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해외여행이 흔합니다. 그래서 스위스니 일본이니 프랑스니 독일이니 뉴질랜드니, 외국 다녀온 사람이 아주 많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제가 느끼는 어떤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람은 왜 아파트에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외국 사람들은 훨씬 더 적은 수가 아파트에 살지요. 수도권 여기저기에 있는 아파트 숲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괴하게 보이기에 충분한 ‘한국적’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왜 아파트에 살까요?
한국인은 왜 아파트에 사나
이렇게 질문하면 아파트가 좋잖아라고 단순하게 답하거나 땅이 좁아서 그렇다는 이론을 내놓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아파트에 왜 사냐고? 단독주택 살아보니 별로던데”하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이 질문을 덮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한국 사람처럼 아파트에 미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폴은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닙니다. 아무리 한국이 작은 나라라라지만 그런 도시 규모의 국가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땅이 좁아서 아파트밖에 답이 없다”는 말을 믿든 안 믿든, 어쨌거나 외국에 나가보면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의 아파트 숲 같은 것을 보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도 땅이 좁은 걸까요? 그럴 리가 없지요.
답은 투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훨씬 그럴 듯해 보입니다. 표준화된 집인 아파트가 사고 팔기에 더 쉬워 투기에 더 적합하니 아파트를 열심히 지었다고 하는 것이, 유일한 답은 아닐지라도 훨씬 더 그럴 듯한 답입니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한국 사람은 왜 아파트에 사는가, 왜 아파트가 그렇게 좋은가. 다시 단독주택 별로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옵니다. 그러니 단독주택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제가 보기엔 한국엔 단독주택다운 단독주택이 거의 없습니다.
콜라가 없는 나라에서 누가 “나는 콜라가 싫어”라고 하면 이상하지요, 콜라를 먹어보지도 않고 콜라가 싫다고 하는 거니까요. 오리털 파카를 한여름에 입고서 오리털 파카는 정말 나쁜 옷이더라고 하면 이상하지요. 오리털 파카에는 오리털 파카의 용도가 있는데 아무렇게나 쓰고서 오리털 파카가 나쁘다고 하는 거니까요. 현대의 한국에는 단독주택 같은 단독주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단독주택이 좋은지 나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주택이란 절대 홀로 우주 안에 떠있는 섬 같은 것일 수가 없습니다. 아파트든 단독이든 말입니다. 주변에 가게가 얼마나 있는가, 녹지가 얼마나 있고 학군이 어떠하며 이웃은 어떤 사람인가가 주택의 값어치를 크게 좌우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집이 맨하탄에 있건 서울 강남에 있건 강원도 산골에 있건 모두 그 가격이 같겠죠.
한국에 단독주택다운 단독주택이 거의 없다는 말은 한국에 살기 좋은 주택 단지 혹은 단독주택으로 지어진 마을이 거의 없다는 말입니다. 단독주택이 제대로 평가 받으려면 단독주택으로 이뤄진 마을을 멋지게 만들어 보고, 만들어 보니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단독주택이나 저층연립으로 마을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으려고 해보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값이 터무니 없습니다. 그러니까 단독주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아파트 패러다임안에서 삽니다. 그 안에서 다른 것을 하려고 하면 힘들죠. 그러나 그 말이 무조건 아파트 패러다임이 옳다는 뜻은 아닙니다.
50년 뒤 그 아파트들은 쓰레기 산이 될 뿐이다
제가 보기엔 아파트 숲을 만드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이 진짜 양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걸 이야기하는 것은 주택의 가격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당, 일산 같은 아파트는 30년 쯤 되어 가니까 이미 녹물이 나온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걸 재건축하는 것은 너무 엄청난 돈이 들어서 그냥 세월만 갑니다. 이런 예를 생각하면서 수도권의 그 엄청난 아파트 숲을 생각해 봅시다. 50년 뒤에 그 숲은 쓰레기 산이 될 것입니다.
단독주택 단지는 집을 계속 고치면서 살기 때문에 그런 마을은 백년 이백년을 가면서도 옛모습을 유지하면서 사용될 수 있지만 50년 뒤 만들어질 아파트 쓰레기 산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꺼번에 다 고쳐야 하기 때문에 수리가 전혀 안 되다가 결국 완전 폐허가 되거나 큰 돈을 들여서 정화해야 합니다. 폐허가 되면 국토를 못 쓰게 되는 것이고 큰 돈을 들여 정화를 해야 한다면 그건 누가 합니까? 결국 정부나 지자체가 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세금의 형태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미래의 한국인들에게 부담이 되겠지요.
이런 걸 생각하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환경부담금을 물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한국 아파트들은 대책이 없더군요. 분당아파트에서 녹물 나와도 파이프 교체는 엄두도 못내니까요. 엘리베이터 위험해도 그걸 교체할 돈이 있는 곳이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파트의 편리함이란 미래에서 도둑질한 면이 있습니다. 이래 놓고 단독주택은 여러모로 관리도 해야 하고 힘드니 아파트가 편하고 좋다고 하는 것은 수도물을 제대로 쓰면 수도물값을 내야 하니 수도물을 훔쳐서 쓰는 것이 좋다라는 논리나 비슷합니다. 환경부담금을 고려한 아파트의 매력은 지금보다 작을 것입니다.
아파트의 구조가 가진 문제
아파트가 만들어 낸 최악의 문제 중 하나를 저는 이웃과는 단절되고 가족 간의 사생활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파트는 이웃 간의 자연스런 만남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지역 공동체를 사라지게 만들죠. 그런데 아파트는 그 안쪽을 보면 이번에는 반대로 대개 가족들 간에 사생활이 없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공간의 구조가 가족이 자기 공간을 가지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웃으로부터는 멀어지고 가족 간에는 프라이버시가 없어지게 되는 구조라는 겁니다.
요즘 1인 가구나 2인 가구가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혼자 살거나 부부끼리 살아야 살 만한 곳이 아파트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런 생각은 터무니 없는 걸까요? 아파트 촌에서 크는 아이들이 옛날 집성촌에서 크던 아이들과 다른 이유에는 주택구조의 차이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동네에서 이웃사촌 아이들과 같이 크던 아이들은 따로 무슨 학원이나 놀이교실 따위를 다니지 않아도 사회적 교류를 안전하게 가졌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오락만 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 차이에 주택구조도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한옥이나 시골에 흔한 시골집 구조를 생각하고 낮은 담이 있는 집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집은 흔히 1자나 ㄱ자 혹은 ㄷ이나 ㅁ자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의 방들이 최대한 서로서로에게서 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집으로 이뤄진 마을을 생각해 봅시다. 그런 집은 가족들끼리는 서로 멀게 하고 집이 바깥으로 부터는 가깝게 됩니다. 즉 이웃과는 가까워지고 가족끼리는 서로 사생활을 가지게 되는 구조라는 겁니다.
아파트는 골목길을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동네가 가지는 매력의 상당 부분은 골목에서 나옵니다. 맨하탄을 설계할 때 블럭의 사이즈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나를 고민했다고 합니다. 결론은 블럭이 너무 크면 상업이 발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바둑판 길을 빨리 지나갈 뿐입니다. 놀이터에 미로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고층 아파트의 문제를 이야기하니까 맨하탄 이야기 하면서 계속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맨하탄은 섬입니다. 한국은 미국만큼 부자도 아닙니다. 게다가 맨하탄이 한국의 고층아파트보다 더 뛰어난 구조를 가진 면도 있습니다.
맨하탄의 고층빌딩들은 한국의 아파트 단지처럼 외부로부터 고립된 구조가 아닙니다. 건물을 둘러싸고 거리에 면해 있어 다른 사람들의 생활로부터 고립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맨하탄은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쌓입니다. 반면에 성처럼 인간으로부터 거리로부터 고립되게 지어져서 홀로 서 있는 한국의 아파트 건물들은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스스로 고립을 택했으니 낡으면 그냥 쓰레기죠.
요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개발이 안 된’ 옛날 동네에 가서 좁은 골목길을 휘젓고 돌아다닙니다. 수만 명이 사는 커다란 아파트 단지보다 훨씬 작은 동네인데도 골목이 구불구불 있는 동네는 훨씬 더 흥미로워서 마치 놀이동산에 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관광 삼아서라도 그런 동네에 가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고층 아파트를 지어서 골목 없는 마을을 계속 만들어 갑니다. 아파트가 역시 좋지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아파트에 사는 한국인들은 동시에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요. 요즘 장사가 안 돼, 취직 자리가 없어. 아파트는 일자리를 잡아먹고 상권을 파괴합니다. 획일화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골목에 평상을 놓고 바깥공기를 쐬던 옛사람들의 모습이나 골목에서 뛰어노는 이웃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때가 좋았다고 말합니다. 아파트는 사람이 싫어서 숨어 살고 싶은 사람에게나 좋은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에 시달리는 것이 싫다거나 날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조용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는 순간 그런 사회는 오래 가면 썩습니다. 소통이 안 되니까 일이 안 생기고 불신이 쌓입니다. 추억이 안 생깁니다. 역사가 안 생깁니다. 아파트는 현실도피의 집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도피는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문제를 축적시켜서 한꺼번에 터지게 만들죠.
한국인의 아파트, 던질 필요 없는 질문일까요?
한국사람들은 아파트에 삽니다. 이 질문은 수도권이나 서울에는 이미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제가 되었습니다. 지방도 사실은 거의 그렇습니다만, 약간 덜합니다. 저는 50년 뒤에도 살기 좋은 마을일 것 같은 곳을 한국에서 찾기 거의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잠재적 쓰레기 산만 잔뜩 있을 뿐입니다. 지자체가 빚을 잔뜩 내서 흥청망청 살면서 여기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미래에는 그 빚 때문에 괴로울테니까요.
도시설계도 그렇습니다. 지금 화려하게 파티를 하기 위해 미래를 불사르면 미래가 보이질 않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쉽게 돈을 버는 대신, 땅값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가면 이제 정상적인 개발은 어려워지고, 있는 마을은 파괴됩니다.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가치와 함께 말입니다. 남는 건 비인간적인 콘크리트 탑들이죠.
시간과 함께 자라나고 점점 더 좋은 마을이 될 것 같은 곳은 인간을 포기하고 역사가 파괴되는 곳이 아니라 인간이 소통하고 역사가 쌓이는 곳입니다. 너도나도 고층 빌딩안으로 들어가 숨어버린 한국의 아파트 촌은 탐욕과 무책임과 이기주의의 상징에 다름 아닙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파트에 삽니다. 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직도 이 질문은 던질 필요가 없는 당연한 답을 가진 질문일까요?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