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쭈구리고 있었더니 온몸이 너무 아프다.
이 근처에 우리 회사 사람은 없겠지?
에라 모르겠다. 술도 한잔했겠다, 얘기나 좀 해야겠다.
1.
어느 날 J 과장님과 함께 외근 중인 곳으로 팀장님이 방문(습격)하셨다. 셋이 함께 밥을 먹는 내내 팀장님은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셨다.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며 밥 먹는 데 집중하다가, 가끔 내게 물어보시는 것이 있으면 아는 건 대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르겠다 확인해 봐야겠다- 고 말씀 드렸다. 업무와 관련된 문답은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시간에까지 주욱 이어졌다. 이건 밥을 먹고 후식을 먹는 건지 회의 중에 배만 채운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좀 집중해서 들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정신을 차리려는 순간,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너 왜 이렇게 멍하냐. 무슨 일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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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 날도 어김없이 과장님과 함께 외근 중이었다. 잠깐 바람이나 쐬자며 밖으로 날 데려간 과장님은 별다른 말 없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내게 툭- 한마디를 건넸다.
“주위 친구들이나 동기들 중에 일을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어요?”
“아니요, 없습니다. 아!! 몇 명 정도는 있는 것도 같네요.”
3.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만나 술을 한잔할 때였다. 친구들은 모두 군대 휴가 나와서 모인 놈들마냥 ‘누가누가 더 힘든가?’ 배틀을 시작했다.
“우리 상사는 정말 별로야!”
“나는 제 시간에 퇴근하는 적이 절대로 없지!”
“난 출근 시간보다 1시간씩 의무적으로 일찍 출근하라는 소리를 들었어!”
“나는 퇴근 후 약속을 잡을 거면 미리 보고하고 잡으라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이처럼 실로 쟁쟁한 후보들이 난립하여 순위를 정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려는 찰나, 한 녀석이 모두의 심금을 울리는 말을 했다.
“일로 자아 성찰을 하고 자기를 성장시킨다고 누가 그랬냐?
삶의 행복과 완성은 퇴근 후 라이프에 달려있는 거 아니냐?”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우리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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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일이 재미있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누가 물어봤는지에 따라 대답의 수위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내용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은 딱히 재미가 없네요. 나름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10년 후의 제 모습이 지금의 제 모습과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력이 크게 늘 것 같지도 않습니다. 퇴근 후의 삶에서 행복을 찾아보려고 해도 퇴근 시간이 보장되지 못하니 그것도 어렵네요.” 라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삶은 ‘회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너무나 식상한 수식어지만 직장 동료들은 가족들보다도 많이 보고, 앞으로의 내 삶에서 회사는 집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 되어 버렸다. 이 일을 한다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주는 것이고, 나의 개인적 일정마저도 회사의 일정에 맞추어 조정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회사가, 그리고 그 회사에서 하는 일이 재미가 없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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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 회사에 있는 높으신 분들은 자기 젊은 시절에 일을 정말 재미있게 한 사람들이야. 뭘 해도 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회사도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원서를 넣으면 어지간해선 합격했고, 그 회사에 들어가서 뭘 만들더라도 신나게 팔려 나갔어. 그중에서도 더 열심히, 더 즐기면서 일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금 너희가 입사에서 만나는 상사들일 거야. 그 사람들은 일이 재미없다는 것 자체를 이해를 못 해.
‘나 때는’ 정말 재미있고 열심히 일했고 거기에서 성취감, 보람, 보상까지 한 번에 얻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너희 시대는 그렇지 않지. 들어가고 싶은 회사는커녕 들어가고 싶진 않지만 돈은 벌어야 하니까 한번 지원해본 회사에서조차 떨어지고, 어찌어찌 회사에 들어간다 쳐도 그저 부속품이라는 느낌만 받을 거야. 저 사람들이 말하는 ‘나 때는’처럼 나름 열심히 일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성취감? 보람? 보상?
그런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지.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이 일을 몇 년을 더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면 답이 안 나와서 막막하고, 혹시라도 그 10년 후의 모습이 내가 싫어하는 눈앞의 상사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거라고 느껴지면 절망하게 되지.
전문직에 있으면 사실 일찍 퇴근해서 집에 일찍 가는 것보다 일을 좀 더 하더라도 자기가 궁금한 걸 찾아가며 해결해서 지식을 쌓고, 거기에서 보람을 느끼고 하는 게 개인 커리어 상으로는 훨씬 좋은 일이야. 그렇게 하다 보면 T자형 지식 중에 세로축이 깊어지는 거고, 운이 좋으면 그렇게 긴 세로축을 몇 개씩 더 만들 수 있는데 요즘 세상은 세로축을 만들 기회는 거의 없잖아?
여기에도 넣고 저기에도 넣는 구색 좋은 멀티 플레이어를 원할 뿐이지.
먹고 살려면 T 자중에 가로축이라도 최대한 길게 넓혀.
요즘 세상에선 억지로라도 일에 동기부여를 해야 버텨.”
한 마디 한 마디가 다 내게 하는 이야기 같아서 들고 있던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넘겼다.
억지로라도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내일은 내 일을 좋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늘어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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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생의 진리는 술자리에서 나온다는 말이 사실인가 봅니다. 술 한잔 하실래요?
원문: 오피스N / 필자: 쭈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