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각하께서 퇴임하실 때가 되었다. 하지만 각하가 꾼 최대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뤄지지 못한 그 꿈의 이름은 “한반도 대운하”이다.
교통과 물로 뜬 각하, 또 교통과 물로?
각하께서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계시던 당시, 그가 교통과 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각하께서는 04년 7월 전격적으로 서울 시내버스 노선을 전면 개편하는 데 성공하는 기염을 토한다. 게다가 여전히 타 시도에는 드문(경기도, 광주광역시에서 운용 중) 중앙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 역시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가로변 버스전용차로에 비해 속도가 10% 이상 개선되며, 배차간격 편차도 줄어든다는 실증 결과가 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서울시는 버스 운송수입금을 모두 환수하여 버스 운행량에 비례해 각 회사에 배분하는 권리, 신규 버스노선의 경우 시가 공고하여 입찰에 부치는 권리 등 버스 운영에 대한 각종 실질적 권리를 시가 거의 모두 장악하여 운수업체의 횡포를 막는 한편 종사자의 복지와 이용객의 편익 향상을 그 목적으로 하는 준공영제까지 한 번에 도입한 것이다. 지하철과 버스, 버스와 버스 간 환승이 무료가 된 것은 그저 보너스일 뿐이다. 다른 시도에서는 이들 일련의 조치가 서울시보다 몇 년이나 늦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경기도는 08년, 인천은 여러 차례 연기된 끝에 09년 말), 서울시내버스 개편이라는 각하의 업적은 그야말로 이 나라에 상대할 자가 없다. 그가 참조했던 외국의 사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매출 1.5조원과 직원 2만명이 결부된 업계인 서울시내버스 업계를 일거에 크게 개선시킨 것만큼은 놀라운 업적이다.
청계천 역시 이명박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업이다. 이 경우, 청계천 사업의 결과가 정말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조경 사업의 결과를 보고 감탄한 것은 사실이다. 이미 왕조 시절부터 대도시의 하수구였던 덕에 생태 하천과는 거리가 멀었던 곳이고, 현재 교통량이나 주변 환경도 조선조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진 만큼, 역사적 유적의 복원은 물론 생태적 복원 역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 나로서는, 지금의 청계천이 부족하나마 현재 서울 도심에서 할 수 있었던 최적의 조경 공사가 아니었을까 하는 판단이 서는 것이 사실이다. 또 청계고가를 철거하고 청계천로를 축소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덕에, 도심의 승용차 통행량이 줄어든 것도 당시의 사업 목표이자 이후 관측된 사실이다. 청계천 일대의 도로 축소 정책은 충분히 교통과 생태 측면에서 큰 업적이라는 평가를 들을 자격이 있다.
하지만 그의 다음 야망은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든 사업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다. 교통망으로서, 그리고 토목사업으로서 대운하는 결격 사유가 많다.
이런 판단은 운하 아니 교통망을 건설하는 일반적인 이유에서 나온다. KDI의 예비타당성조사 지침(한국개발연구원,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일반지침 수정•보완 연구(제5판)』, 2008)에 따라, 이 이유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자.
경제성 분석. 이것은 교통망을 건설해서 얻을 수 있는 편익의 양을 구하는 작업이다. 교통망의 경제성 분석에서 주로 분석되는 요소는 시간 절약, 운전비용 감소, 환경비용 감소, 사고 감소다. 물론 지역 개발 효과나 시장확대, 산업구조 변동과 같은 효과도 상당하지만, 아직 이것을 개량화해서 평가하지는 못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우연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정량적 평가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한국개발연구원, 같은 책: 34쪽). 여하튼 이렇게 구한 편익의 양이 비용보다 많으면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책성 분석. 사업과 이해관계를 가진 여러 주체들을 조율하는 정치적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 지 평가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지자체와 주무부처의 의지, 기존 계획과의 조화, 재정분배의 원활함,환경적 마찰 최소화, 기술적 난관에 대한 조율 등이 여기서 평가된다. (한국개발연구원, 같은 책: 106쪽). 정치적, 기술적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면 정책성 분석을 통과했다고 하겠다.
지역균형발전 분석. 인프라는 그 자체로 수요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즉, 먼저 인프라가 공급된 곳은 계속해서 성장하면서 다른 인프라 수요를 불러들이는 반면, 나중에 인프라가 공급되거나 미약하게 공급된 곳은 성장이 느려지면서 추가 인프라 공급이 느려질 수 있다. 이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조절하기 위해 해당 평가 항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낙후도 지수를 구하고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재밌는 것은, 대부분의 교통망은 그 편익 가운데 대부분을 시간 절약이 차지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운하는 시간 절약 편익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수단이다. 운하를 항행하는 선박은 갑문으로 인해 양안을 달리는 자전거보다도 느릴 수 있다. 따라서 운하의 경제적 편익은 운전비용과 환경부하, 사고 감소 측면에서만 나올 것이다. 반면 그 비용은 사대강 사업에서 확인했듯 막대한 수준이다. 과연 경제적 편익이 있을 것인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반으로 평가를 검토할 것인가? 다행히 이명박의 취임에 앞서 출간된 『한반도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한반도대운하연구회, 2008)에 곽승준의 경부운하 경제성 평가(「한반도대운하 건설의 경제성 분석」, )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서 사용한 가정들을 검토하면 비교적 쉽게 운하의 경제성에 대해 평가할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성 분석의 측면에서 다룰 갈등으로는, 환경에 대한 우려가 아무래도 가장 크다. 다만 직접 공사로 인해 벌어졌을 법한 환경 파괴는 대체로 이미 다 이뤄졌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무언가를 예측한다거나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낙동강 구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판단에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대구와 구미에서 오염물질을 방출하는 것은 하류에 있는 부산과 창원에 대한 공격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이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낙동강에 대해서는 오염 총량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통제 방침과, 운하 관련 개발이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은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또, 조령/이화령에 25km에 달하는 장대 터널을 파는 계획은 확실히 심각한 기술적 난제다.
지역균형 개발의 경우, 물론 낙동강 상류의 경북 북부 지역에 대해서는 적절한 명분일 수 있지만 대구와 부산 같은 대도시, 그리고 수도권에 대해 우선적인 투자를 해야 할 이유는 사실 전혀 없다.
이들 검토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경제성 평가와 정책성 평가다. 정책성 평가를 위해서는 『한반도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에 수록된 류우익의 글「물길 이어 국토 개조」에 수록된 주장을 대운하를 추진하려는 정책적 이유로 보고 검토하기로 하겠다.
경제성 평가: 명백히 잘못 수행되었다
곽승준의 경부운하 경제성 평가 내용은 다음 표로 요약할 수 있다.
내용에 대해 상세히 해설하기 전에, 곽승준의 전체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경부운하를 지으면 16.3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한편, 37.5조원의 사회적 편익이 발생한다. 따라서 비용보다 편익이 2.3배 많다. 이를 다른 수치로 표현하면, 전 사회적으로 21.2조원 만큼의 편익이 발생하거나(순현재가치), 경부운하에 대한 투자로 인해 사회가 누릴 수익률은 10.61%에 달한다(내부수익률. 사회적 할인율에, 원금 16.3조원으로부터 37.5조원의 수입을 30년 뒤에 얻으려면 달성해야 할 수익률을 더해서 얻은 수치임).
먼저 두 가지 가정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사회적 할인율이란 미래에 발생할 편익과 비용의 가치를 현재 시점의 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율이다. 사회적 할인율이 6.5%(2008년에 개정된 KDI의 현용 타당성평가 지침에서는 5.5%)라는 것은 곧 1년 뒤에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은 현재 발생하는 편익과 비용에 비해 6.5% 작게 계산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계산 규칙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미래의 편익보다는 현재의 편익을 더 선호하고, 현재의 비용보다는 미래의 비용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는 현재보다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런 선호는 합리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자를 역으로 본 이름인 셈인데, 여기에 ‘사회적’이라는 말이 붙는 이유는 ‘경제성’평가는 사회 전반의 비용과 이익을 재기 위한 시도이므로 사회 전반에서 통용되는 할인율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편익 발생기간을 30년으로 한다는 것은, 시설물 건설로 인한 편익은 미래의 무한히 긴 기간 동안 이어지지는 않고 시설물의 수명 동안만 이어진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30년 뒤에 파괴된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2호선도 올해로 30년 넘은 구간이 많이 있다. 하필 30년으로 한 것은 도로와 철도의 편익 유지 기간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를 준용한 것으로 보인다.(『수자원부문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표준지침 수정•보완 연구(제4판)』, 한국개발연구원, 2008 : 88~89쪽.) 이를 포기한 것은 나름 성의를 보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편익 분석의 상세 내용은 간단히 말해 엉망진창이다. 경제성분석을 하는 이유는 학계에서 타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의사결정자에게 보고하여 의사 결정을 쉽게 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하지만 곽승준의 보고서는 학계에서 도저히 타당하다고 볼 수 없는 근거를 들고 있기 때문에, 의사결정자를 착오에 빠뜨리는 보고서라고 보아야 한다. 곽이 학자로서 쌓아온 명성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먹칠을 하게 된 데에 대해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물론 주요 편익이 과장되거나 부적절하게 포함되어있는 반면, 비용에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편익과 비용 순으로 살펴보자.
표로 잠깐 돌아가서 편익 항목을 보라. 산업파급효과 항목이 11.7조원으로 최대이며, 대기질 개선이 7.3조원, 골재판매 편익이 8.3조원이다. 이 세 항목을 합치면 27.4조원에 달하여, 편익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 편익이 의심스럽다면 경부운하의 편익 역시 의심스러운 셈이다.
산업파급효과의 경우, 곽승준의 보고서상 편익은 대체로 재정지출로 인한 부가가치 유발 효과를 말한다. 하지만 교통망이든 수자원이든, 재정지출로 인한 경기 부양 효과를 편익으로 볼 수 있다는 언급조차 지침에는 없다.
경기부양 효과가 사업을 정당화하기 위해 흔하게 이야기되는데도 비용편익분석에서 빠져야 할 이유가 있다는 점은 경제학계에서 널리 합의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침에는 경기 부양 효과뿐만 아니라 “지역개발효과, 시장권 확대, 산업구조 개편효과(『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일반지침 수정•보완 연구(제5판)』: 311쪽)” 같은 효과도 편익 계산에서는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는 정부 투자는 민간 투자에 대해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 를, 즉 민간 투자 위축을 불러올 위험 때문에 지침에서 빠진 것이다. 다시 말해, 정부의 재정지출 자체가 경제적 위험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은 경제학계에서 합의된 사실이다. 물론 유보 조항이 있어야 하지만. 이 합의 덕분에, 타당성평가 지침에서는 지역개발 효과나 산업개편, 시장 확대 효과는 물론, 더 일반적으로 말해 재정 지출로 인한 경기 부양효과 전반을 편익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게다가 후자는 다른 사업의 보조를 받아야만 완수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다른 사업의 보조는 물론 재정지출로 인한 위험과 편익까지 계산에서 배제하더라도 편익이 발생해야만 교통시설의 건설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경제학계에서 합의된 상태다. 곽승준의 보고서는 이를 무시했다.
대기질 개선효과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부산간 물동량의 70%가 운하로 옮겨간다고 가정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양의 화물차 통행이 절감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수송분담률을 운하가 기록할 가망은 없다. 조건이 비슷한 철송의 경우, 국가교통 DB(ktdb.go.kr)상에서 보고되고 또 예측된 값은 부산~수도권간 화물의 15% 가량을 분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운하는 철송(오봉~부산진간 고속화물열차가 약 6시간 소요됨, 20피트 영盈컨테이너에 대해 운임은 약 20만원)보다 느리고 거점 화물터미널이 철송보다 수도권의 대단위 산업단지에서 먼데도 불구하고 70%의 물동량을 장악할 것이라는 예측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한편 운하로 처리하는 물동량이 감소한다는 의미는 곧 화물자동차가 그대로 많이 다닐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기질 개선효과를 곽승준의 비현실적 예측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실제 교통량에 따라 평가하려면, 1% 대체시부터 20% 대체시까지의 효과를 각기 구하고, 국가교통 DB상의 화물수송 네트워크를 대운하를 반영하여 시뮬레이션 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만일 이렇게 예측한다면, 대기질 개선효과가 30년간 1조원 미만의 양이 될 것이라고 봐야 할 교통량이 나올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는, 아무리 빨라도 24시간이 걸리는 경부운하는 오히려 철송에 밀려 수송분담률이 보잘것없게 나올 가망이 크다.
골재판매를 사회적 편익으로 잡은 것은 명백한 오류다. 이것은 다른 골재상들의 수익이 국가 또는 운하 사업자로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골재가 강바닥에서 나오느냐 다른 곳에서 나오느냐, 그리고 그것을 누가 파느냐가 바뀌었을 뿐이다. 이 경우 사회 전체의 편익이 상승할 것이라고 볼 이유는 사실상 없다. 골재를 민간 회사가 아니라 국가나 수자원공사 등이 판매한다고 해서 골재를 사가는 건설사에게 무언가 이익이 발생한다고 볼 이유는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만일 골재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경부운하의 골재로 인한 사회적 편익은 오직 골재대체편익만을 인정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골재판매수익을 사회적 편익에 포함시킨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될 개념 혼동이다.
그렇다면 이 세 편익 가운데 진짜 사회적 편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경부 운하의 편익은 높게 추정해봤자 10조원 미만인 셈이다. 이마저도 수송비용 절감 편익은 물동량이 과장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104만 TEU는 20피트길이 컨테이너 104만개라는 뜻인데, 이곳에 물을 가득 채우면 약 3975만톤이 들어간다. 경부간 수송량의 대부분을 운하가 차지한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대기질 개선 편익을 계산할 때와 숫자도 크게 다르다.) 깎아야 할 것이다.
한편 공간개선, 환경개선 편익에서 사용된 조건부가치측정법(Contingent Valuation Method)은 간단히 말하면 대운하로 인해 이뤄지는 조경 사업에 얼마만큼의 돈을 낼 수 있느냐는 데 대한 설문조사 결과로부터 계산한 값이다. 이것은 비교적 성실하게 조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삼을 부분은 없어 보인다.
남은 것은 비용 평가다. 소개된 항목의 비용 평가는 비교적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물론 공사비가 증가할 수도 있겠지만, 그 수준이 사대강(22조원 투입. 이것은 경부운하보다 훨씬 더 긴 사업 연장을 지닌 사업이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에서 볼 수 있듯 크지는 않았을 수도 있으니 흠결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필수적인 비용이 항목에 없다는 점이다. 그 항목은 바로 운영비다.
경부운하의 대부분은 자연수로이기 때문에 운영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주장이 『한반도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에 수록된 류우익의 글에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같은 책 4장에 소개된, 경부운하를 위한 방대한 설비와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다. 경부운하의 안전한 운용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비들과 유지관리비용이 필요하다.
터널과 보∙갑문에 대한 유지관리비
관제, 항로표지, 전기통신 시설에 들어갈 인력
터미널 유지관리비
생태시설 유지관리비
(4장에 따른 시설임. 168~394쪽.)
보와 갑문에 대해서는 이미 비용이 지출되고 있다. 또한 총길이 25km에, 터널 최대너비 21460mm, 터널 최대높이 22030mm, 단면적 110~130제곱미터에 달하는 장대한 터널을 유지∙관리하는데도 당연히 돈이 들 것이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는 항로 관제를 위한 인력이 필요하며, 항로표지와 전기통신 시설을 유지∙관리하는 데에도 인력이 필수다. 화물선이 정박할 터미널도 그냥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생태시설 역시 일부 지역에서는 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논란이 된 항로 준설 같은 것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운영비가 들어가야 할 곳이 이렇게 많다. 그럼에도 곽승준은 비용 항목에서 이들을 감안하지 않았다.
편의상 경부운하의 유지관리비를 30년간 매년 1000억원씩이라고 가정하자. 500km가 넘는 장대한 구간에 이 정도 비용이 매년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싼 것일 수도 있다. 사회적 할인률이 다음과 같이 주어질 경우, 30년 총 유지관리비의 현재가치 환산 가격은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곽승준의 경부운하 비용 추정은 비용을 거의 절반으로 줄여서 내놓은 셈이다. 총 비용을 30조원이 넘는 수준으로 계산하는 것이 현 KDI 예타지침상, 그리고 경제학적으로 타당하다.
결국 곽승준은 경부운하의 편익을 27조원 가까이 과다추정했으며, 비용은 10조원 넘게 깎았다. 이를 감안했을 때, 경부운하의 편익은 10조원 미만이며 비용은 30조원이 넘는다. 따라서 비용대비 편익비는 0.3, 순현재가치는 -20조원, 내부수익률은 1% 미만이다. 따라서 어떠한 기준에 비추어 봐도 경부운하에 경제성이 있다는 평가는 할 수 없다.
이렇게 낮은 경제성평가 점수를 받고도 사업이 강행된 인프라 사업으로 호남고속철도의 사례가 있다. 이 사업도 비용편익비가 0.3대였다. 즉 10조원을 들여서 3조원 어치의 편익을 얻는, 경제성과는 거리가 아주 먼 결과가 예상된 바 있었다. 물론 광주~목포 구간처럼 쓸모 없는 구간을 짓지 않을 것이고, 전라선 직결 고속열차로 인해 호남고속선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안을 다시 평가해 보면 비용편익비가 상당히 상승할 수도 있다. 또한, 정부가 경제성이 가장 낮은 오송분기 대안이 선택되도록 방조하지 않았다면 비용편익비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여하간 이렇게 경제성이 낮은 호남고속철도 사업이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노선이 호남으로 가는 노선이었기 때문에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등에 업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부운하가 그런 면이 있다면, 마치 호남고속선 사업처럼 어느정도 경제적 타당성이 확보되지 않더라도 사업을 할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경부운하는 서울, 대구, 부산을 통과하는 노선이다. 이들 대도시에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 전국 어디나 그런 배려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과 경부운하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유다.
정책성 평가: 갈등과 위험을 감수할만한 타당한 논거가 없다
이제 정책성 평가로 넘어가보자. 경제적으로 해서는 안 될 사업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해도, 정치 권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업은 사실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정말로 미래를 위해 모험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라면 말이다. 단, 갈등과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모험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한반도대운하는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물길이다』 서두를 빛내고 있는 각하의 서문을 지나면, 이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글이 나온다. 류우익의『물길 이어 국토 개조』(18~46쪽)이다. 국내 대하천이 천정천(강바닥이 주변 땅보다 높은 하천)이라는 거짓말이라던가, 괴산 수안보∙ 문경 주평(舟坪)역의 한자에 물과 배가 들어가니 달천과 영강을 따라 운하가 들어설 조짐이라는 도참 같은 것을 소개하는 것은 저자 개인의 취향일 테니 웃어 넘기도록 하고, 그의 주요 주장을 통해 대운하가 정말로 모험을 해 볼만한 사업인지, 그리고 갈등과 위험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인지 평가해 보도록 하겠다.
류우익의 핵심 주장은 ‘한반도 전체를 항구로 만들자’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토 전체에서 바다로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주장의 핵심 같다. 이를 통해 내륙지방 개발을 촉진하고, 지방의 광역화도 촉진하여 세계 각 도시권 사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지방도시권의 경쟁력도 높이자는 것이 그 주장의 함축이다.
또 운하는 산업 발전을 위한 교통로일 뿐만 아니라, 관광자원이기도 하다는 주장을 함께 하고 있다. 물론 선진 외국에서는 모두 내륙수로를 사용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지적하고 있다. (물동량 문제는 경제성 평가를 검토하면서 충분히 다뤘다. 철송보다 나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운하는 도로나 철도보다 운임이 쌀 것이며, 또 경부축선은 우리나라의 주요 축선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수송망 공급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산업 고도화 때문에 화물 양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점에는 류우익도 동의하지만, 여전히 건축 자재 수요가 있다는 점을 들어 운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간 교류 확대, 물을 통한 사람들의 정서 함양, 남해안 발전, 북한과의 연결에도 한반도 대운하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재정 지출을 통해 일자리 확충을 시도한다고도 한다.
대운하로 인한 위험으로 꼽을만한 것은 하천 유지와 식수 취수다. 이에 대해, 류우익은 오히려 물그릇을 키우고 유속을 줄여서 물의 양(애매한 표현이다)을 증가시키는 한편, 직접 취수 방식을 점차적으로 중단하고 ‘강변여과수’, 즉 강변의 지층을 통해 옆으로 스며나오는 물을 취수하여 식수로 삼자는 제안을 한다.
이러저러한 잡다한 주장을 제쳐놓고 보면, 운하라는 모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내륙 항구와 수로를 통해 수로 주변 지역이 택할 수 있는 경제적 기회를 늘려주는 것이겠다. 그 자체로는 솔깃한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구∙구미와 같은 내륙 지역은 확실히 제조업 업종이 제한적이니 말이다. 또 수상 카지노 유치 전에는 모든 낙후 지자체들이 뛰어들고 싶어할 것이 틀림없다. 4대강 사업비나 보상비 또한 지방 유력자들에게는 짭짤한 돈줄이 될 것이다.
하지만 경제성을 찾기 어렵다는 것, 그리고 경부 운하로 경제적 기회가 늘어날 지자체는 서울, 대구, 부산 같은 대도시라는 점은 경부 운하라는 모험이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게 만든다. 또 낙동강은 상류의 오염을 통제해야 하류에서 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위험 요소도 있는데, 이 점은 검토되지 않았다. 게다가, ‘물그릇 키우기’ 같은 주장을 통해 하천 유지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호도하고 있기까지 하다. 물그릇을 키우면 물론 강물의 저수량(stock)이 늘어나기는 한다. 즉, 어느 단일한 시점에 강으로 육지 속에 있는 물의 양은 많아진다. 하지만 상류 댐의 저수량은 한정되어 있으니, 강물의 저수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결국 유량(flow)을 줄여야 한다.
경부운하를 흐르는 유량은 감소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는 말이다. 저수량만 늘고 유량은 감소한다면, 그리고 많은 인구와 공장이 오염물질을 쏟아낸다면 결국 물은 오염될 것이다.물그릇 키우기는 오염된 물을 더 많이 가둬놓는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강변여과수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겠지만, 이것은 충분히 경제성평가의 대상이 될 만 한 주제인데 왜 하지 않았는지 의아스럽다.
사실, 전국토를 항구로 만든다는 전체 슬로건 또한 구체적인 현실과 그 거리가 먼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는 일종의 선동을 위한 구호에 불과하다. 게다가, 하류와의 갈등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내륙에 주운이 필요할 정도의 중후장대형 공업단지를 만들 필요도 없다. 해운과의 접속을 제공하는 목적이라면 운하상 터미널이 기존 항구 접속에 비해 경제성 있는 교통망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수적인데, 국가교통DB에서 화물수송 DB를 제공하는 상황에서도 제대로 된 수요예측 시뮬레이션조차 수행하지 못한 상황이기에 도저히 그런 판단을 내릴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구미 이북의 경북지역이나 충북지역을 제외하면, 경부운하와 같이 경제성이 의심되는 대규모 인프라를 공급할만한 이유가 확인되는 구간은 경부 운하 내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실 운하가 공급된다고 해도, 이들 낙후 지역의 운하는 수상 카지노를 짓기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이러저러한 잡다한 논거는 별볼일 없는 것이다. 갈등과 위험은 축소되거나 간과되었다. 열어준다는 기회가, 정말로 사회 전체에 편익을 선사해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확신할 수 없다. 경부 운하라는 모험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거라고는 거의 없는 셈이다.
경부운하 다음 단계로 추진될 한반도 대운하의 길이는 무려 3015km에 달한다. 국내 철도망에 육박하는 장대한 길이다. 북한운하를 합치면 5000km 수준까지 길어진다. 하지만, 과연 내륙주운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긍정적인 논거를 이명박의 측근들은 잘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각하께서 제시하는 논거 역시 설득력 없는 선동 수준에 머물렀고 말이다.
한반도 대운하 구상을 살펴보면서, 아쉬운 것은 두 가지다. 이명박의 야심은 국내 실정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판단 없이 외국에서 하는 그럴듯한 것을 가져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선동가적’ 시도에 불과하다. 시장 시절에 뛰어난 성취를 보인 부분에 도취된 때문일까? 2013년 지금 이 시점에도 그는 대운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열정에 기초한 선동보다는, 실증에 기초한 의사결정이 정치가들에게 필요하다.
또 한가지는, 지금 살펴본 곽승준과 류우익의 논지는 재정사업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비교적 쉽게 논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곽승준이 수행한 타당성평가는 KDI의 예비타당성지침을 숙지한 자라면 누구나 쉽게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명백한 경제학적 오류가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아는 한 아직 명명백백하게 지적되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재정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 수준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비타당성조사에 참여하는 많은 학자들이 소신있는 발언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재정정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대운하에 대한 실수를 계기로 더 나아졌으면, 그리고 학자들이 이해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졌으면 한다.