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이 사람들의 손에서 떼어낼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린 지금, 현대인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또 하나 늘어난 것 같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재미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스트레스’입니다. 잠시라도 상대방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내 앞의 상대방은 바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옮겨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끊임없이 재밌어야 하는 스트레스
여러 사람 앞에서 강연하는 자리, 다같이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도, 이야기가 잠시라도 흥미롭지 않다 싶으면 사람들은 이내 스마트폰을 꺼내 세상의 온갖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탐험하고 다닙니다. 그래서 요즘 강연자들은 참석자들이 스마트폰을 꺼내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해요.
이는 비단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강연자뿐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폰이 없는 시대에는 둘이 있을 때 사람들은 ‘지루한 순간’에 관대했습니다. 둘 사이의 대화가 끊기거나 지루해지더라도,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새로운 대화거리를 찾고자 함께 노력하기도 하며 지루한 순간을 극복해갔습니다. 이를 통해 동지애(?)를 나누며 더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가곤 했었죠. 소개팅 자리에서 재미없는 사람들이 살아남아 인연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지루한 순간에도 상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관대함이 있었기에 가능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 앞의 상대방의 관심과 눈빛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스마트폰과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잠시라도 이를 게을리하면, 내 앞의 그/녀는 페이스북과 카톡방에서 나보다 더 재밌는 세상을 찾아나설 테니까요.
즐길 수 없는 ‘지금 이 순간’
전 요즘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아들이 다니는 축구교실에 따라가는데요, 저도 습관적으로 아이의 축구시합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꺼내 들곤 합니다.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의 UEFA 결승전 하이라이트 동영상을 보고 네이마르의 결승골 장면을 돌려보죠.
그런데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바로 내 아이가 네이마르보다 더 멋진 몸짓과 열정으로 잔디밭을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오직 지금 이 순간만 볼 수 있는 내 아이의 결승전 하이라이트 장면이죠. 이런 소중한 순간을 스마트폰의 하찮은 흥미거리 때문에 놓치고 있었다는 생각에 저 스스로 부끄러운 맘이 들곤 한답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이 순간만 담을 수 있는 내 아이의 땀방울,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강연자의 소중한 경험담을 스마트폰에 빼앗겨 버리고 사는 것이 아쉽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을 두고 살기엔 우린 이미 너무나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직장에서 급한 연락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 스마트폰을 꺼버리거나 집에 던져두기엔 뒷일을 감당하는 것이 두려운 세상이지요. 스마트폰에 매어 현재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는 않으면서, 꼭 필요한 최소한의 연락은 받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은 어디 없을까요?
현대인들의 바로 이 고민을 해결해줄 새로운 스마트폰,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스마트폰’이 개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스마트폰?
이 작은 신용카드 모양의 기계가 바로 여러분들을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줄 스마트폰” 입니다. 이 작은 명함 같은 것이 스마트폰이라니 이상하죠?
라이트폰(Light Phone)이라고 불리는 이 작은 스마트폰은 실제로 올해 5월부터 개발에 들어가 내년 5월에 출시될 새로운 형태의 스마트폰입니다. 하얀 종이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이 기계가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들 의심스러우실 거예요. 어떻게 우리를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어줄지도 궁금하시겠죠.
아니, 전화만 걸고 받을 수 있는 기계가 어떻게 ‘스마트폰’이라는 거죠? 이건 마치 처음 휴대전화가 나왔을 때, 문자 기능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도 되지 않던 ‘벽돌폰’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이런 여러분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라이트폰은 스마트폰이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기존 스마트폰에 연동된 세컨드 폰의 기능
이 단순한 기능의 기계가 스마트폰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에 연동시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스마트폰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을 때, 하지만 중요한 전화는 놓칠 수 없을 때, 여러분의 스마트폰을 집에 두고 이 라이트폰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문자 등은 여전히 여러분의 스마트폰에 전달되지만, 여러분이 들고나간 라이트폰에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오직 걸려온 전화만 라이트폰으로 연결되는 거죠.
“급하면 전화하겠지, 뭐…”
바로 이 생각이 라이트폰에 담겨있는 철학(?) 입니다.
심플함과 휴대성의 극대화
스마트폰이든 유선전화든 세상의 모든 전화기를 통틀어 이렇게 심플한 전화기 보신 적 있나요? 가로 5.3cm, 세로 8.5cm에 두께는 4mm밖에 되지 않습니다. 딱 신용카드만 한 크기에, 무게는 기존 아이폰의 1/10밖에 되지 않지요. 지갑에 넣고 다니거나 호주머니에 넣어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 크기입니다. 여러분의 스마트폰에서 수만 가지 기능들이 빠져나간 만큼 라이트폰은 더욱 심플해지고 가벼워지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작다고 해서 전화기의 기능이 부실한 것도 아닙니다. 원래 스마트폰의 전화가 걸려올 뿐만 아니라, 전화를 걸 수도 있습니다. 라이트폰의 표면을 길게 터치하면 LED 빛이 켜지면서 숨겨져 있던 다이얼 버튼이 나옵니다. 이 버튼을 눌러 필요한 전화를 걸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기계가 새로운 기능을 더하고 더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 이렇게 빼고 빼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 사람들은 바로 조 홀리어(Joe Hollier)와 카이웨이 탕(Kaiwei Tang)입니다.
디자인 아티스트인 조와 모바일 기기 개발자인 카이웨이는 작년 구글에서 개최한 한 이벤트 행사에서 처음 만나 의기투합하게 됐다고 합니다. 이 두 사람의 기발한 생각은 사실 그동안의 풍부한 경험과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요. 애니메이션,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쌓은 조는 작년 전 세계 젊은 탑 디자이너 20명 중 한 명이었고, 10년이 넘는 모바일폰 디자인 경험을 가진 카웨이는 지금까지 12개가 넘는 핸드폰을 개발해낸 베테랑이라고 합니다.
내년 5월 출시예정인 이 라이트폰의 가격은 $100이라고 합니다. 급박한 일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면서 현재의 소중한 순간에 연결되어 있을 수 있는 값어치로 $100,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드네요.
“당신을 보내세요”
라이트폰에 대해 생각하면서 문득 예전에 보았던 KTX의 홍보 문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당신을 보내세요”라는 문구였는데요,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문자 한 통 달랑 보내기보다 직접 찾아뵈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나름 기발했지요. 마침 이 라이트폰의 개발자인 조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하네요.
“문자를 보내지 말고 목소리를 전하세요. 카메라로 찍지 말고 눈으로 담으세요.”
라이트폰이 출시되는 내년 5월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100의 돈을 들여 라이트폰을 손에 넣지 않더라도, 잠시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스마트폰에 빠져 잊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고개를 들면 당신의 아이가 밝은 미소로 땀 흘리는 모습도 볼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눈빛으로 쓰다듬는 감촉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잠시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바라보는 노력은 라이트폰의 디자인 만큼이나 심플하답니다.
원문: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