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자기 소개를.
A. 저는 40살이고 회사생활을 5년 동안 하고 현재 서울에서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ㅇㅇㅇ 입니다.
Q. 학교와 회사 등의 커리어를 알려 달라.
A. 1995년 서울의 중간 정도 되는 대학의 경영학과에 입학해서 2003년에 졸업했다. 그때만 해도 4학년이 되어야 취업준비라는걸 본격적으로 하는 분위기였다. 스펙은 그때도 필요했다. 그래서 캐나다에 11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가서 오직 토익만 준비했다.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한국에 돌아와서 첫 토익 시험을 봤는데 935점이 나왔다. 그리고는 토익책을 모두 버렸다. 또 군대 가기전 학점이 워낙 안 좋아서 B+ 이하는 모두 지우고 방학도 없이 계절학기를 듣고 학점관리를 정말 열심히 했다.
취업시즌이 되고 롯데, 현대, 삼성 등의 대기업에 원서를 내고 면접을 많이 봤다. 모두 떨어졌다. 지원자들이 서로 토론하는 등의 소위 ‘말빨’이 필요한 면접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정말 내성적 이었고 남들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내가 입사한 **회사는 토론 면접처럼 자기 잘난 걸 어필하는 면접이 없었다. 그냥 임원이 물어보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학생 때부터 부동산, 증권 등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졸업 전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것도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연관이 매우 컸다. 2003년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 제조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2008년 초에 회사를 떠났다. 총 회사생활을 한한 건 5년이다.
2008년, 5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 뒀다
Q.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A. 나는 ‘관제팀’이라는 회사의 부동산, 건물, 공장 등의 자산을 관리하는 팀에 배치받았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덕이었다.팀에 들어오니 내가 막내였고 전부 나이가 많았다. 내 위의 과장이 나보다 10년이나 선배였다. 그래서 2년 차부터 실무는 거의 나 혼자 다 했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있었으니 나를 믿었던 것이다.
회사의 계열사 건물 신축과 구조배치 이런 프로젝트를 맞아서 진행했다. 건물 짓는 금액에 천억에 가까운 비용이 드는 큰 공사였다. 팀장과 차장은 건설업무를 맡아서 했다. 나는 위의 과장과 함께 부동산 매입, 매각, 임대차 계약, 건물 유지 보수 등의 기본 관제 업무를 했다. 아울러 건물 짓는 중간의 서포트 업무도 했다. 공정에 따라 공사 대금을 건설사에 입금하는 업무도 중요 업무였다. 그런 것들이 한 번에 수십억이 달했다.
회사의 문화가 워낙 안정적이고 유명한 대표 상품이 있는 곳이라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몇 사람만 죽어라 일하고 나머지 다수는 그냥 노는 문화였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다른 회사에 비해 일의 강도는 적었지만 일하는 사람은 죽어나는 분위기였다.
Q. 회사원일 때 어떤 사람이었나?
A. 나는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부서에 있던 5년 동안 내가 늘 가장 먼저 출근했었다. 평균 잡아 30~40분 정도는 항상 일찍 출근했었다. 그리고 나이 많은 팀장님, 부서원들이 많았고 나만 관련 자격증이 있어서 일을 엄청 많이 했다. 바로 위의 과장이 나보다 10년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기본적이지만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컴퓨터를 다루는 기술도 다 내가 맡아 했다. 회사에서의 평판도 매우 좋아서 그만둔다고 했을 때 인사팀장도 엄청 말렸던 것 같다.
Q. 회사를 떠난 이유는 무엇인가?
A. 어려운 질문이다. 솔직히 회사생활을 오래 해야겠다는 마음은 입사 때부터 없었다. 내가 스스로 내 일을 하고 싶은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부모님도 그걸 원했다. 그리고 회사라는 타이틀이 있어야 결혼도 쉬웠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기 때문에 회사에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출근, 기약 없는 퇴근, 스트레스, 과도한 눈치 등의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비슷한 회사생활의 단점 때문에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회사생활을 오래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한 걸 보면 나는 독특한 케이스다.
무언가 창업을 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많이 있던 PC방을 생각했다. 그냥 사람을 써서 운영하고 나는 수금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8년 차 자영업자 입장에서 보면 정말 바보같이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직장을 다니다가 창업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2008년에 회사를 나오기 일 년 전에 PC 방 하나를 보증금 **** 만원에 인수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침에 PC방에 들러 현금 수금해서 출근하고 일 마치고 퇴근하는 삶이었다. 처음엔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 가까운 위치에 망한 PC방을 누가 인수해서 완전히 새롭게 리모델링 해서 오픈했다. 그 여파로 손님들이 40% 정도는 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해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도 집중하기 어렵고 PC방도 망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PC방에 올인하기로 했다.
지금 와서 말하면 PC 방에 올인 하기로 한 것은 만용이었다. 자영업이라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경쟁의 바닥을 전혀 몰랐던 것도 회사를 떠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무식했으니 용감했던 거다. 직장생활하며 따뜻한 밥만 먹고 사니 세상 물정을 알 기회도 없었다.
성실했던 내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회사를 스스로 떠난 이유
Q.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한 개인적인 이유는 뭔가?
A. 굳이 이유를 찾자면 스트레스였다. 5년 차 정도 되니 업무량이 더더욱 늘어났다. 공인 중개사 자격증도 있었고 경영학과 출신이고 시키는 일을 잘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이 많은 팀장, 차장 등이 나를 좋아했었다. 일을 막 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좀 심했다. 건설과정에서 대금을 관리하고 토지를 매입하고 임대차 계약을 맺는 등 일이 워낙 큰 돈이 움직이는 것이라 그랬다. 한번 내가 잘못하면 회사에 엄청난 손실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연차가 쌓여도 팀에서 막내였는데 그런 내가 거의 모든 실무를 다 하는 것에 압박이 너무 심했고 싫었다. 나를 보호해 주거나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Q. 회사를 떠났지만 회사를 다녀서 좋았던 점도 많지 않은가?
A. 당연하다. 엄청 많이 배웠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배우는 사회생활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나는 직무의 특수성 때문에 재테크의 수단들을 회사일을 하면서 배웠다. 보통 직장인이 경험할 수도 없는 규모의 토지 매매를 해봤고, 건물 및 부동산을 보는 안목도 키울 수 있었다. 윗사람들이 나이와 경험이 많아서 향후 부동산의 개발 가능성 이런 걸 보는 눈은 뛰어났다.
그리고 임대계약을 할 때의 스킬도 많이 배웠다. 내가 건물주일 경우 임대료를 더 받는 방법, 내가 세입자일 경우 임대료를 조금이라도 아끼거나 동결 혹은 인상률을 최소화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경험으로 배웠다.
물론 신규로 건물을 짓는 프로세스 감리, 설계, 취득세, 등록세 관리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일반 직장인이 평생 접할 수도 없는 다양한 부동산 전반에 대한 Flow를 배웠다. 월급쟁이로서 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솔직히 이것만 해도 엄청난 이득이었다.
회사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로 아파트 구입, 분양, 임대, 재개발, 오피스텔 등 다양한 재테크 수단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Q.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를 준비한 것이 있는가?
A. 말했듯이 배우고 경험한 것으로 개인적인 재테크에 신경을 많이 썼다. 무엇을 하더라도 대한민국에서는 돈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또 얼마의 돈이 있어야 어떤 창업을 내가 할 수 있을까를 매일 찾아봤다. 프렌차이즈 설명회 상담 등도 많이 받았었다. 그때 ‘ㅇㅇ도너츠’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것도 내가 아무것도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 붐을 타고 PC방을 열다
Q. 왜 하필 PC 방이었나?
일단 대학시절 스타크래프트 붐이 있어서 내가 PC방을 엄청 많이 다녔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기에 PC방은 주인이 하는 일 없이 알바만 계속 돌리면 돈을 수금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다. 거듭 말하지만 쪽팔릴 정도로 순진한 생각이었다. 전문 지식도 없었기에 시작했고 8개월 만에 하나를 말아 먹었다.
Q. 회사를 떠날 때 불안하지는 않았나? 잘할 수 있을까? 혹은 잘할 수 있다. 라는 감정이 매일 반반 될 것 같다.
A. 회사를 떠날 때 후련한 마음은 한 30% 정도였다. 앞으로 내가 자영업자로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나머지 70%였다. 내가 회사를 떠났을 때가 34살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을 했고, 후회도 많이 했지만 PC 방이라는 업종도 정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면 지탱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위에 상사도 있고 아랫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자영업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다 내가 챙겨야 한다.
PC방 하나를 매도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그 중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는 포기하는 것이었다. 경쟁업체가 더 나은 인테리어와 더 나은 컴퓨터 사양으로 밀고 들어오면 이길 수가 없다. 내가 ‘더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고 서비스를 잘하면 되겠지’라는 것은 아마추어 적인 생각이다. 경쟁업체가 생겨서 이를 악물고 버티던 시간 동안 마음이 점점 단련된 것 같다. 그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많이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월급의 90% 정도를 저축하며 돈을 모았었고, 아버지가 도움을 주셨지만 작은 집도 있었기 때문에 “까짓거 한번 망해도 일어설 수 있다.”는 오기 같은 것도 있었다. 불안은 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8개월이 아니라 더 버텼으면 나는 더 큰 타격을 받았을 것 같다.
Q. PC방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면 무언가?
A. PC방은 사장, 주인이 없으면 절대로 안 된다. 절대로. 사장이 없으면 100% 티가 난다. 그리고 그것은 매출로 귀결된다. 왜냐면 고쳐야 할 것, 청소해야 할 것도 많고 어느 정도는 친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장이 있어야만 단골이라는 것이 생긴다. 사장이 없이 단골이 생기는 것은 정말 예쁜 직원이 있을 때뿐인 것 같다. 알바는 절대로 사장처럼 일을 안 한다. 열심히 하면 돈을 올려주고 싶은데 열심히 하는 알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 알바가 있으면 월급을 더 올려주고 직원으로 쓰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개인이 하는 작은 자영업의 키는 ‘인건비’다. 지출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여야 수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최저 임금이 올라간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힘들다. 최저 임금의 변화에 타격을 받는 사람은 ‘영세 개인 자영업자’들이다. 돈 많은 사업주는 거의 타격이 없을 거다.
Q. 자영업자와 알바 얘기가 나왔다. 어떻게 생각하나?
A. 우리나라는 주거비가 너무 높고 물가도 높다. 최저시급 6,030원 되어도 알바도 힘들고 자영업자도 힘들다. ‘알바 vs 자영업자’의 문제가 아니라 아예 힘들게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치고받고 싸우게 만들어 놓은 구조 자체의 문제인 것 같다. 판이나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그 프레임 안에 사람을 갇히게 만들어 버리고 자신은 빠져나가는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사회가 너무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나도 대한민국에서 40년을 살아왔지만 40년 동안 계속 힘들어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6,030원을 받고 10시간씩 한달 내내 쉬지 않고 30일 일해도 180만 원이다. 그런데 한달 내내 일할 수도 없다. 20~25일 정도 일하면 120~150만 원 정도 번다. 그 중에 아무리 싼 방이어도 30~35만 원은 나간다. 연락은 해야 하니 핸드폰은 써야 하고 인터넷도 써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돈을 모아서 연애도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은 취업이 안 되고서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니 5포, 7포 세대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내 자식들 세대에는 부모의 지원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될 것 같아 두렵다. 나도 가게를 보면서 동남아 이민 이런 걸 쳐본다.
Q. 회사를 떠날 때 결혼을 한 상태인데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A. 그때는 와이프와 맞벌이 중이었다. 나오고 싶으면 나오라고 했다. 물론 내가 계속 그만두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큰 갈등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와이프도 내가 계속 얘기하니까 짜증이 나서 그냥 관두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맞벌이여서 회사생활의 스트레스를 이해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은 언제 들어와도 돈을 벌 수 있다
Q. PC방을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것은 없나?
A. 준비하면서는 없었다. 왜냐하면 기존의 PC방을 인수했었고 돈만 수금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준비하면서는 없었다. 건물주와는 임대계약, 인수한 사람과는 매매계약만 맺으면 되었다. 그리고 그런 계약을 회사에서도 많이 해봐서 어렵지 않았다. 단지 준비기간의 무지함이 실전에서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을 뿐이다. 다른 사람은 준비하고 계약하는 단계에서 사기를 엄청나게 당하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닳고 닳은 업자들은 그렇게 순진한 직장인들을 딱 보면 안다고 한다.
Q. PC방 사업은 어떤가? 엄청난 레드오션 아닌가?
A. 레드오션은 이미 된 상태이고, 거의 블랙오션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간 피가 너무 많아서 검정색으로 변한 바다다.
하지만 돈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들어와도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다. 자본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블랙오션이 맞다. 폐업률 3위안에 항상 든다. PC방은 다수의 영세하고 자금력이 없는 사람들이 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자금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외부의 충격과 변수에 대응을 할 수가 없다. 한 번 외부 충격에 대응하려면 수천의 금액이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PC방이 신규오픈 하거나 리모델링+컴퓨터 업그레이드했을 때가 그렇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이런 충격으로 매출이 떨어져도 버틸 수가 있다. 그리고는 그 충격보다 좋은 사양으로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이 없는 사람은 몇 달 동안 매출이 떨어지면 휘청할 수밖에 없다. 경쟁업소가 더 좋게 하는데 전혀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쟁매장의 경쟁우위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고 나는 그것을 바꿀 능력(돈)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폐업하는 것이다.
Q. PC방은 그럼 업의 본질이 무언가? 이건희 씨가 업의 본질을 강조 했다고 하는데……
A. 이건희 회장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경험해 보니 PC방의 본질은 ‘시설업’이다. 모텔도 아마 비슷할 것 같다. 옛날에는 나도 이런 것을 전혀 몰랐다.
PC방은 노하우 라는 것으로 승부를 보는 곳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당 같은 곳에는 오래된 자신만의 맛, 레시피 등의 노하우가 있다. 하지만 PC방은 시설이 전부다. 좋은 위치, 좋은 사양의 컴퓨터를 이길 수는 없다. PC방에서의 경쟁력은 시설이다. 돈을 바른 최고 사양의 컴퓨터와 앉으면 잠이 올 정도의 편한 의자, 화사한 인테리어가 있으면 손님이 오지 말라고 해도 온다.
첫 PC방을 폐업하며 알게 된 것인데 당구장, PC방 같은 것만 전문적으로 매매를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 개인이 혼자 매매자를 찾아서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런 업체가 건당 300~500만 원 정도를 수수료로 받는다. 그런 사무실은 강남의 좋은 곳에 있다. 망하는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곳이다. 그런 곳에 첫 PC방을 폐업하면서 그 중계업소의 여자 사장에게 PC방이 ‘시설업’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 ‘시설업’이기에 돈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싼 대가를 치룬 것이다.
Q. PC방은 하면서 생긴 버릇은 없는가?
A. 하나다. 돈을 안 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살아남기 위해서는 돈이라는 나의 총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이나 부모님께는 돈을 쓴다. 엄밀히 말하면 나를 위한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 올 여름에 티셔츠 1벌 산 게 전부다. 말한 것처럼 ‘시설업’이다 보니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려면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Q. PC방에도 프렌차이즈가 있다.
A. 아는 사람은 절대로 프렌차이즈를 하지 않는다. 이미 PC방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다시 프렌차이즈 PC방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지 않는 것이 답이기 때문이다. 기본 창업비용 자체가 더 많다. 1~2년 동안 당신이 순수익으로 벌 수 있는 정도의 돈을 프렌차이즈에 주고 시작한다고 보면 된다. 길게 말하지 않고 싶지 않은 점 양해해 달라.
Q. 하루 일과는 어떤가?
A. 일반적으로는 9~6시, 6~11시, 11~9시까지 이렇게 3교대로 움직인다. 그 중 주인이 보통은 9~6시를 맡아서 한다. 하지만 나는 9~11시까지 직접 일하고 나머지 야간 시간은 알바가 한다. 하루 14시간을 혼자 일한다. 인건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 가면 12시가 넘는다. 당연히 와이프나 아이는 잠들어 있다. 아침에 7시에 일어나서 테니스 레슨을 받고 바로 출근을 한다. 여기 와서 씻고 일하고 점심, 저녁을 사 먹는다. 또 늦게 퇴근하니 친구들을 만날 시간도 없다. 친구 관계는 거의 다 끊겼다.
9~11시까지 이곳에 앉아 있는 삶을 생각해 보라. 보통 사람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겁을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너무너무 힘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하니까 또 적응이 되더라. 그대신 매일 아침 운동은 절대로 빼먹지 않는다. 그 시간마저 없으면 삶이 삶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몸이 망가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데 도움도 된다.
Q. 자영업 사장으로 사는 것은 어떤가? 사장의 자유로움 보다 고단함이 연상된다.
A. 영세 자영업자에게 사장이란 말은 없다. 사장은 그저 알바 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 잘하는 알바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Q. 조개구이, 찜 닭, 빙수처럼 유행이 왔다가 사라지는 창업 업종이 많다. PC 방은 어떤가?
A. PC방은 계속 유입되고 퇴출되고 있다. 왜냐하면 먹고살 만한 기술을 가진 사람은 적고 기술 없이 창업할 수 있는 업종에 속하기 때문이다. 퇴직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창업을 하고 망해나간다. 하지만 상위 10% 돈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돈을 번다.
Q. 카페 같은 경우 경쟁점이 근처에 생기면 대표상품 (아메리카노)의 가격을 낮추는 치킨게임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PC방도 그렇지 않나?
A. 가격을 무기로 한 치킨게임의 원인은 ‘감정’ 때문이다. 내 목에 칼을 겨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주변에서 가격을 낮추면 내 생계를 위협하는 것으로 느낀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생계에 위협을 느끼고 가격을 따라서 낮춘다. 자금력이 없는 곳은 다시 찾아와서 가격을 올리자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격을 낮춘다는 것은 장사가 잘 안 된다는 뜻이다. 돈 잘 버는데 가격을 낮출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치킨게임에 참여하는 순간 모두가 죽는 거다.
간단히 계산해 보자. 1,000원을 받는데 250원 게임비가 든다. 그런데 잡비, 알바비로 50원을 잡으면 700원이 수익이다.그런데 가격을 500원으로 내리면 200원이 남는 거다. 순수익으로 치면 700원이 200원으로 까이는 거다. 어마어마한 거다. 제 살을 깎아 먹는 정도가 아니라 팔을 한쪽을 떼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경우 경쟁점이 생겨 가격싸움으로 들어가면 먼저 찾아가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얘기가 잘되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8년 차 자영업자의 ‘오래 버티는’ 노하우
Q. 여러 형태의 자영업자들이 있는데 오래 버티는 법을 말해 준다면?
A. 지금은 무한 창업 시대다. 누구나 창업을 할 수 있다. 업종마다 특성이 다르지만 내가 아는 PC방만 얘기한다면 창업하는 순간에 오래 갈 수 있는지가 결정이 된다고 보면 된다. 바로 학교위생정화구역 때문이다. 학교 담장으로부터 200m 안에는 PC방 창업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화 구역 때문에 창업을 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으니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번화가나 유동인구에 창업을 하면 옆에 더 큰 PC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무한 경쟁에 노출될 수 있다. PC방은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 60%를 차지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돈이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정화구역 때문에 더 이상 생기기가 힘들다. 나는 회사에서 부동산 관련 일을 해 봤기에 이런 입지를 파악하는데 남들보다는 조금 더 유리했던 것 같다.
Q. 가게를 운영하면서 경기의 부침은 없었나?
A. 경쟁점 생기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경쟁점을 넘지 못해 하나를 매도했다. 다른 곳에 새롭게 오픈해서도 운 좋게 나쁘지 않았다. 엔씨 소프트에서 ‘아이온’이라는 게임이 나왔을 때는 엄청나게 잘 됐었다.
게임 셧다운제로 인한 매출 하락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단, PC 방에서 금연법이 2014년 초에 실행되었는데 그때 매출이 많이 빠졌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모르겠는데 담배를 하나 물고 ‘서든어택’같은 슈팅게임을 하는 맛이 그렇게 짜릿하다고 들었다. 그 이후 대작 게임이 나오는 대로 망했다. 2013년 에니팡을 시작으로 LTE무제한 요금이 확산 되면서 게임의 중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모바일은 PC 게임에 비해 리스크가 적기 때문에 게임회사들도 선호하는 것 같다. 올해 나올 예정인 대작 PC게임들이 망하면 PC방은 솔직히 비전이 없다고 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PC방 들이 <PC + 음식점 + 대형화>로 변하고 있다. 어찌 보면 PC가 메인이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이 주가 되는 형태라고 볼 수도 있다. 깨끗한 PC방에서 먹거리를 분식집보다 다양하게 하면서 음식에서 마진을 많이 남기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음식점과 유사한 형태는 이용 금액을 500원으로 낮추고 있다. 생각해 봐라. 500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번화가 한복판에 분식부터 커피, 빙수까지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며 PC게임까지 할 수 있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Q. PC방은 얼마나 오래갈 것 같나?
A. 커피숍에서 커피를 먹어도 커피보다는 자리값에 가깝다. 하지만 PC방은 500원이라는 껌값보다 적은 돈으로 시원한 곳에서 쾌적하게 보낼 수 있다. 게다가 게임도 할 수 있다. 앞으로도 동네 작고 영세한 곳은 문을 닫을 것 같고, 대형화 되고 음식을 함께 파는 새롭게 변화하는 곳만 버틸 것 같다. 하지만 PC방이라는 업태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Q. 회사를 떠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나?
A. 특이하게도 회사를 오래 다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후회한 적은 없다. 그리고 지금 와서 후회해도 바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회사에 있을 때에도 후회 없이 일을 했기에 더더욱 후회를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
Q. 꿈은 뭐였나?
A. 왜 과거형으로 물어보나? 어차피 솔직히 익명으로 하는 인터뷰니까 더 솔직해지겠다.
어릴 적에는 40대 정도가 되면 일하지 않고 은퇴해서 임대업 하면서 수익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이제 40대 초입이 되니 평범한 직장생활로 시작해서 그렇게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은 정말 금수저가 아닌 이상 임대업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고 부동산 관련 평균 이상의 많은 지식과 경험이 있는데도 그렇게 생각한다.
Q. 회사를 떠나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A. 얻은 것은 악착같이 월급을 모았다는 것, 그리고 재테크 지식과 경험을 배운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작지만 임대수익을 낼 무언가를 만든 것이다.
잃은 것은 훨씬 많다. 사실 부모님이 예전에 슈퍼마켓을 해서 나를 키우셨다. 어머니랑 아버지가 교대로 매일 일을 했다. 어느 날 내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가게를 닫을 수가 없어 어머니가 바로 내려가지 못했다. 눈물을 보이시면서 “자영업은 부모도 없더라”라는 얘기를 하셨다. 너무 슬픈 이야기다. 들어서 가슴에 와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내가 자영업을 하다보니 어머니가 했던 그 얘기가 정말 날카로운 칼처럼 항상 내 등에 박혀 있는 느낌이다. 너무 슬프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지금 암 투병 중이신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누구에게라도 맡기고 당장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게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족 간의 관계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먹고 살려면 가게를 선택하고 아들, 남편으로서 도리를 하려면 가족을 선택해야 하는데, 선택이 쉽지가 않다. 내가 쥐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아이와 놀아주거나 와이프와 함께 외식이라는 것을 해 본 것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삶은 0점이다. 부모님의 상황을 생각하면 마이너스다. 차라리 이제는 사람을 더 쓰고라도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기도 하다.
Q.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 돈은 얼마나 버는가?
A. PC방은 방학 때와 학기 중일 때가 차이가 많이 난다. 그리고 이 바닥에 뛰어든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8년 동안 망하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솔직히 잘해온 거라고 생각한다. 뜻하지 않게 2개의 PC방을 운영 중이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시간을 보내며 하는 곳이 수익이 더 난다. 매니저를 두고 하는 곳에서는 8년 차 직장인 월급 정도의 수익 혹은 그 이하로 날 때도 있다.내가 직접 하는 곳은 그것보다는 조금 더 난다고 보면 된다. 사람들이 순수익만 생각을 하는데 내가 쏟는 시간과 잃는 것 들을 생각하면 많은 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
Q. “더럽고 치사해서 내가 회사 때려 친다” 라고 말하는 36세의 후배를 봤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A. 글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얘기겠지만 명확한 목표와 계획이 없이 단지 회사가 싫다고 해서 나와서 자영업을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물론 없어도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냥 해서 성공하는 케이스는 극히 아주 드물다. 왜냐하면 계획과 준비 없이 나오면 기다리는 것은 더 힘든 삶뿐이다. 결혼까지 했다면 더더욱 그렇다. 가족을 볼모로 삼고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Q. 회사를 그만두고 장사나 할까 하는 사람들 많다. 어떤 것이 나은 것 같나? 최대한 버티다가 나오는 것이 나을까? 조금이라고 젊을 때 미리 준비해서 나오는 것이 좋을까?
A.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 내가 지금 상황에서 얘기를 하라면 계속 다니라고 말하고 싶다. 단지 자영업 경쟁자가 하나 더 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길게 보면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회사에서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영업을 통상적인 범위에서 보면 얻는 것보다 잃어야만 하는 것,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TV나 뉴스 보면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해서 인생을 걸고 일만 하다가 회사를 떠나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이상의 사람들 얘기가 가끔 나온다. 요즘 그렇게 회사 일에만 목 매여서 자신의 미래는 생각지도 않고 일하는 사람은 적을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만약 준비가 충분히 되었고 마음을 아주 독하게 먹었다면 마흔살 이전에 시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회는 정말 힘든 곳인데 마흔이 넘으면 아무래도 체력도 그렇고 지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A. 자신의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전부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공한 사람들 스토리 보면 전부를 걸고 했다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주 특별한 경우고 또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전부를 걸 수 있는 것 같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모험을 떠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모험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이다. 전쟁터에서는 군수품이 떨어지면 끝이다. 죽는다. 군수품이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한 총알을 갖추어야 한다. 왜냐하면 2015년 대한민국의 현실은 통계가 말해 주듯이 실패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실패를 하고서도 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군수품이나 총알은 돈일 수도 있고 확실하게 도와줄 수 있는 안전핀 같은 사람일 수도 있다. 실패에 대한 안전장치 없이 자영업을 하다가 파산하고 극빈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안전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나태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지고 더 열심히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세상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모습
세 시간이 넘는 인터뷰 동안 그는 많은 것을 토해냈다. 이름만 대면 대한민국 모두가 아는 회사를 나와서 자영업자로 살아온 시간만큼 토해낼 것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프신 어머니를 두고 생계와 가족을 저울질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영업 하면 부모도 없다” 라는 말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는 회사에서 배운 것으로 자신의 꿈인 임대업자는 되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포기한 것을 저당 잡히고 작은 부동산에서 임대수익을 얻고 있다고도 했다.
대한민국의 정확한 중심의 삶을 사는 평범한 자영업자의 마지막 충고가 계속 떠오른다. “회사를 떠나는 것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모험이 전쟁터로 떠나는 모험이다” 그렇기에 최소한의 안전핀을 꼭 가지고 떠나기 바란다.” 나는 그에게서 이 인터뷰의 제목처럼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을 버텨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원문: 직장생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