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밥 먹을래요?”
전 요즘 이 말이 세상에서 가장 설레고 의미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렸을 땐 같이 밥을 먹는다는 것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저 말을 아무하고나 주고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 언제 밥이나 같이 먹자”는 말을 인사말처럼 하고서 무책임하게 넘겼던 경험, 아마 여러분도 많으실 테지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같이 밥 먹는 것에 점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신중해지는 저를 발견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맺는 인연 중 같이 밥 먹자고 하고 싶은 사람을 가리게 되고, 식사 한 끼 혼자 대충 때우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사람 수명이 80세라고 하면 총 9만 끼의 식사를 하게 된답니다. 이 9만 번의 식사를 누구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인생은 더 풍요로워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새로운 곳으로 여행 갔을 때 누군가와 소중한 식사 한 끼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여행지에서의 새로운 메뉴를 경험하고픈 마음은 굴뚝 같지만 혼자 간 여행지에서 홀로 식당에 발을 들이기는 쉽지 않죠. 저도 혼자 간 출장에서 호텔 룸서비스로 저녁을 때운 경험이 많이 있는데요. 그럴 때 누군가 같이 시내에 나가서 저녁을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한 끼 식사가 외롭지 않게, 그리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앱이 있어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밀 셰어링(Meal sharing)이라고 불리는 애플리케이션입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멋진 식사와 인연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앱이죠.
음… 그럼 낯선 사람들과 그룹을 만들어서 식당에 함께 가도록 도와주는 앱이냐고요? 아니요, 같이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고 돈을 나눠 내면 얼마나 낯설고 뻘쭘하겠어요. 이 앱은 현지 셰프의 가정집에 초대를 받아 여러분이 낯선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도록 도와주는 앱이랍니다.
위 앱은 여러 밀 셰어링 앱 중에 가장 대표적인 앱인 피스틀리(FEASTLY)입니다. 여러분이 있는 도시와 식사를 하고 싶은 날짜를 검색하면, 여러분을 초대하고자 하는 셰프와 음식 리스트가 나온답니다.
메뉴들을 쭉 보고 있으면 아마 알게 될 거예요. 여기 여러분을 초대하는 셰프들은 식당의 전문적인 셰프가 아니라 자기 집에서 손님을 받아 요리하는 아마추어 셰프랍니다. 자기 식당을 가지고 있진 못하지만 요리 솜씨를 전 세계의 다양한 방문객들에게 뽐내고 싶어하는 당찬 요리사들이죠.
일리노이주 디케이터에 사는 세린(Serene)의 초대장을 볼까요? 세린은 자신의 고향인 싱가포르의 길거리 음식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다고 합니다. ‘미국식 동남아 요리가 아닌 전통 동남아 요리를 선보이겠다’며 당차게 이야기하네요.
초대에 승낙하면 여러분은 5월 21일 목요일 저녁 6시 세린의 집에서 단돈 40불에 정통 싱가포르 길거리 음식 코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러분처럼 세린의 초대에 응한 다른 5명의 손님과 함께 식사하게 된답니다. 세린이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마치 현지 가정집에 초대된 것처럼 3시간 동안 싱가폴 요리 파티를 즐기게 되는 것이지요.
메뉴에는 세린이 준비할 총 9가지의 다양한 싱가폴 요리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까지 있어 침샘을 벌써부터 자극한답니다. 멋진 저녁 후에는 세린의 음식에 평을 남겨서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아마추어 요리사로서 세린의 평판도 높아지거나 낮아지게 됩니다.
피스틀리에는 세린 말고도 전 세계 곳곳에서 여러분을 초대하는 아마추어 요리사 수천 명의 초대장이 올라와 있습니다. 관광객 상대로 비싼 값에 보기에만 그럴듯한 요리를 팔고 있는 식당과 비교하면 현지인의 집에서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으며 멋진 저녁을 보낼 수 있는 기회, 정말 멋지지 않나요?
아마추어 요리사들인 만큼 식당에서 팔고 있는 같은 메뉴에 비해 가격도 20-30%가량 저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손님들을 보며 흥이 난 셰프들은 무료로 추가 음식을 대접하기도 한다네요.
피스틀리의 창업자인 노아(Noah)는 자신의 앱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을 넘어 인생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합니다. 노아는 처음 피스틀리의 아이디어가 온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자친구와 과테말라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어요. 우린 전통 과테말라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길거리 식당에서는 온통 햄버거와 피자만을 팔고 있었죠. 과테말라 식당이란 곳에서도 온통 미국식 입맛에 맞춘 가짜 과테말라 음식뿐이었어요. 그때 생각했죠. 가정집의 전통음식을 사람들과 나눌 방법을 만들어 보자고.”
2011년 워싱턴 DC로 돌아온 노아는 리비야 출신인 친구의 엄마를 뉴욕에서 초청해서 처음 피스틀리의 서비스를 시험적으로 제공했습니다. 25명의 첫 손님들을 대상으로 전통 리비야 음식을 제공한 노아,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 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전통 리비야 음식에 만족했을 뿐 아니라 함께 식사한 다른 사람들과 음식과 자신들의 인생에 관해 이야기 나누며 행복한 저녁 시간을 보냈죠. 자신의 사업 모델에 확신하게 된 노아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사업을 시작했답니다.
피스틀리를 비롯한 밀 셰어링 앱은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외로운 여행객들에게 현지의 음식을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할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의 요리를 뽐내고 싶은 아마추어 요리사들에게 더 큰 기회를 줍니다. 트레이시(Tracy) 또한 밀 셰어링 앱을 통해 요리사로서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답니다.
트레이시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라 이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살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말레이시아 음식을 만들면서 달래곤 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음식 사진을 본 사람들이 트레이시에게 말레이시아 음식을 직접 맛보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레이시는 피스틀리를 통해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말레이시아 요리를 선보이게 되었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말레이시아 음식을 소개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큰 기쁨을 준답니다. 그리고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는 많은 사람을 항상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즐거워요.”
트레이시는 자신의 주방을 찾는 사람들을 ‘고객’이라기 보다 ‘손님’이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음식에 대해 물어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낯선 이와 경험을 공유하려는 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고객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네요.
마찬가지로 트레이시는 요리사보다는 호스트라고 불리길 원한답니다. 트레이시는 밀 셰어링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지금과 같은 밀 셰어링 이벤트를 여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자신의 음식 솜씨를 나누고 인연을 나누는 밀 셰어링 앱, 어떻게 보셨나요? 사실 이러한 나눔의 비즈니스는 음식뿐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퍼져나갔습니다. 밀 셰어링 이전에 이미 우버(UBER), 에어비앤비(AirBnB)처럼 교통과 숙박을 나누는 서비스가 확산되어 가고 있었죠.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콘셉트는 개인별 모바일 디바이스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2010년부터 이제 음식, 육아, 재능을 나누는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점점 확대되어 갑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남는 부분은 서로 나누는 공유경제. 과생산·과소비로 환경이 파괴되고 경제에 거품이 끼는 현대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아줄 대안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공유경제가 더욱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우선 ‘선의의 나눔을 비즈니스의 영역으로 끌어왔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에 대해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의문이죠.
만약 트레이시가 정성껏 대접한 말레이시아 음식을 먹은 사람들이 그다음 날 식중독을 앓았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음식을 만든 트레이시일까요? 아니면 트레이시와 손님들을 중개한 피스틀리일까요? 식당은 정부로부터 정기적인 위생점검을 받고 충분한 자격이 있을 때 비즈니스할 자격을 받습니다. 하지만 피스틀리의 셰프들은 그러한 점검을 받지 않은 채 돈을 받고 비즈니스 중인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우버가 야심 차게 서울에 진출했지만 서울시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되어 철수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죠. 운수 사업자로서 자격을 받는 데 필요한 요건을 충분히 검증받지 못한 운전자들이 사람을 태우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났을 때 ‘누가 책임지고 이에 보상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지요.
혼자 밥을 먹고 싶지 않은 여행객들에게 현지의 따뜻한 밥과 소중한 인연을 주고, 식당을 차릴 돈이 없어도 요리사로서의 꿈을 이루게 해주는 공유경제. 이 가치가 세상에 정착되려면 아직 많은 장해물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공유를 통해 음식과 숙박과 교통을 넘어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는 한 끼의 소중함과 온기는 계속해서 퍼져나가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저녁, 누구와 함께하실 건가요? 만약 아직 계획이 없다면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용기 내 말을 건네 보세요.
“우리 같이 밥 먹을래요?”
원문: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