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8월 북해변의 작은 나라 덴마크에서 성대한 장례식이 열렸다. 국왕과 왕비, 황태자 모두가 참석한 국장이었다. 유족은 없었다. 관 속에 든 사람은 평생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독신이었으니 유족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동화의 아버지다.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이 필독서 목록이나 문고판 세계명작에 안데르센 동화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전 세계 어린이가 인어공주에 눈물짓고 외다리병정이 불쌍해 울며, 카렌의 빨간 구두 이야기를 읽고 두려움에 떤다.
정작 안데르센 본인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만 수용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말년에 그의 동상을 세울 때 원안은 안데르센 주변에 아이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반대했다.
“나는 한 번도 아이를 내 등에 태우거나 무릎 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다. 어린이들은 단지 내 이야기의 표면만 알 수 있으며, 성숙한 어른이 되어서야 온전히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화의 모티브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실제 그가 겪은 일의 반영이며 현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는 설정의 영화다. 안데르센의 작품들 역시 실제로 안데르센 자신의 고달팠던 생활과 아픈 경험이 그대로 녹아난 것이었다.
그의 작품 중 유명한 ‘눈의 여왕’이 그렇다.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나폴레옹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나폴레옹 군대의 깃발 아래 참전했다 돌아온 후 정신병으로 고생하다가 죽은 아버지를 ‘눈의 여왕’이 데리고 간 것으로 여긴 그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낳은 동화였다. ‘성냥팔이 소녀’ 또한 아버지를 잃은 후 구걸까지 하며 굶어 죽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어머니가 모티브였다.
‘미운 오리 새끼’는 배우의 꿈을 안고 도시로 갔으나 ‘덴마크의 오랑우탄’이라는 별명 붙을 만큼 평균 이하였던 외모, 교육받지 못한 핸디캡 때문에 맛본 좌절, 책을 써냈지만 덴마크보다는 해외에서 더 좋은 평판을 받은 그의 황망한 경험이 산파가 된 동화다. 즉 미운 오리 새끼는 안데르센 자신이었던 것이다.
불편한 진실과 역사
안데르센의 동화는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그림 형제의 동화와 달리 해피엔딩이 적다. 독자의 기대를 짓밟다시피 맺는 경우도 많다. 밝고 명랑하기보다 어둡고 침울했다. 예쁜 사랑 이야기보다 듣는 사람을 거북하게 하는 ‘불편한 진실’을 담았다. “어린이들은 내 동화를 피상적으로 이해할 뿐”이라는 안데르센의 항변은 그래서 사실에 부합한다.
‘인어공주’에서의 인어공주 역시 깡촌 출신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던 안데르센 자신이었다. 상류사회 진입을 꿈꾸던 평민들의 형상화이기도 하다. 육지에 오르려는 인어공주에게 다리를 주는 대신 마녀가 요구한 것은 혀였다. 본인의 속내와 생각을 드러낼 자유, 자신의 의사를 펼 수 있는 능력의 박탈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도 뒤따랐다. 우리말로 하면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지는 뱁새’의 아픔이었다. 그 고통과 상실을 대가로 지불하고 사랑을 얻으려고 했으나 그 사랑마저 자신의 곁을 떠난 비참한 상황. 인어공주의 자매들이 그녀에게 준 것은 칼이었다.
왕자의 가슴을 찔러 그 피를 다리에 떨어뜨리면 다시 꼬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왕자의 피를 봐야 자유를 얻는, 무섭지만 역사적 진실에 가까운 조언이다. 그러나 저항을 포기함으로써 연대를 거절한 인어공주는 결국 물거품으로 사라진다. ‘당시의 엄격한 계급 구조와 힘겹게 투쟁한 작가’라는 평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의 동화를 다시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의미 있는 ‘동화’ 수백 편을 세상에 남겼다. 많은 사람을 웃기고 울렸다. 하지만 끝내 자신은 백조에 이르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 외롭게 살았던 동화의 아버지가 안데르센이다.
원문: 산하의 오역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