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열정페이를 없애자’고 뭐 이렇게 청년 취업을 도와준다든가 하는 정책을 발표해왔다. 사실 이게 참 뭐랄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청년이 취업이 되지 않아 청년 실업률이 높아지고, 때문에 열정페이가 일어난다’는 말은 동어 반복일 뿐이기 때문이다. 취업이 안 되면 실업률이 높아지지 그럼 떨어지겠나. 실업률이 떨어지면 당연히 저임금 노동자가 늘어나겠지.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니까 손가락이 아플 지경이다. 사실 이 청년 실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나’부터 짚어야 한다. 사실 한국의 인구 구조상 청년취업이 안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냐는 말이다.
1. 현상 분석
2000학년도 수능 응시자 수가 89만 6,122명이었고 2001학년도는 87만 2,297명인데 이후에 피크친 2011년 수능 인구가 71만 2,777명이다. 2011년 수능세대가 피크였다고 해도 2000년에 비할 바가 안 된다. 상식적으로 인구수로 따지자면 2006-7년에 취업 대란이 발생했어야 한다. 그때도 물론 외환위기에 취업 대란이 있었긴 했으나 요즘과 같진 않았다.
때문에 우리는 이 열정페이란 상황의 발생에 대한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한다.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급여는 어떻게 산정되는가’이다. 애당초 열정페이란 말은 급여가 변경되었단 것이고, 노동자의 협상력이 약화되었다는 말이다. 또한 기존에는 고노동-저임금에 해당하는 열정페이가 없었는지 또한 따져봐야 한다.
급여는 물론 정부에서 정한 최저임금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회사와 근로자의 협의이다. 여기서 ‘근로자의 고생과 급여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기점으로 생각해야 한다. 고생할 수록 얻을 수익이 높아진다면 교육이라던가 생산성 향상의 의미가 없어진다.
내가 아는 한 고생하고 돈 못 버는 대표적 직업은 포닥이다. 또는 순수예술가가 될 수 있고, 또 오늘도 월화수목금금금+면식 수행을 하면서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고 교수의 자발적 시다바리가 되어가는 대학원생도 있다. 또한 오픈소스 프로그래머는 말 그대로 열정페이의 아이콘이 아니던가.
반대로 열정페이와는 아주아주 거리가 먼 직업도 있다. 일명 노가다라든가, 유흥업소 직원 같은 경우에는 20대도 큰 목돈을 만질 수 있다. 같은 10시간을 일할 때 일용 근로직과 대학원생의 급여는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대학원생의 급여에 큰 사회 문제라 말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대학생이나 고등학생은 어떤가. 심지어 이들 직업군은 ‘고생을 하기 위해 돈을 쓰는’직업이다. 즉 우린 그 사람이 겪는 노력이나 고생과 급여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민해야한다. 그러면 여기서 순수하게 급여는 어떻게 결정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이는 ‘급여는 어떻게 결정되어야 올바른가’ ‘인간다운 삶이란 어떤 것이다’라는 ‘이즘’이나 ‘주의’의 문제로 풀면 답이 안 나온다. 경제가 이즘을 결정하는 경우는 많아도 이즘이 경제를 결정하는 것은 그 확률이 적을 뿐더러, 부작용을 가져올 확률이 아무래도 높기 때문이다(우리나라의 북쪽에 아주 좋은 예가 있다).
‘자연상태에서 급여의 결정기준은 무엇인가’라는 것을 간단하게 모델링을 해보자. 먼저 1명의 기업가와 1명의 근로자가 있는 상태로 가정할 경우 근로자가 최대 얻을 수 있는 급여는 ‘자신의 합류로 얻을 기업의 추가수익-1원’이 된다. 근로자의 합류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기업의 수익 증가량보다 낮다면 고용자는 근로자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 근로자가 택할 최저의 급여는 자신이 취직해 잃는 기회비용보다 크다.
이 사이에서 둘 사이의 협상력이 작용해 급여를 결정한다. 산업혁명 시대 전에는 아마 이런 식의 모델로 근로자의 급여가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즉 ‘기업은 1명의 노동자를 고용해 얼만큼의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팩터였다. 특히 농경시대의 경우는 노동력이 생산성을 결정했다.
그러나 현대 지식사회로 접어들면서, 특히 2010년 이후의 소프트웨어가 경제를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위와 같은 패러다임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전 글에서도 썼듯이 한 사람이 기계의 힘을 빌어서 무한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업의 경쟁력은 기업의 문화에서 오기에 과거 한국 재벌로 대변되는 것과 같은 문어발식 확장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2010년 정도를 기점으로 스마트폰의 탄생과 함께 사업에 투입되는 인력의 숫자가 고정된 채 생산성과 경쟁력이 정해지는 패러다임이 시작되었다. 이런 노동시장의 고전적 모델은 운동경기나 연예인 쪽이다. 예를 들어 TV의 다섯 채널에서 하는 야구경기의 수는 5개, 각 팀의 엔트리는 27명, 1군은 총 270명이다. 즉 제한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이때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은 농경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세스 고딘이었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불스 여섯 번째 멤버의 몇십, 몇백 배를 벌어들인다는 것을 모두가 동의하는 세상이다.
2. WAR 패러다임
여기에서 임금체계는 ‘추가인력 대비 수익성 향상’이 아니라 ‘대체 인력 대비 수익성 향상’으로 결정된다. 회사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 수록 기동력이 향상되는데 이때 뽑을 수 있는 인력은 한계가 있다. 회사는 지원자들 중에 회사에게 가장 수익을 많이 가져다 줄 한 사람을 뽑을 것이다. 이와 가장 비슷한 모델링을 꼽자면 야구의 WAR(Wins Above Replacement)을 들 수 있다.
- WAR: 대체선수에 비해서 얼마나 더 많은 승수 기여를 했는지 나타낸다. 연구결과 팀의 시즌 승률과 가장 관계 깊은 항목은 팀 득실점으로 나타났고, 팀 득실점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도를 가지고 대체선수와 비교해 이를 승수로 환산한다. 승수로 표현되는 개념인 만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WAR 5.0인 선수의 팀이 70승을 했다고 할 때 이 선수 대신 WAR 3.0인 선수를 썼다면 68승을 했을 것이란 식이다.
즉 ‘내가 잘하면 회사가 좋은 시대’는 갔고 ‘내가 남들보다 잘해야 회사가 좋은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생산성 향상 도구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IT 회사는 더더욱 그렇다.
3. 열정페이의 실제 문제
내가 생각하는 열정페이의 문제란 사실 ‘저임금 고노동’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이 패러다임으로 생각한다면 모두가 유흥업소에 취직하거나 일용직 근로자가 된다면, 열정페이의 문제는 단박에 해결된다. 게다가 이 패러다임은 포닥, 오픈소스 개발자 등의 현상과 충돌이 난다.
포닥이 그 생활을 감내하는 것은 교수가 되기 전의 생활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이다(아, 물론 안될 수도 있지만… 그건 예외… 아닌 예외로 칠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은 나도 참 슬프다…). 또한 몇 년 전 미국 회사의 기술개발직 면접을 봤을 때 해당 회사는 ‘오픈소스 참여 경력’ 또는 ‘기술 블로그 운영 경력’이 있는지 확인했다. 활발한 오픈소스 개발자에게 오픈소스란 일종의 취미가 될 수도 있지만 더 높은 경력을 향한 뒷받침이 될 수 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100일간 마늘과 쑥만 먹으면서 동굴 속에 처박혀 있는 고행을 하는 것은 ‘사람이 될 수 있다(대체 왜 되려는지는 모르겠다만…)’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때 저임금 고노동은 큰 사회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열정페이’에 포함되는 직군의 임금은 시간이 되어도 향상되지 않는다. 편의점 알바생의 열정페이가 문제가 되는 건 편의점 알바 10년 했다고 편의점 점주가 되고 GS25 본부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저임금을 받고 고된 노동을 한다’가 문제가 아니라 ‘저임금을 받고 오랜 기간 일해도 숙련공이 되지 못한다’가 정확한 문제임을 알 수 있다.
4. 노조
여기서 개인의 대응이 노조를 만들어서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래도 힘들다. 노조가 성립되기 위해선 다음과 같은 조건이 수반된다.
- 기업이 충분한 이익을 내고 있다. 노조가 싸워도 기업은 이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있다.
- 서로가 다른 선택지가 없거나 현재 향유하는 이익이 상당하다. 만약 노동자가 다른 선택지가 있다면 이직하면 그만이고, 기업 측에서 사업장을 폐쇄할 수 있다면 역시 노동자의 선택지를 제한할 수 있다.
현재 강성노조는 사실 생산직+숙련공에 치우쳐있다. 지식 노동자의 경우 여러 선택지가 있기에, 즉 회사를 취사선택할 수 있기에 굳이 노조활동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이 ‘생산직 숙련공’의 경우에 향후에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기계가 전부 대체하는 세상이 곧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시당초 노조가 필요한 직업군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무척이나 물건을 잘 잃어버리므로 대학 시절 학교 앞 열쇠복사집 아저씨와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열쇠복사비는 개당 4,000원. 그리고 지금, 실리콘밸리 월마트에 가면 열쇠복사 자판기가 있고 2달러만 넣으면 2+1으로 열쇠 3개를 복사해준다. 향후에는 현존하는 직업군 중 열쇠복사를 비롯해 택시운전사, 웨이트리스 등이 전부 사라질 것이다.
시기에 대해선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향후 10년 이내에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해 20년 정도 지나면 해당 직업군이 전부 사라지리라 생각한다. 만약 이들이 강성노조가 되어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한다면 자본가 입장에선 사업장 폐쇄밖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최소한 제조업에선 노동자와 기업가가 싸우는 형국이 아니라 노동자와 기업가가 합심해 구글, 아마존, 바이두, 알리바바와 같은 IT 기업의 제조업 진입을 막아내는 형국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하이퀄리티 제품을 생산하거나 노동단가를 낮춰서 버텨야 할 텐데, 전자가 가능한 것은 극소수의 기업 뿐이기에 결국은 거의 대다수의 노동단가가 낮아질 것이다. 이것 또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5. 해서는 안 되는 선택
‘꿈팔이’라고 부르는 직종이 있다. 강연 같은 데 나와서 유명한 성공담들을 들먹이며 ‘꿈을 쫓아 열심히 하면 성공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이들을 꿈팔이라고 부르며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청년들을 팔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건 남들도 좋아한다. 대체적으로 어린이들에게 뭐 하고 싶으냐 물으면 탤런트, 영화배우, 연예인, 운동선수 같은 대답이 주르르 나오리라. 이들은 전형적인 아이돌 비즈니스를 유지한다. 즉 몇 명만 성공하고 나머지는 죽는 게임이다. 1년에 나오는 CF는 정해져 있고, CF 스타의 숫자도 정해져 있고, 나머진 다 죽는다. 아이돌로 성공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좋아하는 걸 열심히 했더니 성공했어요^^’라는 미담을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누구나 혹하니까 저런 말을 하는데… 상식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건 다른 사람도 좋아한다. 카페 차려서 책 읽으면서 한가롭게 사는 거, 많은 사람의 꿈이다. 현실은 망해가는 카페 숫자가 말해준다. 자영업자로 성공해서 사장님 소리 듣는 것 역시 많은 사람의 꿈이다. 현실은 치킨집이다.
연예인처럼 몇몇 선망받는 직업군은 그 직업군의 특징으로 인해 그 직업군을 ‘좋아하는’ 사람만 유입된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입되었으니 당연히 거기서 성공하는 사람은 꿈을 좇아 열심히 한 사람이었겠지. 아니, 그럼 하기 싫은데도 가수하는 사람도 있나. 그러면 ‘꿈을 좇아 열심히 했는데도 안 되는 사람들’을 카운트하고 비교해야 현실적 조언이 되지 않겠나.
만약 내가 좋아하는 게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라면 그건 경쟁력이다. 20대가 고물을 엄청 좋아해서 도매 고물상이 된다면 코스닥 상장도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게 예쁘게 차려 입고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르고 그들에게 사랑 받는 것이라면 현실적 확률은 매우 적고도 적다.
6. 취준생이 해야 할 선택
개인의 대응에 관한 이야기다. 이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미시적 전략이기 때문이다. 일단 국가 차원의 전략이야 뭐 ‘나라님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앞서 말했듯 현재 노동시장은 IT의 발달 및 지난 10년 간 지속된 스펙 경쟁 때문에 일자리 숫자가 고정되면서 숙련공과 비숙련공의 격차가 벌어졌다. 이것이 사회적 양극화나 열정페이의 원인이 되었다.
이는 사실 케인즈가 말했던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으로 그냥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여기서의 노동자의 대응은 결국 ‘독점적 마켓’을 구축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지 않나 싶다. 즉 노동자는 기업에 ‘남들이 제공해주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해 기업 TO 외의 별도 항목으로 자신이 취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취준생에게 손쉽고도 최악인 선택은 스펙경쟁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대학생이 취직 시장에 들어갈 때 문제가 ‘토익점수’ 같은 것이라면 결국 기업은 몇 명의 노동자 후보 중 토익 점수가 가장 좋은 사람을 뽑을 것이다. 애당초 붙을 사람도 한정되어 있을뿐더러 토익 점수 980점 취직자가 얻을 소득이란 970점 후보자가 받고자 하는 연봉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모든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며 취직자 또한 제한되는 최악의 현상이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치동 학원가가 등장한 지 10년이 되고 이들 교육생들이 산업현장에 나오면서 IT를 만나 탄생한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 기저에는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결국은 1명의 승리자 외에는 전부 패배자가 되어버리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취준생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은 WAR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과거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대체 인원 대비 수익’이 아닌 ‘추가 인원 대비 수익’의 패러다임으로 말이다.
기업에 필요한 회계사 숫자는 거의 정해져 있으며 매출이 10배가 늘어날 때 회계사는 몇 명 늘어날 뿐이다(때문에 회계사 시장은 10년 전부터 우울했다). 그러나 어떤 회사가 미국에만 제품을 파는데 한 사람이 취직해 일본이나 중동에도 갖다 팔 수 있게 된다면 기업은 이 직원에게 별도의 TO를 주어서 채용할 것이며, 수익의 일정 비율을 제공하겠다고 제시할 수도 있다.
결국 향후 노동시장에 대응하기 위한 개인의 선택은 ‘독점시장을 구축하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결국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말했던 스타트업의 전략과도 같다. 아무리 작아도 일단 독점시장을 구축하면 WAR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노동자가 독점 시장을 구축하는 방법의 예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공학에서의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회계사는 기업에서 정해진 TO가 있으나 물리학, 화학, 기계공학, 전자공학은 다르다. 이 분야의 박사를 뽑아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면 기업은 이들을 모셔 가려 할 것이다.
2) 선천적 재능을 이용한다
… 예전엔 예쁘면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될 수도 있었을 거 같다. 하지만 현재는…(후략) 외모로 인한 직업이 될 수도 있고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처럼 타고난 능력에 기반 둔 직업이 될 수도 있다(프로그래머를 선천적 재능이라고 가정한 건 다른 분야에서는 탁월한 지적 능력을 보여도 코딩만 잡으면 포인터에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는 다수를 경험해서 그렇다).
3) 다른 문화권에 해박한 지식을 갖춘다
중동이나 동남아는 팔 수만 있다면 언제나 매력적인 시장이다. 기술 개발이 끝난 중소기업의 소프트웨어를 중동에 갖다 팔 수 있는 노동자는 기업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
4) 빠르게 성장할 커리어 패스를 선택한다
뭐 굳이 따지자면 모든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까지의 모든 교육과정이 ‘현재를 포기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역할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 아니라면 잡마켓에서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 후배들이 취직 고민할 때 내가 해주는 현실적 조언이기도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게 사회 문제는 더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개인에겐 합리적 선택이다. 편의점 알바로 열정페이 당하는 것은 의미 없으나 구글이나 애플의 본사, 또는 월스트리트 같은 선망의 직장에서 무보수로 일하면서 빠르게 경험을 쌓고, 한국에 돌아와 적절한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다면 개인에겐 괜찮은 선택이다.
다만 현재 미국은 이 선택지를 취하는 학생들이 늘어났기에 기업에 값싼 인력이 유입되었고, 인턴 숫자가 늘어났고, 상대적으로 ‘유명한 직장의 인턴’의 가치는 낮아지고 있다(세계적인 한 IT 회사의 경우 얼마 전에 인턴만 200명을 뽑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학생에겐 ‘아직’ 선택할 만한 옵션이다. 국내 대기업 인턴 같은 건 별 좋은 카드가 되진 못한다.
월급을 줄 만한 형편도 못 되는 작은 기업을 선택해서 개인의 역량을 빠르게 올리는 방법도 있다. ‘맨유의 후보로 성장할 것이냐, 아니면 조기축구회의 주전으로 뛰어서 성장할 것이냐’의 선택이다. 나는 몇 가지 상황 판단 하에서 후자가 낫다는 결론을 얻었다(물론 굶어죽지는 않겠지 싶은 생각도 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월급 70 받고 어떻게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김밥만 먹으면서, 낮 4시 정도면 허기져 쓰러지기도 하면서 어떻게 버텼나 싶은데 젊으니 할 수 있는 도박이기도 하다. 다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카드는 자신의 커리어 패스를 확실하게 만들 수 있을 때만 선택 가능한 옵션이다.
개인들은 선택해야 하고 또 살아남아야 한다
국가의 전략은 뒤로 하고, 미래 노동시장에서 노동자들에게 요구되는 건 대치동 학원가와 토익점수로 표상되는 스펙경쟁에서 탈피해 ‘또라이’로 상징되는 노동시장에서 독점적 마켓을 구축하는 것이라 본다.
남보다 학점 좀 더 잘 받았다고(아예 수석이라면 몰라도), 토익 점수 좀 더 좋다고(이젠 영어 네이티브도 별로…) 취직 잘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왜 ‘이렇게 노력해도 취직이 안 되느냐’고 해봐야 안타까운 마음이야 들겠지만 사실 근본적 해결이 되진 않는다. 결국 이렇게 써놓고 보니 ‘한 개만 잘 해도 대학 간다’는 이해찬이야말로 선지자였나 싶다.
기업 입장에선 토익 900, 중국어 몇 급, 봉사활동 몇 회… 이런 게 아니라 뭔가 하나라도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언제나 꿈꾸고 끝없이 찾아다니는데, 이거 뭔 똑같은 자소서와 숫자만 차이 나는 이력서뿐이니 서로가 서로에겐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 아닌가 싶다.
미래에 대해
결국 지금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직군은 “기계”에게 대체 당하는 직군이다. 앞서 말한 열쇠복사집을 비롯해 캐셔, 택시드라이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기존 ‘회사 vs. 노조’의 노동시장의 대립이 현재는 ‘인간 vs. 기계’로 바뀌고 있으며 현재는 인간이 지고 있는 형국이다. 교육은 여전히 ‘스펙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동안 기계가 승리하는 형국은 계속될 듯하다.
향후 미래엔 결국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한다. 학자로의 커리어 패스가 될 수도 있고, 예술과 관련한 커리어 패스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기계를 이기기 위해 투입되는 교육 시간의 양은 늘어날 것이다. 과거엔 ‘회사를 다니며 성장한다’라는 말이 그나마 좀 있었지만 향후 미래엔 개인 역시도 ‘투자-이익 향유’의 시간 구분대가 더 명확하게 나눠지지 않을까.
10년 중에 3년은 학교에서 배우고, 7년은 다시 일하고, 또 3년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7년간 다시 일하고… ‘저녁이 있는 삶’ 같은 건 없어지지 않을까. ‘사생결단(All or Nothing)’ 게임의 확장이다. 10년 중 3년간 올인해서 수익 올리고 7년은 그냥 쉬면서 놀고. 중간층이 아예 없어진다면 ‘투자-수익’의 커리어 패스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제 우린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떻게 인간이 기계를 다시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래의 인류는 그저 우울할 뿐이다.
원문: JD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