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사회 초년생이 직장에서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고난과 성장을 패션업계를 배경으로 화려하지만 실감 나게 보여준다.
줄거리는 다들 아시는 바대로다. 글 쓰는 재주는 어느 정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 아니 세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던 주인공 앤디(앤 해서웨이)가 전 세계의 패션업계를 좌지우지하는 최고 권위의 패션지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의 제2비서로 채용되어 세상과 자신에 대해서 배워나간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무도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까?
앤디는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나
생각해보라. 앤디는 직장에서 정말 하찮고 허접한 일들에 치이기만 한다. 그녀에게 주어지는 일이라고는 매일 같이 편집장이 집어던지는 외투와 가방을 정리하기, 아침 커피와 점심 스테이크를 배달하기, 유명 레스토랑에 저녁식사 예약하기, 걸려오는 전화들을 편집장 스케쥴에 맞추기, 편집장의 아이들 가방이나 서핑보드를 구입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개를 데려오기 같은 잡일뿐이다.
심지어 이런 일에는 정해진 시간도 없다. 아버지와 모처럼 만의 저녁식사를 하다가도 허리케인이 부는 날 뜰 수 있는 비행기를 찾아 동분서주해야 하고, 남친의 생일파티 날에도 편집장의 보조기억장치 역할을 하러 따라다녀야 한다. 쉽게 말해서 그녀는 마당쇠일 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변신하고 성장하고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저 영화 연출자의 속임수일까 아니면 실제로도 이와 같은 일, 다시 말해서 잡일만 하면서도 뭔가 중요한 것들을 배우고 눈이 뜨이고 성장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이런 식의 이야기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부터 지적하자. 특히 무협소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위와 같은 과정이 별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이다. 어떤 이유로(보통은 원수를 갚기 위해서) 은둔 고수를 찾아간 주인공은 은둔 고수에게 멸시와 구박만을 받고 거부당한다. 어찌어찌 간신히 제자로 받아들여진 다음에도 마당을 쓸거나 장작을 패거나 물을 긷는 잡일만이 주어진다. 스승은 무도를 가르쳐주기는커녕, 잡일하는 주인공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시비를 걸거나 심지어 온갖 방해를 하며 괴롭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한 3년쯤 지나고 나면 어느새 주인공은 무도의 기본을 익힌 상태가 된다. 그렇다. 스승이 시켜온 그 잡다한 일들이 바로 훈련이었던 것이다. 발달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이와 같은 과정은 실제로 일어난다. 그것을 보통 ‘도제학습’이라고 부른다.
산업혁명 이전 많은 일들은 도제식이었다
도제학습은 숙련공의 감독 하에 미숙련공들이 직접 일을 하면서 배우는 과정을 통칭하는데, 이를 전문 용어로는 ‘인도된 참여’ (guided participation)라고 부른다. 우리가 익숙한 학교교육이 정착되기 이전에는 모두가 이 도제교육을 통해서 기술과 지식과 철학을 습득했다. 농사일도 결국 도제교육이었고, 옷감을 짜거나 옷을 만드는 기술도, 장을 담그거나 요리를 하는 기술도 전부 도제교육을 통해서 전수되었다.
도제교육 시스템에서는 특별히 무슨 설명이 오가지 않는다. 그저 일을 시키고 일하는 걸 지켜보며 잔소리를 하고 일한 결과에 따라서 일의 책임을 높이거나 낮출 뿐이다. 기술을 전수하는 자도 자기가 뭘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고, 배우는 자도 특별히 뭘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숙련자의 위치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잡다한 일 속에도 전체 작업의 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의원 일을 배우러 들어간 주인공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매일 아침 먼 옹달샘에 가서 물을 길어오는 것이었다. 선배들은 물만 길어오면 되는 일이라 생각하고 가까운 우물에서 쉽게 물을 길어왔지만 허준은 스승이 시키는 대로 옹달샘까지 가서 물을 길어온다. 이를 지켜보던 스승은 그의 선배들보다 먼저 허준에게 다음 단계의 일을 맡긴다. 왜냐하면 그 일은 그저 물을 떠오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약초의 효능은 그 약초를 달이는 물의 품질에서부터 시작되고 따라서 좋은 물을 준비하는 것이 모든 의술의 기본이었다. 허준은 이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기본을 수행했고, 나머지 선배들은 그저 물만을 떠왔을 뿐이었다는 얘기다.
부분 속에 전체가 숨겨져 있다
부분 속에 전체가 숨겨져 있는 것은 모든 문화의 본성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음식문화는 김치나 된장을 담그는 기술이 아니라 젓가락과 숟가락질에서부터 시작한다.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서 먹게 되어 있는 서양의 요리와는 달리 동양의 요리는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이어령 교수가 그의 책 <디지로그>에서 지적했듯이, 우리나라 음식을 젓가락만으로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음식들이 모두 한입 크기로 썰어져 있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음식을 만들 때 미리 도마에서 칼질을 해놓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젓가락 속에는 이미 ‘도마’라는 조리기구가 담겨있다는 얘기다.
숟가락도 마찬가지다. 젓가락만을 사용하는 일본에서는 모든 반찬에 국물이 없다. 하지만 숟가락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요리는 국물이 언제나 따라 나온다. 같은 무 절임요리라도 일본의 단무지는 국물이 없지만 우리나라의 깍두기는 국물을 이용해 여분의 맛을 살린다. 그러니 결국 밥상에 앉아 음식을 먹기 위해서 젓가락질과 숟가락질을 배우는 것이 우리나라 식문화 습득의 첫걸음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제교육은 일과 교육이 구분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학습과정이다. 일을 하면서 저절로 배우게 되는 모든 것은 다 도제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도제교육은 교육자가 가르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가 스스로 필요를 느껴서 배우는 과정이다. 마치 이 영화 <프라다>에서 앤디가 자기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인맥도 넓히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배우는 것처럼 말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도제교육의 원리는 우리가 뭘 배우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한지부터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영화 속에서 앤디의 변화는 자신이 패션계를 이해해야 직장에서 고생을 면할 수 있으며 패션도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는 자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일단 목표를 내면화 하면 가르치거나 밀어붙이지 않아도 스스로 그 목표를 달성할 방법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제교육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절한 가이드(guide)가 함께 하지 않는 도제교육은 그저 무책임한 방임에 불과하다. 그 악마 같은 미란다 밑에서 앤디가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이젤(스탠리 투치) 같은 적절한 가이드가 곁에 있었던 덕이 크다.
또한 작업의 성과를 적절하게 분배하지 않는 도제교육은 착취를 정당화 할 뿐이다. 제 3세계에서 매일 12시간 이상씩 축구공을 기우거나 카펫을 만드는 어린아이들도 따지고 보면 도제교육시스템의 일원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댓가는 그날 하루를 가족을 간신히 먹일 수 있는 돈과 변함없이 주어지는 다음 하루의 노동뿐이므로 이건 착취가 된다.
직장에서 잡일에 시달리는 사회 초년생들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지금 하는 허접한 일들 속에서 어떤 큰 의미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도제교육의 일환이겠지만, 그저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만이 주어진다면 의미 없는 착취의 쳇바퀴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세상이 나에게 뭘 가르쳐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뭘 배워나갈지 눈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도제교육은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도제교육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덧붙여.
이 영화에서처럼 도움 안되는 친구들이 등장하는 영화도 드물 것 같더군요. 남자 친구도 툴툴거리기나 하고, 적절한 가이드 역할을 해주지 못했죠. 아직도 왜 앤디가 이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거기다 앤 해서웨이가 눈에 안 띄는 외모라니…
그리고 이 몸매가 뚱보라고?
마지막으로, 패션 감각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영화 초반의 앤디 패션이 나중의 휘황찬란한 옷들보다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난떠는 연기들에 참 동감하기 힘들었던…
원문: 사이코짱가의 쪽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