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학진학율은 엄청나다. 70%에 육박한다.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에 대해 좋은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대학을 가고 싶어서 가는 것이 아닌, 그냥 별 생각 없이 가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잉’ 학력이라는 주장
무엇보다 ‘과잉학력’이라는 주장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삼성연구소는 ‘과잉’ 대학진학으로 인한 비용이 19조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산활동을 할 경우 GDP가 1% 상승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SERI, www.seri.org)는 2012년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이라는 연구자료를 발표 하였는데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교육의 국민경제 기여도가 감소하는 추세이며, 과잉진학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연간 최대 19조원에 달한다. 대졸 과잉학력자 42%가 대학진학 대신 취업하여 생산활동을 할 경우 국내 GDP 성장률은 1.01%p 상승할 것으로 추정된다. 과잉학력의 악순환 차단을 위해 고졸자에게 적합한 일자리 개발, 능력중시 인사, 교육의 질, 학력중시 풍토 개선이 필요하다.”
같은 시기에 국가차원에서는 고학력인플레이션이 거론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졸채용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고조와 선취업 후진학, 기업대학 등의 정책들이 발표 및 적용되기 시작했다.
─ 김정권 칼럼,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 중에서
이 글에서 글쓴이는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지나치게 높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대학을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모든 사람들이 대학교육 수준의 높은 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모두가 똑똑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만다 리플리는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라는 책을 썼다. 교육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과 핀란드, 그리고 좋지 않은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는 폴란드에서 공부한 미국 학생들의 수기를 모집해서 미국과 교육 선진국들의 교육을 비교한 책이다.
미국은 대학 진학률은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졸업률은 낮다. 진학률도 한국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PISA등에서 보여지는 학생들의 성적은 더욱 심각하게 낮다. 그럼에도 1인당 교육 관련 진출은 세계 1위다. 가장 많은 투자와 가장 좋지 않은 성과, 그야말로 교육 후진국이다. 하지만 미국은 경제 최강국이다. 뛰어난 연구기관을 통해 전 세계의 인재들을 모아서 자신의 인재로 만든다.
이쯤되면, 미국은 교육이 별로 좋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닌가?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뛰어난 교육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고등교육이 필요한 이유를 저자는 두 가지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Case 1. 맥도날드에 납품하는 애플파이 만드는 공장 종업원
공장의 단순 근무자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아만다 리플리와 인터뷰한 회사 사장은 쓸 만한 사람이 없다고 불평했다. 공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업무 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소통해서 프로세스를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기본적인 읽기, 쓰기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이유다.
Case 2. 세일즈맨
과거에는 세일즈맨은 용감하고, 관계 잘 쌓고, 술 잘 마시면 됐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지식이 없어도 성공하는 대표적인 직업군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지금은 상품과 시장이 복잡해졌다. 또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고객이 상품의 정보를 꿰고 있는 이상, 관계만으로는 거래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의 영업사원은 엔지니어처럼 상품과 시장에 능통해야 한다.
지금의 미국은, 이런 인력이 모자란다고 저자는 잘라 말한다. 대학 졸업률이 50%가 되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체 학력이 너무나도 떨어진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세일즈맨, 공장 종업원처럼 일반적으로 ‘대학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알려졌던 직업을 준비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독일식 직업교육 역시 비판 받고 있다
직업교육 위주인 독일식 교육에 대한 비판도 최근에는 등장했다. 독일은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아이들의 진로를 정한다. 절반의 학생들이 직업교육으로 빠지고 상대적으로 쉬운 교육을 받는다. 따라서 전반적인 학력이 급락했다. 과거에는 이런 교육을 통해 실업률을 낮추는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과연 사칙계산, 기본적인 독해 교육을 약하게 받은 아이들이 미래의 직업에 대처할 수 있느냐에 대한 비난을 받고 있다.
홀거 셰퍼(Schaefer·46) 수석연구원은 “독일의 교육 시스템은 과거 고 실업률 상황에서는 빛을 발했지만, 최근 저출산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거론된다”고 말했다.
─ ‘듀얼교육 시스템 과거엔 빛 발했지만 저출산 시대엔 경쟁력 약화 요인’
교육은 마치 공기, 하수도관, 복지제도 같은 공적 자본이다. 다른 공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들은 그 좋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없어져 봐야 그 불편을 느낀다. 교육 수준이 높아서 기본적으로 사칙연산, 독해를 잘 하고 시간 지키고 마약 안 하는 사람들이 넘치는 나라는 그 이익을 잘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아시아보다 평균 학력이 떨어지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그런 인재조차 찾기 어렵다.
한국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학력 과잉’은 학력 부족보다는 훨씬 좋은 일이다. 전 국민이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단순 노동직이 점점 사라지고 지식 노동만 남을 가까운 시대의 미래에는 더욱 그렇다.
원문: 김은우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