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국회에서는 ‘과도한 게임이용문제의 해법’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안’ 및 ‘인터넷게임중독 치유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통칭하는 소위 ‘손인춘 법안’의 공청회 성격을 가진 토론회였다. 이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던 사람으로서 이 토론회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 회장에서는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 글을 통해 그 주제들을 하나씩 살펴보려고 한다.
1. 손인춘 법안은 게임금지법이 아니다.
우선 이 점은 명확히 해야 한다.
손인춘 법안의 내용을 검토해보면 이 법안이 게임을 마약과 같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차단하려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발표자였던 이장주 박사가 자동차사고 사망자 통계를 언급하면서 게임과 비교를 했는데 사실 자동차도 그 위험성에 상응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규제당하고 있다.
일단 도로교통법규 및 자동차 보험이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실질적으로 자동차의 운행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지 사고 시 운전자의 상해 정도를 낮추는 기능만 하는)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의무적으로 장착한다. 게다가 요즘은 충돌사고 시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얼마나 보장하는지에 대한 검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그 검사결과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런 제도들이 있기에 자동차가 실제로 위험한 존재임에도 사회에서 용인하고 이용하는 것이다.
손인춘 법안의 취지도 그와 다르지 않다. 게임이라는 (적어도 입법자들에겐) 새로운 매체의 영향력(혹은 위험성)에 상응하는 사회적 제도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런 취지에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취지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다. 현실성이 없거나 잘못된 전제에 기반을 둔 방법을 사용한다면 법안의 취지를 달성하기는커녕 새로운 문제만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2.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은 있다.
게임에 대한 논쟁이 양측의 평행선으로 끝나곤 하는 첫 번째 이유는 게임중독의 존재를 인정하느냐의 여부부터 양측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발표자들은 “게임 중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나도 게임 자체가 중독의 원인은 아니라는 견해다.
하지만 소위 ‘게임중독’이라 불리는 증상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유 토론 시간에 장황하게 의견을 피력한 고영삼 연구원의 주장처럼 우리나라에는 자녀의 ‘게임중독’으로 고통받는 학부모들이 엄청나게 많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고영삼 연구원조차도 게임중독자 당사자가 아닌 그 부모의 고통을 언급했다는 점이다. 그가 말하길 자신이 근무하는 상담센터의 상담실에는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대개의 소위 게임중독자들은 그 자체로 고통을 겪지 않는다. 부모가 힘들지. 이건 게임중독이라 불리는 증상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그들의 고통은 실재하는 것이고 그 가족구성원들은 단순히 고통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위협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런 법안을 추진할 이유가 없었으니 게임중독이라 불리는 증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토론이 진행될 수 있다.
중독이라는 현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대상이 게임이 될 수도 있다.
단, 게임은 대부분의 중독물질에 비하면 가장 덜 심각한 중독의 대상일 거다.
3. 게임중독유발지수는 많이 팔리는 게임이 중독성 있는 게임이라는 논리
문제는 중독유발지수라는 개념이다. 손인춘 법은 각각의 게임들은 중독유발지수로 평가할 수 있으며, 이 법안은 바로 그 중독유발지수가 높은 게임만을 대상으로 적용하겠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현재 제시된 중독유발지수의 세부항목들은 유저들 간의 경쟁, 아이템의 환금성, 협업의 요구, 도박성(예측 불가능성) 등이다. 문제는 이 중독유발지수와 재미의 요소를 분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즉 재미는 있는데 중독유발지수는 낮은 게임이 있거나, 재미는 없는데 중독유발지수만 높은 게임이 있겠느냐는 거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중독유발지수는 게임의 재미수준을 의미한다. 그리고 재미의 수준은 게임의 흥행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법안에서 말하는 ‘중독유발지수 높은 게임’은 결국 ‘현재 인기 있는 게임’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 법안은 중독성을 기준으로 게임회사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흥행이 잘 되는 게임의 운영업체를 대상으로 하는 법안이 된다.
이게 타당한가? 앞서 자동차의 예를 인용하자면, 이 법안은 결국 특정한 자동차 모델이 많이 팔릴수록 제조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부담을 추가로 더 부여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독점 규제와는 다른 맥락이다). 이런 법안이 입법 가능한가? 이것이 과연 합리적인 규제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게 급진적인 좌파 정당 국회의원의 법안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손인춘 의원은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중시(해야)하는 보수당의 의원 아닌가?
실제로 게임중독유발지수의 지표들은 현재까지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게임의 재미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로 지적된 것과 거의 일치한다. 당연하다. 이 지표 개발에 참여한 학자들이 몰입 flow과 재미의 요소들을 기초로 이 지표를 구성했으니까. (아니 그보다는 게임이라는 활동 자체가 필연적으로 위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위의 추정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4. 게임은 단순하지 않다
중독유발지수는 가설적인 지표일 뿐이다. 중독유발지수의 논리에 따르면 이 지수가 높은 게임이 더 많이 흥행해야 한다. 이 지수가 타당하고 신뢰할수 있다면, 다시 말해서 정말 이런 요소가 명확히 측정 가능하고, 그에 맞춰서 게임을 만들기만 하면 흥행이 잘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와는 반대다. 각 게임의 개발비는 수십억에서 수백억에 이르기도 하므로 출시한 게임의 흥망은 게임회사에겐 매우 심각한 문제다. 그러니 게임회사야말로 신뢰할 수 있고 타당한 중독유발지수를 절실하게 원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그런 확실한 기준이나 지표는 찾지 못했다.
게임 회사에서도 대부분 위에서 제시한 중독유발(혹은 재미/몰입유발) 요소를 고려해서 게임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게임은 흥하고 어떤 게임은 망한다. 심지어 이런 요소에서 조금 어긋난 것 같은 게임이 뜻밖에 흥하기도 하며 한동안 잘 되던 게임이 순식간에 망하기도 한다. 게임의 흥망성쇠는 사실상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게임은 그 자체로도 단순하지 않고, 게임 자체로만 평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회사 경영진이 게임을 보는 관점이 손인춘 법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한국 게임업계의 진정한 문제라고 본다.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 게임의 효과는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월드컵을 예로 들어보자. 월드컵이나 K 리그는 모두 똑같은 규칙과 똑같은 규격의 경기장에서 실시하는 축구라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는 경쟁, 협업, 환금성(스포츠 토토를 생각해보시라)까지 있다. 평소에 K리그 경기는 한 번도 본적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월드컵 경기는 새벽 5시에도 일어나서 본다. 축구라는 게임의 속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 기술의 수준, 경쟁의 상대가 누구냐, 누구를 대표하느냐에 따라 경쟁의 효과는 극적으로 바뀐다. 승산이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특정한 플레이어의 매력도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요소들을 전부 고려해도 월드컵 경기의 시청률을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와우, LOL 같은 게임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스타크래프트 게임판이 똑같은 의미와 효과를 갖지 않는다. 누구랑 하느냐, 게임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 내가 그동안 그 게임을 통해서 뭘 경험했느냐에 어떤 사람에게는 밤새워서 해야만 하는 게임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다시는 상종해선 안 될 게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일관적인 게임중독유발지수를 측정할 수 있겠나. 그런 측정 자체가 불가능하며, 현재의 기준을 사용한 측정은 무의미하다. 다시 말하지만, 중독유발지수는 학계나 업계에서도 확정하지 못한 가설적인 지표일 뿐이다. 이런 지표를 사용해서 게임을 평가하는 것보다는 게임의 흥행성적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그나마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다시 3번에서 지적한 문제로 되돌아간다.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