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까지 책을 쓰고, 창업한다는 핑계로 사실 친구들과의 만남도 가지지 못했었고, 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연락을 잘하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내 결혼 소식은 상당히 뜬금없었다. 더군다나 학교 합격 발표에 맞춰서 결혼 준비를 하느라 실질적으로 결혼한다고 알릴 수 있는 시간은 한 달 남짓밖에 없었기에, 나는 청첩장이 ‘초대장’의 기능을 넘어서 ‘내가 왜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으면 했다.
정리를 해보니 결혼식에 필요한 디자인 작업들은 총 4가지가 있었다. 이 모든 작업의 타겟 독자 층이 내가 보통 생각하는 20~30대 젊은 층을 벗어난다는 점이 조금 까다로웠다. 정말 미니멀하고 지금까지 그 누구도 못 본 그런 파격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은 욕심이 컸지만, 청첩장을 통해서 나와 아내의 지인들은 물론 양가 부모님의 지인분들에게까지 전달이 되어야 함을 고려해 보니, 보다 더 ‘보수적인’ 디자인으로 회귀를 했다. 결혼식에 오시는 분들에 한해서 타겟을 선정해보니 다음과 같았다.
- 나와 아내의 지인들 – 20대 중반~30대 초반
- 양가 부모님의 지인분들 – 40대 후반~60대 초반
결국 말 그대로, 20~60대를 아우르는 디자인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다음 분야에서 문제들이 발생했다.
- 톤앤 매너 (Tone and Manner)
- 글자 크기와 색상 (Font Size and Color)
- 정보의 성격 (Messaging)
- 정보의 양 (Quantity)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함과 동시에 네 가지 작업을 아우르는 디자인을 한다는 건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결국 나는 ‘청첩장’ 한 장부터 무턱대고 시작했다.
청첩장 만들기
블로그 및 외국 사례들을 검색해 보니 훌륭한 디자인이 참 많이 있었다. 특히, 미국 결혼식의 경우 다양한 종류의 청첩장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She said yes’ 류는 ‘톤앤 매너’ 부분에서 어른들에게 별로 와 닿지 않을 수 있었고, 또 반대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첩장 – ‘ 햇살이 아름다운 봄날… 소중한 자리에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의 경우 오히려 젊은 층들에 어필하지 않을 염려가 있었다.
애당초 목표로는 청첩장에 쓰이는 종이 재질부터 재생지 내지 두꺼운 수입지 등으로 쓰는 등 ‘고급화 & 차별화’ 전략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주. 결혼식 준비에 필요한 다른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수제 청첩장’등을 검색해서 알아본 결과 본인이 디자인하는 청첩장도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다고 느꼈다.
결국, 최종 웹사이트를 2곳으로 추려본 결과, 가장 가격이 저렴한 사이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보통 수제 청첩장의 경우 다음의 과정을 거친다.
- 원하는 카드 크기를 선택
- 디자인 템플릿을 다운받은 후 디자인 (Adobe Illustrator 사용)
- 이상이 없는지 확인 후 디자인 파일 업로드
- 결제 및 발송
보통 2번 과정에서 직접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여력(시간 및 스킬셋)이 없는 부부가 보통이기 때문에, 많은 분의 경우 디자인이 우수한 청첩장을 고른 후에 메시지와 글귀 등을 바꿔서 청첩장을 만드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나는, 청첩장을 통해서 다음의 원칙들을 담고 싶었다.
- 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요소들만 담을 것
- 성경 말씀이 중심이 될 것
- 결혼을 하는 우리 부부의 ‘이야기’가 전달이 될 것
그렇게 아내와 함께 약 3주에 걸쳐서 디자인한 결과 최종 청첩장은 다음과 같이 나오게 되었다.
청첩장을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바로 저 ‘파스텔 톤’을 정확하게 잡는 것이었는데, 내가 목표로 삼은 색상은 ‘티파니(Tiffany) 블루(Blue)’였다.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티파니 블루는 티파니 사에서 저작권을 등록했기 때문에, 그 어떤 CMYK 코드나 팔레트를 구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 프린터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집 앞에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페덱스 킨코스(Fedex Kinkos)에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정말 말 그대로 색상을 “찾아냈다.” 물론 100% 티파니 블루는 아니지만, 실제 인쇄를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색상이 잘 구현된 것 같아 참 다행이었다.
단 한 장의 이미지로 우리 커플의 삶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그래프’를 사용했는데, 여기에 들어가야 할 중요한 ‘인생 포인트’를 선정하는데에도 아내와 꽤 시간이 걸렸다. 최종적으로 워딩(Wording)은 아내가 많이 신경을 써줬는데, 주로 내가 느낌을 받는 대로 써서 보내면, 아내가 ‘이건 이렇게 바꾸는게 좋지 않을까?’라고 피드백을 보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또한 청첩장 가장 한 가운데에 있는 성경 말씀(이사야서 60장 1절)을 키워드로 요약하고 (arise & shine) 이를 거부감이 없게 표현하는 게 중요했다. 내 친구들은 물론 양가 부모님의 지인분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삶 가운데에 있었던 하나님의 섭리를 거부감이 없게 표현을 하되, 그렇다고 해서 말씀을 아예 빠뜨리지는 않는 선을 찾는 데에 가장 애를 많이 썼다.
포켓 청첩장 만들기
사실 청첩장을 만들면서 포켓 청첩장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청첩장을 주문하는 웹사이트에서 이벤트로 포켓 청첩장을 같은 수량으로 증정한다고 해서, ‘그러면 포켓 청첩장은 어떻게 차별화를 시킬 수 있지?’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
생각해보니 청첩장에 들어가는 콘텐츠 대부분이 우리가 어떻게 교제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위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결혼식 당일 유의해야 할 정보는 충분히 전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포켓 청첩장을 만들 때는 본 청첩장보다 ‘주의사항’ 위주로 디자인했다. 특히 이 부분은 아내와 나 이외에도 양가 부모님과의 사전 커뮤니케이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화환’ 등과 같이 의사 결정을 우리가 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먼저 날씨에 대한 유의사항을 넣었는데, 통계적으로 지난 10여 년간 ‘7월 11일’에 대한 날씨를 살펴보니 약 70~80%의 확률로 비가 왔었기 때문에 우리 결혼식에도 비가 올 확률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결혼식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ㅠㅠ)
또한, 보통 어르신들의 경우 예식 이후에 오래 남아계시기보다는 서둘러 떠나시는 경우가 많은데, 그마저도 예식에 참석하시기 보다는 식사를 하시면서 예식을 보시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는 반대로 친구들의 경우는 예식을 끝까지 다 지켜본 이후에 식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두 그룹을 확실하게 나누기 위해서, 일부러 ‘식사는 30분 전부터 가능’하다는 문구를 넣었다. 이 문구를 통해서 일찍 오실 분들과 예식에 참석을 안 하실 분들에게는 ‘식사’를 유도하고, 직장 스케줄로 늦게 오는 친구들의 경우 예식이 끝나고 식사는 하되, ‘6시 30분’이라는 문구로 예식 시간에 늦지 않게끔 하는 심리적 기제를 심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seven eleven’이라는 단어로 우리 결혼식의 날짜를 더욱더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아예 키워드를 새롭게 뽑아냈고, 색상 또한 티파니 블루와는 확연하게 차별화된 ‘핫 핑크(Hot Pink)’로 선정했다.
순서지 만들기 & 식권 도장 제작
포켓용 청첩장까지 다 만들고 나니 실제 본식에 필요한 ‘순서지’를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예식과는 달리 ‘예배 예식’의 경우, 주로 주일 예배 때 교회에서 쓰는 ‘주보’ 포맷을 빌리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만들기도 편하고, 또 보는 이로 하여금 읽기가 훨씬 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보의 경우 편집해야 할 면이 총 4면에 가까운 데다가 무엇보다 디자인적으로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 할 수 있을 만한 여지가 거의 없었다.
결혼 2개월 전에, 한창 식장을 알아보던 나와 아내는 몇 군데 결혼식을 단순히 ‘식장’을 보기 위해서 갔었는데, 그때 한 결혼식에서 ‘순서지’가 참 아름답게 디자인된 걸 발견했다. ‘아 이렇게 디자인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에 집어왔고, 이를 변용해서 나만의 디자인을 가미했다.
아무래도 ‘청첩장’은 ‘우리 결혼하기로 했어요’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우리’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한다면, ‘순서지’는 ‘결혼 예배가 이렇게 진행이 됩니다’를 알려주는 말 그대로 ‘순서’지였기 때문에, 정말 클래식하고 정갈한 느낌을 담고 싶었다. 그리고 비용 절감을 위해 흑백으로 인쇄하되, 가벼운 느낌을 줄이기 위해서 용지를 조금 두꺼운 미색 용지로 했다. 순서지를 만들면서 ‘찬송가’의 가사가 정확하게 4-4-4-3 포맷이라는 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순서지를 만들면서 아이디어가 떠올라 우리 커플 이름으로 된 도장도 만들었는데, 사실 도장에 있는 이 로고는 모든 곳에 다 쓰였다. 도장을 만든 이유는 아무래도 식사 쿠폰에 찍을 때 필요한 도장을 아무런 의미 없는 것을 쓰기보다는 우리 이름으로 된 것을 만들고 싶었고, 혹여나 차후 이 도장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순서지는 본식에 유용하게 쓰였다.
이렇게 순서지도 만듦으로써 ‘인쇄’해야 할 것들은 모두 다 만들었고, 이제 ‘온라인’을 위해서 만들어야 할 요소가 더 남아있었다.
카톡 청첩장 만들기
온라인 청첩장이라고 하면 모바일에 최적화된 사이트가 우선이다. 그래서 보통 지인들로부터 초대받은 ‘결혼식에 초대합니다’라는 문구의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신부와 신랑이 찍은 스튜디오 사진 및 데이트 스냅 등의 사진들이 10~20장 정도 나오고, 교통 편에 대한 정보와 신랑 신부에게 남길 메시지란 등이 제공되어 있다. 물론 이 방법으로 온라인 청첩장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나는 카톡을 쓰다가 링크를 누르고 ‘웹 브라우저’가 뜨는 것 보다, 하나의 이미지에 모든 걸 담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임팩트 있는 스튜디오 사진을 쓰되, 필요하신 분들에게는 교통 정보도 제공을 하는 ‘이미지 청첩장’을 두 개의 버전으로 준비했다.
주로 나와 아내의 지인들에게는 왼쪽 버전을, 그리고 양가 부모님의 지인분들에게는 오른쪽 버전을 보내드렸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폰 6가 나오지 않았던 때라 (결혼은 2014년 7월, 아이폰 6 발표는 9월), 아이폰5의 해상도에 맞춰서 이미지를 제작했다. (640 x 1136) 대부분이 그러하듯 카톡 청첩장으로 결혼 소식을 처음 알렸고, 이를 토대로 주소를 받은 후에 오프라인 청첩장도 발송했다. 대부분 ‘카톡 청첩장이면 괜찮아. 괜히 돈 들여서 청첩장 보낼 필요 없어’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마다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청첩장이라서 꼭 보내주고 싶어!’라고 대답을 했다.
이야기가 담긴 결혼식 그 이후
결혼이 끝난 후에 청첩장에 대해서 문의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마도, ‘디자인이 잘된 청첩장’이라는 느낌보다는, ‘이야기가 담긴 청첩장’이기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한 친구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느낀 점은, 이렇게 ‘스토리를 담아내려는 시도’가 꽤 긍정적인 효과를 줬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와 친한 친구들조차 나와 아내의 연애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청첩장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 부부가 어떻게 만났고,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덧붙여 부모님의 지인분들께서도 사실 ‘부모님과의 연’으로 인해서 결혼식에 참석은 하셨지만 우리 부부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매우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는데, 청첩장을 읽고 오셔서 그런지 본식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계셨다.
우리 부부도 이제 결혼하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라, 사실 그사이에 결혼한 친구들도 꽤 있었는데, 그때마다 청첩장에 대해 조언을 구하거나 자료를 요청할 때 내가 일일이 답을 해줄 수가 없었고, 이를 또 만들어 주기에는 시간이 꽤 걸렸기 때문에 결국에는 큰 도움을 못 드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청첩장 주문 사이트를 소개한다. 시중에 가장 품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이 괜찮은 사이트다. 카드큐에서 지원이라도 받고 쓴 것 같지만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
- 청첩장 주문 사이트 : 카드큐 – 135mm / 카드큐 – 50mm
덧붙여
청첩장을 만드는 작업이 그렇게 간단한 작업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서 가장 처음에 디자인 시안이 나왔을 때부터, 아내와 함께 계속 파일을 주고받으면서 최종 시안까지 갔던 과정도 올린다.
혹시나 청첩장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거나 다른 파일이 필요한 분들은 개별적으로 문의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표지보다 더 산전수전을 겪은 ‘청첩장 내지’ 디자인 변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