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으로 여자가 한창 꿈꾸고 생각하는 부분이라는데 신기하게도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결혼식에 대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내 고민은 짧은 시간 안에 ‘하객에게 어떤 감동과 경험을 선사할 것인가’에 집중됐다.
대학 3-4학년 무렵 시작한 이 고민은 20대 중반이 되고 친척, 지인, 그리고 친구들의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점차 깊어졌다. 어느덧 20대 후반, 결혼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 결혼식 장소에서 제일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분위기다.
- 하객은 신랑과 신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신랑과 신부의 구체적인 스토리가 전달돼야 감동이 있다.
- 처음 청첩장을 받았을 때부터 예식장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처음과 끝을 아우르는 일관된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
우선 1번부터 살펴보자.
장소 선정
결혼하기 전, 전 세계 약 70여 개 도시의 100여 개가 넘는 건축물을 보고 다녔다.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실내 공간 분위기를 자아내는 많은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조명’ 내지 ‘빛’이라는 사실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실내 공간의 ‘형태’다. 어떤 디자인으로 설계했는지가 전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분위기를 위해서는 조명과 형태가 중요하지만 결혼식 특성상 식장의 ‘위치’ 역시 중요하다. 특히 위치 때문에 어릴 때부터 원했던 ‘해외에서 결혼하기’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하와이나 발리 같은 곳에서 소수의 친구와 가족만 초대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 나는 장남인 데다 개혼(開婚)이었고 양쪽 집안 어르신 의견에 따라 해외 결혼은 아예 말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내게 솔깃한 대안이 떠오른 건 결혼하기 1년 반 전, 2013년 2월 제주도 워크숍 때다.
제주도에서 방주교회를 만나다
친구 두 명과 함께 제주도에서 디자인이 잘 된 공간을 중점적으로 보았다. 그러다 한라산 중턱에서 정말 생뚱맞게 ‘방주’처럼 생긴 교회를 발견했다.
실제 이 교회의 이름은 ‘방주교회’였고 이타미 준(Itami Jun) 건축 사무소에 의하면 ‘물과 빛의 교회’라고 불린다. 특히 이 건축의 특이한 외양과 위치는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교회’와 정말 다른 모습의 교회다.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지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교회 안에 들어서자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빛의 교회’를 연상케 하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어두운 공간에 인공조명은 최소화하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살렸다. 그래서일까. 은은한 분위기가 공간을 더 엄숙하게 만들고 실제로 보면 참 작은 공간임에도 ‘장엄하다’는 느낌이다. 이 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어느 순간 ‘이곳에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 장소가 중요했던 내게 ‘방주교회’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미니멀한 디자인, 엄숙한 분위기, 자연스러운 조명이 하나의 공간에서 이루는 조화가 감동으로 다가왔다. 방주교회를 검색하다가 이 건축을 재미있게 설명한 분의 일러스트를 발견했다.
‘형태와 소재가 갖는 의미’와 ‘주변 환경(맥락)과의 조화’를 세심하게 고려해서 만든 디자인. 이타미 준의 예술작품과도 같은 이 교회는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분명 큰 감동과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디자인과 위치
그렇게 방주교회를 추억에 담고 서울로 돌아온 지 1년 후 2014년 봄. 당시 내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3년 반 연애한 여자친구(현재 아내)와 결혼을 결정하고 단 2개월이라는 기간 안에 결혼할 장소를 찾아야 했다. 방주교회도 언뜻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사실상 불가능했다. 나와 아내의 가족 중 ‘제주도’를 연고로 둔 분들이 없는데 단순히 ‘예식장이 예뻐서’ 제주도에서 결혼한다는 건 당위성이 부족했다.
더군다나 디자인 때문에 내가 20여 년간 몸담았던 교회가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 결혼한다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결혼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었는데 일이 생겼다. 주례를 봐주셔야 할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께서 결혼 기간에 딱 맞춰 해외 일정이 잡혀버린 것이다.
아내 교회의 목사님께 주례를 부탁드리려 하니 다시 장소가 문제였다. 우리 교회에서 타 교회 목사님이 주례를 보시게 되는 거다.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이 계신데도 아내 교회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오셔서 주례를 보신다면 그림이 좀 이상해질 수 있다. 결국 모든 상황을 고려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채플 홀’로 구성된 예식장을 찾는 것이었다.
상상하던 곳을 찾다
결혼 두 달 전 마음에 드는 예식장을 찾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날짜에 맞춰서 아무 곳이나 고르고 싶지 않았다. ‘결혼 장소는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에 나와 아내 모두 동의했다. 다시 방주교회가 머릿속에 아른거리던 찰나, 아내가 내게 한 장의 사진을 보내줬다.
“오빠, 여기 방주교회 닮은 예식장이 있는데 한번 볼래?”
“응? 방주교회를 닮은 곳이 있다고? 어디?”
“오빠네 집에서 가까워. 고속터미널 근처야.”
“위치도 좋은데? 사진 보내줘.”
사진을 보는 순간 정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그토록 결혼하고 싶었던 ‘방주교회’와 너무나 비슷한 디자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천장이나 심플한 벤치 디자인, 직접조명 없이 벽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간접조명 등이 방주교회의 모티브를 한층 더 발전시킨 모습이었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더군다나 방주교회와 달리 아펠가모는 제주도가 아닌 고속터미널에 있었다. 위치 면에서도 최적이다. 공간 형태와 빛은 방주교회 못지않게 아름다웠으며, 예식이 7월이라 더울까 걱정했는데 냉방이 잘되는 실내에 식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말 내가 꿈꾸던 공간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정말 원하던 디자인의 공간, 조명 아래에서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예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소 못지않게 중요한 세팅
아펠가모(반포점)로 예약한 후, 우리는 바로 날짜를 잡아 그곳에서 하는 결혼식을 보러 갔다. 아펠가모가 실제로 결혼식에 좋은 장소인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처음 시험 삼아 방문했을 때 나와 아내는 충격받았다.
우리 예상과 달리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예식에 집중하는 하객은 찾기 어려웠다. 조명도 핀 조명이 너무 강렬해서 신부와 신랑 얼굴이 부각되는 것을 넘어 부담스럽게 보였다. 우리가 원한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재인아, 여기 우리가 생각했던 거랑 다른데…?”
“응. 내 생각에 핀 조명, 출입문 여닫는 것, 하객분들 떠드는 것 크게 세 가지는 바뀌어야 할 것 같아.”
“우리 이 부분을 다시 중점적으로 본다고 가정하고 다시 한번 방문 날짜를 잡아보자.”
두 번째 방문에는 우울한 마음이 조금 밝아졌다. 아내가 말한 세 가지가 바뀌면 우리가 원했던 분위기가 될 법도 했다. 그중 관건은 핀 조명이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어울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진에 나올 때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 총 다섯 번에 걸쳐 예식장을 방문했다. 갈 때마다 동선과 조명을 체크하고,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요소를 노트에 하나하나 적어가며 쉴 새 없이 논의했다. 그렇게 아펠가모 측에 바꿀 것들을 제안했다.
- 핀 조명 없이 전체조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할 것.
- 예식장 문이 항상 닫혀있을 수 있도록 임시 문지기를 부탁할 것.
- 예식 전 마이크 음량이 적절한지 다시 한번 점검할 것.
실제로 세팅 후 리허설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머릿속으로 반복 시뮬레이션하면서 우리의 결혼 장소를 조금씩 세팅해나갔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던
우리는 핀 조명을 쓰지 않고 전체조명 아래에서 입장한 아펠가모 역사상 두 번째 커플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 예식 바로 일주일 전에 우리와 같은 조명을 부탁한 커플이 있었다. 마지막 점검에서 그 커플의 결혼식을 보며 우리의 선택이 옳았음을 100% 확신했다.
돌이켜 보면 결혼식 장소에 진심으로 만족할 수 있었던 건 결혼 전부터 ‘어떤 분위기의 장소’를 원했는지 많은 고민과 생각을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공간은 우리 삶에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원문: arise&sh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