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랍인 조르바>는 남자 읽으라고 쓴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한때는 저 책을 참 좋아했더라만, 저 책이 상정하는 ‘인간’은 남자인 거지. 여자는 거기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책 안에서 여자를 보는 시각도 뭐 도저히 좋다고 할 수는 없고. 솔직히 같이 잠을 잔 여자들 체모를 잘라서 베개 속을 채우는 남자의 이야기에 열광만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말이지.
물론 옛날 책이니 지금에야 남자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를 넘어서 차용할 수 있는 삶의 태도라는 것이 없지 않겠지만. 예를 들면, 투철한 준비 정신 같은 거? 언제 여자랑 잠을 잘지 모르니 가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그런 남자, 조르바. 그러니 여전히, 남자의 책.
신문에서 ‘홀로 인도 장기여행’을 권하는 글을 보았다. 삶이 두렵거든 인도로 가라고 그러더라고. 용기를 내서 인도로 가라는 것이다. 그러하면 ‘관념’의 세계에서 ‘현실’로 넘어오게 된다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 혼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안에서 깨어나더라고 했다. ‘홀로 인도 장기여행’을 통하여. 좋은 말인 거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인도에서는 두 살 여자 아기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 다음 날에는 다섯 살짜리가 성폭행을 당했다. 둘 다 윤간이다. 인도 경찰은 범인을 잡기 위한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들었다.
지난 2013년에는 버스에 타고 있던 여대생이 윤간을 당한 끝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범인은 늦은 시간에 버스에 타고 있던 피해자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범인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 인도의 정치인이나 미디어가 강간 피해자를 비난하는 건 꽤 흔한 일인 것 같더라고.
하여간 이 사건으로 인하여 성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으나 상황이고 인식이고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다. 델리에서는 작년에 삼천 건의 성폭행이 있었다. 인도 전역에서 보고된 성폭행은 3만 6천여 건이다. 보고되지 않은 것까지 합하면 당연히 더 될 것이다. 2012년에는 2만5천 건이었으니 오히려 수치 급상승 중이다.
외국인이라고 하여 안전할 리가 없지 않나. 영국 신문에서는 꽤 단골로 나오는 기사인 거 같다. 인도에서의 성폭행의 위험성. 호텔에 투숙했더니 호텔 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왔더라, 영국인 처자가 2층에서 뛰어내려 겨우 도망갔다더라. 뭐 이런 사건 말이다. 2013년엔 동네 주민 여덟 명이 힘을 합해 남편을 제압하고 캠핑 중이던 스위스 여성을 윤간한 일도 있다. 정치인이 러시아 여성을 강간하고 오히려 비난한 일도 있고. 따라서 여러 나라들이 자국민 여자들을 대상으로 인도는 비록 무리를 지어 다녀도 위험한 나라라는 주의 사항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홀로 인도 장기여행’을 권한다고라. 말하자면 해당 칼럼도 역시 남자들 읽으라고 쓴 글 되겠다. 필자는 사소한 사기 정도야 신세계를 경험하려면 백 번쯤은 당해도 좋을 것들이라고 했다. 그러게, 사소한 사기 정도는 여자들도 견딜 만 하다.
그러나 여자가 홀로 인도를 그것도 장기간 여행할 때 노출되는 위험은 사소한 사기 정도가 아닌 것이다. 여자들의 삶은 인도에서도 여전히 두려울 수 있다는 거지. 뜻밖에 남자와 여자는 다른 세계에서 산다고. 인도가 뭔가 명상이나 하여간 뭐 그런, 자기를 돌아보는 종교 활동 좋아하는 분들이 좋아하는 나라인 건 알겠는데, 뽐뿌질을 하는 글을 쓸 때는 위험도 짚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가지 마라, 인도. 적어도 나를 찾는답시고 홀로 장기여행은 절대로 가지 말라고. 이건, 여자들에게 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