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 년 간 4조3,0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간 테러와의 전쟁”
4조 3천억 달러면 어마어마하다(역시 천조국..). 천문학적 숫자라고 할 만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일지 전혀 감도 안 온다. 이런 경우 천문학적 숫자라고 표현하면 딱 좋을 듯하다.
진짜 천문학적 숫자
천문학적 숫자라고 하면 천문학에 나오는 스케일이니까 천문학적 숫자라고 할 것이다. 지난 7월 명왕성에 뉴허라이즌스 호가 지나갔다. 명왕성에 우주선을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지구와 명왕성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에 태양과 명왕성의 거리를 찾아봤다.
5조 9,241억 6천만 미터다. 지구랑 대충 6조 미터 떨어져 있는 모양이다. 6조 미터는 다시 60억 km. 지구인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지구와 명왕성 사이 직선으로 길이 나 있다는 전제하에) 각자 1km씩 이어달리기를 할 수 있다. 서울-부산을 400km라고 치면, 서울-부산을 750만 번 왕복하는 거리다. 서울에서 뉴욕까지가 대충 11,000km라고 한다. 약 27만 번 왕복하면 된다. 지구 스케일로는 감이 잡히지 않는 거리다. 천문학적 숫자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 보다.
4조 3천억 달러의 크기
도대체 얼만큼인지 손에 잡히지 않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숫자. 조금 전 미국 국방비 얘기로 돌아가서 4조 3천억 달러가 얼마나 많은 돈인지 어떻게든 따져보겠다. 요새 햄버거가 많이 비싸져서 맥도날드나 버거킹 가면 대충 7천 원쯤 줘야 세트로 사 먹는다. 대충 7달러로 잡으면, 빅맥 세트 6,143억 개다. 내가 죽을 때까지 빅맥만 먹는다면 하루 세끼 X 365일 X 60년 = 65,700개. 나 혼자 먹어서는 턱도 없으니 지구인이 힘을 합치면, 각자 102개씩 먹으면 된다. 석 달간 전 지구인이 저녁마다 햄버거 파티를 벌일 수 있는 돈이다.
이건 좀 유치하니까, 나름 그럴싸하게 우리나라 1년 국정예산과 비교해 보겠다. 2014년 우리나라 정부 예산안 총금액은 370조 7천억 원 이었다고 한다. 환율을 대략 1,100원으로 잡아 계산하면 3,370억 달러다. 즉, 4조 3천억 달러면 우리나라 예산을 약 13년간 충당할 수 있다. 10여 년간 테러와의 전쟁으로 4조 3천억 달러를 썼다는데, 거의 매년 우리나라 총예산만큼 전쟁비로 쓴 셈이다.
페트병과 라면
이번엔 플라스틱병(페트병)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병은 몇 개나 될까? 구글에게 물어보니, 1년 동안 미국인이 사용하는 페트병이 무려 500억 개라고 한다. 미국 인구가 3억 명쯤 되기 때문에 나눠보면 한 명당 170개쯤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즉, 이틀에 한 개 꼴로 사용한다. 생각해보면 미국인 각자는 페트병을 이틀에 한 개밖에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것을 모두 합쳐 1년 합산하니 500억 개라는 무지막지한 양이다.
무엇이든 마찬가지다. 간간히 끓여 먹는 라면도 2014년 기준 한국에서 총 36억 개 팔렸고, 매출로 따지면 2조 원에 달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라면을 많이 사 먹는 모양인데, 1인당 소비량은 한국보다 적지만, 인도네시아 인구가 2억5천 명에 달하기 때문에 총 소비량은 149억 개에 달한다.
티끌 모아 태산 만드는 산업
양으로 밀어붙이는 산업들이 있다. 이를테면 전통적 제조업 말이다. 페트병을 만드는 공장에서 페트병 하나를 만들어 팔면 얼마나 남을까? 나도 잘 모르기에 인터넷에서 파는 페트병 가격 200~300원으로 단순 가정해서 계산하면, 중간 유통 마진을 빼고 공장에서 남기는 금액은 10원, 또는 그 이하가 아닐까. 하지만 워낙 시장 규모가 크기에, 페트병이 500억 개 팔리면 거기서 남는 순이익만 5,000억 원에 달하는 것이다. 매출로 치면 수십조 원이 될 것이다.
화공산업은 개당 이윤은 아주 적지만 판매량이 엄청나서 이익을 얻는 박리다매 방식이다. 예를 들어 석유 정제 산업(우리나라에선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해외에선 엑손모빌, 셸, BT 등)에서 통상적으로 거론하는 마진 자체가 리터당 몇 원 단위다. 즉, 10원도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써대는 기름양이 워낙 많아 이윤구조가 그렇게 되었나 보다. KY O.N.O 형의 패션 브랜드 포스팅에서 봤던 것과는 상당히 상반되는 산업이다. 타겟팅을 잘해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용하는 일상적 물건을 만들어서 티끌 모아 태산을 만드는(마른수건 쥐어짜는) 참 진입장벽 높은 산업이다.
아마도 이런 분야에서 산업을 한다면, 큰 숫자를 잘 보아야 할 것이다. 시장 규모와 중국, 또는 인도 내수시장을 논하는 이유도 결국 이것이다. 100원짜리를 팔아도 20억 명한테 팔면 떼부자가 되니까 말이다. 큰 숫자를 잘 이해하는 방법은 크지만 익숙한 단위로 바꿔서 생각해보거나(가장 효과적인 것 같다) 시간으로 나눠보는 방법이 있다. 즉, 눈에 보이는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수 범지구적 스케일로 환산하기
명왕성 이야기로 돌아가면, 대체 서울-뉴욕을 몇 번 왕복하느니 해도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이 개발한 아주 좋은 단위가 있다.
위 그림에는 명왕성을 표시하지 않지만(행성 대우 안 해줌ㅜ) 태양과 명왕성의 거리는 약 39AU다. 그것은 즉, 지구-태양 거리의 약 39배. 이러면 비교적 깔끔하게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구나 감을 잡을 수 있다.
위 그림 오른쪽에 보면 α-Centauri(알파센타우리)라고 있다. 이것은 태양계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항성계로 지구에서 276,000AU쯤 떨어져 있다(km로는 굳이 쓰지 않겠다). 역시 AU라는 단위는 태양계 안에서나 쓸 만 하지, 인터스텔라급 스케일로 가면 역시 힘들어진다. 그래서 사용되는 또 다른 단위가 바로 광년이다.
광년과 1사대강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날아가는 거리다. 지구 스케일에서 빛은 그냥 순간이동급으로 빠른데, 그것이 1년 동안 날아가야 하는 거리니까 정말 겁나 먼 거리다. 아무튼 알파센타우리는 지구에서 4.37광년 떨어져 있다. 알파센타우리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지구에서는 4.37년이 지나야 관측할 수 있다. 천문학에서는 워낙 큰 수를 다루다 보니 이렇게 숫자를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큰 단위를 만들어 뒀다. 적기도 편하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도 훨씬 쉽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굳이 천문학이 아니라도 천문학적 숫자를 흔히 접하게 됐다(주로 돈). 나라에서 무슨 사업을 하는데 돈이 몇십조 들었다더라, 어디서 국제운동경기를 주최하는데 경제효과가 몇천억이라더라. 숫자들이 너무 커서 듣는 사람은 이게 얼마인지 감도 안 오고, (나라에서 하는 스케일은 원래 이런 건가?) 더 생각하기 귀찮아서 흘려보내거나 현혹되기 딱 좋다. 회사의 경우도 매출액이 몇백억이고 수출 얼마를 달성했으니 투자해라 이런 식이다.
돈도 뭔가 큰 단위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냥 억, 조 같은 숫자를 표시하는 단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느낌을 줄 수 있으면서 가치가 쉽게 바뀌지 않는 그런(…건 없겠지만). 예를 들어, 22조 원은 1사대강 이라고 한다든지. 전에 이런 비유를 본 적이 있다. 재미있기도 했지만 실제로 유용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원문: Blue Screen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