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이 보여주는 마음 세계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아이디어 자체는 새롭지 않다. 우디 앨런 감독의 1972년작 <당신이 섹스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만 묻기 두려워하는 모든 것> 영화에서도 한 남자의 마음 속의 중앙통제실 장면이 나온다. <허먼의 머리> 에서도 역시 이런 설정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사람 속에 그 사람을 조종하는 영혼의 조종실이 있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근대철학의 창시자 데카르트 시절부터 있었다. 데카르트 같은 1500년대 사람들은 호문클로스 라는 영혼의 조종자가 뇌 속의 송과선 이라는 곳에 앉아서 인간을 조종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마징가제트 같은 일본 로봇만화와도 연관된 점이다. 참고로, 송과선은 인간 조종실이 아니고 다양한 세로토닌, 멜라토닌 같은 신경호르몬을 분비하는 기관이다.
<인사이드 아웃>이 이전의 영화와는 다른 점은 이 영화는 마음속의 조종실이라는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심리학적 사실들을 진지하게 참고해서 과학적으로 재현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제작진은 각본과 연출을 준비하면서 폴 에크만을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의 자문을 받았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묘사하는 인간 마음 세계는 지금까지 밝혀진 심리학 연구결과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정서요소 5형제
정서요소 5형제는 폴 에크만을 비롯한 많은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는 가장 근본적인 정서 6가지(행복, 분노, 슬픔, 혐오, 공포, 놀람) 중에서 놀라움을 제외한 나머지로 구성 되었다. 여기서 놀라움이 빠진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캐릭터 숫자가 많을수록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이들 정서 캐릭터들이 모두 각자의 놀라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꿈의 기능
영화에서 하루 동안 겪은 기억들이 잠과 꿈을 통해 장기기억으로 이동하는 과정도 실제로 밝혀진 바와 같다. 우리에게 꿈은 컴퓨터가 하드디스크를 정리하는 과정과 같은 역할을 한다. 깨어있을 때 경험한 모든 경험의 데이터를 저장하면서 엉킨 자료들을 정리하고 삭제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가 꿈을 꾸지 못하면 기억장애를 겪는다. 잠은 꼭 푹 자야 한다.
정서와 핵심기억
정서가 우리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기라는 점은 오래 전부터 알려졌다. 그래서 내가 학부 때는 동기와 정서는 같은 교재에서 다뤘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의 기억에 있어 단순히 정보를 기록하는 인지적인 과정만이 아니라, 거기에 정서적 색채를 부여하는 감성적인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기억에서 정서의 색채가 부여된다는 것도 심리학적 사실이고, 핵심기억들은 모두 강렬한 정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최근들어 밝혀진 사실이다.
그 외 것들
생각의 기차 (train of thought)는 생각을 표현할 때 영어에서 사용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다. 생각의 기차가 탈선했다는 표현도 많이 쓰는데, 우리말로 치자면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정도와 비슷하다. 영화에서는 이 어구들이 실제 영상으로 표현된다.
‘상상 속의 친구’ 도 재미있는 요소다. 사실 아동심리학에서 이런 현상을 배운 적은 없고,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험이 없지만 외국에서는 종종 언급되는 현상이다. 아동기에 그런 자기만의 상상 속 친구를 가졌던 경험이 꽤나 있는 모양이다. 영화는 이 상상 속 친구를 단지 언급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로 사용한다. 빙봉의 등장과 퇴장은 라일리의 마음이 성장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영화 속의 심리학 이야기
모든 작품들은 보는 사람마다 다 자기만의 해석과 의미를 가져가게 되어 있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작품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는 건, 당시 내 마음속의 어떤 지점을 정확하게 건드렸다는 얘긴데, 각자의 마음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일수록 이런 해석의 다양성은 더 크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고 어떻게 해석하는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같이 생각해 볼, 그리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꽤 많다.
1) 슬픔과 공감의 관계
이 영화 초반에 조이(기쁨이)는 슬픔이라는 존재가 왜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 슬픔이 때문에 자꾸 일이 틀어지고 문제가 생기니까, 조이는 심지어 슬픔을 원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려든다. 하지만 슬픔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기초감정이었다. 또한, 슬픔은 공감과 이해라는,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들어주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쁠 때는 오히려 상대방은 친밀감을 느끼기 보다는 질투를 하기 쉽다. 우리가 누구와 진정 친해질 때는 내가 슬프고 힘들 때다. 다른 사람 앞에서 아픔을 드러낼 때, 그 사람도 자기 마음을 열수 있다. 힘들 때 친구가 진짜 친구 아닌가.
슬픔의 기능은 단순히 공감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감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사회적 성격장애인들은 기쁨은 잘 느끼지만 슬픔이나 공감 능력은 없다. 기쁨만 느끼는 사람은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무섭고 위험한 존재인 셈이다.
서양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걸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동양에서는 중용과 조화를 더 중시했다. 동양적 관점에서는 남들이 슬픈데 혼자만 행복한 사람은 인간이 덜 된 존재다. 리더일수록 어른이 될 수록 공감능력이 더 커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런 철학이 <인사이드 아웃>에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긍정적인 정서와 부정적인 정서가 따로 있나?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조이가 슬픔을 배척하려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우리도 슬픈 건 될수록 빨리 잊고 기분 좋아지려고 노력하니까. 보통 우리는 슬픔은 나쁜 정서이고 기쁨은 좋은 정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서를 다루면서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다. 실제로는 좋은 정서와 나쁜 정서는 따로 없다. 모든 정서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보여주듯 어떤 정서들은 동전의 양면처럼 반드시 서로를 필요로 한다.
미국 가족치료학회 부회장이자 가족상담 및 치료 전문가인 캐더린 맥콜C.McCall 박사가 지금까지 자신이 상담해온 가족들의 사례를 모아 자녀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좋은 아빠와 자녀의 성장에 문제거리가 되는 나쁜 아빠의 행동방식을 정리한 게 있다.
좋은 아빠는 아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를 예민하게 캐치한다. 그게 좋은 기분이든 나쁜 기분이든 모두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 공감을 하고 인정해줌으로써 아이와 친해지고 가르침을 줄 기회로 삼는다. 아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을 말로 적절히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그런 감정을 어떤 식으로 바람직하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떤 것은 해서는 안 되는지를 대화를 통해 가르쳐준다.
반면 나쁜 아빠는 아이의 기분을 평소에는 눈치를 못 채다가 일단 화내거나 울기 시작하면 큰 일이 일어난 것이라 여기고는 허둥대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래려 든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오히려 자신이 화를 낸다. 나쁜 아빠들이 이러는 이유는 자기 감정을 들여다본 일이 별로 없어서, 우리 내면에는 좋은 기분과 나쁜 기분이 공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기분도 필요하고, 중요한 것임을 모르면 그걸 부정하려 들고, 그러다보면 자녀와의 대화는 현실을 무시한 일방통행이 되어버린다.
긍정심리학도 마찬가지 무조건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는 건 진짜 긍정심리학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일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따라서 진짜 어려운건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아니라 자기 상황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올바로 파악하는 거다.
세상이 비관적인데 정서만 긍정적인 사람은 사실 부적절한 거다.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 속에서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 현명한 행동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비관과 낙관을 모두 명확하게 봐야 한다.
3) 의견과 사실은 얼마나 혼동가능한가?
생각의 기차 속에 실린 화물들 중에 사실(fact)과 의견(opinion)이 있는데, 조이가 실수로 이 두 화물박스 속의 물건들을 뒤섞는다. 그리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리려다가 둘이 너무 비슷하다며 곤란해하자. 빙봉이 “원래 늘 그래” 라며 그냥 막 주워서 아무 상자에나 집어넣어버린다. 실제로 우리도 마찬가지다.
편견이나 고정관념은 모두 사실과 의견을 혼동한 결과다. 편견과 고정관념이 우리를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끌고, 자신과 남에게 상처를 주고, 위험한 행동을 하게 만든다. 라일리가 무작정 예전 동네로 돌아가려고 한 것도 결국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 인간의 광기들은 거의 대부분 사실과 의견을 혼동한 데서부터 시작했다.
사실과 의견을 혼동하지 않기 위한 첫 단계는 내 생각들 속에 사실과 의견이 혼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체화하는 것이 그 다음 할 일이다. 과학은 그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사실과 의견을 분리해내려는 노력들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과학자들은 자기들이 하는 모든 생각을 ‘가설’이라고 부른다. 그 가설 중에 정해진 절차를 통해 사실로 확인된 것들만 사실로 치고, 나머지는 계속 가설로 남긴다. 현명한 사람일수록 가설을 믿고 행동하지 않고, 사실을 근거로 행동한다.
출처: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