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비슷한 연배의 지인들이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학생-연구자의 진로를 선택했다고 해서 직장인의 길을 가는 지인들과 교류를 중단한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종종 그들의 경험을 상당히 세부적인 지점에까지 들을 수 있었다.
모두가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내 인상에 가장 주의깊게 남은 지점은, 그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의─남들이 부러워할 곳을 포함해─직장에 엄청난 불만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성실하고 의욕이 충만했던 이들조차도 자신이 직장에서 제대로 배우는 것 없이 불필요하게 착취당한다고 생각했고, 첫 직장에 좀 더 오래 머물면서 경력 및 저축을 쌓기로 했던 계획을 수정하고 최대한 빨리 다른 직장을 찾기를 희망했다.
평범한 사람 한 둘의 이야기였다면 그저 흘려들었겠지만, 그들 중 분명히 한국사회에서 상당히 좋은 직장으로 간주되는 곳에 일하는 사람들이 여럿이었고,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손꼽을 정도로 강한 인내심과 절제력을 가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었다(노파심에 말하자면, 나는 누군가를 인정할 때 상당히 높은 평가기준을 적용한다).
무엇보다도 서로 다른 필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형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는 사실 자체가 숙고의 필요를 불러일으켰다. 우리의 시대가 분명 노동-일자리의 공급-수요에서부터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지점에서, 특히 조직화의 지점에서 이 문제를 사고하고 싶었다. 이하는 문제의 내적인 추적을 위한 1차적인 스케치다.
이 글은 학적인 엄밀성을 의도하지 않았을 뿐더러 모든 조직노동에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일종의 추-체험의 기록에 가까운 글에서. 나는 고전적인 제조업이라기보다는 관리 및 사무직 노동의 조직화 문제를 주로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강조해 둔다.
IMF 전과 후의 노동조직 방식 변화
이미 90년대 초반에서부터 기업의 수와 종류는 다양했고 고용형태 및 노동조직방식도 그만큼이나 다종다양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이야기되는 통설을 따른다면, 97년 IMF 위기 전까지 한국 중-대기업의 노동조직방식은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강력한 군대식 위계질서가 있다; 조직은 최상급자에서 최하급자까지 다양한 위계로 나뉘어진 직급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는 수직적이다. 90년대의 문화적 자유주의가 나오기 전까지 한국사회에서 군대는 조직을 구성하는, 다시 말해 복수의 인간들이 집단적 형태의 노동력을 구성하기 위한─좀 더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근대화된 모든 사회에 필연적으로 출현하는 “분업과 협업”이다─가장 지배적인, 어쩌면 유일한 방식이었다. 이는 관료, 기업을 포함해 심지어 군사정권에 대항하는 학생조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군대식 조직이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우위를 전제한다면, 이를 보완하는 체계가 (일본과 공유했던) 종신고용-연공서열이었다. 종신고용(및 그에 결부된 가족생활보장)이 전 구성원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연공서열은 일차적으로 위계질서의 한 부분을 이룸과 동시에 그 자체로, 이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가정 하에서, 구성원 간의 자동적인 교육시스템으로 기능한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차곡차곡 승진하는 구조에서 하급자는 자연스럽게 상급자의 업무를 물려받고 익숙해진다. 상급자로서는 언젠가 하급자가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노동력을 착취하는 대신 어느 정도의 숙련된 업무처리가 가능하도록 교육할 필요가 생긴다(물론 숙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축적/상승되냐는 별개의 문제다).
요컨대 연공서열 및 종신고용보장은, 한국 조직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육군부대 자체가 그러한 것처럼, 상급자가 하급자를 전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조건 위에서 상급자로 하여금 하급자를 과도하게 착취할 유인을 줄이고 동시에 전자가 후자에게 최소한의 노동숙련을 제공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다.
IMF위기 및 대규모 “구조조정”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조직화 방식은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직장의 수요에 비해 노동의 공급량이 늘어났고 노조를 포함해 국가 및 기업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개별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중간세력’의 역할은 현저히 축소되었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업자본이 노동을 조직화하는 방식 쪽이다. 한편으로 연공서열 및 고용보장이 무너졌고,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수용되면서 심지어 사무실 노동에서조차도 성과에 따른 경쟁체제가 도입되었다.
2000년대 초반이 이러한 변화 자체에 충격을 받는 시점이었다면, 새로운 조직모델이 자명하게 받아들여진 10년 뒤의 시점, 다시 말해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떠한 사태가 전개되었는가?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진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구성원 각자를 경쟁하는 주체로 만들어 모두의 효율성을 제고하면 자연스럽게 조직 전체의 효율성이 올라가리라는 사고에 입각해 있었다면, 그러한 예측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맞아떨어졌는가?
나의 지극히 제한된 사례축적에 기초해서 말하자면, 새로운 조직모델은 조직구성원, 특히 하급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나 전반적인 조직의 효율성/합리성 제고라는 측면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다.
막내착취의 문제
가장 미시적인 수준에서부터 시작하자. 오늘날 한국의 상당히 많은 조직에서 일상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는 엄청난 ‘막내착취’다. 조직의 가장 하급자로 들어온 이들은 비인간적인 정도의 노동시간을 제공하도록 요구받는다; 대부분의 막내들은 하루에 8시간 수면을 보장받지 못하며 때로는 주말까지도 반납하다시피 한다. 일의 양도 많지만 갖가지 회식도 그에 못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성장시키기 위한 여가를 거의 보장받지 못하며, 높은 확률로 건강/체력도 악화된다.
그들이 이렇게 경이로울 정도로 많은 노동시간을 소화해야 하는 까닭은 주로 다음과 같다.
- 애초에 인건비가 그다지 높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며 동시에 고용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한국에서 각종 비용절감의 일차적 대상은 인건비이며, 결과적으로 ‘절감’이 더 많이 수행될수록 총 인원수가 줄어들어 한 사람이 담당해야 하는 노동량이 증가한다.
- 일을 보다 효율성 있게 처리하기 위한 제대로 된 교육체계가 부재하다. 전체적인 메커니즘 및 기존에 축적된 노하우를 습득한다면 훨씬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와 같은 직업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 상급자들이 자신의 업무를 거리낌없이 전가한다. 기본적으로 단결된 노동조합의 영향력이 미미한 상황 하에서─한국의 노조조직률은 매우 낮으며 그 영향력도 제한적이다─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대식 위계질서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고, 따라서 전자가 후자에게 자신이 수행해야 할 노동을 떠넘기는 것은 흔하게 벌어진다.
막내착취문제는 보다 핵심적인 문제, 즉 중간관리자 문제의 동전의 뒷면과 같다. 조직의 최하급자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는 직군을 중간관리자로 명명한다면, 막내착취의 핵심적인 요건은 조직이 중간관리자를 제대로 통제/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간관리자 통제/활용의 문제
인건비절감으로 인해 노동력 자체가 줄어드는 것을 논외로 한다면, 하급자의 미숙련은 중간관리자가 하급자의 숙련을 높이기 위한 교육을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며, 하급자의 업무량 상승은 중간관리자가─때로는 그 자신도 상급자의 업무를 떠맡게 되기도 하는데─자신의 업무량을 하급자에게 전가함을 의미한다; 그것이 때로는 (역시 한국에서 흔히 벌어지는) 성과의 강탈이 되기도 한다. 한국 조직의 뿌리인 군대를 예로 든다면, ‘가르쳐주는 건 없으면서 자기 일만 떠넘기는’ 선임을 생각하면 된다.
문제는 이런 ‘선임’들이 일반적인 조직에서도 엄청나게 많이 출현하고 있고 동시에 이들의 행위를 제약할 제도적/비제도적 조건들이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바꿔말하자면 중간관리자에 의한 하급자 착취는 조직에서 중간관리자를 제대로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을 의미한다; 막내에게 엄청난 양의 일을 떠넘기고 본인은 핸드폰 게임만 하다가 퇴근하는 중간관리자들의 상은 생각보다 흔한데, 이는 조직 자체의 무능력이기도 한 것이다.
이미 ‘부조리’에 대한 경계가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이것이 지휘관의 진급에 즉각적인 영향을 주는 군대에서는 의외로 막내를 보호하거나 중간관리자(주로 선임병)을 견제하기 위한 갖가지 방안이 고안/적용되어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노동력의 착취를 더욱 더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 한국의 일반적인 조직문화에서는 중간관리자가 하급자의 노동을 적극적으로 착취하는 것을 제약하는 시스템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중간관리자에게 상당한 힘을 실어주지만 역으로 바로 그 중간관리자를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하는 구조적 약점이 생긴다. 중간관리자는 상급자에 의한 직접적인 관리통제 하에 있지 않는 한 가시적으로 측정된 성과만으로 스스로의 ‘효율성’을 입증하며, 그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직은, 특히 크고 복잡한 조직일수록 알아내기 어렵다.
이러한 조건은 막내들에게 다음과 같이 작용한다.
- 직장 내 교육을 거의 받지 못하므로 업무의 효율성이 낮으며 때때로 장기간의 업무량축적을 통해 숙련이 제고되는 경우에도 대체로 한계가 있다. 사무직의 업무효율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직 전체의 업무프로세스 이해에 도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과도한 노동시간은 그들의 자기교육─독서 및 사고능력을 제고시키는 기타 활동─시간을 극도로 제약하며, 더 큰 문제는 그들의 체력 및 열정이 매우 빠르게 소진(burn-out)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직장을 혐오하게 되며 오로지 금전적 보상과 경력 축적만이 그들의 업무동기가 된다.
- 특히나 업무이해도 및 작업수행의 효율성이 뛰어난 하급자일수록 (그의 성과를 약탈하기 위한) 중간관리자들의 적극적인 착취대상이 된다. 이를 막아주는 제도적/비제도적 제약이 없을 때 이들은 상대적으로 무능력한 자신의 동료들보다 더 많이 착취/소진되며 결과적으로 더 빨리 조직을 떠난다. 자신의 유능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탈출도 그만큼 더 쉽다(직장을 다니다가 로스쿨이나 전문직으로 들어오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리고 위와 같은 상황은 조직 전체에 다음과 같이 작용할 수 있다.
- 유능한 사람들이 떠나고 무능한 생존자들이 더 많이 남을수록 조직의 업무효율이 하락한다. 중간관리자가 될 때까지의 기간을 생각해보면 생존하는 인원 중 유능한 구성원들의 비율은 더 적다.
- 유능한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데 실패한 조직은 업무효율이 낮고 (자신이 보고 배워온 바에 따라) 그만큼 하급자를 착취할 준비가 된 무능한 중간관리자를 양성하거나 외부에서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중간관리자를 채용한다. 후자의 경우에도 그들은 막내의 시점에서부터 이 조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한 이해도의 하락은 감수해야 한다. 가장 아래에서 위까지 아우르는 시야를 가진 중간관리자 계층은 점점 줄어들고, 이른바 ‘허리’가 약해진 조직이 집단노동을 수행하기 위한 전체적인 효율성은 필연적으로 감소한다.
- 조직 전체의 업무처리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를 갖춘 유능하고 경험많은 조직구성원이 없을 때 조직의 합리성 제고 및 업무방식의 갱신은 이뤄질 수 없다. 이 역시 효율성의 하락을 초래한다.
- 효율성이 하락한 조직은 구성원들(주로 하급자들)에게 더 많은 노동량을 부과하거나 인건비를 더 절감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 이 선택은 마치 나사못의 회전처럼 위의 사이클을 더 반복/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조직의 효율성/생산성은, 특히 기층부분에서 계속해서 하락한다. 고급 노동력을 유치하기 위한 더 많은 투자를 제외하고는 이를 만회하기란 힘들다.
모두가 합리적 개인이 될 때 조직 전체의 불합리는 더욱 커지는 역설
효율성 하락과 막내착취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건 하에서 배태된다.
- 상급자의 하급자 착취를 제약하는 기제가 형성되지 않았다.
- 중간관리자는 주로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층위에서 측정되는 업무성과를 내도록 내몰리며, 필연적으로 막내착취에 접근하게 된다.
- 생존경쟁 및 성과급체제처럼 개개인 혹은 팀 단위의 성과만을 측정하는, 다시 말해 구성원들로 하여금 조직 전체가 아니라 개인 또는 팀의 입장에서만 사고하게 만드는 제도 하에서 조직애를 포함해 조직을 하나의 공동체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은 배태될 수 없다; 조직 전체의 입장에서 사고할 수 있는 구성원은 조직 최상층에 속해 있는 소수의 관리자 뿐이며, 이들 역시 생존경쟁에 노출될 때 그러한 사고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어떤 면에서 잦은 회식은 조직애/공동체정신의 결여를 보충하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기도 하다─그것이 대체로 의도된 바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지만.
- 바꿔말해 조직의 모든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단기적인 이윤만을 추구하는 ‘합리적 개인’이 되었을 때 1과 2의 기제가 합쳐지면 업무전가를 포함한 막내착취는 더욱 증대한다.
조직원이 ‘합리적 개인’이 되는 사태는 조직의 입장에서 조직원들을 문자 그대로의 ‘인간 자원’으로 보는 사고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정확히 말해 후자의 사고체계가 전자의 사고체계를 초래한다.
물론 모든 조직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을 자원으로 간주하는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그 효율적인 작동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인간자원을 착취하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야 조직구성원의 충성도를 확보하고 조직 전체의 업무처리 및 효율을 사고할 수 있는 구성원을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IMF 위기 이후 한국의 조직문화는 빠른 속도로 그러한 시늉조차 하지 않는 조직이 되어갔고 인적자원을 최대한 빨리 많이 착취해서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턴 및 비정규직을 극도로 착취하는 ‘블랙기업’의 등장은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다.
스스로가 착취의 대상으로서의 자원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구성원들은 자기 자신의 성과를 축적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이것은 종종 신자유주의적 믿음─개개의 효율성 증진이 전체의 효율성 증진으로 이어진다는─과는 달리 개개의 효율성 증진이 다른 구성원들 및 조직 전체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는다. 막내착취 및 중간관리자 문제는 이를 보여준다.
기업 내 교육시스템의 부재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거의 모든 조직에 만연한 ‘교육시스템의 부재’ 또한 생각해볼 수 있다. 특히나 대부분의 기업조직은 주로 정신교육에 가깝게 이루어지는 연수과정을 제외하고 조직 내에서 노하우가 전달될 수 있는 지식재생산과정을 갖추어놓지 않았다. 빠른 업무투입과 중간관리자에의 복속이 새로운 구성원의 노동숙련 및 조직이해를 자연스럽게 촉진시킬 거라는 기대는 중간관리자가 ‘합리적’으로, 다시 말해 후임을 양성하는 대신 착취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때 헛된 망상이 되어버린다.
이는 심지어 이른바 ‘진보언론’을 포함한 언론계도 마찬가지다; 좋은 기자가 잘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수습제도가 노하우 및 업무최적화 방식의 합리적인 전달이라기보다는 정신교육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지극히 후진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수사회 대부분도 다르지 않다.
자신들이 교육과정 혹은 ‘최적화 과정’을 포기한 기업들은 이 비용을 대학에 전가시키지만─취업률에 따른 대학평가나 ‘돈 되는 학문’ 위주의 학과구조조정은 이러한 욕망의 발현이다─이는 애초에 지극히 미미한 효과를 내는 헛된 시도에 불과한데, 결국 모든 조직은 고유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며 이러한 성격에 적응하는 것은 조직 외부의 교육에서가 아니라 조직 내부의 교육과 전수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문사회자연과학 전공을 줄이고 경영/공학을 늘려봐야 결국에는 (공학적 전공소양이 필요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어차피 조직 내에서 재가공해야 하는 ‘광물덩어리’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역으로 기업들이 한국의 대학교육을 완전히 장악하고 조직 내 교육비용을 최소화하는 순간 기업조직의 효율성은 확연히 하락할 것이다.
결론: 어떻게 조직을 효율적으로 구성할 것인가?
결국 조직효율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남는다.
- 조직 내 상급자-하급자 착취를 어떻게 효율적인 협업-분업관계로 재구성할 수 있는가?
- 어떻게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합리적 개인’이 아니라 조직 혹은 공동체의 일부로 재구축할 것인가?
- 어떻게 업무 노하우 및 높은 조직이해도를 효과적으로 새로운 구성원에게 학습시킬 수 있는가?
- 어떻게 유능한 조직원을 양성하고 잔류/승진시켜 조직을 위해 복무하게 할 것인가?
- 조직효율성/합리성을 지속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체계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요컨대 외부에 의한 컨설팅이나 구조조정처럼 리스크가 큰 방안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 내에서 지속적인 개선/발전의 기제를 생성시킬 수 있는가?
- 최종적으로, 어떻게 조직이 효율적으로 구성될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 비제도적인 측면으로서의 조직문화와 이어져 있지만 동시에 그러한 조직문화 자체가 어디까지나 제도적인 요건 위에서 배태된다는 것이다.
구성원을 한갓 일회용 자원으로밖에 대하지 않는 조직은 동시에 구성원이 조직을 ATM으로 대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결국 모든 시스템은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