 파동 이후 병특을 못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편집상의 실수였습니다. 넓은 아량 부탁 드립니다.)
리승환 : 좋네요. 이 기회에 싸이처럼 군대 한 번 더 가세요. 강남스타일처럼 세계적인 게임 만들 수 있을 거에요.
신성일 : ……
4. 척박한 환경 속의 사업의 실패와 재기
리승환 : 경묵님은 창업을 꽤 일찍 했다고 들었습니다.
차경묵 : 네. KRG나오고 2000년 처음 창업했어요.
리승환 : 그 결과는 어땠나요?
차경묵 : 2003년 파업했어요.
리승환 : ……
차경묵 : 당시 위자드소프트와 유통 계약하고 미니멈 개런티 받고 출시까지 잡았는데…
리승환 : 30만원 받는다고 징징대다가, 30만원 주고 부려먹은 기분은 어떻던가요?
차경묵 : ……
리승환 : 죄송합니다…
차경묵 : 정말 죽을 맛이었죠. 출시 전 골드버전 나올 때쯤 돈이 없었어요. 그거 어떻게든 회복하겠다고… 어디 기금에서 5천 빌리고… 당시가 DJ 정부였는데 신용카드 남발했잖아요? 삼성카드 만들자마자 현금서비스 1000만원이 가능했는데, 그것까지 끌어다 쓰고… 많이 힘들었죠. 18명까지 직원이 늘었다가, 나중에 월급도 못 주고…
리승환 : 투자를 받지는 못했나요?
차경묵 : 제 기억에 벤처캐피털 용어 생긴 게 98년이니 20년도 안됐어요. 요즘이야 돈이 된다는 게 감이 잡히지만, 그 때 엔젤 투자자가 어딨어요? 98년 닷컴 버블 터지며 야후 등 스탁옵션으로 막 벌다가 훅 가고, 그 돈이 2000년 이후에야 게임업계로 제대로 들어왔죠. 특히 리니지 대박이 큰 영향을 줬어요. 동양 등의 대기업이 들어왔고요.
신성일 : 그런 식으로 미리내 소프트웨어도 문을 닫았다가 2001년 미리내 엔터테인먼트로 부활했죠.
차경묵 : 그 쯤 해서 게임회사가 아닌 IT나 제조업에서 게임업계 인수한 게 의외로 꽤 많아요. 당시는 돈이 되는 노다지로 여겨졌으니.
신성일 : 뭐,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게임 업계는 여전히 작기는 했어요. 지금 잘나가는 3N도 모두 작았을 때고.
리승환 : 빚 갚느라 힘들었겠습니다.
차경묵 : 창업했을 때는 못받았고;;; 월급걱정 안하고 밀리지 않은 건 2004년 KRG 또 들어가서가 처음이었죠. 뭐, 그래봐야 2000만원 받았지만, 회사 망하고 빚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월급 140만 원 중 135만원을 빚 갚는데 써도 좋았고… 다 접얻두고 무엇보다 집에 들어가 잘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았죠. -_-;;;
신성일 : 저는… 그 놈의 병특 까이고 군대 다녀와서 2006년 CJ 들어가서부터 제대로 받았죠.
너무 길어서 그냥 나눠서 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