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서 65살이 돼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것입니다.”
2013년에 있었던 일이다. 기초연금의 국민연금 연계 방안을 놓고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노인들에게 주는 기초노령연금을 정비해 기초연금으로 개편하면서,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이라는 약속을 어기는 기조의 정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초연금을 도입해 매달 20만원씩을 지급하되, 소득 상위 30%에게는 지급하지 않으며 국민연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받는 노인들에게는 그만큼 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 방안이었다. 그러던 중, 당시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장이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한 말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인생을 잘못 사신 것’이라는 언급이 공분을 일으켰다.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면 인생을 잘못 사신 것”
사실 이 언급은 사실 그 동안 한국인이라면 상당수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국민연금은 자신이 고용되어 있는 동안 받던 급여 수준과 고용 기간에 따라 연급수령액이 달라진다. 높은 급여를 받으며 오래 일했다면 더 많은 연금을 받는다. 반면 기초연금은 그와는 무관하게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 보편적 연금을 기본 틀로 하고 있다.
따라서 기초연금에 기대어 산다면 ‘잘못 사신 것’이라는 언급은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사람, 소득이 너무 낮았던 사람은 잘못 산 것’이라는 철학을 내포하고 있다. 기초연금을 덜 수령하는 사람, 기초연금이 필요없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잘 산 사람이다. 즉 노후에 어떤 연금을 받느냐는 그 사람 인생 전체의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는 이야기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노후 소득이 상위 30%에 해당하면 잘 산 사람이다. 이들은 기초 연금을 받지 않아도 되니까. 부부합산 소득이 월 140만원 가량 이상이면 여기 해당한다. 금융자산이 꽤 있거나 부동산 골프회원권 고급승용차 같은 것을 갖고 있어도 잘 산 사람이다. 이런 재산도 모두 기초연금을 깎거나 받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거꾸로 말하면 나이 들었는데 돈 없고 집 없고 차 없으면, 잘못 산 사람이다.
한국은 스스로 ‘정말 잘못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다. 한국의 10만명당 100명이 압도적인 세계 1위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하는 사회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라도, 한 생애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마감하려면,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이 얼마나 깊어야 할까. 짐작하기조차 어렵다.
만일 문제가 이렇다면, ‘좋은 삶’에 대한 성찰을 제대로 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아닐까? 한국사회를 소득과 재산의 무한증식을 향해서만 달려가는 정글에서, 삶의 질을 중심에 놓고 함께 하는 공동체로 변화시키려면 말이다.
좋은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독일 에버트재단이 몇 해 전부터 진행 중인 ‘좋은 사회 프로젝트’(Good Society Project)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에버트재단은 사회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기관이고, 독일사민당을 포함해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싱크탱크 및 교육기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도 어렵지만, 유럽은 이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렵다. 가장 잘 나간다는 독일에서도 격차가 심화하고 임금은 정체되어 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유럽 정치의 주류를 형성하던 사회민주주의는 과거만큼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좋은 사회 프로젝트는 ‘좋은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가치로부터 토론을 시작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눈 앞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눈 앞의 유권자에 대한 대응을 주로 이야기하는 전형적 정책토론과는 다른 접근이다.
독일의 보수진영인 기민당의 앙헬라 메르켈 총리조차도 이런 기조에 동의하는 모습이다.
메르켈 총리는 ‘행복’에 관심이 많다. 독일은 유럽위기 기간 동안 내핍정책에 성공하면서 유럽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경제성장률을 지켰다. 하지만 행복도는 높아지지 않고 있다는 게 메르켈의 생각인 것 같다. 밖에서는 칭찬하지만 안에서는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런 고민 속에 ‘행복’을 나타내는 지표를 만들어 경제성장률 대신 사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행복한 삶이 좋은 삶’이라는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치권의 정책논쟁은 늘 뜨겁지만 ‘무엇이 좋은 사회인가’와 같은 가치에 대한 토론은 들어본 지 오래 됐다. 그 기반이 될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토론은 더욱 찾기 어렵다.
집과 자동차와 예금통장을 향해 평생을 전력질주하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생각은 이미 유통기한을 넘겼다. 현재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집과 자동차와 예금통장이 아니라면, 한국인에게‘좋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여기서부터 출발해 정책 패러다임을 새로 짜는 것이 필요한 시기다.
※ <뉴스토마토>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