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식은 유학 가서 배워야 한다?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은연중에 드러낸 생각이다. 강레오 이야기다.
발단은 책 인터뷰(강레오 “스타 셰프 되려면 어떻게? 할 말이 없다”)였다. 자신이 쓴 책을 홍보하는 인터뷰에서 강레오의 발언이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현석을 공격했다는 설이 SNS를 통해 퍼진 것이다. ‘해외요리를 배우려면 해외에 가야 한다’, ‘한계를 느끼니까 분자요리를 한다’ 등의 말은 충분히 최현석을 연상하게 했다.
정정 인터뷰라는 두 번째 인터뷰([단독 인터뷰] “최현석 디스? 저격? 오해입니다” 강레오의 항변)도 ‘디스’ 논란을 멈추지 못했다.
유학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
강레오 쉐프의 인터뷰를 보면 유학생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드러난다. 첫 번째 인터뷰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서양음식은 우리가 제대로 배우기가 힘들어요. 남의 요리니까. 동남아,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음식을 배우는 것만큼 어려울 거예요. 서양음식을 배우려면 그 지역에 가서 본토 사람들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고 더 잘 먹으면서 공부를 해야 해요. 한국 음식을 아예 다 끊고 살아야 될까 말까인데. 한국에서 서양음식을 공부하면, 런던에서 한식을 배우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러니까 본인들이 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자꾸 옆으로 튀는 거예요. 분자요리에 도전하기도 하고.
이 인터뷰를 통해 본 강레오 쉐프의 서양 요리에 대한 견해는 이렇다. 서양 요리는 서양의 문화 속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직접 본국에 가서 서양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양 본토의 선생에게 배우고, 하나부터 열까지 배우는 과정이 없으면 안 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서구가 아닌 모든 나라에서 문명화는 서구 문화 베끼기에서 시작했다. 당연히 유학이 중요시되었다. 학계에도 서울대와 미국 박사들의 갈등이 있다. 하지만 미국 박사가 압도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점점 돈이 미국대학으로 모이는 학계에서 미국 박사의 힘은 오히려 커진다. 강레오의 유학에 대한 인식은 이런 배경에서 봐야 이해가 된다. 자신이 서양의 정통파 요리사들과 직접 부딪치면서 느꼈기 때문에 서양 음식을 더 잘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틀린 견해라고 생각한다. 서양 요리의 본질을 유학에서 배웠다고 해서 더 좋은 쉐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과거와는 달리 서양 요리를 배울 방법이 무궁무진하다. 책을 주문해도 되고 인터넷을 봐도 된다. 직접 음식을 느껴야 한다면 여행도 쉽다. 어차피 직접 경험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 양식의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으니 간접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강레오의 논리라면 세계 최고의 프렌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본고장 프랑스, 이탈리아가 아닌 뉴욕, 런던에도 흔한 것이 설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요리는 점수를 매기는 학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얼마나 고객을 감동시키냐는 실적의 싸움이다. 서양 본토의 정통 음식을 얼마나 잘 알고, 그것을 훌륭하게 재현해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실적으로 끊임없이 경쟁시키는 자본주의는 냉정하다. 하지만 거꾸로 잘 팔리는 음식이라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포용력을 가졌다.
본토의 지식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
나 자신도 유학생 출신으로서, 유학생들이 강레오 논란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현지의 ‘본토문화’에 대한 지식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 지식을 통해 더 나은 것을 본국에 가져다주는 ‘실질적인 이득’이 있어야만 인정받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유학을 갔든 안 갔든 손님에게 만족스러운 요리를 할 수 있으면 된다.
같은 방식을 얼마든지 다른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실리콘 밸리로 통용되는 기술 스타트업은 철저하게 미국적 문화에서 나온 문화다. 하지만 꼭 미국 대학에서 수학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어야 성공적인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학생 CEO는 분명 글로벌 감각, 영어 실력, 시야, 문화 등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본국과의 소통 문제, 본국 네트워킹 부족 등 불리한 점도 생긴다. 결국,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좋은 스타트업은 손정의처럼 미국 유학 및 창업을 경험한 사람이 잘할 수도 있지만 마윈같은 본토 출신에 글로벌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잘할수도 있다.
강레오 쉐프는 날선 말투로 TV에 출연하는 쉐프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TV에 먼저 진출해서 그 유명세를 이용한 선두주자였다. 본질보다 홍보에 치중한 것이 문제라면 본인이 먼저다. 심지어 연예인과 결혼한 것도 백종원 대표보다 본인이 빨랐다. 반면 그의 레스토랑 실적은 초라하다. 실적의 부진. 강레오가 최현석, 백종원을 ‘정통성’의 잣대로 비판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이 차가웠던 이유다.
프로는 유학 경험, 지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그보다는 그를 활용해서 만들어낸 실질적인 효용, 나아가 실적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원문: 김은우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