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소설 『마션(The Martian)』을 읽고 영화도 봤다. 맷 데이먼 주연, 리들리 스콧 감독의 마션은 원작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살린 훌륭한 영화다. 다만 원작을 읽은 분들은 책에서 마크 와트니가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 있어서 아쉬웠을 것이다.
책과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나는 유튜브를 검색해서 마션의 원작자인 앤디 위어가 1년 8개월 전에 구글에서 가졌던 강연 동영상을 찾아냈다. 호기심에 약간 들여다 본다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끝까지 다 봤다.
1. 앤디 위어가 소설 집필을 위해 만든 Orbit이라는 프로그램(14분 40초 지점 소개)
위어는 마션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쓰기 위해서 실제 지구, 화성, 그리고 헤르메스호의 궤적을 시뮬레이션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소설 내에 나오는 헤르메스호의 항해궤도와 지구와의 통신 소요시간 등은 모두 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뒤에 쓴 것이라고 한다.
작품에 묘사되는 내용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직접 코딩까지 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소설가가 얼마나 많이 있을까.
2. 그가 마션을 출간하게 된 과정(22분 지점)
마션은 원래 그가 블로그에 토막토막 쓰던 글이다. 인기를 얻자 독자들이 “읽기 쉽게 한 권의 전자책으로 엮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을 했다. 그래서 킨들에 넣어 읽기 쉽게 하나로 모아 ePub, mobi 포맷으로 그의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그러자 그것도 어렵다며 “킨들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도록 아마존에 올려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들어왔다. (전자책 파일을 다운받아 킨들에 파일로 전송하는 것은 처음 해볼 때는 조금 복잡하긴 하다.)
그래서 그가 아마존 킨들플랫폼을 확인해보니 누구나 전자책을 쉽게 출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다만 아마존은 자선단체가 아닌지라 최소 가격으로 99센트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었다. 어쨌든 독자를 위해 그는 99센트에 아마존 킨들버전으로 책을 공개했다.
그리고 그는 아마존의 전자책 유통 능력에 놀랐다. 그의 웹사이트에서 공짜로 공개한 것보다 휠씬 많은 사람들이 킨들을 통해서 그의 책을 99센트에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SF소설 랭킹 톱 10에 오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게 됐다.
그렇게 조금씩 주목을 받게 되자 랜덤하우스의 줄리안이란 편집자가 그의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위어에게 바로 접촉하지는 않고 북 에이전트인 데이빗에게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출간계약을 할 만한지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데이빗은 책을 읽고 나서 “충분히 출간할 만한데 잠깐만 내가 먼저 이 작가의 전속 에이전트로 계약해야겠다”고 하고 위어에게 연락해서 먼저 에이전트 계약을 했다. 순발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데이빗이 나서서 랜덤하우스와 출간 계약을 해줬다.
한마디로 위어는 돈에도 관심이 없었고, 책을 유명출판사와 계약하는 데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콘텐츠의 내용이 워낙 좋으니 독자의 호응으로 SF 웹소설이 저절로 주류시장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가출판(Self publishing)이 가능한 아마존 킨들이라는 플랫폼의 힘이 있었다. 즉, 이런 전자책 플랫폼을 통해 앞으로는 숨겨진 좋은 작가들이 더욱 더 쉽게 나올 수 있게 될 것 같다.
3. 화성의 모래폭풍(32분 40초 지점)
『마션』은 대단히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쓰여진 책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옥의 티가 있는데, 그것은 도입부에 나오는 모래폭풍이다. 화성의 대기밀도는 지구에 비해서 극히 낮기 때문에 주인공 마크 와트니가 부상을 입고 날아갈 정도의 모래폭풍이 생길 가능성은 아주 낮다.
작가인 위어는 이 강연 동영상에서 “비밀인데 사실은 화성에 강력한 모래폭풍은 없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서 이 부분은 타협을 했다”고 이야기한다.
실리콘밸리 긱, 앤디 위어
앤디 위어는 이 구글에서의 강연을 책이 정식 출간된 지 이틀만에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주 편한 분위기다.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그런지 청중도 많지 않다. 덕후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구글직원들의 질문도 재미 있고, 그런 질문에 자신있게, 재치있게 답하는 위어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NASA의 조직과 내부 정치가 너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고 혹시 직접 취재하고 쓴 것인지 상상한 것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다 만들어낸 것이다(Made it all up!)”라고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있게 대답하는 모습이 매력적이다(29분 20초 지점).
낙천적인 성격에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유머러스하게 문제의 해결방법을 과학적으로 모색하는 마션의 주인공 마크 와트니의 캐릭터는 앤디 위어 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20세기 폭스사가 판권을 사갔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 책이 영화화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한다.
또 그는 당시 모바일아이언이라는 회사의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다음 책이 계약되면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한다. 지금은 아마도 그렇게 됐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강연동영상에서 기술의 진보에 대해 항상 낙천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모습을 봤다. 이 책을 쓴 계기도 ‘사람을 화성에 보내면 어떻게 될까’를 과학적으로 상상해 보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앤디 위어에게서 전형적인 실리콘밸리 긱(Geek, 덕후)의 모습을 봤다. (자기는 자신을 Dork이라고 표현한다. Dork은 Geek보다도 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다. 좀 심한 오타쿠라고 할까.)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실리콘밸리가 실리콘밸리인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은 것. 미국에서는 이런 과학소설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우주탐사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주는 강력한 로켓 같은 추진력을 낸다. 그렇게 해서 미국의 과학기술이 항상 세계를 리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원문: 에스티마의 인터넷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