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IT에 대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던 1995년, 에릭 브린졸프슨 교수는 그 유명한 The productivity paradox of information technology라는 논문을 통하여 IT Paradox라는 말을 유행시킨다. (Abstract도 지원하지 않아 수년 전에 읽었던 기억으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이 IT Productivity Paradox(정보기술 생산성 역설)는 노벨 경제학자였던 소로우 교수가 1987년에 이미 지적한 사항으로, “숫자를 내봤더니 IT가 생산성 향상에 끼치는 영향 별 거 없더라”는 내용이다.
90년대를 넘어가고 2000년대가 오면서, POS가 대중화되고, E-Mail이 일반화되었다. 이제 그 누구도 IT Paradox란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 미국의 시총 상위 랭킹에서 과거에는 HP, 델을, 현재에는 애플이나 구글을 볼 수 있게 되면서, 과거처럼 IT기업이 미국 GDP의 극소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면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카톡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어졌고, (비록 액티브엑스에 비명을 지를지라도) 인터넷뱅킹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러나 약 2년 전부터 에릭 브린졸프슨 교수는 일자리와 IT의 문제를 꺼내 들었다. 이젠 막연히 IT가 일자리를 확충시킬 것으로 생각하는 1980년대가 아니다. 연역적으로, 또 귀납적으로 IT는 경제를 파괴시키고 있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상당한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다.
IT가 일자리를 없애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머니투데이의 기사 “구글·페이스북은 중산층의 적인가?“에 공분하는 것이 느껴졌다. 과거 이명박 정권 때도 IT가 일자리를 파괴한다고 건설 쪽에 정부 예산을 투입했으니, 그 그림자가 서려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IT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던 이야기이다.
최근 들어 본 가장 강렬한 포스팅은 “how technology is destroying jobs“였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도, 자동화가 자동차산업의 일자리를 줄이고, 물류산업의 일자리를 줄인다는 것은 아주 명확하다.
포스코만 해도 자동화를 도입하면서 매출과 일자리의 상관관계가 줄었고, 장난감 회사인 레고와 같은 곳에는 모든 공정이 자동화되어 있다. 자동화가 되지 않은 유일한 공정은 레고 포장을 박스에 넣는 작업이다. 물류박스를 쌓는 것조차 공장 선을 따라 이동시키는 라인 트레이싱의 도움을 받아 적당히 작업하면 그만이다.
그 옛날 포드의 공장에서 1,000명이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었다면, 현대자동차에서는 몇 명의 엔지니어가 로봇팔을 조작하며 일을 끝낼 것이다. 이제 1,000명의 월급을 몇 명의 엔지니어가 나누어 갖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삼성이 옴니아2 시절부터 갤럭시 S6를 판매하게 되기까지 매출은 꽤나 늘었지만, 인력채용은 주로 박사급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 나온 옥스퍼드의 연구조사를 기반으로 한 기사는 조금 더 충격적이다. 옥스퍼드 측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절반의 직장이 IT에 의해 날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것도 향후 20년 이내에. 사실 학계의 말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아무래도 학자들도 논문이 ‘팔려’야 되니 적정한 마케팅을 한다고 해도), 블루칼라의 일자리 안전성이 현격히 저하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대자면, 양극화는 굉장히 확실해질 거라 본다. IT업계의 히트상품인 ERP나 POS만 하더라도, 최소한 경리 한 명은 줄였다고 봐도 될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POS 엔지니어나 ERP 개발자로 대체되었을 텐데, 줄어든 일자리 숫자와 늘어난 일자리 숫자를 비교해보는 건 상식적으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IT가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는 어떻게 될까. 선진국이 개발한 IT 장비가 후진국으로 수출되는 상황이 온다면 몇몇의 선진국은 지속적으로 엔지니어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 후진국은 어떨까. 이제껏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던 배경엔 낮은 인건비가 있다. 낮은 인건비로 인해 선진국의 개발공장이 동남아와 같은 개발도상국에 세워지고, 이때 개발도상국은 어깨너머로나마 기술 습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 지식을 발판삼아 개발도상국이 뭔가 새로운 제품을 판매한다.
그러나 IT로 인한 자동화는 이 시나리오마저 무력화시킨다. 만약에 폭스콘 공장마저 100%가 자동화가 된다면 어떨까. 미국 애플 본사는 폭스콘에 떼어줄 몫까지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는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주장한, 자유무역과 IT, 경제성장이 양극화를 줄인다는 논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야기이다. 프리드먼의 논의를 따르면 인도의 뛰어난 IIT(인도 공과대학교) 졸업생이 실리콘밸리에서 수십만 불의 급여를 받아 고국에 돌아오면서 양극화가 메꿔져야 한다. 그러면서 세계화는 각국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 얼마나 아름다운가! )
그러나 프리드먼의 논의가 나온 지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런 주장은 약화되고, 위와 같이 IT가 양극화를 심화시킨다는 주장이 널리 퍼지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는 이것이다.
첫째. IT의 발전으로 인한 양극화를 피할 수 있는가.
둘째. 양극화를 피할 수 없다면 그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공생전에서 썼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IT는 양극화의 주범이니 엔지니어를 다 내쫓겠소.”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될 것이다. 그 나라의 수장이 바보가 아니라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IT개발을 중지한다고 해서 일본이나 미국이 같이 중지할 리는 절대로 없다.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에 모두가 빠져있는 셈이다.
둘째로 양극화를 피할 수 없다면 ─ 역시 전략은 명확하다. 자국의 일자리를 최대한 보존한 채 타국의 일자리 감소를 멀찌감치 바라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혁신을 어느 나라에서 더 많이 이루느냐가 가장 중요한 키 팩터(key factor)가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테슬라는 자동차 딜러라는 직업을 아예 날려버렸는데, 이제 전 세계의 자동차 딜러라는 직업이 사라지는 대신 테슬라에 1,000개의 물류관리자 자리가 생성될 것이다. 무인자동차는 각 자동차 회사에서 몇몇의 박사급 엔지니어의 고용을 창출하겠지만, 전 세계의 택시기사 직업군을 날려버릴 것이다. 이왕 택시기사 직업이 날아갈 수밖에 없다면, 자국의 자동차회사가 그 수익을 가져가서 법인세를 통하여 재분배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 될 것이다.
다시금 정리하자면, 혁신과정을 통하여 각 나라는 자국 일자리를 보존하고 세금을 올려서 소득을 재분배하는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 나라 간 양극화는 어떻게 해야 할까.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은 이제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즈에 나오는 것처럼 포드가 개발한 어셈블리 라인에 1,000명의 공순이가 나사 끼우기를 반복하는 세상을 차라리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원문: JD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