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갈수록 구위가 떨어진 청소년 국가대표 투수들
9월 3일 슈퍼라운드 미국과의 1차전. 8회말까지 4:2로 앞서고 있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9회초 에이스 이영하가 러더포드에게 우중월 역전 3점 홈런을 허용하면서 경기를 내줬고 이 경기의 패배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날 9회초에서 이영하가 기록한 구속은 140Km대 초반대. 구속도, 구위도 예선 라운드에서 처음 등판했을때보다 현격히 떨어져 있었다. 상대 타선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예선전에서 보여주었던 이영하의 투구라면 충분히 승부가 가능했었던 상황이었기에 아쉬움은 더했다.
이날 최충연-박세진-이영하로 이어지는 대표팀 트로이카를 모두 쏟아부었던 한국 대표팀은 다음날 일본에게 등판한 모든 투수들이 무너지면서 7회 콜드게임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떠안았다. 예선라운드 1위라는 성적에 걸맞지 않는 경기력이었다.
미국전에서 드러난 한국 대표팀 투수진의 문제는 너나 할 것 없이 구위, 구속이 예선 라운드 초반에 비해서 갈수록 떨어졌다는 점이다. 한국 대표팀은 총 8명의 투수를 뽑았고 투타를 병용하는게 아닌 전문적인 투수만 선발한 일본, 쿠바와 같은 숫자다. 미국 역시 야수와 투수를 병행하는 선수를 제외하면 투수의 숫자는 8명이었다.
하지만 일본, 쿠바, 미국 대표팀의 투수들은 슈퍼 라운드에 접어들어서도 구위나 구속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던데 반해 한국 대표팀의 투수들은 구속과 구위가 떨어졌고 그 결과는 예선 1위 후 3,4위전 진출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청소년대표팀에서만 돋보인 현상 ‘연투’
일반적으로 토너먼트 대회에서 구위와 구속이 떨어지는 경우는 2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부상이고 다른 하나는 연투에 따른 피로 현상이다. 이번 대표팀에 부상이라는 이슈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걸 감안한다면 대표팀 투수진의 부진은 연투의 영향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 대표팀의 투수들, 특히 주력 투수들의 등판 빈도는 얼마나 잦았던 것일까. 이번 슈퍼 라운드에 진출한 6개 팀과 각 조 4위팀에 해당하는 멕시코, 대만의 경우를 비교해보도록 한다.
일단 첫번째로 각 팀마다 최다 등판 투수를 살펴보도록 한다. 고정 선발이 없을 경우 연투의 확률은 높아지고 이는 결국 투수력의 저하로 나타날수 밖에 없다. 기준은 9월 5일 슈퍼 라운드 종료 기준이다. 다만 야수 겸 투수는 별도로 표기한다.
- 일본 : 모리시타 마사토(3회. 10이닝), 타카하시 미키야(3회 6이닝), 타카하시 슌페이(3회, 3이닝)
- 멕시코 : 디에고 코랄레스(3회. 9.2이닝), 호세 로메로(3회. 7.1이닝), 다니엘 델라푸엔테(3회. 5.2이닝)
- 미국 : 없음
- 캐나다 : 빈센트 보르가드(3회 9.1이닝), 리차드 프루(3회. 4.1이닝), 드노 가띠어(4회. 4.1이닝), 타일러 휫브레드(4회. 6.1이닝), 마테오 빈첼리(3회. 8.1이닝)
- 대만 : 라이 친 얀(3회. 17.1이닝)
- 쿠바 : 파블로 기옌(3회. 14.1이닝), 요시마르 커즌(3회. 14이닝), 요시엘 세라노(3회. 7.1이닝), 라자론 나자로(3회. 12이닝), 유스니엘 파드론(3회 5.1이닝)
- 호주 : 라이스 스티드먼(3회. 8.2이닝), 잭 엔시온도(3회. 4.1이닝), 자이 디블(3회. 7.1이닝), 제스 윌리엄스(3회. 5.1이닝)
- 한국 : 박세진(5회. 11.2이닝), 최충연(3회. 12.0이닝), 이영하(5회. 8.1이닝), 김대현(3회. 5.2이닝), 최성영(3회. 3.1이닝), 박준영(3회. 3.0이닝. 야수)
이 수치에서 보자면 한국은 가히 압도적인 투수 운용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결승 진출이 결정된 뒤 5일 쿠바전에서 3일간 쉰 – 휴식일과 슈퍼 라운드 1,2차전 선발 완투 – 투수진에게 감각을 살려주기 위해서 사토 세나와 모리시타 마사토를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한번씩 컨디션 조절차 등판했기 때문에 3회라는 의미가 없다.
즉, 일본 대표팀은 미국, 대만과 마찬가지로 2회 등판인거나 마찬가지에 가깝다. 실제로 토요일 경기는 에이스인 오가사와라 신노스케가 등판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라는 전제를 걸어도 타카하시 슌페이나 모리시타 마사토 정도가 1~2이닝 등판이었을 것이다.
하위 라운드로 떨어진 멕시코의 경우 코랄레스와 로메로, 델라푸엔테가 3회씩 등판했다. 이 중 코랄레스는 2번의 선발 등판이 있었고 델라푸엔테와 로메로는 연투는 단 한번도 없었다. 코랄레스의 경우 1차전과 7차전에 선발 등판했고 5차전에서 잠시 중간 계투로 1이닝을 던졌을 뿐이다. 연투 또는 혹사라는 단어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셈이다.
캐나다의 경우 마테오 빈첼리와 보르가드, 프루는 연투 없이 충분한 휴식을 취했지만 휫브레드는 마지막 슈퍼 라운드 2,3경기에서 연속 등판을 했다. 드노 가띠어의 경우 2일 남아공전에서 선발로 나서 2이닝을 던지고 다음날 일본전에서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던지는 연투를 기록했다.
대만의 유일한 3회 등판 투수인 라이 친 얀은 마지막 날 선발로 등판하는기 전까지 나머지 경기에서 한국전을 포함한 예선 라운드 두 번의 등판 동안 하루의 휴식을 취했었다. 선발 등판까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한 셈.
그럼 쿠바는 어떨까. 이번 대회에서 자존심이 구겨질대로 구겨진 쿠바지만 투수 운용에 있어서 무리는 절대로 하지 않았다. 주력 투수라고 할수 있는 기옌과 커즌 모두 한번 등판한 뒤에는 1~3일의 충분한 휴식을 보장 받았다. 세라노와 나자로, 파드론 모두 연투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3이닝 이상 던졌을 경우에는 확실하게 3일의 휴식을 보장해주었다.
이는 나머지 모든 투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호주에서 3경기 이상 나온 스티드먼과 엔시온도는 모두 등판후 2일 이상의 휴식을 취했다. 자이 디블과 제스 윌리엄스에게도 최소한 하루 이상의 휴식을 보장했다. 즉, 연투란 단어는 전혀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은 아예 3경기 이상 나온 선수가 단 한명도 없었다.
2경기 연투가 당연시된 한국 청소년대표팀
하지만 한국은 달랐다. 일단 박세진과 이영하가 5회 등판으로 당당하게 최다 등판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린 가운데 최충연, 김대현, 최성영, 박준영 모두 짧은 이닝이긴 하지만 3번씩 마운드에 올랐다. 여기까진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8강을 통틀어서 단 한명밖에 나오지 않았던 연투, 그것도 2경기 연투가 한국 대표팀에선 당연한게 되어버렸다.
박세진의 경우 28일과 29일에 구원 등판했고 4차전인 31일 대만전 선발 등판 후 3일 미국전과 4일 일본전에서 차례대로 등판했다. 한국 대표팀의 실질적인 에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던 이영하는 29,30,31일 3연속 연투라는 금자탑을 쌓았고 이틀의 휴식후 3일 미국전, 그리고 5일 호주전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일본 언론에서 에이스라고 지칭한 최충연 역시 예선에선 캐나다전 단 한 경기만 던졌지만 3일 미국전 선발후 4일 일본전에서 구원으로 등판하면서 연투의 목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김대현과 최성영은 관리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박준영은 2일 휴식일을 제외한 31일, 1일, 3일 경기에 모두 등판했다.
프로 선수들도 연투를 하고 나면 구위가 떨어지는 마당에 아마추어, 거기에 몸이 아직 확실하게 구축되어있지 않은 고등학생들이 과연 연투를 버텨낼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전과 일본전에서 처참하게 드러났다. 예선 라운드에서 날카로운 공 끝과 훌륭한 구속을 지닌 패스트볼을 던지던 이영하와 최충연, 박세진이 슈퍼 라운드에서 미국과 일본의 방망이에 무너진건 단지 우연은 아닐것이다. 게다가 단기전에서의 투수력은 말 그대로 절대적이다.
피로도로 따지면 더 심각한 한국 청소년 투수들
지금까지는 연투라는 부분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인 수치로 나타내면 어떨까? 프로야구는 ‘시즌 피로도’라는 수치가 있다. 빌 제임스가 마무리 투수의 피로도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공식이지만 여기에선 (주) 스탯티즈에서 고안한 방식을 적용한다.
즉, 등판 당일을 기준으로 하루전 경기 상대 투구수에 5를 곱하고 이틀전이면 4, 사흘전이면 3, 나흘전이면 2, 닷새전이면 1을 곱한뒤 모두 더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누적 수치에 등판 경기를 나눈 이번 대회 8강팀의 경기당 평균 피로도 합계는 다음과 같다.
- 멕시코 : 다니엘 델라푸엔테(71), 디에고 코랄레스(59), 이삭 마시엘(48)등 총 223
- 일본 : 사토 세나(66), 나리타 카케루(61), 타카하시 슌페이(48)등 총 265
- 대만 : 여웬치(123), 라이 친 양(59), 궈 리 웨이(44) 등 총 266
- 미국 : 제퍼슨 로슨(92), 이안 앤더슨(52), 찰스 휘틀리(50)등 총 299
- 쿠바 : 요시마르 커즌(85), 파블로 기옌(83), 라자론 나자로(77)등 총 335
- 캐나다 : 빈센트 보르가드(114), 드노 가띠어(94), 리차드 프루(61)등 총 396
- 호주 : 라이스 스티드먼(111), 자이 디블(104), 미첼 뉴본(98)등 총 456
- 한국 : 박세진(176), 최충연(139), 이영하(117)등 총 709
놀랍게도 거의 물량 공세에 가까운 선수 기용을 하면서 휴식을 착실하게 지켜준 멕시코의 경기당 피로도가 가장 낮았다. 그리고 선발진을 확실히 구축하면서 완투승을 밥먹듯이 한 일본 역시 투구수 관리에 있어서 상당히 효율적인 운영을 보여주었다. “일본 고교 야구는 혹사가 기본이다”라는 일각의 선입견과는 완벽하게 반대되는 결과인셈.
선발 투수에게 최대한 이닝을 맡기고 구원진의 휴식을 보장한 대만 역시 피로도가 낮았다. 특히 대만의 경우 절대적 에이스인 우 첸유를 무리하지 않고 8경기 중 단 2번만 선발로 활용하면서 최대한 투수의 어깨 보호에 나섰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명단에 있는 전 선수가 거의 비슷한 이닝을 던진 미국 역시 혹사 시켰다는 느낌을 전혀 받기 어려웠다. 예선 라운드부터 주력 투수들이 구사하던 140대 후반의 구속을 슈퍼라운드에서도 전혀 무리없이 보여주던 이유가 여기에 있던 셈.
하지만 캐나다와 호주, 한국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나마 특히 호주와 한국은 무서울 정도로 벌떼 야구를 하고 있는데 그 댓가가 3,4위전이라는건 어찌보면 상처뿐인 영광과도 같다. 특히 한국의 경우 박세진과 최충연이 당당히 피로도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중. 그나마 이영하의 피로도가 여웬치(대만)보다 낮은건 3연투중 첫 등판에서 8개만의 공을 던졌기 때문이다.
단지 슈퍼라운드 포함 8경기만을 치른 결과이긴 하지만 이는 혹사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당장 한국 프로야구에서 현재 혹사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권혁이 140대 초반, 박정진이 110대 후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에이스에 모든걸 거는 일본 고교 야구가 코시엔 예선과 본선에선 거의 에이스 한명으로 운용하는것과 달리 확실한 카드가 여럿 있는 국제 대회에선 완벽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도 특기할만 하다. 특히 일본의 경우 결승 진출이 이미 확정된 마지막 경기에서 1,2차전을 완투한 사토 세나와 우에노 쇼타로를 제외한 나머지 투수들을 3일동안 쉰 녹을 벗겨내기 위해 몸풀듯 1~2이닝씩 던지게 하는게 아니었다면 저 피로도 수치는 더 낮아졌을 것이다.
더더더더더더욱 심각한 투수의 누적 피로도
저 경기당 피로도에는 작은 함정이 있다. 여러 투수들을 골고루 활용했다고 해도 단 2경기를 등판한 상황에서 선발 이후 1~2일뒤 구원으로 나오게 되면 이번 대회에서 그 2경기만 던졌다고 하더라도 경기당 피로도는 높게 나올수밖에 없다.
여웬치가 바로 그런 케이스. 그럼 팀에서 등판한 모든 선수들의 누적 피로도를 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휴식을 보장해주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한국이 얼마나 마구잡이 운용을 했는지 여기에서 드러난다.
- 대만 : 여웬치(246), 라이 친 양(176), 궈 리 웨이(88)등 총 591
- 미국 : 제퍼슨 로슨(183), 이안 앤더슨(104), 찰스 휘틀리(100)등 총 597
- 멕시코 : 다니엘 델라푸엔테(214), 디에고 코랄레스(176), 호세 로메로(123)등 총 617
- 일본 : 타카하시 슌페이(144), 모리시타 마사토(140), 사토 세나(131)등 총 669
- 쿠바 : 요시마르 커즌(254), 파블로 기옌(250), 라자론 나자로(231)등 총 939
- 호주 : 라이스 스티드먼(332), 자이 디블(312), 미첼 뉴본(195)등 총 1183
- 캐나다 : 드노 가띠어(374), 빈센트 보르가드(342), 타일러 휫브레드(222)등 총 1292
- 한국 : 박세진(882), 이영하(586), 최충연(417)등 총 2602
- ※ 대회 평균 1061
그냥 혹사가 아니었다. 이것은 미친듯한 혹사라고 표현해도 상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더 놀라운건 에이스급을 저렇게 무리하게 운용한 팀은 한국 뿐이었다는 점이다. 대만의 우첸유, 일본의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미국의 케빈 가우디와 브랙스턴 개럿, 멕시코의 프란시스코 하로, 호주의 라샨 웰스, 캐나다의 조쉬 버그만등 각 팀의 에이스들은 모두 확실한 보호를 받았다.
에이스급이 자주 등판한건 요시마르 커즌이 마당쇠로 나선 쿠바와 트리플 에이스 카드를 아낌없이 뽑아든 한국 뿐. 슈퍼 라운드에서 한국이 당한 역전패와 대패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예선 라운드부터 짧은 기간동안 크게 피로가 누적이 되니 하루의 휴식이 있다고 해도 슈퍼 라운드에서 투수들의 구위가 예선 라운드의 쌩쌩함을 유지할수 없던건 당연한 결과였고 그것이 결국 결승으로 갈수 있는 티켓을 놓친 셈이 되었다.
미국전에 등판했던 이영하의 구위는 예선때 쿠바 상대로 승부치기에서 무사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낸 그 구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좋지 않았었다. 완전히 몸이 만들어진 프로야구 선수들도 연투 이후엔 당연하리만큼 구위가 나빠지는데 아직 몸도 덜만들어진 고교 야구 선수라면 오죽하겠는가.
혹사가 승리를 담보하는 것조차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믿을수 있는 투수들이 그 3명밖에 없고 다른 투수들의 이닝 소화 능력이 부족해서다”라고.
이미 김표승의 쿠바전 호투로 인해 그 말에는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3인방을 제외하고도 나머지 투수들의 국내 대회에서의 이닝 소화력은 전혀 밀리지 않았다. 금년 선발로서 6번을 던진 유재유는 경기당 5이닝은 꾸준히 소화해주는 투수였고 김대현 역시 6번의 선발중 6이닝 이상 던진게 3번(전국 대회 2회 포함)이나 되었다. 좌완인 최성영 역시 5번의 선발 등판에서 경기당 6이닝씩 소화해주는 이닝 이터였고 이는 김표승 역시 마찬가지다.
국제 대회에 태극 마크를 달고 나갈 정도면 모두 한국에서는 내노라하는 선수들임에 분명한데 믿을 수 있는 특정 선수만 계속 기용한 결과는 참혹했다. 아무리 예선에서 캐나다-쿠바-대만과의 일정이 연속으로 이어졌다고는 하지만 최충연과 이영하, 박세진을 그렇게 계속 던지게 했어야 했는가는 의문이다.
이건 5~6번만 이기면 우승하는 국내 토너먼트가 아니라 9번을 이겨야 하는 조별 토너먼트 방식이었고 코칭스태프는 여기에 어울리는 운용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예선 전승은 우승으로 가는 티켓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코칭 스태프는 한국에서 그정도로 전국 대회에서 팀을 길게 끌고 가본 경험이 없었고 소속팀에서도 에이스 위주의 운용만을 고집했었다. 장기전에 가까운 국제 대회에 어울리는 코칭 스태프가 아니었던 셈이다.
슈퍼 라운드에서 투수들의 구위가 떨어지는 순간 한국 대표팀의 진격은 막을 내렸다. 박세진과 이영하의 등판 횟수가 5회가 아닌 3회나 4회였다면, 다른 투수들이 조금 더 자주 나왔다면 결과는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 대표팀의 타력은 상당히 뛰어났고 미국 대표팀의 140대 중반의 패스트볼도 충분히 공략할수 있을만큼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 답게 투수진에서 무너진 대표팀은 출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투수진의 붕괴는 코칭스태프의 지나친 에이스 편중 기용 현상이 원인이었다.
반복되는 악순환, 끊어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은 기적과도 같은 9연승을 기록하면서 올림픽에서의 유일무이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청소년 대표팀에 대한 기대는 상당했고 예선 라운드에서는 그에 걸맞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소속 고교에서 에이스 위주로만 투수 운용을 하던 코칭 스태프에게 장기전을 내다본 현명한 마운드 운영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예선전에서 에이스에게 과부하를 걸던 한국 대표팀은 결국 미국전과 일본전에서 패배하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고 말았다. 가정법이지만 남아공전과 이탈리아전에서 에이스를 아끼고 대만, 쿠바, 캐나다전에서 단 한번이라도 이영하와 박세진을 아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투수들을 다양하게 기용한 일본과 미국은 결승에 진출했다. 집중적으로 투수를 기용한 한국과 호주는 3,4위전에 올랐다. 대만은 비록 슈퍼 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에이스의 어깨를 충실히 보호하고 어필하는데 성공했다.
과연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얻은건 무엇인가?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이대로 시간만 지난다면 선수들의 어깨를 담보로 성적만을 추구하는 이 공회전은 끝없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선수의 장래성과 직결된 어깨 보호와 결과.
두 마리 토끼를 잡는건 쉽지 않겠지만 결과를 중요시하는 풍토를 위해 그들의 장래성을 담보로 잡는 악순환은 반드시 끊겨야 한다. 결과는 단지 한순간이지만 선수들에게는 아직도 그들이 살아온 날만큼 야구를 더 해야할 시간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걸 인도해주는건 현명한 지도자들, 그리고 어른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