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시겠지만,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는 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안전하게 운전해도 어디서 어떻게 날지 모르는 것이 교통사고라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려면 여러 걱정이 많이 듭니다. 아이가 카시트에 가만히 앉아있어 주기만 해도 마음이 좀 놓이겠지만, 아이가 그렇게 얌전하리라는 건 너무 큰 기대이기도 하죠.
뒷자리 카시트에 아이가 얌전히 앉아있어도 마음은 완전히 놓이지 않지요. 백미러로 흘끔흘끔 아이를 살펴보지만, 홀로 있는 아이에 대한 걱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이가 혼자 창문을 스르르 내리고 팔을 내놓는 건 아닌지, 차문을 열어버리지는 않을지, 혼자 안전벨트를 풀고 카시트에서 기어나오지는 않을지…. 제가 너무 걱정이 많은 걸까요? 보통 사람들보다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이런 걱정 한 번쯤은 솔직히 해보시지 않았나요? ^^;
이런 걱정 때문에 사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운전석 옆자리에 앉히고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옆자리에서 아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놓이거든요. 하지만 아이를 조수석에 앉히는 것은 뒷자리에 앉히는 것보다 두 배 이상 위험하다고 합니다. 실례로 작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는 180여 명의 아이들이 조수석에 앉아있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조수석에 앉은 아이들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에어백 때문이라고 하네요. 어른을 기준으로 설계된 에어백이 터져 나오면서 아이의 머리에 심한 충격을 주거나 질식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하니, 정말 부모 입장에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군요. 마음 놓고 아이를 태우고 운전하는 방법 어디 없나요?
이쯤 되니 문득 떠오르는 자동차 회사가 있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을 통해 소개해 드렸던 스웨덴 자동차 회사 볼보입니다.
지난 포스팅(볼보는 왜 자전거페인트를 개발했을까?)에서 볼보가 2020년까지 볼보 자동차로 인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만들기 위해 개발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해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볼보의 교통사고 제로를 향한 야심 찬 계획에 많은 분들이 깊은 인상을 받으셨을 텐데요, 이런 볼보라면 우리 아이를 안심하고 차에 태울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쵸 볼보?^^
우리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지난 7월 2일 볼보는 상하이에서 아이의 안전을 극대화한 새로운 컨셉트 카를 소개했습니다. 근데 볼보의 새로운 모델을 본 전문가들은 깜짝 놀랐다고 해요. 볼보가 아이의 안전을 위한 새로운 기술을 소개할 것이라고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기술을 도입하려고 하는지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거든요. 어떤 기술인지 여러분들도 궁금하시죠?
볼보가 소개한 새로운 기술은 바로 조수석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아이를 위한 전용좌석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허걱…깜짝 놀라셨죠? 조수석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를 아이에게 양보하다니, 아이를 위한 전용 에어백이나 안전성이 극대화된 새로운 카시트를 소개할 것으로 기대한 전문가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볼보의 생각에 처음에는 기상천외하다는 반응이었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볼보의 생각이 이해가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아이를 어른들을 위해 설계된 좌석에 억지로 끼워 앉히려고 하지 않았나요? 어른들의 체형에 맞게 설계된 자리에 아이를 앉히기 위해 억지로 카시트를 설치하거나, 어른들에게나 안전한 에어백이 있는 앞자리에 아이를 앉히려고 하는 것이 사실 근본적으로 아이의 안전을 위한 대책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아이의 안전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대안은 바로 아이에게 최적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리고 부모의 시선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아이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라는 것을 볼보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끔 앉는 아이를 위해 좌석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 아까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정말 아이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그리고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소비자라면 볼보의 이러한 극단적인 대안에 눈길이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볼보의 새로운 컨셉을 주도한 볼보의 실내 디자인 책임자, 티샤 존슨(Tisha Johnson)은 이번 컨셉을 통해 세 가지 기능을 소비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우리 볼보 디자인팀은 아이의 안전에 최적화된 좌석에 아이를 편하고 쉽게 앉히고 내릴 수 있게 하는 데 첫 번째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뒤를 바라보도록 하는 좌석을 앞자리에 설치함으로써 운전석이나 뒷좌석에 앉은 부모와 아이가 계속해서 눈을 마주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 전용 좌석에 충분한 수납공간을 두어서 우유병이나 기저귀와 같은 물품이 깔끔하게 정리되도록 했지요.”
볼보의 이런 새로운 컨셉이 소개되자 전문가들 사이에 과연 이러한 컨셉이 아이에게 진정 안전할 것인지 논쟁이 붙었다고 합니다. 특히 아이를 앞좌석에 앉히는 것이 오히려 정면충돌로 인한 아이의 부상이나 사망을 증가시키지 않느냐는 지적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러한 지적에 대해 볼보는 단호하게 이번 컨셉이 아이를 위한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아이의 부상이나 사망은 대부분 직접적인 충돌로 인한 것이 아니라 에어백 때문에 발생하기에 아이의 체형에 맞게 설계된 전용 좌석이 오히려 이러한 사고를 줄일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특히 뒤를 바라보도록 설계된 전용좌석은 백미러로 아이를 바라보다 발생하는 충돌사고를 예방할 뿐만 아니라 아이와 부모의 아이컨택을 유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서로의 심리적인 안정을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이의 안전을 위한 볼보의 선택. 바로 아이를 위한 전용 좌석이었네요. 아이의 안전을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아이에게 맞는 좌석을 만들어 주는 것이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볼보의 생각,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제 아이들도 차에 ‘제자리’를 갖게 됐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런데 아이에게 내 소중한 차의 한 자리를 양보하기 싫은 어른들에게 볼보의 새로운 컨셉은 눈에 거슬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차는 나만의 공간, 아이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라고 외치는 어른들을 위해 혹시 볼보는 따로 준비한 컨셉이 있지 않을까요?
역시 볼보이지요^^ 볼보는 보다 편안한 개인만의 공간을 추구하는 어른들을 위해 라운지형 프리미엄 좌석 컨셉을 선보였습니다. 아니! 아까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앞좌석의 아이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엄마는 어디 가고 멋진 커리어 우먼이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네요 ㅋㅋㅋ
아이 전용 좌석과 마찬가지로 볼보는 프리미엄 좌석을 만들기 위해 앞자리 조수석을 과감히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17인치 멀티미디어 스크린이 내장된 테이블을 설치했습니다. 차 안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 비즈니스 맨들에게 특히 어필할 이 컨셉은 편안한 업무공간을 차 안으로 끌고 들어왔습니다.
자동차에 반드시 네 명의 좌석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생각에서부터 볼보의 혁신은 시작되었습니다. 아이에게는 안전을, 어른에게는 편안함을 주는 이번 사례는 “혁신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덧붙이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위해 기존의 것을 버리는 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원문: 세상을 풀어보는 두루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