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이는 많은 IT 관련 문제들이 그 밑바닥을 파고 들어가다가 보면 ‘시대 적응’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는 하는데, 금태섭 변호사의 신간에서 발췌했다는 이 사진이 페이스북에 돌면서 또 하나를 확인했다.
요약하면 “(금태섭 변호사가 어떤 일이 있어) 최시중 방통위원장에게 이메일을 보내려고 했더니 이메일을 안 쓴다”는 것인데,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가 우리나라 방송과 정보통신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곳이라는 걸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관련 내용이 기사로 추가됐다.)
사실 이렇게 ‘적응 못 한 노인네들이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문제’는 IT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것들에서 ‘구시대와 신시대의 충돌’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기업을 비롯한 조직 문화도 그 중 하나다.
한국은 일제 시대 ‘황군’의 잔재로 고착된 군대의 상명하복 시스템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소위 ‘군대식 문화’라는 것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것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게 특히 한국과 일본에만 집중된 이유는 다 뿌리가 거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에서는 직급이 높은 사람이 나이가 많든 적든 인격적으로 어른의 역할이 된다. 이를 무시당하면 조직의 기반(상명하복)을 흔드는 것이 되고, 조직적인 공격을 받는다. 시스템의 부패를 폭로하기도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 구조를 지키기 위해서 나이가 많은 하급자는 대우하기 어려워하는 ‘불편함’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조직의 상급자는 인간적으로 상급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나이가 들면 당연히 직급이 올라가야 하는 것이고
- 그래서 나이 많은 하급자는 무능한 것이고
- 상급자의 부패나 조직의 문제를 외부에 이야기하는 것은 조직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고
- 하급자는 상급자에 복종해야 하고
- 상급자가 ‘까라면 까야하는’ 것이고
- 상급자는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고
- 직급이 높은 사람의 결정은 아래에서 이의제기를 수 없는 것이고
- 상급자를 위해서 하급자가 희생을 해야하고
전부 군대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사회 조직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리고 이 직급-권력 관계는 조직내 성희롱과도 엮여 있다.) 이런 환경에서 소위 말하는 ‘수평적 조직’이라는 걸 만드는게 가능한가.
간혹은 이런 문제들이, 시간이 가고 우리가 주도세력이 되면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하지만, 이 조직 구조에 적응한 사람들과 적응하지 않은(적응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최소 4:6이 되어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하면, 30~50년까지는 봐야지 않나 싶기도 하다.
수평적인 조직을 구성하겠다는 사장이 있다고 치자. 조직의 ‘상층부’는 사장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구성할 수 있겠지만, 중간 관리자 이하 직원들의 구성원은 (편향성이 있긴 하겠지만) 랜덤에 가깝게 구성된다. 이 랜덤은 결국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같은 수준일 것이다. 결국 그러면 ‘수평적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상층부와 ‘그게 뭐야 몰라 무서워’하는 하층부의 갈등이 벌어진다. (여기엔 또한 직급-권력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보수적 성향도 함께 엮여 있다.)
많은 회사들이 사내에서 영어 이름을 부른다든지, 직급을 없앤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시도를 하지만 이건 결국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모든 문제가 그렇지만,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참 어려운 문제다. 열심히 떠들고 열심히 설득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조금씩 주변 인식들을 바꾸면 언젠가는 사회 인식이 바뀌지 않겠나.
시끄럽자.
원문: NAIRRTI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