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하죠?”
“나도 몰라. 하지만 사람들도 생각 없이 말을 하잖아.”
-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 도로시와 허수아비의 대화
인간의 뇌는 불완전하다. 한번 저장되면 휴지통에 넣기 전에는 지워지지 않는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달리 수시로 삭제와 복구를 반복한다. 만약 언젠가 인간과 꼭 닮은 인공지능 로봇이 만들어진다면 그 로봇 역시 사라지는 기억력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을까?
인간은 새로 습득한 정보의 40%만을 받아들인다. 나머지 60%는 과거의 경험으로 재구성한 기억이나 패턴이다. 즉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다 보고 있지 않다. 과거의 기억에 의존해 달라진 것만 새롭게 채워 넣는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나이가 들면 사람이 변하지 않고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새롭게 받아들이는 정보가 적으니 과거의 기억이 업데이트되지 않고, 뇌가 활동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러니 말도 생각 없이 하게 된다.
그렇다면 뇌를 활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뇌를 활발하게 움직여 기억력을 향상할 방법은 뭐가 있을까? 몇 년 전 이수영 KAIST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가 「뇌가 강해지는 비법 10가지」를 발표해 화제가 된 적 있다. 필자는 그 10가지 중 일부를 빼고 새로운 팩트를 집어넣어 재가공해 ‘기억력을 높이기 위한 8가지 비법’을 만들어봤다.
1. 연결해 기억하라
정보를 얻고 저장하기에 좋은 방법은 조합이다. 학습능력과 기억력을 좋게 하려면 배우는 것들 사이의 연관성을 만들어주면 된다. 새로운 이름을 외울 때는 이미 잘 아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장소, 그 장소에서 들었던 음악 등과 연결하라. 새 정보와 이미 알고 있던 정보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겨 더 잘 기억할 것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외울 때 숫자를 하나씩 외우는 것보다 서너 자리씩 집단으로 묶으면 더 잘 외워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 이건 우리 안의 소리.’ 이런 힙합 가사에서도 연결고리가 내면에서 소리를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있다. 꼭 기억해야 하는 정보라면 그 정보를 하나의 점으로 홀로 두지 마라. 점을 연결해 선을 만들어라. 다시 선을 합쳐 면을 만들고, 그 면의 퍼즐을 이어붙여라. 그러면 그 정보는 삭제되지 않고 당신의 뇌 속에 남을 것이다.
2. 양손을 사용하라
인간의 뇌는 좌우로 나뉘어 있다. 신체의 오른쪽을 관장하는 좌뇌는 수학, 논리, 연역, 분석, 질서, 관찰 등에 사용되고, 신체의 왼쪽을 관장하는 우뇌는 창조성, 예술, 직관, 아이디어, 상상력, 공간, 다중처리 등에 쓰인다. 왼손이나 왼쪽 다리에서 온 정보는 오른쪽 뇌로, 오른쪽 손과 오른쪽 다리에서 온 정보는 왼쪽 뇌로 간다.
좌뇌와 우뇌 사이에는 연결통로가 있다. 남녀는 태생적으로 이 통로의 크기가 다른데 여성은 연결통로가 넓고 남성은 좁다. 좌뇌와 우뇌의 연결 상태가 좋을수록 언어 기능이 뛰어나고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말을 더 잘하고,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는 데 불편함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뇌를 균형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해 양손을 사용해보자. 오른손잡이라면 마우스를 왼손으로 잡아보고 칫솔질도 왼손으로 해보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한쪽 뇌에만 기억을 맡기면 뇌에 쉽게 과부하가 걸릴 것이다. 특히 연결통로가 좁은 남성들은 더 훈련해야 한다.
3. 잠자기 직전에 공부하라
잠을 자는 동안 뇌는 깨어있을 때 채집했던 정보들을 저장한다. 정보들의 상태가 신선할수록 더 잘 저장된다. 잠은 기억력을 향상시켜 다음 날 같은 과제로 돌아왔을 때 전날보다 훨씬 나은 수행 능력을 발휘하게 한다. 잠들기 직전에 본 정보들은 깨어났을 때 더 잘 기억되고,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수면 단계에서 불필요한 정보를 정리하고, 기술을 갈고 닦는 과정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잠의 질도 중요하다. 잠자는 동안 중간에 깨면 그만큼 기억력은 저하된다. 한 실험에 따르면, 잠자는 동안 방해받은 참가자들은 푹 잔 참가자들에 비해 과제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 밤에 잠을 푹 잘 수 없는 상황이라면, 짧은 낮잠이라도 자라. 낮잠을 자면 뇌가 새로운 정보를 종합하는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꿈은 깊은 잠에 빠져들 때 찾아오는데 우리가 보고 경험한 것들을 다시 기억하도록 돕는다. 꿈꾸기 전 외운 것들은 깨어난 뒤에도 오랫동안 기억된다.
4. 외우지 말고 뇌에게 설명하라
인간의 뇌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진화해왔다. 뇌는 주변 환경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뇌는 단순히 암기한 것보다는 이해한 것을 더 잘 기억한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뇌에게 잘 ‘설명’하면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와인 소믈리에는 수많은 와인의 맛을 봐야 한다. 맛에 따라 와인의 종류를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혀와 코의 특정 부위를 계속해서 자극해야 한다. 거의 비슷한 와인의 향과 맛을 그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비밀은 뇌에 있다. 맛을 이해하는 것이다. 코의 비강(콧구멍에서 목젖 사이의 빈공간)이 보내는 신호를 받은 뇌는 맛을 인지해 뇌에 저장된 맛과 비교해본다.
이때 정보들은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들어와 색과 향, 바디감, 구조감 등을 표현하기 때문에 뇌는 정보들의 미세한 차이까지 판단해 기억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공부를 할 때도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뇌에게 설명해 이해시키면 그 기억은 디테일까지 유지될 것이다.
5. 실수하더라도 자신감을 가져라
뇌는 실수를 통해 배운다. 그런데 실수도 자신감 있게 해야 나중에 기억에 더 잘 남는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고심하다가 확신하고 답을 적었다. 다른 사람은 백지를 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답을 맞히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정답을 누가 더 잘 기억할까?
실험 결과에 따르면 오답을 확신했던 사람은 백지를 낸 사람보다 더 잘 기억했다. 시험뿐 아니라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자신감을 가지고 틀리면 이후 바로 잡아준 지식이나 행동을 유지하기 더 쉽다. 백지를 낸 사람, 즉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은 사람은 이를 바로 잡은 정답을 기억해낼 확률이 자신감 있게 틀린 사람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다.
밴더빌트 대학의 심리학자인 리사 파지오 교수는 잘못된 기억이나 생각이 바로잡힐 때 사람은 훨씬 그 일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한다. 자신감을 가졌던 사람은 답이 틀렸더라도 “어? 그게 아니었어?”라며 눈과 귀를 쫑긋 세우기 때문이다. 이를 ‘주의 포획 효과(attentional capture effect)’라고 한다.
6. TV를 본 뒤 명상하라
텔레비전은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정보를 준다. 뇌는 그 많은 정보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반복되면 나중에는 뇌가 새로운 정보를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차라리 모바일에서 TV 프로그램을 몇 분씩 쪼개서 보는 것은 조금 낫다. 프로그램을 본 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대의 마커스 라이클 교수는 인간의 뇌에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특정 부위가 있음을 밝혀냈다. 사고, 기억, 판단 등 인지 활동을 할 때만 두뇌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인지 활동을 하지 않아도 뇌가 활동하더라는 것이다. 멍 때리는 시간도 뇌에게 도움이 되는 이유다.
뇌가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밀어 넣지 말라. 만약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명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들을 정리하라. 하드디스크의 조각모음이 하드디스크를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뇌에도 조각모음이 필요하다.
7. 일상을 벗어나라
뇌는 변화를 즐긴다. 틀에 박힌 것은 싫어한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는 삶은 뇌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뇌는 일상적이고 변화가 없는 정보는 저장하지 않는다. 기존의 정보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새로 저장’할 정보가 많아야 기억력도 좋아진다.
일상을 벗어나는 일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삶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 책을 읽을 때 한 권을 다 읽고 다음 책으로 넘어가지 말고,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어보자. 첫 번째 책을 30분 동안 읽다가 이어서 다른 책으로 넘어간다. 교과서를 읽다가 시집이나 재미있는 잡지를 읽어본다. 이렇게 하면 뇌가 다양한 분야에 필요한 세포들을 깨워 집중력이 더 높아진다. 늘 먹던 음식보다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고, 안 가본 식당에 가보자.
가장 좋은 건 여행이다. 여행의 기억은 오래간다. 호텔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여행에서 새로운 경험이 많을수록 그 여행은 더 오래 기억된다. 하지만 여행이 너무 길어지면 그것 역시 일상이 되니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다. 여행은 뇌의 환경이 결정되는 12세 안팎에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언제라도 좋다. 새로운 장소나 인종, 이국적인 음식을 접하면 뇌의 활동에 도움이 된다.
8. 도전하고 배워라
인간의 뇌는 무게 1.5킬로그램, 부피 1,260세제곱센티미터가량 된다. 뇌의 저장용량은 최대 2.5*10의 42승 비트다. 오늘날 지구의 모든 디지털 정보량이 약 3제타바이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으로 거대한 용량이다. 만약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해마만 USB처럼 따로 떼어낸다면 2.5페타바이트 정도의 용량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큰 저장장치를 가진 우리는 뇌를 얼마나 제대로 쓰고 있는가? 고작 1%도 채 활용하지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닌가? 기억력을 높이려면 도전하고 배워야 한다. 외국어를 익히고, 글을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보라. 아직 해보지 않은 활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뇌에 자극이 될 것이다.
뇌는 안전하지 않은 상태를 싫어한다. 이것은 생명체의 본성이다. 하지만 뇌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머물려는 본성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
원문: 유창의 창작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