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스타트업에서 인턴을 하다
이번 여름 인턴을 하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감사함’이었다. 2학기 내내 약 40군데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고, 메일을 쓰고, 연락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도 없었다. 내 나름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했던 5월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불안감과 초조감은 극도에 달했다.
결국, 극약 처방으로 학교 커리어 센터에 찾아가서 거의 애원하다시피 ‘도움’을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내 이력서를 수정해 주던 담당관이 내가 나가기 몇 분 전 “디자인 컨설팅 외에 스타트업에도 관심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던 것이, 결국은 이번 여름 인턴 자리로 이어지게 되었다.
내가 일했던 회사의 이름은 ‘Malltip’이며, 쇼핑몰과 고객들을 웹사이트 및 모바일 앱을 통해서 연결해주는 회사다. 6월부터 8월까지 약 3개월에 걸친 인턴 생활을 마쳤는데, 대표와 1:1로 일을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표와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는데, 크게 3가지로 나누고 싶다.
1. 디자인은 문제 해결 도구이지, 자아실현 도구가 아니다
내게 디자인은 종종 예술(Art)과 혼용되었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볼 때 ‘기능’도 중요시했지만 동시에 ‘아름다움’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러한 내 성향은 대표와 일을 하면서 바로 부딪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페이스북 마케팅 캠페인을 했을 때였다. 나는 ‘습관적으로’ 미니멀한 디자인을 적용해서 캠페인을 진행했는데, 중간 점검에서 대표에게 다음의 질문을 받았다. “왜 ‘미니멀리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목표를 달성시키는데 최적의 방법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사실 미니멀리즘이 이 캠페인의 목표를 달성시킬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인지는 나도 사실은 알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 정량적으로나 정성적으로나 ‘조사(Research)’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 의사 결정 과정을 하나하나 곱씹어 살펴본다면, 나는 단지 미니멀한 디자인을 선호했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하는 모든 디자인에 이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달리 말하자면 ‘내 눈에 예뻐 보여서’가 내 대답이었다.
그러자 대표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금까지 우리가 진행했던 캠페인의 70% 이상이 ‘예쁜 것’이 아닌, 다른 요인으로 인해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해. 따라서 ‘안 예쁜’디자인이 더 좋을 수도 있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문득 지난 학기 전략 컨설팅 수업을 들으면서 배웠던 부분이 생각났다. 가장 어리석은 전략은 고객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문제를, 많은 자원을 투자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가장 영리한 전략은 고객이 가장 신경 쓰는 문제(Pain point)만을 해결하는 것이다. 매우 간단한 이야기지만 내게 적용을 해보니 내가 바로 ‘고객이 신경쓰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어리석은 전략가였다. 내게 ‘심미성(Aesthetics)’은 중요한 가치인데, 고객들에게 심미성이 나처럼 중요한 가치일까?
Before 디자인은 자아실현의 도구다. 디자인은 내 취향으로 만든다.
After 디자인은 문제 해결의 도구다. 디자인은 데이터 분석으로 만든다.
2. 의사 결정 대부분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완벽주의자 성격에 ‘숙성’, ‘인내’, ‘연단’ 등 모든 일을 천천히 하는 것에 익숙한 내게, 모든 결정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스타트업의 문화는 처음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의사 결정이란 ‘완벽한 이상향’을 찾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커리어의 9할 이상을 ‘책을 쓴’ 나이기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당히 인문학적인 발상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할 때, 언제나 그 의사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어차피 수년간, 수십 년간 축적되어온 내 가치와 철학이 반영된다고 생각했기에 몇 시간의 ‘조사 따위’로는 의사 결정에 하등의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표를 통해서 배운 점은, 의사 결정이란 결국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점이었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심지어는 신앙적인 맥락을 찾아내려고 애썼던 내게, 대표는 빠른 의사 결정의 필요성과 그 의사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과정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주었다.
그래서 때론 30~40%의 데이터만으로도 빠른 결정을 내리는 편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대부분 내가 내려야 할 의사 결정이 ‘전략(Strategy)’이 아닌 ‘전술(Tactics)’에 더 가깝다는 것도 배웠다. 전략적 판단은 가치와 철학에 근거해서 큰 방향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술적 판단은 올바른 정보와 지식을 통해서 내리는 것이기에 사실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빠른 의사 결정으로만 해낼 수 있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Before 전략적 의사 결정은 삶의 가치로 이루어진다. 모든 의사 결정은 신중한 편이 좋다.
After 전술적 의사 결정은 정확한 정보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중요하지 않은) 의사 결정은 빠른 편이 좋다.
3. 남이 이미 풀어놓은 문제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이번 인턴을 하면서 정말 끊임없이 ‘조사’를 해야 했고, ‘정보’를 취합해야 했다. 이를테면 이메일 마케팅 캠페인을 새롭게 기획하기 위해서는 바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선행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CEO가 선택할 수 있도록 안을 최소 3~5가지는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아니 왜 이런 걸 나한테 시키지? 지금까지 내가 살면서 받은 이메일만 해도 수만 통일 텐데, 살면서 그 정도 이메일 받아보면 대충 뭐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나? 그리고 설령 조사한다고 해도 그거 몇 시간 조사해봤자 수박 겉핥기식으로 정보 몇 개 얻을 건데, 그게 뭐 도움이나 될까?’
내가 이런 생각으로 조사했기에 사실 살면서 ‘리서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간과했던 점이 많았다. 하지만 위에 쓴 1번과 2번을 접목해서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이 직면한 문제 해결의 대부분은 빠른 의사 결정으로 툭툭 치고 나가는 편이 맞으며, 이러한 접근 방식은 ‘디자인 의사 결정’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 즉, 빠른 문제 해결 방법을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리서치 방법은 내가 직면한 문제와 유사한 문제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접근을 했고, 어떻게 해결했느냐를 조사함으로써, 내 학습곡선(Learning Curve)을 최대한 빨리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에 대해서 써놓은 유명한 영어 문장이 있다. “Don’t invent the wheel” 우리 말로 하자면 “바퀴를 만들 필요는 없다”인데, 남이 이미 해결해 놓은 문제를 굳이 우리가 또 해결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나는 ‘바퀴’ 하면 ‘바퀴’만 생각했지, 이를 더 포괄적으로 ‘이동 시 마찰을 최소화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던 적이 없었기에, 문제들 간에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역량이 부족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와 ‘해결’의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해내는 훈련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Before 리서치는 결국 대표가 원하는 데이터를 짜 맞추는 것이다. 디자인은 예술 사조, 시대 흐름, 그리고 직감과 영감에 의해서 나온다. 모든 문제에는오리지널한 아이디어로 해결을 해야 한다.
After 리서치는 결국 의사 결정에 필요한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디자인은 당면한 문제, 가용한 자원, 그리고 기술적 한계에 의해서 나온다. 대부분의 문제는 남의 아이디어를 어떻게 적용하느냐로 해결할 수 있다.
정리하며
내가 가진 기질과 성향은 분명 은행, 컨설팅, 혹은 대기업을 나온 70~80%의 타 MBA 학생들과 다른데, ‘무엇이 본질에서 어떻게 다른지’ 그 누구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인턴에 정말 감사한 이유는, 나와는 180도 다른 성향의 대표와 일함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차이로 인해서 수반되는 결과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내가 예측하고 이에 대해서 더욱더 편하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이렇게 나의 기질을 프로페셔널한 세팅에서 발견하게 되니 앞으로도 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거나 Job을 구할 때도, 나를 어떤 식으로 포지셔닝하고 셀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바로 ‘자신감’이다. 내가 가진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됨으로써 얻게 되는 편안함과 자신감. 이를 선사한 Malltip과 대표에게 감사드린다.
원문: arise & s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