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은 최동훈 감독의 다섯 번째 영화다. 그가 이전에 만든 네 편 중 세 편은 성공적이었고 한 편은 그저그랬다. 성공작들을 통해 알 수 있는 최동훈 감독의 장기는 캐릭터와 리듬이다. 성공한 영화들과 성공하지 못한 영화들의 차이점으로 <암살>을 분석해보자.
살아 있는 캐릭터와 경쾌한 리듬의 편집이 강점
우선,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은 모두 멀티 캐스팅으로 캐릭터의 강점을 극대화한 영화들이다. 반면 그저그런 평가를 받은 <전우치>는 강동원과 김윤석 투톱을 내세웠지만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평면적이었다. 그는 각기 개성이 다른 캐릭터들을 모아놓고 캐릭터들 간의 화학적 결합에서 재미를 이끌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그가 제작자인 부인과 함께 만든 영화사의 이름을 여러 명이 범죄를 모의하는 장르에서 따온 ‘케이퍼필름’이라고 지은 것에서 보듯 그는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둘째, 최동훈 감독은 편집의 리듬을 아는 감독이다. “영화는 편집이다”라고 말한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를 포함해 수없이 많지만 제대로 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타짜>에서 김혜수가 호구에게 접근해 음료수를 쏟은 뒤 골프를 치며 ‘설계’하는 장면은 짧은 시간 내에 필요한 정보만 압축해 보여준다. 많지 않은 컷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꽤 빠르게 느껴져 경쾌하다. 또 <도둑들>에서 실외기가 설치된 부산의 한 건물 외벽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은 화려한 앵글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리듬만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이에 비해 <전우치>는 다양한 CG를 사용하고 카메라 앵글에서 새로운 실험을 했지만 이야기의 템포는 많이 늘어졌다.
<암살>을 이야기하기 전에 감독의 전작들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암살>에는 감독의 장점과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독립군 제3지대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상하이의 청부살인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하와이 피스톨의 조력자 영감(오달수),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이완용도 혀를 내두른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독립군의 근거지 아네모네 마담(김해숙), 그리고 김구(김홍파)와 김원봉(조승우)까지. <암살>의 등장인물들은 최동훈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다채롭고 화려하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서로 다른 욕망으로 얽혀 있다. 편을 갈라 싸우다가 누군가가 배신하면 속고 속이는 러닝타임 쟁탈전이 벌어질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한다.
욕망의 캐릭터로 만들기 어려운 ‘일제하 독립군’이라는 한계
그러나 문제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이고 인물들은 독립군이다. 주요 인물들은 허구지만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최동훈 영화의 캐릭터들은 모두 반사회적인 인물들이었다. 범죄자들이나 도박꾼들 혹은 국제적인 도둑들이었다. 그들은 배신에 배신을 거듭해도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독립투사들을 그들처럼 그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따라서 악역은 몇몇 친일파에 한정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최동훈식 캐릭터 무비의 매력은 사라지는 것이다.
최동훈의 작품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대부분 흥행에서 쓴잔을 마셨는데 그 이유는 역사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인물이 평면적이 되고 영화가 정형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정도인데 그 영화는 역사성을 아예 지워버린 경우였다.
최동훈의 두 가지 승부수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동훈 감독은 두 가지 승부수를 던진다.
첫 번째 승부수는 전지현에게 1인 2역을 맡긴 것이다. (그녀의 연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지만 어쨌든) 친일파 암살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던 영화는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이야기의 결을 바꾸며 안옥윤의 쌍둥이 자매를 통한 서스펜스를 주축으로 삼는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관객은 알지만 등장인물들은 모를 때 서스펜스가 성립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최동훈의 영화에서 서스펜스는 인물들 간의 배신 관계를 관객에게 보여줄 때 주로 성립했다. 그러나 <암살>에선 배신 관계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없으므로 안옥윤을 쌍둥이로 만들어 서스펜스를 노린 것이다.
여기에 최동훈은 비정한 아버지라는 보편적인 악인을 내세워 독립군과 친일파의 대결이 주는 무게를 덜어내려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선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영화가 유지해온 흐름이 갑자기 변하기 때문이다. 만약 <암살>이 목표했던 천만 관객 동원에 실패한다면 이 지점이 가장 큰 패착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승부수는 염석진 캐릭터의 입체적인 변화다. <암살>은 이정재 원톱 영화로 만들었어도 됐을 만큼 염석진이라는 인물에는 사연이 넘쳐난다. 그는 독립군에서 친일파 강인국을 죽이려 하다가 김구를 배신하고 강인국 편에 선다. 훗날엔 반민특위의 법정에서 무죄를 강변하기도 한다. 여럿으로 쪼개진 독립군, 더 악랄해진 후기 친일파, 해방 후에도 친일파를 처단하지 못한 역사 등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염석진이라는 인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문학적인 인물이다. 그에 비하면 다른 캐릭터들은 쉽게 예측이 가능할 정도로 평면적이다. 특히 하와이 피스톨과 영감은 이런 종류의 영화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캐릭터여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만약 <암살>이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면 팔할이 염석진이라는 캐릭터 덕분일 것이다.
한없이 가벼워질 수 없기에 택한 길
180억원의 순제작비를 투입한 <암살>의 손익분기점은 관객 650만명선이다. 이미 1000만 관객 영화를 필모그래피에 올려 놓은 최동훈 감독이지만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화의 소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선조들이다. 영화에는 그 무게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물들은 마치 서부극의 주인공들처럼 총격전을 벌이지만 <도둑들>처럼 가볍게 가지 못한다.
최동훈 감독은 캐릭터의 자유로움을 포기하는 대신 영화를 통해 제법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 그 메시지는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싸운다”는 안옥윤의 대사에서 드러나고, 또 마지막 장면,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방청객을 향한 염석진의 일장연설과 그에 호응하는 대중들의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영화는 최동훈식 캐릭터 무비의 화려함을 잃은 대신 메시지와 묵직함을 얻었다. 그의 장기인 편집의 리듬은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해주지만 아무래도 유기적으로 매끄럽다는 느낌까지는 주지 못한다.
대신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1930년대의 항저우와 경성을 재현한 고증의 디테일이다. 확실히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지점(현 신세계백화점 자리) 내부의 풍경이나 항저우의 임시정부 내부, 독립군이 사용한 다양한 총기류, 해방 후 서울 법원 앞 거리 등은 디테일이 살아 있어 시선을 붙잡는다.
최동훈 감독의 두 가지 승부수는 과연 흥행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일단 개봉 첫주엔 이름값으로 기선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개봉 둘째주 <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과의 맞대결부터다.
원문: 인생은 원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